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황시백

글쓴이 황시백 선생님은  2008년 10월 말에 돌아가셨습니다. <태백에서> 황시백,  황지고등학교, 2000년 씀 황지에서 철암까지는 버스로 30분 남짓한 거리였다. 장성 지나 동점 쪽으로 내려가다가 구문소란 데서 꺾어 조금 올라가면 철암이다. 그 버스는 철암 지나 통리를 거쳐 다시 황지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태백시를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한다. 올해,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전근이 되었다. 태백시 황지고등학교. 관사에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풀었다. 밥을 끓여먹으며 학교에 다닌 지 며칠이 되어 대충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익혔을 무렵, 퇴근길에 바로 철암 가는 버스에 올랐다. 꼭 30년 만에 그 탄광마을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다음 해, 나는 거기 ‘영주 기관차 사무소 철암 분소’에서 기관조사로 일했다. 화물열차를 끄는 일이었다. ‘철암 분소’에서는 여객열차는 다루지 않았다. 철암에서 영동선 쪽으로 도계까지, 정선선 쪽으로 황지까지, 그 지역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실어날랐다. 갱목이나 폭약 따위를 나르기도 했다. 황지, 장성, 철암, 통리 같은 탄광마을이 ‘태백시’로 묶이면서 황지역은 이제 태백역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그 때 일은 거의 잊고 살아왔다. 기억을 애써 지워버리기도 했던 것 같다. 기차 운전 했다는 말은 더러 했지만 그 시절 살았던 얘기를 누구한테 자세히 해 본 적도 없다. 스무 살이었고, 부산 어느 병원의 너무나 초라한 쇠침대에 어머니가 누워 있다 죽은 뒤였고, 산도 물도 까만 생판 낯선 땅, 캄캄하게 닫힌 세계에서 혼자였다. 노동의 뜻도 몰랐고 노동계급이란 말도 몰랐다. 철암 쪽으로 가는 좌석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쪽도 탄광이 많이 문을 닫았다 한다. 차비가 950원. 맨 앞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지금 스무 살 때의 나를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가 올해 꼭 스무 살이다. 철암땅에 스무 살 먹은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워해 본 적도 없는 아이, 오래 잊고 살았던 아이를 오늘 불쑥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탄가루에 절은 작업복을 입은 그 아이는 아직 거기 혼자서 30년 동안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학교 아래 2주공 아파트 앞에서 버스를 탔는데 바로 다음에 서는 정류장이 문곡이라는 기차역 앞이었다. 문곡역이 이렇게 학교 가까이 있었구나. 아, 역 너머 저 옹벽, 그 위에 석탄 더미… 30년 전 꼭 그대로다. 그래, 저 역에서 사고가 났지. 석탄 실은 화차를 이어붙이고 있을 때였다. 그런 일을 ‘입환작업’이라고 했지. 길게 이어붙인 화차 끄트머리에 또 한 칸을 붙이려고 기관차를 뒤로 몰고 있었다. 뒤쪽 까마득한 데서 신호수가 파란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 빠졌던가, 깃발을 빨간색으로 바꿔 든 걸 늦게 보았다. 기관차를 먼저 잠깐 세웠다가 아주 살금살금 다가가서 철컹 붙여야 하는데, 그대로 가서 화차 한 칸을 박아 버린 것이다. 그 화차는 철길 밖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큰 사고였다. 그리고 순전히 기관조사인 내 잘못이었다. 신호수는 틀림없이 빨간 깃발을 들었고, 철길이 굽어돌아 있어 기관사 자리에서는 열차 뒤끝도 신호도 안 보이는 곳이었다. 아주 더운 날이었지. 탄가루를 덮어 쓴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지…. 그 때 일이 떠오르자 나는 내가 이미 이겨 냈다고 생각한 세계, 캄캄하게 닫힌 세계가 아직 내 속에 고스란히 숨어 있다는 걸 느꼈다. 