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 대법륜전
시인 황석주는 “마음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연을 볼 때 사람들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큰 자연’은 ‘오래된 자연’과 일맥상통한다. 뿌리 내린 시간이 길면 길수록 숲도, 개울도, 나무도 울창하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연에 둘러싸인 건축물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것이 산사다. 따지고 보면, 궁과 산사만큼 우리나라에서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전통적인 럭셔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없다. 다만, 궁은 생활 밀착형 체험에 한계가 있어 아쉽다. 마루도 밟아보고, 잠도 자봐야 공간의 매력을 실감할 텐데,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반면, 산사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다. 공양도 드릴 수 있고, 주지 스님과 차담도 나눌 수 있으며, 여명의 어스름한 빛을 느끼며 묵상과 산행도 즐길 수 있다. 산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의 공기는 비 갠 아침처럼 맑아 눈은 물론 마음까지도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먹을거리는 또 어떤가? 소박한 규모지만 스님들이 정성으로 키운 각종 채소는 어떤 유기농 브랜드의 그것보다 달고 맛있다. 무엇보다 말을 아끼게 된다는 점이 좋다. 도시에서 나누는 대화에는 늘 ‘청자聽者’가 있지만 산사에서는 남이 아닌 나 자신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이른 아침의 마당 쓰는 소리, 염불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차 우러나는 소리도 새록새록하다. 잘 먹고, 잘 쉬고 오는 여행으로 템플 스테이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다. 템플 스테이가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산사를 찾는 이의 숫자는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작년에만 약 10만 명이 산사를 찾았는데 이는 2007년과 비교해 30%나 증가한 수치다. 잡념으로 가득 찬 심신을 잠시나마 편안히 누일 수 있어 갈수록 많은 사람을 매혹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우리는 흔히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텅 비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찬다.” 그의 말을 실생활에 적용하기에 템플 스테이만큼 좋은 ‘집’이 또 있을까? 지난여름, <럭셔리> 기자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템플 스테이를 경험했다. 월정사, 수덕사, 갑사, 수도사 모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모두들 지난여름, 가장 잘 잘한 일로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꼽았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들어본다.
월정사 대웅전 지붕 위로 피어오른 새벽 안개
월정사 : 명상의 달인에게 전수받은 긍정 마인드 전국에서 템플 스테이를 운영 중인 사찰은 몇 군데나 될까? 명상, 예불, 발우공양 등 비슷한 프로그램을 갖춘 템플 스테이만 87개에 이른다. 이중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다수에게 검증받은 ‘명품 템플 스테이’를 접하는 것이 좋다. 직지사, 법흥사 등과 함께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대산 월정사 템플 스테이는 서울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해 명품 템플 스테이 가운데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흔히 오대산 월정사 하면 푸르고 울창한 전나무 숲을 떠올린다. 배우 한석규가 “소중한 순간에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멘트를 건넨, 모 이동통신사의 CF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른 까닭이다. 이 같은 이유로 오대산은 템플 스테이가 아니더라도 청정한 자연을 품고 싶을 때 찾는 친근한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전나무 숲길을 거닐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관광객으로 들끓는 오후의 수런거림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새벽 숲길 말이다. 월정사 앞으로 난 1.3km 산책길은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고운 황톳길을 자랑하고, 그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해발 700m에 자리한 덕에 여름에도 일교차에 의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이른 새벽부터 템플 스테이 참가자들은 두 눈을 감고 맨발로 거닐거나 3보 1배를 하며세상 가장 낮은 곳에 고개 숙여 소원을 빈다.
