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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2학년 정채원입니다!
올해는 모둠 들살이가 구성되면서 저희 모둠은 모둠 들살이 3일, 개인 들살이 3일, 전체 들살이 1박 2일로 구성이 되어
저는 부산에서 6일을, 대전에서 1박 2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7박 8일의 이야기라 조금 길지만 이것도 추리긴 한 거랍니다..ㅎㅎ
그럼 긴 말 하지 않고 제12년 마지막 들살이 이야기(목적과 일지)를 나눠보겠습니다.
- 모둠 들살이 목적글
나는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편이지. 혼자 하는 편이 편하고 모둠 활동에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 의견을 맞추고 무언가를 함께해 나가는 과정이 불편하고 귀찮다. 그 시간이면 혼자서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선호하지 않는 내게 ‘모둠 활동’은 엄청나게 거대한 과제라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말 중 후자를 더 좇으며 사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피할 수 없으니 즐기는 쪽을 택했다. 함께 합을 맞춰보며 무엇이 내가 ‘함께’하는 일에 어려움을 주는지도 느껴보고 그저 함께 뚱땅거리는 것 자체를 즐겨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우리끼리’ 음악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보편적인 밴드에 들어가는 악기가 아닌 생소하고 합이 안 맞는 악기를 이용해 ‘이걸로 합주를 해?’라는 의문이 생기는 악기들을 이용해 맞춰가는 과정을 함께 해보려 한다.
- 09/04 (월) 들살이 1일 차
새벽에 빗소리에 잠을 제대도 못 자서 무궁화호에서 자려고 했는데 결국 못 잤다. 눈을 감고 최대한 자보려 노력했는데 잠에 빠져들지 않았다. 결국 잠자기를 관두고 노래를 들었더니 오히려 시간이 잘 갔다.
중간에 애들이랑 간식도 나눠 먹고 혼자 멍 때리면서 6시간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6시간 걸리는 무궁화호는 정말 긴 여정이었다(부산에 영영 안 도착할 줄 알았다).
도착해서 역 안에서 점심을 먹고 개인 들살이 때 쓸 지도를 찾아 나섰다. 슬쩍 둘러봤는데 안 보이길래 관광안내소에 가서 여쭤봤는데 지도를 주셨다. 지도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도 있냐고 물을 수 있는 내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예전이었으면 일단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지고서야 쭈뼛대며 물어봤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리고 짐을 두기 위해 숙소로 가는 길, 부산 지하철을 처음 타봤다. 서울 지하철과 다른 게 별로 없어 보였는데 들살이 하면서 계속 타니까 다른 부분들이 꽤 많았다. 아무튼 중간에 현욱이의 휴대폰이 사라지는 소동이 있었지만 숙소에 잘 도착해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소운이와 현욱이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첫 목적지인 해운대로 출발을 했다. 그전까지는 들살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해운대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니 그제야 들살이 같은 기분이 조금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땡볕이 너무너무 더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해변에 고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소심했던 우리는 사람 없는 곳을 찾으려다 포기하고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띵콘 손수건으로 햇빛을 막으며 기깔나게(?) 연주를 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는데 나중에는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다를 보면서 리코더를 볼 때의 느낌이란! 특별하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더웠다. 그래도 내 생에 언제 또 이런 짓을 해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재밌게 했다. 자주 틀리고 안 맞는 부분도 많았지만 어차피 편집도 할 거니까~ 하면서 즐겼다. 그렇게 첫 연주를 마치고 해운대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 근처에서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개인 들살이는 숙소 돌아와서 오늘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왁자지껄 썰 푸는 재미가 있었는데 모둠 들살이는 그런 재미가 없어 좀 아쉽다. 계속 애들이랑 같이 다녀서일까, 부산이 너무 도시여서일까 들살이 같지 않다. 아직까지는 들살이 실감이 안 난다.
들살이 전 미리 역할 분배를 해두길 백번 천 번 잘했다고 느낀 1일 차였다. 1일차 이상 무. 내일도 잘 살아보자.