웃고 떠들고 거들먹거릴 때도, 온갖 어른들 눈총을 받으며 ‘사고 경위서’란 걸 쓰느라 쩔쩔 매던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속에 있었던 것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거칠고 쓸쓸했다. 검은 산자락 곳곳에 폐광들, 그 둘레에 폐석 더미, 비어서 허물어져 가는 광원 사택들…. 검은 물이 흐르는 철암천 냇둑 등성길로 버스가 들어서자, 냇물 건너편에 철암역과 그 앞으로 난 외길과 길가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별로 변한 게 없다. 역 구내 철길들 너머가 바로 광업소다. 폐광이 된 자리인지 푸른 천막 같은 걸로 산이 덮여 있는 곳도 있고, 탄가루 더미에 뿌리는 물줄기가 하늘을 가리며 솟고 있는 곳도 있다. 탄가루가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저렇게 물을 뿜는다고 했지. 철암역 앞에서 내렸다. 새로 지은 역 건물이 옛날보다 좀 아래쪽에 서 있었다. 역 앞으로 냇둑 따라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은 간판은 바뀌었지만 거의 다 눈에 익었다. 새로 건물이 들어 설 자리도 없고, 집들이 이어져 있어 어느 한 집을 고쳐 짓기도 힘든 곳이다. 석강의상실, 뉴대진화점, 대구라사, 희망식당, 백운여관, 경북식당, 딱한잔식당, 보광당…. 경북식당. 자주 들리던 밥집이 여기던가? 그 때는 간판도 없었다. 유리창이 달린 나무문을 열어 보았다. 잠겨 있다. 장사를 안 하나 보다. 여기던가, 저 아랫집이던가? 그 밥집 ‘백반’ 한 상이 50원, 국수 한 그릇이 20원, 대포 한 잔이 5원이었다. 그 집에서 일하는 갸름한 젊은 여자가 상을 차렸지. 어렴풋이 얼굴이 떠오른다. 그 상을 받는 게 좋았을까? 퇴근길에 국수 한 그릇 먹고 대포 한두 잔 마시고 했지. 맞아, 장부에 달아 놓고 먹는 집이었다. ‘몇월며칠 국수1, 대포2, 30원’ 하고 적던 장부도 생각난다. 내가 처음으로 만년필을 산 가게는 저긴가? 백금당? 만년필 한 자루가 그렇게 갖고 싶었지. 어느 날 큰마음 먹고 가게문을 열었고 주인이 내놓은 만년필 중에서 ‘NAVY’라는 상표가 새겨진 걸 골랐다. 그 때 나는 그 글자가 ‘나비’라는 우리 말인 줄 알았다. 나비. 이름이 이뻐서 꽤 비싼 그 만년필을 덜컹 사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제였지…. 어둑어둑해졌고 추웠다. 내 자취방이 있던 상철암까지는 철둑길을 30분 넘게 걸어야 한다. 오늘 가 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배도 고팠다. 외투깃을 세우고 목을 잔뜩 움츠리고 어디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데가 없나 기웃거렸다. 소주도 한 병 마셨으면. 근처 시장통에 들어가 봐도 그럴 만한 밥집이 안 보인다. 다시 역 앞으로 돌아와 경회루라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속이 좀 따뜻해졌다. 가다가 돌아오더라도 자취방 가던 길을 걸어 보고 싶었다. 상철암 가는 철둑길. 그 길을 걸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 철둑길을 딱 한 번 같이 걸었던 그 여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귀가 많이 먹은 여자였다. 나보다 몇 살 많았겠지. 그 여자도 상철암에 살았고, 늘 웃고 다녔고, 아무 남자하고나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동네에서 더러 본 적이 있었고 나한테도 늘 웃어 주었다. 그 날 피냇골 들머리에서 우연히 만나 철둑길을 같이 걸어올 때도 자꾸 웃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가 않으니 그냥 그렇게 웃었겠지. 그 때는 그런 생각도 못 했다. 나한테도 웃어 주는 여자, 같이 살자고 부탁하면 들어 줄 것 같았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랬던가. 그 여자 귀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 같이 살래요?” 그 여자는 또 웃었다. 그리고 역시 큰 소리로 말했다. “월급이 얼만데?” 내 월급은 만육천 원 정도였다. 나는 좀 부풀려서 대답했다. “이만 원쯤 돼요.” 