새벽녘의 전나무 숲이 사색을 이끈다면, 월정사의 명상 특강은 평온해진 마음을 한 차원 높은 수련의 길로 안내한다. 많은 사찰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지만, 월정사 명상 특강이 독보적인 이유는 강의를 지도하는 김은미 연수팀장의 내공에 있다. 그녀는 부처님의 수행법에 가장 근접한 프로그램을 갖춘 미얀마 파아옥 명상센터, 동양의 옥스퍼드라 불리는 인도 푸네 대학 등에서 수년간 요가 수련을 마친 자타 공인 ‘요가의 달인’. 넓은 대법륜전에 모인 수련생들은 요가 매트를 깔고 팀장의 설명에 집중한다. “명상은 가만히 침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나 스트레스 없이 고요한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요가를 배운 적은 있지만, 절에서 요가를 행하기는 처음이라 낯설 따름이다. 바닥에 누우면 창문 너머로 울긋불긋한 단청이 눈에 들어오고, 정자세를 취하면 영험한 불상과 눈이 마주쳐 어느 순간 마음이 숙연해진다. 불가의 요가 동작은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다양한 동작 대신 한두 가지 동작을 반복한다. 흔히 가부좌만 명상 자세인 줄 알았는데, 무릎을 바깥으로 접어 앉는 인어공주좌, 무릎을 포개어 앉는 소얼굴좌 등 그 종류만 10여 가지에 이른다.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명상 자세를 선택하면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간다. 다이어트가 목적인, 정통 요가에서 변형된 도심의 요가와 달리 월정사는 호흡을 중시하는 명상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따른다. 이는 명상을 돕는 수련법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신체의 뭉친 혈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서서히 나아지는 몸의 변화를 통해 ‘안 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마인드를 갖는 데 목적을 둔다. 90분간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몸을 뒤틀며 새나오던 잡음도 잦아들고, 문풍지 너머로 매미소리만 나른하게 들려온다. 사람의 바이오 리듬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는 해발 700m에서 부는 청정 바람은 집중력을 더욱 높인다. 새벽 3시에도 맑고 가벼운 머리로 일어날 수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
월정사는 공양 시간만 엄수한다면 언제든 ‘맞춤형 템플 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자유로움이 매력적이다.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 소규모 연수 단체 등 각자 원하는 목적에 따라 자유자재로 수양에 임할 수 있다. 더불어 조금이나마 세속의 스트레스를 벗고 마음을 갈고 닦았다면, 사찰 음식을 통해 허한 기를 보할 수 있다. 어느 절이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놓지만, 유독 오대산 월정사의 밥맛이 좋은 이유는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자연 환경 덕분이다. 청정 지역 유기농 채소로 만든 반찬, 더불어 한강의 발원지라 불리는 오대산 약수로 빚은 밥은 차지고 윤기나기로 유명하다. 이 지역 유기농 콩으로 담근 된장 또한 반드시 맛볼 것! 월정사 종무소에 문의하거나 사찰 음식 전문점 ‘오대산의 봄’(033-332-8084)에 문의하면 맛 좋은 된장을 들고 하산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문의 월정사 033-339-6606~7, www.woljeongsa.org
오대산 전나무 숲 산책길
MUST DO 천하 명당 ‘적멸보궁’에서 108배를! 오대산 월정사는 김천 직지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성지로 유명하다. 월정사에서 왕복 3~4시간 소요되는 등산 코스로, 오대산 옛길을 끼고 걷는 즐거움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곳인 만큼 불교 신자들 사이에 영험한 기운이 깃든 장소로 유명하다. 천하의 명당자리라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으니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108배 정도 올리는 것은 어떨까? 내부는 성인 10명이 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협소해 바깥에 모신 진신사리탑을 보고 기도하는 이도 있다. 아래 상원사에서의 점심 식사 또한 잊지 말자. 좋은 물로 키운 채소와 밥으로 인해 밥맛이 특히 좋기로 유명하다.
