홍길동에게
임채성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본 적 없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는 너를
오늘은 멱살을 잡고 따귀를 치고 싶다
시청 구청 동사무소에 호적을 두고서도
그늘지고 젖은 땅의 한숨과 울음소리
눈 감고 귀까지 막은 투명인간 고바우야
어둑새벽 불 밝힌 듯 사람들 깨워놓고
반 푼어치 분신술로 필사만 시킬 거라면
책 속에 다시 들어가 나오지나 말거라
아파트 공화국
임채성
힐에 사는 고양이가 타워를 바라볼 때
캐슬에 사는 개가 팰리스를 올려다본다
파크 옆 고시원 불빛
재개발 꿈을 꾼다
내 집은 어디 있나, 공사판을 맴돌아도
빛을 내 빛을 사는 은하계 빈틈은 없고
초고층 아파르트헤이트*
절찬 분양 시작된다
*apartheid. 인종에 따라 사회적인 여러 권리를 차별한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
결사적 하루
임채성
벼락을 맞는 것은 낮은 곳들 뿐이었다
높이 우뚝 솟은 것은 피뢰침이 있어서
천둥과 번개 속에도 위로 계속 올라갔다
숨 쉬는 날들 만큼 불어나는 고지서첩
반지하 쇠창살 새로 해는 들지 않아도
하늘은 암전된 방에 최고장을 날렸다
무허가로 꾸는 꿈은 모두가 악몽 같아
눈꺼풀이 내려와도 잠들 수 없는 밤들
아침도 갈가리 찢겨 너덜대고 있었다
12월 31일
임채성
송년회는 끝이 났다, 별은 모두 스러지고
오늘이 어제 같은 바닥 모를 취기 앞에
빈 가게 문 닫는 소리 가슴을 찍어내린다
크리스마스 캐럴마저 문득 끊긴 술집 골목
빠져버린 머리숱 같은 지난 시간 붙안고서
친구들 다 떠난 자리 왜 나만 지켜 섰나
때 묻은 달력 한 장 삭발하듯 찢어내면
중년의 벼룻길에도 초록불이 켜질까
시뿌연 어둠을 털며 새벽이 오고 있다
보름달
임채성
천국보다 높이 걸린 늑대의 눈부처 같은
다시는 데우지 못할 첫사랑의 심장 같은
꺼질 듯 되살아나는 내 영혼의 깜부기불
-《시조21》2023.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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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調의맛과˚˚˚멋
임채성 시인의 <홍길동에게> 외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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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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