- 09/05 (화) 모둠 들살이 2일 차!
아침에 나갈 준비를 다 마치고 밖으로 딱 나왔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뭔가 시작이 좋은 느낌?
그렇게 1시간 반을 달려 삼락생태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이라길래 나무 있고 그늘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늘이 거의 없었다. 공원에 이렇게 그늘이 하나 없을 수 있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와하하~ 가 아니라 습지 느낌의 땡볕이었다. 그래도 일단 활동을 하기는 해야 하니 할 만한 장소를 흩어져서 찾는데 어느 순간 혼자 낙동장 하구에 와 있었다. 사람도 없고, 덥고, 휑하고 살짝 무서웠다.
다른 애들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것 같아 내가 있던 곳에 애들을 불렀다. 그래서 강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아주 조그만 그늘에서 아무도 없이 연주를 하고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와서도 찍었다. 우리 모둠의 좋은 점은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 다 이상해서 이상한 거 하자고 해도 해준다는 거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또 30분을 걸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점심은 맛있었다! 공원에서 길찾기를 했을 때는 예상외로 오래 걸려서 흰여울문화마을을 갈지 말지 고민했는데 30분이나 걸은 덕에 가는 시간이 단축돼서 그냥 가기로 했다. 가는 버스 안에서 다들 뻗었다. 나는 졸린데 잠이 안 들어서 개인 들살이 생각을 했다가 ‘아니 그럼 지금은 별로인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답을 못 내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 빼고 다들 푹 주무셔서 내가 안 깨어있었으면 정류장을 놓쳤을지도? 띵콘에서 깨어있는 정신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게 됐다...)
흰여울문화마을을 가기 위해 영도대교를 건넜는데 그때 뭔가 부산 느낌이 났다. 가면서 졸리기도 하고 멀기도 해서 기대를 크게 안 했는데 마을 분위기랑 색감이 예뻐서 좋았다. 멀어서 안 갔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정도로 좋았다.
사람들이 꽤 지나다녀서 민망했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너무 더워서 그냥 딱 한 번씩만 하자 하고 찍었더니 그래도 나름 잘 맞은 것 같다. 우리의 연주는 땡볕보다 뜨겁.... 지 않고 발랄해.
너무 더워서 장소별로 영상을 한 번씩만 찍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실력은 모르겠고 재미는 있었다. 해저터널이 우리의 연주로 울려도 이제는 그냥 하는 거야~~ 찐 로컬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무사히 들어왔다.
부산은 정말 "도시"라는 걸 이번 들살이를 통해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광역시는 광역시구나... 새로운 듯 새롭지 않고 새롭지 않은 듯 새롭다. 내가 모둠 들살이를 즐기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같이 다니면서 재밌기는 한데 계속 한 편으로 혼자 있을 때를 떠올린다. 모둠 들살이가 끝나고 혼자 다니면 외로울 것 같기는 한데 재밌을 것 같아서 큰일이다. 아직 내게 함께를 완전히 증기는 능력은 없나 보다.
- 09/06 (수) 모둠 들살이 마지막 날!
오고야 말았다. 모둠 들살이의 마지막 날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지만 아침으로 누룽지를 든든하게 먹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오늘은 나랑 수연이가 계획 짠 날이라 살짝 걱정되기도 했는데 나름 잘 굴러간 것 같다.
오전에는 몰운대를 갔는데 몰운대가 산인지 아무도 몰랐던 터라 졸지에 다 같이 산을 탔다. 초반에는 날씨도 흐리고 체력도 많아서 경쾌했는데 가다 보니 끝은 없고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해는 나오고, 덥고 힘들었다. 연주 스팟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찾아서 하고 또 걷고 해서 몰운대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숲에서 하는 건 처음이라 분위기가 또 새로웠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다대포해수욕장에 갔다. 다대포는 일몰이 예쁘대서 개인 들살이 때 일몰 보러 올 거여서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바다가 참 예뻤다. 반짝반짝 윤슬이 정말 아름다웠다.