갑사 : 법복의 소맷자락에 반하다
패션 마니아에게 산사는 어떤 ‘영감’도 주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곳에는 눈을 만족시키는 화사함 대신 마음을 깨우는 무언가가 있다. 패션 화보 촬영장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샘플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핫’한 제품을 찍으려는 패션 에디터는 넘쳐난다. 제품 섭외부터 그 귀하신 제품을 촬영장까지 안전하게 ‘모시고’ 와 셔터를 누르는 단계까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제품을 빨리 보내달라며 걸려오는 수십 통의 독촉 전화를 받다 보면 금세 진이 빠진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사랑해 마지않던 수십 개의 ‘예쁜이’(옷과 구두와 가방)를 서둘러 돌려보내고 싶은 건 이 때문이다. 그뿐인가? 언제나 스타일에 신경을 써야 하며 봐야 할 것도, 들어야 할 것도 많다. 스모키 화장도, 킬 힐도 버리고 민낯에 흰 티셔츠,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산사를 찾았다. 목적지인 갑사(충남 공주 계룡산국립공원에 위치)까지의 거리는 169km. 고속도로를 달리니 마음의 무게도 169kg 정도 가벼워 진 듯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2차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드디어 절에 도착했다. 갑사는 서기 420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한 화엄 10대 사찰 중 하나. 으리으리한 불상이나 석탑은 없지만 계룡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구름 같은 포근함이 산사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듯 아름답다. 계룡산의 맑은 폭포와 계곡은 많은 이가 갑사의 템플 스테이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이곳에 가면 계룡산에 ‘도사’가 많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빨간 바가지로 약수 한 모금을 떠 마신 후 경내에 들어섰다. “숙소에 짐부터 푸시고 이 옷으로 갈아 입으세요.”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은 스님과 인사를 나눈 뒤 절에서 입을 생활 한복을 나눠가졌다. 황토색 상의와 남색 고무줄 바지는 ‘패션 에디터’도 어쩔 수 없는 수행자로 돌아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배기 팬츠도, 한복 고쟁이도 아닌 애매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리 산사에서 입는 옷이라고 해도 컬러나 실루엣에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훨씬 보기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위) 삼성각 언저리의 돌탑
범종루와 연꽃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빨간 운동화를 신고 터덜터덜 강당으로 내려가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몸도 편안할뿐더러, 몸을 옥죄는 패션과 이별한 데서 오는 마음의 편안함이 좋았다. 누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도 마음에 들었다. 강당에는 ‘연컵등’(종이컵에 꽃잎을 붙여 만드는 등)을 위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꽃잎을 한 장 한 장 정성껏 붙이는 것도 공양입니다. 차분하게 앉아서 만들어보세요.” 집착 아닌 집착을 보이며 그중 가장 큰 연꽃을 만들었다. 풍성하고 화려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직업병 탓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연꽃을 힐끗 보니 작고 소박함에도 나름대로 단아한 멋이 있었다. 연등을 말리는 동안에는 탁본을 떴다. 달마 대사를 양각한 판에 먹물을 톡톡 두들겨 탁본을 찍어내고 빨간 낙관을 찍었다. 평소 같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열 번은 찍었을 텐데 어설프게 나온 한 장도 나쁘지 않았다. 만들기와 탁본 뜨기를 마친 후 에는 사물四物을 직접 두드리거나 치며 각자의 소리를 음미하는 시간을 보냈다. 사물은 각종 의식이나 예불, 시간에 따라 그 의미와 용도를 달리 하는 4개의 악기, 법고・운판・목어・범종을 말한다. 스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법고의 울림을 듣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리드미컬한 북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법복의 소매가 어떤 패션쇼의 드레스 자락보다 멋져 보였다. 스님에게 북채를 받아 들고 한참 북을 두드렸다. ‘둥둥, 챙챙, 툭탁툭탁, 데엥데엥…’ 박자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리듬과 울림은 깊고 편안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잇 백’, ‘킬 힐’과 함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패션을 바라보는 눈은 조금 달라졌다. 진정한 패션과 럭셔리는 물질이 아닌 마음에서 비롯되며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는 것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실! 문의 갑사 041-857-8981, www.gapsa.org
갑사에서 운영하는 전통 찻집
MUST GO 숲 속에서 차 한 잔, ‘전통 찻집’ 갑사 초입에는 전통 찻집이 있다. 일반적인 의미의 전통 찻집이 아니라 상호명 자체가 ‘전통 찻집’이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서까래를 끼워 맞춘 전통 한옥으로 구한말 윤덕영의 별장이던 곳이다. 후에는 국회의원 박충식 씨가 별장으로 쓰다가 1997년부터 찻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숲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배경으로 음미하는 한 잔의 차…. 여름에는 시원한 수정과 한 잔, 겨울에는 따뜻한 녹차 한 잔 하며 산사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갑사를 모두 둘러봤다면 차 한 잔 하는 운치를 놓치지 말길.
