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제가 책을 닥치는대로 뒤죽박죽, 중구난방으로 많이 읽어댔는데 지금 독후감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쓰지 않았거나 다 지운 겁니다.
이상하게도 독후감이랍시고 쓰다보면 시국선언문으로 변질되더라구요.
푸하하하~~~
그때는 아직 젊었고 가슴 속에 울분이 가득 찼었나 봅니다.
지금은 아련한 슬픔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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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장세이 글 사진/목수책방 2015년
"처음 책을 쓰려 할 때의 목차는 지금과 사뭇 다르다.
자주 찾아 올려다보던 운현궁 인근의 목련은 다음해 봄, 전봇대가 되어있었다.
마구잡이로 가지치기를 당해 한참만에 알아보았다.
종로2가 금강제화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나무가 가죽나무인 것을 알아보고서는기뻐 날뛰었는데, 오래지 않아 댕강 베어진 것을 보고는 무릎이 꺾였다.
언젠가 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웬 중년남자가 옆에 와 섰다.
연신 담배 연기를 뿜는 통에 마주보기 싫었지만, 신발 밑창의 흙을 턴답시고 나무줄기를 퍽퍽 차대기에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호가 바뀌려 하자, 그는 손에 든 담배를 방금 차댄 나무줄기에 대고 사납게 비벼 껐다.
채 꺼지지 않은 담뱃불이 떨어진 나무 밑동에 걸쭉하게 침을 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혹해진 얼굴로 나무줄기를 쳐다보니 스테이플러로 철한 전단지가 철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다 대신 사죄하는 꼴이 되었다.
그때 발치를 바라보며 '서울 사는 나무는 곧 서울 사는 나'라는 걸 알았다..."
- '나무는 살아있다, 당신이 살아있듯... 서울 사는 나, 서울 사는 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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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살아있다, 당신이 살아있듯
1. 길가 사는 나무
1) 아름다움을 주고 멸시를 받다 = 화동북촌로5길 - 벚나무
2) 앞선다고 멀리 가랴 - 삼청동 북촌로5길 - 칡 오동나무
3) 이제야 보이나요 - 소격동 삼청로 - 비술나무
4) 흰 나무, 검은 나무, 잿빛 꽃 - 재동 북촌로 - 백송 독일가문비나무
5) 붉은 집의 푸른 외투 - 원서동 율곡로 - 담쟁이
6) 느티나무는 다 기억한다 - 신문로2가 새문안로 - 느티나무
7) 개나리 진 날, 봄도 저버렸다 - 송월동 송월로 - 개나리
8) 얼룩덜룩하다고 떨쳐버릴 텐가 - 용산동 이태원로 - 양버즘나무
9) 봉황은 왜 벽오동에 깃드는가 - 동숭동 동숭길 - 벽오동
2. 공원 사는 나무
10) 나 하늘로 돌아갈래 - 낙산공원 - 가죽나무
11) 소리 없는 종소리 - 삼청공원 - 때죽나무
12) 높은 넋을 기려 - 선유도공원 서대문독립공원 - 양버들
13) 제가 뭘 잘못했죠 - 안산공원 - 아까시나무
14) 망토를 메고 롤러를 타자 - 여의도공원 - 피나무
15) 어떤 이름이 더 어울려요 - 마로니에공원 - 가시칠엽수
16) 세월이 다 해명한다 - 삼청공원 - 귀룽나무
17) 호숫가의 하늘가 나무 - 호수공원 - 구상나무
18) 이제 그만 떠나련다 - 남산공원 - 소나무
3. 궁궐 사는 나무
19) 봄은 성대하게, 가을은 찬란하게 - 경복궁 - 꽃개오동 화살나무
20) 낭창거리는 앞뜰 - 경복궁 - 말채나무
21) 나무는 봄마다 회춘한다 - 창덕궁 - 회화나무
22) 그리움, 나날이 익어감 - 창덕궁 - 감나무
23) 으쓱한 어깨, 들썩한 궁둥이 - 창경궁 - 느릅나무
24) 우리 결혼했어요 - 창경궁 - 혼인목
25) 가까이 오지 마시오 - 덕수궁 - 주엽나무
26) 나도 엮이기 싫었다구요 - 덕수궁 - 등나무
27) 선홍빛 기억, 꽃으로 피어나고 - 동묘 - 배롱나무
28) 신들의 정원, 민초의 나무 - 종묘 - 물박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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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사는 여자가 쓴 책이다.
서울도 엄청 커졌지만 나날이 위성도시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인구 절반 정도가 그곳에 산다고 한다.
토박이도 많지만 대부분 어딘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요즘은 서울이 고향이에요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고향이란 말은 시골이란 말하고 아주 친한데, 이제 고향도 개념도 바뀌나 보다.
정들면 고향이라지만 시골사람인 나의 시각에서는 '서울이 고향이 될수도 있나?' 갸웃거린다.
고향이 좋은 이유는 언제든 거기 돌아가면 정든 사람들 정든 산천이 그대로 그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처럼 많이 변하는 곳이 있을까?
그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정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같지는 않지만 비숫한 마음이다.
여기도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예전 모습들이 사라져간다.
나는 누구에게도 항의를 할 수가 없다.
"내 고향을 제발 그대로 두라고!!!"
그냥 마음속에 간직할 뿐이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여자가 많이 지쳤을 때 그 곳에서 자신보다 더 힘들고 외롭게 사는 존재들을 발견했나 보다.
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신성한 존재였다.
오래된 나무는 마을의 신이 되어주었다.
조상보다 오래 산 나무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화되면서 가장 무시받는 것이 고목들이다.
마을 입구나 도로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마구 잘려나갔다.
젊은 나무들이 입주를 한다.
그들의 삶도 만만치 않다.
도로나 주택부지 수요가 끊임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꾸 밀려나고 쫓겨나고 베어진다.
나무는 상품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보호자이고 친구이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와 그렇게 공존해왔다.
우리가 나무를 멀리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친구를 버리는 것이다.
친구란 오래되어 좋은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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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6. 6:09에 최초 작성된 것 같음)
물론 그때와 지금은 세상을 보는 분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겁니다.
암요~~~
첫댓글 길가에서 담배피우는사람 많이 줄긴했지만
여전합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딴청 부리는 중)
흡연자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게 보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