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읍 신발시리즈 ‘미 틀’에 얽힌 사연들
(작성중 : 신발 시리즈 4회)
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는 ‘미틀’이라는 신발이 있었다. 표준어로는 ‘미투리’라고 하는데, ‘삼’이나 ‘노’, ‘모시’껍질 또는 닥나무 껍질로 삼은 신발을 말한다.
“보통 ‘미신’은 ‘니 날 백이’로 짜임새가 거치고, ‘미틀’은 ‘여섯 날 백이’에 ‘총’이 ‘달고’ 곱어서 존 신으로 친다”라는 용례(用例)가 있다.
“보통 ‘짚신’은 ‘네 날 박이’로 짜임새가 거칠고, ‘미투리’는 ‘여섯 날 박이’에 총이 촘촘하고 고와서 고급(高級) 신으로 친다”라는 뜻의 말이다.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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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사투리 예문(例文)에서 ‘달고’라는 말은 경주 사투리에서 그 원형(原型)을 ‘달다’라고 하는 말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달다’라는 말은 표준어(標準語)로 ‘촘촘하다’라는 말이다.
“꼬치모종을 너무 ‘달게’ 시무머 키마 크지 꼬치가 앤달린다”라는 용례(用例)가 있다. “고추모종을 너무 ‘촘촘하게’ 심으면 키만 크지 고추가 안 달린다”라는 뜻이다.
미투리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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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고향(故鄕) 사투리 ‘미틀’은 ‘미~틀’ 또는 ‘미이틀’로 읽어야 한다. ‘이하에서는 표준어(標準語)인 ‘미투리’로 통일한다.
사전(辭典)에서는 ‘미투리’를 앞서 말한 대로 삼이나 ‘노(실·삼·종이 따위로 가늘게 비비거나 꼰 줄)’ ‘모시’껍질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으로 흔히 날이 여섯 개로 되어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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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흔히 ‘육날 미투리’라고 하는데, 한자로 ‘구(屨)․승혜(繩鞋)·망혜(芒鞋)·마구(麻屨)·마혜(麻鞋)라고도 한다.
‘미투리’는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대표적인 신발로 부유층과 서민층의 남녀가 모두 신었으며, 섬세한 것은 사대부(士大夫) 계층에서 주로 사용했고, 서민층에서는 짚으로 삼아 신었다.
사대부층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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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으로 미루어보아 ‘미투리’는 신분의 차이에 따라 구조(構造)와 재료가 달랐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사대부(士大夫)들은 삼 따위로 만든 고급(高級) ‘미투리’를 신었고, 서민들은 짚으로 삼은 거친 ‘미투리’를 신은 것이다.
‘미투리’의 종류에는 삼는 방식(方式)과 재료에 따라 ‘분미투리’ ‘육날미투리’ ‘옥미투리’ ‘색미투리’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들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도표화(圖表化)하면 아래 표와 같다.
종 류 |
개요 및 특징 |
분 미투리 |
실로 곱게 비빈 ‘총’에 ‘분’을 바르고, ‘숙마(熟麻 ; 잿물에 삶아서 희고 부드럽게 된 삼 껍질)’ 따위로 바닥을 결어서 곱게 삼은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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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날미투리 |
‘신날’을 여섯 개로 하여 ‘삼’ 껍질 또는 ‘삼’과 짚을 섞어서 짚신처럼 삼은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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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미투리 |
예전에 볏짚의 둘째와 셋째 마디만으로 삼은 평양(平壤)에서 나던 고운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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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미투리 |
‘총’에 여러 가지 물감을 들여 만든 어린이나 젊은 여자들의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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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는 짚신의 형태로 삼기도 하나, 주로 날삼(生麻 ; 생삼)과 닥나무 껍질을 소금에 담갔다가 삼는다 해서 ‘삼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형태별로 보면 ‘이’(履 :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의 일종으로 짚신보다 고급품이었으나, 피혁제와 포백제(布帛製)의 신이 출현함에 따라 일반적으로는 서민층 남녀가 사용하였고, 섬세한 제품만을 사대부(士大夫) 계층에서 편복(便服 ; 특별한 일이 없는 평상시에 입는 옷)에 사용하였다.