저녁 9시가 되면 잠을 청하는 산사의 밤
수덕사 : 진짜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다 도심에서의 뷰티 케어란 더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핑크빛 블러셔로 안색에 화사함을 더하고, 푹 꺼진 주름에는 필러를 채워 넣는다. 하지만 몸에 쌓인 독소를 빼내고, 마음의 짐과 머릿속 잡념을 털어내는 등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산사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딜 가든 지참하던 메이크업 파우치에 1박 2일의 휴가를 주고, 진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충청남도 홍성에 위치한 수덕사를 찾았다. 한국 목조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대웅전이 있는 이곳은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사찰이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거대한 공예품이라 불리는 대웅전은 700년 고찰의 최고 보물로 많은 이들이 극찬한 곳이다. 그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색칠 놀이’였다. 템플 스테이를 관장하는 담소 스님께서 종이 한 장을 내밀기에 봤더니 원 속에 전통 문양이 그려 있다. “차를 드시면서 이 문양에 색을 입혀보시지요.” 스님의 말에 따라 마음에 드는 컬러의 색연필을 골라 마치 어린 시절에 색칠 공부를 했던 것처럼 그림 삼매경에 빠졌다. 완성된 ‘작품’을 스님에게 드렸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하는 말. “원 속에 그린 문양이 바로 ‘만다라’입니다. 이 세상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담고 있지요. 색칠한 성향을 통해 지금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지금 보살님의 마음은 전쟁터네요. 무슨 고민이 그리 많으십니까?” 분홍색과 선홍색을 많이 사용한 것은 몸과 마음에 병을 감추고 있음을 의미하며, 진한 초록색과 남색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서 매우 힘든 결정을 마주하고 있음이 느껴진단다. 만다라 그림 심리 치료가 끝나고 참선이 이어졌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모든 감각과 감정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스님의 설명을 따르니 명상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마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집중하자니 늘 혹사시키기만 했던 내 몸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승女僧의 피부가 좋은 까닭은 공기가 맑은 산 속에 사는 덕분이라 생각했는데 명상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도 한몫하는 듯하다.
고운 피부의 결정적 ‘단서’는 취침 시간에도 있다.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든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가 피부 재생의 골든 타임’이란 기사를 수없이 썼음에도 정작 지키지 못했던 그 시간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한창 활동을 시작한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지만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휴대폰을 끄고 잠을 청했다. 둥둥둥둥….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잠에서 깨니 벌써 새벽 3시. 대법당으로 향해 자리를 잡고 예불에 참가했다. 어스름한 새벽에 촛불로 밝힌 산사에 앉아 불경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도취된 듯 마음이 경건해진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하는 명상도 도시인에겐 더없이 좋은 마음의 약이 된다. 새하얀 다기에 찻잎을 넣고 알맞게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맛, 색, 향 등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사이, 담소 스님이 얼굴 위에 흰 천을 씌워준다. 마치 스팀기로 마사지를 하듯 모공이 확 열려 피부도 좋아지고, 차의 뜨거운 기운과 호흡이 만나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더 어린 피부, 스트레스 없는 일상을 꿈꾼다면 산사에서의 하룻밤이 정답일 듯. ‘절대적’ 답을 주진 않지만 화장품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준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하루하루가 전쟁이라 느껴지는 당신에게 더욱 권하고 싶다. 문의 수덕사 041-337-0173, www.sudeoksa.com
참가자들이 예불 연습에 한창이다
MUST DO 스님과의 차담 차담이란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불교의 교리나 세상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템플 스테이를 관장하는 스님은 차를 대접할 테니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스트레스를 외부에서 풀려고 하면 더욱 악화됩니다. 이번 체험으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눈과 귀를 밖으로만 기울이지 마세요. 진짜 답은 보살님 안에 있습니다.” 종이에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싸면 향내가 나는 법이라며 좋은 생각과 맑은 정신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중화할 수 있고, 나쁜 기운도 가까이 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이 말을 되뇌인다. 템플 스테이에 간다면 스님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차담을 놓치지 말길.
(왼쪽부터) 담백한 두부 소를 채운 밀전병 고소한 국물 맛이 일품인 들깨 수제비 천연 콩고물을 입힌 경단
수도사 : 절밥에서 진정한 ‘웰빙’을 만나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덕에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절 밥을 먹어왔지만 솔직히 말해 그동안 먹어온 사찰 음식은 들기름으로 양념한 ‘풀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사찰 음식을 포함한 한식의 우수성 중 하나가 ‘건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육식 마니아라는 이유로 멀리했던 사찰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 서울 시내에도 사찰 음식 전문 레스토랑과 사찰 음식을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가 있지만, 스님이 덕으로 키운 채소를 직접 따고 산 좋고 물 좋은 산사에서 직접 배워보는 사찰 음식만큼 경건한 의식이 있을까 싶어 1박 2일의 체험을 결심했다. 비록 여느 템플 스테이처럼 묵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 역시 생활의 독을 빼고 약을 불어넣는 일이리라!