오늘은 모둠 들살이 마지막 날이라 바다에 발 담그고도 찍었는데 시원하고 재밌었다. 일명 발만 시원한 연주.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덕분에 정적이지 않은 연주가 됐다.
덥기는 했지만 중간중간 구름이 해를 가려서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바람도 불어서 괜찮았다. 바람에 모래가 계속 날아왔는데 나중에 세수하면서 얼굴을 만졌더니 꺼끌꺼끌하더라.
그렇게 다대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감천문화마을로 넘어갔다. 감천문화마을은 옛날에(초등 2, 3학년) 가족여행으로 왔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살짝 몽글몽글했다. 그런 것도 잠시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다들 지쳐버렸다. 흰여울문화마을에 비해 감천문화마을은 “마을”의 느낌이 더 강해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시끄럽게 연주하기가 꺼려져서 그나마 사람도 없고 큰길 쪽이면서 배경이 잘 나오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 군데 찾아서 찍고 다른 곳을 찾는데 걸을 대로 걸어서 다리랑 발은 아프고, 갈증은 나는데 물은 없고, 결정적으로 갈 곳은 없고... “그래서 우리 어떡하지?”라는 말은 정말 많이 한 것 같은데 딱히 뭘 어쩌자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상황이 나만 답답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그래... 이래서 내가 같이하는 걸 싫어하던 거였어’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상황을 정리하고 의견을 내고 그걸 통합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들 그냥 의견이 없는 건지...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앞장서서 무언가 주도하는 분위기, 이끌어나가는 분위기를 싫어하게 됐는데 그 상황에 놓이게 되어 불편했다. 한동안은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말을 아끼려 정말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결국 또 이러고 있구나 싶어서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축 쳐져있을 수도 없으니 일부러 더 뛰어다니고 분위기 안 처지게 하려고 하고 그냥 이래저래 정리해서 여기저기 갔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참 여러모로 신기하다.
마지막 연주를 할 때는 기분이 묘할 줄 알았는데 시작할 때만 그러고 연주할 때는 또 까먹어서 마지막까지 뚱땅거렸다. 그렇게 감천문화마을에서 마지막 일정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덥기는 했는데 중간중간 구름에 해가 가려지기도 해서 전 이틀에 비하면 괜찮았던 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 날이라는 버프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 모둠 들살이 돌아보기
사실 난 연주하는 것보다 그냥 누군가와 일정을 짜고 그걸 수행하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처음에 역할을 나눠 두기도 해서 크게 문제없이 잘 활동한 것 같다. 상황 대처를 좀 더 같이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가 계획해 두었던 것은 다 잘했고 변수는 계획할 수 없는 거니까.
나눴던 역할별로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 내비 보민이가 길을 잘 찾아주고 버스나 지하철을 바로바로 잘 알려줘서 정말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일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카메라 구도 잡고 설치하느라 수고해 준 수연이에게도, 잼빵을 위해 빵을 구워준 솔이에게도, 들살이 끝나고 편집하느라 수고할 소운이와 현욱이에게도, 우리는 그늘에서 연주하고 땡볕에 카메라 둘 때도 많았는데 항상 지켜봐 주시고 챙겨주신 노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뭐 상 탔니?ㅋㅋ 아무든 다들 수고했다!!
최대한 ‘함께’에 스며들고자 노력했는데 됐는지는 모르겠고 함께일 때의 웃음과 힘듦을 알아간다. 어제 내 일지를 읽은 보민이가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물었는데 별로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밌었다고! 근데 개인 들살이해보면 또 바뀔지도? 아무튼 3일 동안 복닥복닥하느라 나도 수고했다아
- 개인 들살이 목적글
지난 2년간의 숲터 들살이를 돌아보다가 문득 공통으로 떠오른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지도’였다. 나는 6학년 제주도 들살이 때 길잡이를 나름 잘 수행해 낼 정도로 지도를 그럭저럭 보는 편이고, 휴대폰이 없을 때도 강남을 척척 다녔는데 요즘에는 지도에 의지하는 편이 잦아졌다. 경로부터 시작해서 버스가 언제 오는지, 가고 싶은 장소들도 모두 지도 앱에서 보고 찾는다.