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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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를 만듦새나 삼는 재료(材料)에 따라 또 달리 세분(細分)하기도 하는데, 삼신, 절치, 탑골치, 무리바닥, 지총미투리 등으로 분류된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종 류 |
개 요 |
삼 신 |
재료가 주로 ‘생삼’인 데서 비롯한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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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치 |
다소 거칠게 삼은 ‘미투리’로 절에서 신은 데서 비롯한 명칭이다. 절에서 삼아 신는 짚신도 ‘절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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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골 치 |
튼튼하고 잘 삼은 ‘미투리’로 서울의 동대문(東大門) 밖 ‘탑골’에서 삼은 데서 유래한다. 거칠게 삼는 짚신에도 ‘탑골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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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리 바닥 |
‘무리’(쌀을 물에 불려 갈아서 체로 받쳐 가라앉힌 앙금)를 바닥에 먹인 ‘미투리’로 고급품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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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총미투리 |
종이를 꼬아서 만든 ‘노’로 총(미투리의 앞과 옆쪽에 박힌 낱낱의 올)으로 하여 삼은 ‘미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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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의 재료는 짚과 삼(麻)이 주된 재료였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치해져 닥, 청올치(葛根纖維), 백지(白紙), 면사(綿絲)까지도 사용하게 되었다.
‘미투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짚신’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쪽에 게재한 “외동읍 신발 ‘미~신’에 얽힌 사연”을 먼저 읽어보실 필요가 있다.
면사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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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는 또 전술한 바와 같이 짚신을 ‘삼(麻)’이나 ‘노’, ‘모시’껍질 등으로 ‘총’을 50~60개 세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미투리’는 관아(官衙)의 아전(衙前)이나 몰락한 양반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짚신’과 함께 상사(喪事)에도 쓰였으며, 상가(喪家)에서는 ‘미투리’를 벽이나 기둥에 걸어 두기도 했는데, 이는 이승에 온 저승사자가 새 신발을 신고 가라는 뜻의 관습(慣習)이었다.
기둥에 매단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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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발레리나 등 서양무용의 무용수(舞踊手)들이 천으로 만들어 신는 ‘미투리’도 있고, 국악(國樂) 무용수나 택견 수련(修練)에 사용하는 ‘미투리’도 있다.
무용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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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용 ‘미투리’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드는 것으로 ‘발레슈즈’ 또는 ‘무용슈즈’라고도 한다. ‘발레슈즈’를 얘기 할 때면, 우리나라의 세계적(世界的)인 발레리나 강수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천여 켤레의 발레슈즈를 갈아 신을 정도로 혹독(酷毒)한 훈련을 쌓아 온 그녀의 발은 사람의 발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스스로 너무나 혹독한 연습(練習)을 하다 보니 살이 벗겨져서 굳고, 고름이 생기고, 아물고를 반복(反復)하다 보니 발 모양이 일그러진 것이다.
예쁜 발레미투리에 숨겨진 강수진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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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온 김에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력(履歷)을 잠시 알아본다. 우리나라 출신 천재(天才) 발레리나 강수진은 1985년 동양인(東洋人)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1986년에는 세계 5대 발레단의 하나인 독일(獨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동양인으로서는 최초 최연소(最年少) 단원으로 입단했었다. 이후 2007년에는 역시 동양인(東洋人)으로서는 최초로 독일의 ‘캄머탠저린(Kammertanzerin, 궁정무용가)’ 칭호를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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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악무용수(國樂舞踊手)들의 ‘미투리’는 풍물놀이나 사물놀이 연주 시 공연하는 단원들이 착용하는 신발로 밑창이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착용감(着用感)이 좋고 미끄러지지 않는다.