원효 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경기도 평택의 수도사.
적문 스님이 한국사찰음식연구원을 운영하는 사찰이다.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이곳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은 새벽 3시에 일어나 108배와 참선을 한 후, 산사를 둘러싼 텃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뿌리부터 꽃, 잎까지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연꽃을 비롯해 도라지, 더덕, 참마, 방앗잎 등을 살피며 직접 향을 맡고 필요한 만큼 수확한다. 정갈하게 단장한 백화점 식품관의 유기농 채소에 비해 세련미는 떨어질지언정, 정성으로 키운 이 먹을거리야말로 진짜 웰빙 채소가 아닐까?
법당으로 돌아와 사찰 음식과 관련한 비디오 자료를 본 후 본격적으로 사찰 음식 배우기를 체험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데 그 시간만큼은 행자의 자세로 돌아가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6명의 일일 행자가 배운 음식은 참마 부침개, 김 두부전, 우엉 찹쌀 부침개와 들깨로 맛을 낸 두부 감자탕. 밀가루나 부침가루 대신 참마와 두부로 찰기를 더한 후 식용유 대신 참기름과 들기름에 지진 부침개는 참선과 수행으로 체력 소모가 많은 스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라고 한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예를 차려서 먹는 것 또한 사찰 음식 배우기의 중요한 포인트다. 직접 만든 음식과 밥, 국 등을 가운데에 일렬로 정리한 후 이를 사이에 두고 참가자들이 마주 보고 앉으면 템플 스테이의 ‘하이라이트’ 발우 공양을 시작한다. 발우 공양이란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먹는 스님의 수행 과정 중 하나. 각자의 밥 그릇에 밥을 담고, 먹을 만큼만 찬을 덜어 먹는 일종의 뷔페로 마지막에 물을 부어 밥풀 한 톨까지 다 마신다. 한식은 반찬 낭비가 많다고 하는데, 사찰 음식에 담긴 검소함과 비움의 철학이 더해지면 한층 성숙하고 세련된 식문화가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도사는 서울에서 2시간 만 투자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각종 장이 콤콤하게 익어가는 장독대를 둘러보거나 장작불을 피워 가마솥에 갓 지은 밥을 맛보고 규모는 작지만 절에서 직접 담근 더덕장아찌, 무장아찌, 연근장아찌, 그리고 재래식 된장을 구입할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럽다. 꼭 템플 스테이를 하지 않더라도 매주 주말마다 사찰 음식 강좌를 실시하니 꼭 한 번 시도해보기를!
MUST READ 사찰 음식 서적 3권 사람을 살리는 건강식이요, 마음껏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이 사찰 음식이다. 적문 스님이 쉽게 응용할 수 있는 레서피로 가득한 사찰음식 전문 서적 3권을 소개한다.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통해 수많은 사찰 음식 연수생을 지도하는 선재 스님의 책. 사계절 제철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소개한다.‘선재 스님 표’ 표고 버섯 탕수는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메뉴. (선재, 김수경 지음, 디자인 하우스) 녹차와 채식(사찰 음식으로 부처를 만나다) 녹차 음식, 밥, 죽, 탕과 찌개, 일품 요리, 나물 등 음식 종류별로 요리법을 정리했다. 그중 산사에서 직접 키운 녹차의 효능을 강조한 녹찻잎 볶음과 무침, 녹차 야채 구절판 등 건강에도 이롭고 빛깔도 고운 음식은 별미로 도전해봐도 좋을 듯. (홍승 스님, 우리출판사) 전통 사찰 음식 사찰 음식을 화두 삼아 수행의 길을 걷는 적문 스님의 책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버무려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찬거리를 소개한다. ‘청정’, ‘유연’, ‘여법’으로 대표되는 사찰 음식의 세 가지 원칙에 충실한 책으로 레서피뿐 아니라 사찰 음식의 유래와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는 책. 특히 책 중간 ‘영양 상식’ 코너와 사찰 음식 문화의 이면에 깃든 구수한 이야기는 맛있는 양념 역할을 한다. (적문 스님, 우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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