처음 가보는 길이면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수시로 앱을 켜 내릴 정류장을 확인한다. 문제는 내릴 정류장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기억하려 애를 쓰지 않아도 앱만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고, 혹여나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도 다시 길찾기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시간을 확인할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생겼다. 가장 먼저 그걸 깨달은 게 지도를 보는 일이었는데, 그걸 자각하고 나니 점점 디지털에 의지하는 정도는 커지고, 이미 내 일상에서 아날로그는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 하나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요즘 시대에 누가 그렇게 해?”라는 말에 아날로그는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가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디지털, 미디어 때문에 살아가는 방식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계속 더 효율적인 걸 찾는다.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방법, 순서, 시간 등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싫고 시간 낭비는 최악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자꾸 확인한다. 그런데 그 시간마저 한번 보고 금방 잊어버려서 다시 확인한다.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마저 낭비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순 같기도 한 상황이랄까.
들살이 동안 미디어 사용을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지도 앱은 종이 지도를 사용해 보고,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를 써보는 등 다른 곳에 의지할 곳을 만든다. 휴대폰 하나가 아닌 좀 더 여러 곳에 미디어, 디지털이 아닌 것들을 가지고 돌아다니고 싶다.
- 09/07 (목) 개인 들살이 첫날~
오늘은 금정산에 오르는 야망찬 계획이 있었는데 생리통 때문에 계획을 수정했다. 새로운 계획은 짜야했는데 갈 곳이 번뜩 떠오지는 않아서 전시랑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지막 날 갈까 고민했던 창비 부산에 갔다. 옛날 건물이어서(무슨 문화재랬다) 분위기도 좋고 삐거덕 소리 나는 감성도 있고 여하튼 좋았다. 공간을 둘러보고 무슨 회원가입을 하면 앉아서 책은 읽을 수 있다고 하셔서 회원가입을 하고 책을 읽었다. 책 한 권을 다 읽겠다는 목표와 집념하에 336페이지짜리 『연수』라는 소설집을 다 읽었다. 중간에 카톡, 확인 한 번 한 것 빼고는 책만 읽었는데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은 게 오랜만이라 놀라웠다. 사실 못한 줄 알았는데! 공간이 주는 힘이 큰 것 같다.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책을 한 번에 다 읽는 것) 생각보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 다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서 보는 풍경이 예뻐서 그림도 한 장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든든한 식사를 한 뒤 옆이 부산항이어서 산책 겸 구경이나 할까 하고 걷기 시작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지도 확인을 잘 안 하고 다니니까 앞뒤 안 재고 다니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냥 걷다가 나와야지 하고 들어갔다가 나갈 길이 없었다. 공사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사람이 아주 조금 다니기는 해서) 아니었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부산항이 재개발(?)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없어서 살짝 무섭기도 했는데 정말 “아무도” 없어서 괜찮았다. 문제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나갈 곳이 없었다는 거다. 그냥 배 아픈 채로 30분을 더 걷는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길이 있을 줄 알고 갔는데 공사 중이라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거의 1시간 걸은 것 같은데 그동안 진을 다 뺐다.
그 길고 긴 아무도 없는 길을 나와 끝에 있던 도서관을 잠깐 들렀다가 또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무사이라는 독립영화관, 책방, 제워샵이 같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갔다. 무사이가 지하에 있는 줄 몰랐는데 지하에 있어 놀라고 생각보다 공간이 커서 또 놀았다.
무사이 바로 앞에 중학교가 있었는데 나한테는 낯설고 비일상인 지금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라는 게 다시 느껴졌다. (항상 들살이 때마다 느끼는 건데 느끼는 타이밍이 꼭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았을 때이다) 그리고 지나가다 “할 것도 없는데 해운대나 갈까?” 하는 얘기를 들어서 여기선 해운대가 일상이구나 싶어 또 신기했다. 심지어 그 지역에서 해운대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무사이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영화관 비중이 크고 책방 비중이 작아서 영화를 볼 걸 그랬나 하고 후회를 했다. 글을 좀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영화와 책이 같이 있는 김에(?) 영화와 책에 관한 글을 끄적였다. 나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영화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취향에 대한 생각을 좀 끄적였다. 그리고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톨게이트를 지나길래 버스는 톨게이트 요금을 어떻게 낼까, 안 낼까 궁금했는데 세워서 내고 갔다. 궁금 해결 완. 오늘도 다행히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다.