국악(國樂) ‘미투리’는 사물놀이 외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무예(傳統武藝)인 ‘택견’ 쪽에서 많이 사용해서 ‘택견화’라고도 불린다. 택견용 미투리는 수련(修練) 때 발을 보호하고 예의(禮儀)를 차리기 위해 신는다.
국악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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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택견 수련에서의 복장(服裝)으로는 흰색 고의적삼과 행전을 차고 버선을 신고, 유단자(有段者)는 검은색 고의적삼을 입는다.
택견에서 버선과 ‘미투리’를 신는 이유는 발을 보호(保護)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술(武術)에서 맨발로 수련을 하는 것은 일본문화(日本文化)의 잔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택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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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미투리’ 얘기로 돌아간다. ‘미투리’는 우리들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숱한 애환(哀歡)이 서려있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낭군(郎君)과의 이별을 애달파하는 이별의 노래 소재(素材)가 되기도 했었다.
앞서 다른 파일에서 소개한바 있지만, ‘미투리’에 얽힌 별리(別離)의 비통함을 노래한 시(詩)는 서정주의 ‘귀촉도(歸蜀途)’가 지금도 압권(壓卷)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詩)를 소개한다.
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님아
* ‘미투리’의 경상도 방언
** 두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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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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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에서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여인이 ‘님’이 떠나는 머나먼 저승길에 자신의 정절(貞節)과 다름없는 머리카락을 선 듯 잘라 ‘미투리’를 삼아줄 걸 그랬다는 회한(悔恨)의 가락을 올올이 토해 내고 있다.
시(詩)의 내용을 잠시 새겨본다. 시(詩)의 1연에서는 ‘님’이 죽었다는 사실과 ‘님’이 화자(話者)에게 다시 오지 못하는 머나먼 곳으로 떠났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저승길을 떠나는 ‘님’은 아롱아롱 눈물을 흘린다. 죽은 ‘님’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님’이 이승에 대한 강한 집착(執着)과 미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귀촉도 : 두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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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연에서는 화자(話者)의 깊은 회한(悔恨)이 드러난다. ‘님’이 저승길을 가는데 필요한 신발(미투리)을 삼아 주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3연에 와서 화자는 ‘귀촉도(歸蜀途)’를 끌어온다.
‘귀촉도(歸蜀途)’나 ‘님’은 죽음, 방황, 미련, 한(恨)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共通點)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 피에 취한 새 =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두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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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잠시 동안의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는 볼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길을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의 애통(哀痛)함은 비할 데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살아 있을 때 정성(精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더욱 그 고통을 크게 만든다.
‘귀촉도’의 배경에 얽힌 사연(事緣)도 함께 알아본다. 중국 고서(古書)의 하나인 『환우기(寰宇記)』에는 ‘귀촉도’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망제(望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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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나라 말기 촉(蜀)나라에 두우(杜宇)라는 왕이 있었는데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문산(汶山)의 강가를 지나다가 한 시신(屍身)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건져 내자 시신은 다시 살아났다.
이상히 생각한 ‘망제(望帝)’는 그를 데리고 대궐로 돌아와 사유를 물은즉, 그는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는 사람으로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졌는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형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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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이도 어리고 마음이 약했던 ‘망제(望帝)’는 이는 필시 하늘이 보내 준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별령(鱉靈)은 본시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쁜 딸을 ‘망제(望帝)’에게 바쳐 환심을 산 뒤, 곧 궁중(宮中) 사람들과 대신(大臣)들을 매수해서 ‘망제’를 대궐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두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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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돌아갈 곳을 잃은 ‘망제(望帝)’는 그 원한과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죽게 되었는데, 그 후 대궐이 보이는 서산에는 밤마다 두견새 한 마리가 날아와 슬피 울곤 했었다.