그 여자는 또 웃었다. 생각해 보겠다는 얼굴이었다…. 철둑길은 옛날과 아주 달라져 있었다. 철둑에는 철망이 쭉 쳐지고 그 옆으로 포장된 길이 났다. 조금 걷다가 되돌아왔다. 상철암에는 다음에 다시 와서 가 보기로 하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어두워졌다. 하얀 불빛들이 여기저기서 탄 더미를 비추고 있었다. 검은 산에 둘러싸여 빠꼼히 열린 검은 하늘에 노오란 반달이 떴다. 잊고 살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런 풍경도 내 마음 구석에 늘 있었는지 모른다 싶었다. 여기가 어쩌면 내 고향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X X X 태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남쪽은 태백산, 동쪽은 삼방산과 백병산, 북쪽은 내덕산, 서쪽은 함백산. 황지고등학교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곳에 있다. 산 중턱을 깎아 건물 세 동을 세웠는데, 깎이지 않은 비탈은 온통 자작나무 숲이다. 둘러보면 다른 산에는 낙엽송이 많은 것 같은데 유독 학교 둘레만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학교가 선 이 산자락이 저 먼 북쪽 어디 자작나무들의 고향과 이어져 있는 것일까. 나는 거의 속초, 고성, 거진, 삼척 같은 바다마을 학교에서만 지내왔다. 이제는 자작나무숲 학교구나. 이 하얀 옷 입은 아름다운 나무들과 동무해서 살기로 하자. 아이들도 참 이쁘다. 다들 눈빛이 따뜻하다. 나같이 추레한 선생한테도 얼마나 곰살궂게 구는지. 어느 반에서 한 아이가 내 고향을 물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남쪽 바닷가다. 그러나 여기 아이들에게 내 고향도 여기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철암이야. 나 상철암에 살았어.” “우와, 쟤도 상철암 살고, 쟤도, 쟤도 상철암 살아요.” “그래? 상철암에 사는 사람, 내 고향 친구들 어디 손 좀 들어 봐.” 넷이다. 반마다 그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살아? 나 있을 때는 아주 조그만 동네였는데.” “언제 사셨는데요?” “꼭 삼십 년 전이야.” “어유, 십 몇 년 전에 아파트가 쫙 들어섰어요.” 5층짜리 광원아파트가 열 다섯 동이고 또 다른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탄광이 한창 일어날 때 상철암은 아주 큰 마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랬겠구나. 탄광이 모여 있는 철암역 근처는 집이고 아파트고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 지금은 그 때보다 사람이 3분의2는 줄었지만, 그래도 태백시에서는 광원들이 상철암에 가장 많이 모여 산다고 한다. “거기 철도아파트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어요.” “옛날 그대로 있어? 2층짜리.” “철도아파트도 5층인데요.” 1970년 3월, 영주 기관차 사무소로 기관조사 첫 발령이 났다. 서울 용산에 있는 철도고등학교 전수부 기관사과에서 1년 동안 교육을 받은 뒤였다. 영주 기관차 사무소에서는 다시 철암 분소로 가라고 했다. 영주도 처음이었고 더구나 철암은 어디쯤 있는지도 몰랐다. 영동선 기차를 타고 철암역에 내렸을 때, 역 구내 철길들 너머 큰 산 하나가 전부 석탄 더미로 보였다. 이불 보따리 메고 가방 하나 들고 겁에 질려 마냥 서 있었지…. 셋방 얻으러 다닌 생각이 난다. 냇물 건너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를 돌아다녔다. 방 얻기가 어려웠다. 쭉 이어 지은 판잣집 한 채를 아예 사라는 말을 들었다. 2만원을 불렀던 것 같다. 그만한 돈이 나한테 없었겠지. 그 지난해에 지었다던가, 상철암에 철도아파트가 있는데 기관조사가 살기에는 너무 멀다고 했다. 열차 시간에 따라 밤이고 새벽이고 나가고 들어오고 해야 하는데, 철둑길을 30분 넘게 걸어야 되는 곳에 있는 방은 아무래도 좀 멀었다. 그래도 철도아파트에 들기로 했다. 거기는 방세가 없었다. 상철암은 탄광마을이 아니고 밭농사 지어 먹고사는 조그만 시골 동네였다. 냇물도 맑았다. 