기다려 왔던 개인 들살이 첫날이었다. 우르르 다니다가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을까 했는데 하나도 안 외로웠다. 오히려 좋아... 조용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은 이유가 말을 안 해도 되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게 아쉽지만 그래도 오늘 간 곳들이 다 마음에 들어서 하루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내일은 좀 괜찮아지길 바라며 파이팅.
- 09/08 (금) 개인 들살이 둘째 날~!
오늘은 컨디션이 멀쩡했다. 계획 실행 오케이 가보자고. 오늘은 걷는 일정이 있어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다가 내려 걷기 시작했다. 갈맷길 2-1코스를 따라 걸었는데 초반에는 큰길이어서 이게 맞나 싶었는데 가다 보니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좋아서 기분이 엄청 좋았다. 요트경기장에서 요트도 보고 영화의 거리도 걸었다. 여기부터 바다가 계속 보이기 시작했는데 윤슬이 반짝반짝하는 게 너무너무 좋아서 그냥 다 좋았다. 그렇게 코스를 따라 걷다 동백섬에 들어갔는데 그늘에 길이 있고 길도 넓고 잘 되어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 바퀴를 걷다가 확 트인 곳에 데크랑 벤치가 있어서 거기 눌러앉아 바나나도 먹고, 글도 끄적이고, 그림도 끄적였다. 한 시간쯤 그러고 있었다. 멍 때리는 시간이 더 오래 긴 했지만... 그렇지만 해운대가 쫙 보이는 바다가 너무 멋졌던 걸 어떡해!
슬슬 일어날까 하다가 불현듯 명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명상을 했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눈 감고 허리 세우고 복식호흡 하면서 5분 정도 했는데 하고 나니 기분이 새로웠다. 5분은 참 짧은 시간인데 고작 그 5분으로 기분이 새로워지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걸어서 해운대까지 갔는데 부서지는 파도가 너무 멋져서 5보 1멈춤을 했다. 오늘은 필름 카메라로 이것저것 신중하게 찍었는데 내가 원하는 파도와 윤슬을 찍을 타이밍이 안 나와서 카메라를 들고 한참 기회를 엿봤다. 그렇게 신중하게 찰나를 기록하는 과정이 재밌어서 졸작으로 사진 찍으러 다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땡볕인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붙어서 양산을 못 쓰고 걷다가 보민이를 만났다. 전부터 찍어보고 싶었던(모래 파서 폰 넣고 찍는 사진) 게 있어서 보민이한테 같이 찍자고 했다. 굴을 파도 파도 각이 안 나와서 대충 찍고 모래 묻은 손을 바닷물에 씻으려다 신발과 바지 밑단이 다 젖어버렸다. 망연자실... 심지어 해변 걷느라 모래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 모래가 젖으면서 난리가 났다.
보민이와는 헤어지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모래를 턴 후 점심을 먹으러 시장에 갔는데 가면서 신발에서 물이 죽죽 나왔다. 시장이 생각보다 작아서 둘러볼 게 많지는 않았다. 아무튼 점심을 먹고 원래 책방 가서 2시간 있는 거였는데 2시간 있기 어려울 것 같아 어제 찾아본 전시를 보러 갔다. 하나는 유료여서 무료인 곳에 갔는데 거긴 어디 참가한다고 문이 닫혀 있어 그 밑에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봤다. 정말 우연의 전시였는데 새롭고 좋았다.