그리고 이를 기이(奇異)하게 여긴 촉(蜀)나라 사람들은 이 새를 ‘망제(望帝)’의 넋이 환생한 것이라 여기고 이를 ‘귀촉도(歸蜀途)’라 불렀다.
‘귀촉도’란 촉(蜀)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고, ‘두견’이란 ‘두우(杜宇)’에서 나온 이름이요, ‘불여귀(不如歸)’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요, ‘망제혼(望帝魂)’이란 ‘망제(望帝)의 죽은 혼’이라는 뜻으로 이 모두는 ‘두우(杜宇)’의 이야기에 관련된 것들이다.
파촉(쓰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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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에서 말하는 ‘파촉(巴蜀)’은 옛적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있던 ‘촉(蜀)’나라 땅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서역(西域)’과 함께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육날메투리(6날 미투리)’는 삼 껍질로 짠 신발로 ‘신날’이 여섯 개라는 뜻이며, ‘메투리’는 ‘미투리’의 경상도 방언(方言), ‘이냥’은 ‘이대로’ 또는 ‘내쳐’라는 뜻이다.
육날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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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歸蜀途)’는 문자 그대로는 ‘촉(蜀)나라로 가는 길’을 뜻하나, 여기서는 새 이름과 새 울음소리와 겹쳐 돌아간 ‘님’의 환생(還生)한 모습을 가리킨 한다. 즉, ‘두견새’의 이칭(異稱)이라 할 수 있다.
‘귀촉도’는 한 시인이 당시의 여성들에게 ‘아내의 나갈 길’을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적(意圖的) 표현으로 엮은 글이다.
그러나 옛적 우리들의 할머니들께서는 실제(實際)로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 죽은 남편의 발에 신겨줌으로써 지고(至高)한 정절과 순애보(殉愛譜)의 표상을 보여 주셨다.
미투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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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파일에서 소개한바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경상북도 안동(安東)에 살던 이응태(1556~ 1586)라는 사람이 30세의 나이로 죽자 부인(婦人)인 ‘원이 엄마’가 저승길에 신고 가라며 자신의 머리채를 은장도(銀粧刀)로 잘라 ‘삼’을 섞어 삼은 ‘미투리’를 남편의 무덤에 넣어준 것이 그 사례(事例)다.
“꿈에라도 몰래 와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세요”라는 수줍고 애달픈 편지와 함께 자신의 정절(貞節)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 죽은 남편의 발에 신겨준 것이다.
미투리 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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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한 정절과 순애(殉愛)의 징표인 이 ‘미투리의 사랑’은 수백 년의 시공(時空)을 초월한 조선(朝鮮) 여인의 ‘순박한 사랑’과 ‘아내의 나갈 길’로 명명되어 지금도 세계인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뛰고 꿀리고 기껏해야 분뇨(糞尿)밖에 나오지 않는 엉덩이를 관객의 눈앞에서 저급(低級)하게 씰룩거리는 ‘K팝’ 따위가 아니라 이것이 면면히 이어져 나가야할 진정한 한류(韓流)가 아니겠는가.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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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인문지리(人文地理)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남편의 병환(病患)이 깊어지자 저승에 갈 때 신고 가라고 ‘삼껍질’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아 죽은 남편의 발에 신겨준 사연(事緣)을 게재하여 세계에 알려준바 있다.
조선조(朝鮮朝)의 한 여인이었던 ‘원이 엄마’의 사연(事緣)과 ‘미투리’를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아내의 나갈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사랑의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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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투리는 1998년 경상북도 안동시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 이응태
(1556~1586)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발견되었다. 여인의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 삼은 것으로 400년이 지났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430여 년이 지난 조선 중후기(中後期)의 이야기지만, 이야말로 진정한 순애보(殉愛譜)라 아니할 수 없다. 변심이 죽 끓듯 하는 세태(世態) 속에 사는 이 시대의 여인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표상(表象)이 아닌가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맹세(盟誓)가 메아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절반에 가까운 커플들이 등을 돌리는 지금의 여성세대(女性世代)들이 제아무리 질 좋은 ‘나이키’를 신는다 해도 그 시절 그 ‘미투리’에 담긴 사랑의 의미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키 신은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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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 사랑’의 화신 ‘원이 엄마’의 편지 전문을 다시 소개한다. 회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原文)과 현대역(現代譯)을 병렬로 소개한다.