들판 가운데 2층 아파트가 두 동 섰는데, 한 동은 살림집으로 지었고 한 동은 혼자 사는 사람이 쓰게 되어 있었다. 30년 전이니 요즘 아파트와는 다르다. 골마루 양쪽으로 미닫이 문이 쭉 나 있었다. 문을 열면 연탄 아궁이가 딸린 부엌 겸 나들간. 부뚜막 옆에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두어 평 되는 방이 한 칸이었고 부엌 쪽으로 다락이 나 있었다. 철암역 역무원들과 기관조사들이 열 대여섯쯤 들어있었던 것 같고, 비어 있는 방도 여럿 되었지 싶다. 살림집으로 지은 데는 제법 크다고 했는데 거기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석유풍로 사러 묵호까지 기차를 타고 갔더랬지. 묵호 선창가 난장에서 샀던 그 석유풍로도 생각이 난다. 그 때는 불을 붙이는 심지가 동그랗게 하나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가닥가닥으로 되어 있었다. 심지틀을 올리고 내리는 철사가 양쪽에 있었고 심지 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밥을 하면 냄비 밑에 그을음이 시커멓게 붙었지. 어쨌든 밥 끓일 수 있고 잠 잘 수 있으면 사람은 산다. 기관조사 시절에는 밥벌이가 있었고 잠 잘 데가 있었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학교 관사 방도 만만치 않았다. 허술하게 지었고 낡은데다가, 내가 얻은 방은 겨우내 비워 두어서 보일러 관이 터져 버렸다. 비닐장판 밑으로 물이 질척거리고 벽과 천장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 절집 방을 한 칸 빌리고 싶었다. 산자락에 폭 파묻힌 절간 뒷방 하나 얻을 수 없을까. 어디 숨쉴 만한 데가 없을까. 어차피 식구들과 떨어져 사는 김에, 새벽에 일어나 개울물에 낯 씻고 예불 드리고 나물반찬에 절밥 먹고 학교 좀 다녀 봤으면. 퇴근 후에 온 데 골짜기를 훑고 다녔다. 그러나 골짜기마다 폐광된 자리가 아니면, 절이 있어도 둘레가 무슨 유원지거나 관광지였다. 그냥 관사 방을 고쳐서 살기로 했다. 딴 걸 더 바라지 말자. 어디든 밥 끓일 수 있고 잠 잘 수 있으면 사람은 산다. 방 수리가 끝날 때까지 부엌에서 지냈다. 방바닥에 워낙 물이 많이 차 있어서, 고치고 불 때서 말리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철암을 찾아 간 게 4월 초였다. 이번에도 퇴근길에 바로 버스를 탔다. 상철암에는 가 보고 싶지 않았다. 달라져 버린 마을을 찾아가기가 두려웠다. 철암천 다리 건너 옛날 판잣집 골목을 돌아다녔다. 골목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판잣집들은 이제 시멘트 바른 집으로 바뀌었다. 극장 이름이 뭐였더라? ‘2본 동시 상영’을 하던 극장 자리에는 조립식 건물이 섰고 당구장 간판이 붙었다. 그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안 난다. 영화…. 그래, 상철암 자취방에 있던 레코드 한 장이 떠오른다. ‘영화음악집’이었다. ‘철도원’ ‘카츄샤’ ‘죽도록 사랑해서’ 같은 곡이 들어 있었지. 전축이나 녹음기는커녕 라디오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때다. 그 레코드는 언제 어디서 샀을까. 판을 꺼내서 가늘게 파인 홈줄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껍데기에 찍힌 영화 장면 사진들을 마냥 보고 있거나 했지. 스무 살 먹은 그 아이는 거기서 무슨 세계를 보았을까…. 시장 골목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꼭 밥 사 먹을 만한 집을 찾고 싶었다. 철암에 자주 오게 되겠지. 여기 오면 그래도 남의 세상을 헤매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푸근한 밥집 한 군데만 있었으면. 김이 펄펄 나는 국솥을 화덕에 올려놓은 그런 국밥집이 아무래도 안 보인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시장이 너무 썰렁하다. 사람이 끓지 않는다. 조그만 분식집 유리창에 김밥, 우동, 닭발, 순대국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라도 들어가자. 순대국밥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국밥이 나오기 전에 무우채 무침으로 소주를 몇 잔 먼저 마셨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못 보던 분인데요.” 