그리고 책방을 찾아갔는데 지도를 안 보고 (기억으로만) 가다가 좀 헤매고 드디어 찾았는데 휴가 갔단다... 가보고 싶었던 책방이라 아쉬웠다. 그리고 또 다른 책방을 향해 걷는데 발이 너무 찝찝하고 아팠다. 이번에도 가다가 지나쳐서 다시 돌아갔다. 어렵게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예약제였다. 예약은 할 수 있었는데 돈이 넉넉한 건 아니라 그냥 광안리해수욕장에 갔다.
책방을 찾아 걸어 다니면서 힘은 다 쓰고 뒤꿈치도 까져서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누우니까 행복했다. 그늘지고 바람 부니까 춥길래 햇볕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금방 또 그늘이 져서 그냥 있었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졸려서 눈 감고 있다가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물에 발도 담그고 그림도 그렸다. 너무 힘들어서 멍 때리고 누워있다가 노을이 오셔서 얘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광안리가 젊은 층이 많아서 가게들도 그런 분위기가 많았는데 동네 분들이 가시는 듯한 가게를 찾아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점점 혼밥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전에 간 곳들이 다 너무 좋고 날씨도 좋아서 기분 최고였는데 신발 젖고 광안리 쪽으로 넘어간 후로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제대도 된 일은 괜찮은 ‘밥’ 집을 찾아서 ‘밥’ 먹은 것이다. 벌써 내일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인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혼자가 너무 좋다. 편하잖아~
- 09/09 (토)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집에서 자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기절을 했다. 체감이 막 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피로가 쌓이긴 했나 보다. 주말이라 숙소에 조식이 나와서 준비되어 있는 걸 먹었다. 준비하고 나와서 오늘은 버스를 타지 않고 바로 걷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걷는 코스였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이쯤 되면 그냥 아침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것도 맞다. APEC나루공원까지 걸었는데 공원이 생각한 것과 달리 큰 동네 공원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데 딱히 옮길 장소는 없어서 돌아다니다가 벤치를 발견해서 거기 눌러앉았다. 조용한 공원을 상상했으나 옆에서 무슨 페스티벌 리허설을 해서 시끄러웠다.
앉아서 글 끄적이고 그림 그리다가 리허설이 잠깐 멈춰서 그 틈을 타서 명상도 잠깐 했다. 저번에 그 잠깐이 너무 좋았어서 그 기억이 오래갈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명상을 했다.
그렇게 쉬엄쉬엄 있다가 깡통시장으로 이동하는데 버스를 놓쳤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 정보가 없는 건 들살이 중 처음이었지만, 내 주제는 아날로그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찾아보고 기다렸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른 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얼마만 일까... 다행히 버스는 15분~20분 기다렸더니 왔다.
깡통시장은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크기도 컸다. 그리고 정신이 없었다. 점심 먹을 걸 정해둔 게 아니어서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일반 식당에서 현금 쓰면 뭔가 유별나 보이는데(기분 탓인 거 안다) 시장에서는 거의 현금 쓰니까 좋다.
시장을 더 둘러보고 계획보다 시간이 남았는데 정신이 너무 없어서 일단 어딘가 앉고자 바다 쪽으로 갔는데 거기가 자갈치 시장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고 그냥 다시 돌아와 보수동책방골목에 갔다. 책을 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러기는 애매해서 그냥 구경만 했다 헌책방 골목이다 보니 추억의 만화책들이 많았는데 누군가와 같이 왔으면 얘기도 할 수 있고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계획 짤 때 찾아봤던 책방을 찾아갔는데 독립출판물이 많아서 좋았다. 책 앞에 작가님들의 설명도 짧게 쓰여있었는데 그런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살 돈은 안 돼서 음료를 하나 시키고 책을 조금 읽었다. 사장님과 어떤 분이 대화하는 소리 때문에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 됐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어 읽고 있었다. 내 집중을 방해하는 게 소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빠져들고 나면 신기하게 안 들린다.
책을 좀 읽고 일몰을 보러 다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주말이고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해서인지, 모둠 들살이 때 왔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낮과는 분위기가 또 달라서 신기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신중하게 찍다가 필름이 꽤 남아서 해변에서 여러 장을 찍었다. 그리고 잠시 돗자리에 앉아 멍을 때렸다.