원문(原文)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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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역(現代譯)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갖고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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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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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엄마’ 편지의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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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년 전 작성되어 무덤 속에 있던 것이라 심하게 훼손되었다)
430년 전의 진정한 한류(韓流)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후세(後世)의 사람들은 ‘원이엄마’의 ‘미투리사랑’을 기리기 위해 월영교(月映橋)라는 미투리 형상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구경거리로 삼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03년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상아동, 성곡동 일원 낙동강(洛東江)에 세워진 길이 387m, 폭 3.6m의 ‘미투리’ 형상의 목재(木材) 다리를 건조하여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월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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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月映橋)의 명칭은 안동시(安東市)에서 시민의 의견을 모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月映臺)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낙동강(洛東江)을 감싸듯 하는 산세(山勢)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地形)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그리고 천공(天空)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혀진 그때의 정경(情景)을 다시 일깨우고, 호수(湖水)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게 한다.
비 내리는 월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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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남편(男便)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원이 엄마’의 한 켤레 ‘미투리’의 모양을 다리의 모양으로 형상화(形象化)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哀切)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사람들은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거닐면서 그 시절 ‘원이 엄마’의 숭고(崇高)한 사랑의 달빛을 또 다른 사랑과 꿈으로 승화(昇華)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뜻도 연유도 모르고 월영교를 거닐고 있는 오늘의 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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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至高至純)한 ‘원이 엄마’의 편지는 ‘미투리’라는 애절한 가사의 대중가요(大衆歌謠)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지난 2010년 3월에 발표한 가수 홍주현의 2집 앨범에 수록된 ‘미투리’라는 노래로 여기에도 약간의 사연(事緣)이 담겨져 있다.
‘사랑의 미투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연이 KBS 역사스페셜과 세계적(世界的) 명성의 자연다큐 매거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특집(特輯)으로 게재되자 홍주현은 이를 작품화(作品化)하기로 하고, 본인이 직접 편지의 원문을 중심으로 작사를 했다.
서정주의 대표작(代表作) ‘귀촉도(歸蜀道)’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를 예쁜 여가수(女歌手)가 지은 노래여서였는지는 몰라도 고전문학 평론가의 찬사(讚辭)가 잇따랐다.
경희대학의 한 교수는 ‘미투리’의 가사에 대해 “우리네 전통 이별시가(離別詩歌)인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백제가요 ‘정읍사’, 고구려(高句麗) 유리왕의 ‘황조가’와 고려시인 정지상의 ‘송인’,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정서를 통해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전통문학(傳統文學)의 흐름에 비견할만한 노랫말”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홍주현의 ‘미투리’ 가사를 소개한다.
미 투 리
이용구 작사
김근동 작곡
홍주현 노래
어찌 살라고 나 어이 그 먼 길을
홀로 가시나이까.
검은머리 흰 머리되어 내손잡고
함께 가자시더니
못다 피운 사모의정 죽어도 다 적지 못해
아마도 나는 그럴 겁니다.
한~올 한~올 한 올 내 머리~풀어
눈물 담아 만든 미투리
살랑춘풍이 불기도전 님아
어이 두고 가시나이까.
떠나시는 외로운 길 가슴에 꼭 품어 안고
부디 나를 잊지 마세요.
꿈에라도 한번 나를 돌아봐주세요
손꼽아 님을 기다릴께요.