해서 “황지 살아요. 전에 여기 살았는데 누굴 좀 만나러 왔다가…” 했다. 아주머니는 내 국밥을 차려 주고는 식구들 밥상을 들고 식당에 딸린 살림방으로 들어갔다. “순미아빠, 저녁 드세요. 냉이국이 참 시원해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사는 일의 눈물겨움에 가슴이 저려 왔다. 용산에서 기차 운전 교육을 받을 때, 두 달 동안 하숙을 한 데가 용산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집이었다. 유리창에 순대국이라고 쓰여 있었지. 처음 한 달은 철도고등학교 옆 하숙집에 들었는데 둘이 한 방 쓰고 한 달에 6천 5백원이었다. 어느 날 시장 골목을 지나다가 그 순대국집 문에 ‘한 달 하숙 3천원’이라고 써 붙인 걸 보았다. 정말 싸다. 부모님한테 많은 돈을 부치라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함지에 생선을 이고 팔러 다니던 어머니가 앓아 누워 있었다. 그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하숙방은 밥집 다락이었다. 앉아서 손을 들면 천장이 닿았다. 다락 가운데를 합판으로 막아 방 두 칸을 만들어 놓았다. 합판에 뚫린 구멍으로 형광등 한 개가 방 두 칸에 걸쳐져 있었다. 두 방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양쪽으로 따로 있었고, 한 방은 하루 40원씩 내고 자는 사람, 한 방은 하숙하는 사람을 받았다. 하숙 든 사람은 나 말고 둘이 더 있었다. 무슨 회사 사환이라는 아이와 시장에서 잡화 행상 하는 아저씨였다. 두 방 다 아무리 끼어 누워도 대여섯 이상은 잘 수 없는 방이었다. 세수는 밥집 수돗물을 받아 시장 골목에서 했다. 아침이면 양쪽 다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었다. 사 먹는 밥은 20원짜리와 30원짜리가 있었고, 하숙밥은 30원짜리로 주었다. 10원 차이로 밥상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거의 끼니마다 양배추를 썰어 넣은 국이 나왔는데, 나는 그런 양배추국을 순대국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 여기서 기관조사 할 때도 순대국을 그렇게 알고 있었지. 참 얼띤 아이였다. …자, 이게 순대국이야. 먹어 봐. 술도 한 잔 해. 술기운이 올랐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시장 골목을 나와 철암역 앞으로 걸어 내려왔다. 버스가 닿았다. 차 안 불빛이 따뜻해 보였다. 버스에 올랐다. 또 나 혼자 떠나는구나. 너는 언제까지나 여기 남아 있어야 하는구나. 취해서 밤 버스에 흔들리며 돌아가는 나를 그 아이가 바래주고 있는 것 같았다.   X X X   경상북도 영주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193.4킬로 되는 기찻길이 영동선이다. 철암역은 영동선 중간에서 조금 남쪽에 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영주 기관차 사무소 철암 분소가 영동선에서 운행을 맡은 구간은 철암에서 도계까지였다. 그 북쪽은 북평 기관차 사무소, 남쪽은 영주 기관차 사무소가 맡고 있었다. 철암과 도계 사이는 25킬로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탄광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저탄장 옆에 깔린 철길로 화차를 달고 가서 석탄을 실어내고, 화차를 이어붙이고, 그 화물열차를 끄는 게 주로 하는 일이었다. 철암 다음 역이 백산이고 그 위로 통리, 심포리, 흥전, 나한정, 그리고 도계역이다. 흥전에서 나한정 사이는 우리 나라에서 한 군데뿐인 ‘스위치 백’ 구간이다. 산등성이에 있는 흥전역에서 기차를 거꾸로 몰아 산비탈 아래쪽에 있는 나한정역으로 가야 한다. 만일 졸거나 해서 흥전역에서 그대로 달려 버리면 기차가 낭떠러지 밑으로 내리꽂히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비행기 탄다’고들 했다. 철길은 직선 거리 1000미터에 높이 30미터 이상 비탈지게 깔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도를 넘어선 구간이 철암과 도계 사이다. 25킬로에 기찻굴이 열 다섯 개. 