막상 정말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는 카메라 들고 나오신 분들이 다들 내 앞에서 사진을 찍으셔서 일몰을 제대도 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건 일몰과 여유... 마지막 날 감성이었는데 현실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뭔가 몽글몽글한 감정은 느끼지 못하고 웨딩 스냅 촬영하는 커플 구경만 했다. 부산은 커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것까지 보고 자리를 떴다.
사실 나는 의지박약이라 목적은 아날로그로 살기, 휴대폰 멀리하기 지만 혼자 있으면 결국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초반에는 모둠들살이 하느라 휴대폰 본 일이 거의 없었고 그렇게 안 보다 보니 또 잠깐새 안 보는 거에 익숙해져서 휴대폰을 잘 보지 않았다.
시계는 아날로그시계를, 지도는 종이 지도와 캡처한 장면만으로 쓰려 노력했다. 들살이 가면 항상 버스 언제 오는지나 지도 본다고 급급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서 좀 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덕분에 지나치거나 헤매는 일도 있어 많이 걷기도 했다. 또, 애들이 폰으로 일지 쓸 동안 이렇게 공책에 적기도 했다. 애들 일지를 읽다가 손으로 쓰는 거에 장점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맞춤법을 모르는 게 아니면 오타가 없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원래는 아날로그 사용(?)을 위한 거였는데 필름 카메라의 재미를 알아 버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카드가 아닌 현금을 사용한 건데 요즘은 카드가 거의 직접 앞에 꽂게 되어 있어 카드가 오고 갈 일이 잘 없는데 현금은 누군가와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얼마를 내야 할지 머리를 한 번 더 굴려야 한다는 점도 있었다.
완전히 디지털 사용을 안 한 것은 아니기에 완벽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느리게 살아보았다. 나는 그동안 무얼 쫓기에 그렇게 급급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살이 동안은 꼭 맞춰야 하는 시간도 없다 보니 버스 시간 좀 안 찾아봐도 큰 일 안 나고, 지도 안 보고 걸어도 목적지까지 잘만 찾아갔다. 개인 들살이라는 것 말고는 기대한 게 없었어서(활동면에서) 그런가 더 만족스러운 들살이였다. 나는 역시 하면 하는 사람이었다.
- 09/10 (일) 전체 들살이
부산을 떠나는 날이었다. 부산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벌써 떠난다니 조금 아쉬운 감도 있었다. 아침을 먹고 곧바로 부산역으로 향했다. 이제 지하철도 익숙해졌다. 부산역은 오늘도 사람이 무지 많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아무튼 이번에는 몇몇 애들과 열차는 같았지만 호차가 달라 혼자 무궁화호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들살이에 책 한 권을 가져왔었는데 그게 바로 이때를 위한 거였다. 『유령의 마음으로』라는 소설집을 가는 내내 읽었다. 나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이게 되는 일이었다니. 지난번 창비 부산에서 해보긴 했지만 한 번은 우연 같기도 한데 두 번부터는 정말 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중간에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었는데 집중이 잘 돼서 신기했다. 그새 집중력이 는 걸지도.
그리고 조금 졸았더니 대전에 도착했다. 휴양림에 들어가는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 30분이라 버스를 놓치지 않게 급하게 정류장에 갔는데 버스는 여유롭게 왔다. 거기서 모둠원들을 다시 만나 함께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중간에 규와 새도 만났다. 휴양림에 도착했을 때는 비몽사몽 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숙소가 산 맨 꼭대기에 있어 엄청 걷다 보니 힘들었다. 오르막길이 가팔라서 힘들었다.
힘들게 도착해 동물팀을 만났다. 오랜만에 봐서 어색한 줄 알았는데 역시 어색했다. 그리고 나는 급격히 기가 빨리기 시작했고 컨디션도 살짝 안 좋아졌다. 이 정도 인원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
그래도 친구들이 게임을 준비해 줘서(고마워용) 게임하면서 처져있던 게 조금 올라갔다. 저녁밥 담당 친구들이 해준 카레를 맛있게 먹고 나는 뒷정리 담당이어서 설거지를 했다. 그 후에는 돌아보기를 하고 별을 보고 잠깐 걷고 돌아왔다.