눈물 채우며 저 하늘 달이 되어
님 오실 그길 비추렵니다.
에루화 어화 에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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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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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이 구구절절이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모(思慕)의 정을 가득하게 담고 있다. 그 시절 ‘원이 엄마’의 순애(殉愛)와 정절이 올올이 기려지고, 그대로 전승(傳乘)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아울러 지고(至高)한 ‘미투리의 사랑’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진정한 한류(韓流)를 창조한 ‘원이 엄마’의 후대(後代)인 지금의 여성세대에서 우리들의 고향 경상도(慶尙道) 여성의 표상인 ‘미투리의 사랑’이 재현될 수는 없는 것인지 소박한 미련도 함께 가져본다.
원이 엄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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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와 ‘망제혼(望帝魂)’의 화신 ‘두견새(杜鵑)’와 관련해서는 지난 1967년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준바 있다. 배우 신성일과 김지미, 도금봉이 주연(主演)한 ‘두견새 우는 사연’이 그 영화다.
물론 여기에서의 ‘사연’은 그 옛날 촉(蜀)나라의 ‘망제혼’에 관한 사연이 아니고, 영화에 등장하는 ‘윤승지’의 외아들 ‘윤도령(신성일)’과 퇴기(退妓) ‘계선’의 딸 ‘옥화(김지미)’의 사이에 아롱진 사랑의 사연을 말한다.
영화 ‘두견새 우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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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한다. ‘윤승지(尹承旨)’의 외아들 ‘윤도령’은 퇴기(退妓) ‘계선’의 딸 ‘옥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윤승지’는 감히 퇴기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윤승지’는 외아들 ‘윤도령’을 안진사댁(安進士宅) 외동딸과 혼인(婚姻)을 시키는데, 이에 ‘옥화’는 ‘윤도령’을 그리워한 나머지 끝내 상사병(相思病)에 걸려 죽고 만다.
그 후 ‘옥화’의 망령(亡靈)이 나타나서 자기를 배반하고, 안진사댁 딸과 결혼한 ‘윤도령’을 회개(悔改)케 한다는 내용이다. 흔해 빠진 옛 얘기 중의 한토막이지만, 그 시절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극장(劇場)이 떠나가라고 통곡을 하기도 했었다.
배경음악으로 홍주현의 ‘미투리’를 게재하여 음미하고 싶으나, 가락이 아무래도 주제(主題)와는 괴리가 있는 것 같아 지난 1960년대 후반, 많은 이들이 즐겨 애창(愛唱)했던 영화 ‘두견새 우는 사연’의 주제가(主題歌)인 이미자의 노래 ‘두견새 우는 사연’을 음미하기로 한다.
두견새 우는 사연
노래 이미자
달 밝은 이 한밤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네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네가 안다.
울지 마라 두견새야
님 그려 울어 예는 서리서리 맺힌 사연
님 계신 사창(紗窓) 가에 전하여 주소.
지는 달 새는 밤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상사로 병든 이 몸 쫓겨간들 잊을 소냐.
울지 마라 두견새야
님 그려 울어 예는 서리서리 맺힌 사연
님 계신 사창(紗窓) 가에 전하여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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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이 엄마 편지 보니...가슴이 미어집니다..... 미투리라는 말도....옛날에 어떻게 쓰였는지...저는 가물가물 합니더...정말 모르시는게 없으시네요...대단하십니다. 역사적인 자료 같기도 합니다.
<두견새 우는 사연> <귀촉도> 보고 듣긴 했어도
선배님 글에서 참으로 깊이 와 닿네요
그런 원이 엄마 편지 한동안 온 메스컴에 올라든 기억이 나는데
그걸 다리로 현상화하여 남기는 지자체 노력 또한 인상 깊네요
계획만 되어있는 영지호 아사녀상도 속히 복원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도 합니다
가볍게 여겼던 짚신 그런 내력 세삼스레 깊이 감상하고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