굴 천장에서는 언제나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험한 데였다. 성능 좋은 기관차는 여객열차 몫이었고, 걸핏하면 기관과열 경보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뜨릉뜨릉뜨릉 하는 경보음이 혼을 빼놓는 낡은 디젤기관차를 몰고 석탄을 실어날랐다. 지금은 전기기관차가 다니고 있으니, 옛날 얘기다. 30년 전 그 시절을 돌아보면,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된 그림들이 떠오른다. 숯그림이다. 기찻길 옆에 탄가루를 덮어 쓴 작은 마을들, 석탄 더미, 탄 캐는 광부들과 탄 나르는 철도원들, 3월에도 4월에도 펑펑 퍼붓던 흰 눈, 통리고개 철길 위를 흐르던 흰 안개구름…. 아, 그 숯그림 속에 한 그릇 수북한 하얀 쌀밥이 보인다. ‘입환작업’을 하다가 밥때가 되어 얼굴도 손도 새까만 채로 역전 식당에 앉으면, 밥그릇 수북히 퍼담아 주던 하얀 밥. 김 나는 하얀 밥 빛깔처럼 눈부신 게 또 있을까…. 석탄 실은 화차를 까마득히 길게 이어붙인 화물열차. 스무 살의 나는 지금 기관차 안 기관조사 자리에 서 있다. 정거장이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철길 갈래들을 보고 있다. 전철기가 젖혀진다. “포인트 오라잇!” 기관사가 “포인트 오라이” 하고 좀 작은 소리로 받아 준다. 그런 걸 ‘환호응답’이라고 했지. 키 큰 장내신호기가 들려 있다가 꺾인다. “장내 오라잇!” 기관사가 “장내 오라이” 하고 받는다. 철길 갈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출발신호기를 본다. 신호가 떨어진다. “출발 오라잇!” 이제 나는 창문으로 목을 빼고 열차 뒤끝을 본다. 화물열차 끝에 달린 빨간 차장차 옆에서 차장이 파란 깃발을 돌린다. 밤열차에서는 깃발 대신 파란 등불이다. “발차!” 차장이 차장차 계단에 올라탄다. 열차가 떠난다. 기관사가 ‘놋찌’를 천천히 올린다. 열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뒤를 보고 있다. 열차 뒤끝이 정거장을 벗어난다. “후부 오라잇!” 이제 앞을 본다. 기적을 한 번 부아앙 울리고 자리에 앉는다…. 한여름 무더운 날, 냉각선풍기가 자동으로 작동이 안 되는 낡은 기관차를 몬다. 기관 문을 열고 성냥개피를 냉각선풍기 단자 밑에 끼워 넣어 미리 강제작동을 시켜 놓았다. 그래도 불안하다. 굴 속에 들어서면 기관차 유리창이 손을 못 댈 만큼 뜨겁다. 굴 속이 1000분의 30이 넘는 비탈이다. 올라갈라나? 기관과열 경보등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경보음이 울린다. 기관이 꼬르륵 죽어 버린다. 문을 열고 기관차 난간으로 뛰어나간다. 굴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안경알에 김이 서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손가락으로 안경알을 후딱 문지른다. 기관 문을 열고 수동작동을 시켜 본다. 아, 살아난다. 다행이다. 살아나지 않을 때도 있다. 제동이 풀려 기관차가 뒤로 굴러가기 전에 바퀴마다 제륜자를 받쳐야 한다. 나무로 만들어 철사에 꿴 제륜자 꾸러미를 메고 굴 속을 뛴다. 굴 바닥도 물이 철벅거린다. 제륜자를 다 받쳤으면 굴 밖으로 달려나간다. 굴 속에서는 무전기를 못 쓰는 것이다. ‘구원기관차’를 불러야 한다…. 일이 끝나고 사무소로 돌아온다. 운행 시간, 운행 거리, 쓴 기름, 남은 냉각수 따위를 적는 장부가 있었지. ‘구원기관차’를 부른 날은 적어야 할 게 아주 많았다. 운전하다가 졸리면 낯을 씻으라고 내 준 ‘가수방지 물통’과 또 몇 가지 물건을 반납하고, 다음 번에 탈 기관차와 시간을 확인한다. 이제 자취방으로 돌아간다. 역 구내 철길들을 건너 철암역을 빠져 나와 상철암 가는 철둑길을 걷는다. 상철암이라는 마을은 철암역과 백산역 사이, 기찻길 옆에 있다. 철암역에서 시장 쪽으로 따라가면 첫 번째 철길 건널목이 나오고, 건널목 건너 바로 올라가면 피냇골, 철길 따라 옆으로 한참을 가면 상철암이다. 상철암 철도아파트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뭘 했나? 공동수도가 있었지. 거기서 씻고 빨래하고 쌀 씻어 밥 안치고… 책도 읽었던가? 자취방에 있던 책 한 권이 생각난다. 