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담초(Chinese peashrub)
골담초(骨擔草)란 뼈를 책임지는 풀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이름을 붙일 때부터 나무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뿌리를 한약재로 쓰고 있다. 풀초(草)자가 들어 있어 초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자그마하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나무이다. 귀여운 나비모양의 노랑꽃을 감상할 수 있고 약으로 쓸 수 있으므로 민가의 양지바른 돌담 옆에 흔히 심는다.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식물이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오른쪽으로 돌아 5분쯤 올라가면 고려 우왕 3년에 창건한 국보 제19호 조사당(祖師堂)이란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있다. 건물의 처마 밑 철망 안에 별로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데 신선집 꽃이란 의미의 선비화(仙屝花)란 팻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름은 골담초라 한다.'라고 하여 나무의 의미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1730년쯤 조사당의 선비화를 보고 적어둔 기록이 있다. '지팡이가 싹이 터서 자란 나무는 햇빛과 달빛을 받을 수 있으나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않는다. 지붕 밑에서 자라고 있으나 지붕을 뚫지 아니하고 높이는 한 길 남짓하지만 천년세월을 지나도 한결 같다.' 광해군 때는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절에 왔다가 이 나무를 보고 ‘옛 사람이 짚던 것이니 나도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라고 하면서 톱으로 잘라가지고 갔다. 나무는 곧 두 줄기가 다시 뻗어 나와 전처럼 자랐다. 다음 임금인 인조 때 그는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했다. 지금도 이 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며 또 잎이 피거나 지는 일이 없어 스님들은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부른다. 함부로 선비화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었다가 화를 입었다하여 나무의 신비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원산으로 가정에 흔히 심고 있는 낙엽활엽수로서 사람 키 정도 자라는 작은 나무이다. 줄기가 옆으로 늘어지면서 회갈색을 띄고 많은 포기를 만든다. 가지는 둥근 것이 아니라 다섯 개의 능선이 특징이다. 잎자루의 아래부분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발달하고 대궁의 좌우 2개씩 모두 4개의 잎이 달려서 우리는 이런 경우 우수우상복엽(偶數羽狀複葉)이라 부른다. 작은 잎은 손바닥 한마디 정도 길이이고 타원형이며 두껍고 표면에 윤기가 있다. 꽃은 4~5월에 노랑나비 모양으로 한 개씩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달린다. 노랗게 피는 꽃을 따서 쌀가루에 섞어 시루떡을 쪄 먹기도 한다. 열매는 콩꼬투리 모양으로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걸쳐서 익는다. 뿌리는 약용으로 쓰는데 생약의 골담근이란 뿌리를 말린 것이다. 한방에서 해수, 대하, 고혈압, 타박상, 신경통 등에 처방한다. 금작목(金雀木), 금작화, 금계화(金鷄花) 등 노란 꽃의 색깔 때문에 ‘금(金)’자가 들어간 여러 별명을 갖는다. 꽃말은 <청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