겉장이 빨간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 전혜린 번역이었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동갑내기 여학생이 생일 선물로 준 책이었다. 서로 한 번 설핏 보았을 뿐, 편지로만 어설픈 연애를 했던 그 여자아이는 그 때 서울 어느 미술대학 학생이 되어 있었고, 나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내가 있는 곳을 그 여자아이에게 알리지 않았다. 꽤나 괴로웠겠지. 내 딴에는 첫사랑이었을 테니. 상철암 철도아파트에 찾아간 날이 음력 4월 보름, 어머니 제삿날이었다. 퇴근 후에 속초 집까지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기는 힘들다. 수업을 빼거나 바꾸기도 싫었다. 집에 아이가 다 컸고, 또 서울 사는 누나 둘이 제사 모시러 속초로 내려오니 나는 그냥 태백에 있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 관사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저녁을 지어먹고 철암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는 어머니 제사 음식을 만들고 있겠지…. 용산 시장 순대국집 다락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1969년 5월, 어머니가 부산대학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위독하다고 했다. 밤차를 타서 부산에 새벽에 닿았다. 보통급행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덟 시간 걸리던 때였다. 철도고등학교 전수부 교육생이라는 신분증을 보이고 사정을 하면, 특급은 안 되지만 보통급행은 공짜로 탈 수 있었다. 여덟 시간을 문 밖에 서서 갔던 생각이 난다. 안에 빈자리가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표도 안 끊고 앉아서 갈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기차를 늘 그렇게 타고 다녔다. 어머니는 칠이 벗겨져 군데군데 녹이 슨 쇠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나를 겨우 알아보는 듯했다. 이미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누가 그랬나, 미원이라는 조미료를 물에 타서 먹여 보라고 했다. 한 숟갈 떠 넣어 드렸지만 그것도 입가로 다 흘러버렸다. 다음날이었나 그 다음날이었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지금 내 나이보다 겨우 세 살 많은 쉰 셋이었다. 신장염이라고 했다. 상철암은 못 알아보게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이 말한 대로, 내 자취방이 있던 2층짜리 아파트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5층 아파트가 세 동 섰다. 언제 지었는지 그것도 아주 낡은 건물이었다. 이름은 그대로 철도아파트였다. 그 옆으로는 벌판이었던 자리를 가득 메운 광원아파트 열 다섯 동, 앞쪽에는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헤어뱅크, 록수다방, 디럭스팻트, 앵두실내포장마차, 주오머리방, 댕큐머리방, 윤비디오, 삐삐야식, 갈채단란주점, 가족노래방, 가나안미용타운, 춤추는머리나라…. 동네에서 좀 떨어진 냇둑 옆 술집에 앉았다. 또 술 마신 얘기를 써야 하나…. ‘돼지곱창 1인분 4000원, 주물럭 1인분 6000원’이라고 벽에 써 붙였다. 돼지곱창을 시켰다. 소주 두 병을 마셨다. 많이 취했다. 들고 다니던 공책에 뭐라고 끄적거렸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다. ‘그 아이는 여기 없다. 여기 살지 않는다. 1970년 10월 20일 월급날 피냇골 밥집 외상값을 갚고 시래기 무침으로 개평술 반 되 얻어 마시고 밤열차를 탔다. 이제 그 아이는 여기 살지 않는다. 탄가루에 절은 작업복도 모자도 두고 앉은뱅이 책상도 두고 밑이 까만 냄비도 두고 이불도 베개도 두고 영동선 밤열차로 아무도 몰래 떠났다. 한 손에는 비닐가방, 한 손에는 보자기에 싼 석유풍로, 그리고 숟가락은 챙겼지만, 이제 그 아이는 끼니를 챙기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