내일 집에 간다는 게 좋은데 조금 섭섭하다. 한 활동을 오래 하는 걸 계획했지만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책 2권을 앉은자리에서 쭉 독파했다. 책을 계속 읽기는 해 왔지만 요즘은 조금씩 읽다 보니 책 한 권을 다 읽는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래서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 꽤 가능성 있는 사람이었군. 들살이 끝나도 책 읽을 시간은 더 낼 수 있으면 좋겠다.
- 09/11 (월) 들살이_찐_최종본.
정말로 집에 가는 날이라니. 늘 들살이 마지막 날은 이렇게 기쁨과 아쉬움, 조금의 허망함이 느껴진다. 특히 이번, 오늘은 내 인생 마지막 들살이의 마지막 날이라 더 그랬다.
좁기도 하고 옆으로 안 굴러가려고 최대한 가만히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엄청 찌뿌둥했다. 그래도 어차피 오늘 집에 갈 거니 딱히 상관없었다. 하여튼 준비를 하고 아침밥 팀이 해준 누룽지를 맛있게 먹고(이번엔 다행히 죽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왔다.
잠깐 산책을 하고 쉬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다. 나랑 연우, 현욱이만 서대전역으로 가서 버스를 따로 탔는데 기다리는 동안 길어가는 나비를 봐서 신기했다. 나비도 걸을 수 있구나..
서대전역에 가서 무거운 짐을 보관함에 넣고 애들이랑 헤어진 후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웨이팅이 있었는데(딱 내가 간 타이밍만!) 꿋꿋이 기다렸다가 맛있게 먹었다. 혼밥 만렙을 향해~~
밥을 먹고는 대전역쪽으도 넘어가 소품샵과 책방 구경을 했다. 책방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기도 한 데 갔던 책방에도 그 얘기가 적혀 있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방에는 독립책방은 온라인 서점에서 책 사기 전 미리 보는 곳이 아니다, 책방에서 책을 사는 게 도움이 된다 하는 류의 글이 쓰여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만 나는 들르는 책방마다 책을 살 여유가 있지 않고, 책을 사서 읽는 게 아니라 빌려서 읽는 게 훨씬 익숙해 책을 사는 일이 드물고 어렵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과 책방에서 사서 읽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과 함께 책방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남아서 계획에 없던 시장도 둘러보았는데 관광객은 별로 없고 시장은 꽤 큰데 휑한 느낌이었다. 방학 때 가족여행으로 속초를 갔었는데 그때 사람 엄청 많던 시장과 비교가 돼서 인기 있는 시장과 없는 시장의 차이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나는 시간이 좀 남아서 천천히 걸어 다녔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바쁘게 걸어서 묘하게 웃겼다. 시장은 느려 보이는데 실은 제일 바쁜 것 같다. 시장과 마트를 같이 보면 시장이 더 느려 보이지만 막상 그 안은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좀 더 걷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다시 서대전역으로 돌아와 용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들살이에 대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없다니! 구구절절 여행 프로젝트니 뭐니 안 해도 된다!!
나는 조금 유별나게 혼자 다니는 걸 너무 좋아한 탓에 들살이를 참 좋아했다. 귀찮아하면서도 마음 한 편 있는 기대감? 그래서 12년의 들살이를 마쳤다는 게 시원섭섭하다. 지금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이걸 쓰고 있는데 마음이 너무 복닥복닥해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둠 들살이도, 개인들살이도 주제를 정하고도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는데 결국 해냈다. 들살이 동안 조금은 느리게 살며 그 느림을 즐거워했다. 나는 또 내가 이걸 들살이 후까지 이어갈 수 있겠다는 확산을 하지 못하지만 책을 읽을 시간을 마련하고 폰을 보기보다 차라리 멍을 때리는 선택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나도 지금 내가 뭐라고 적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올해 들살이이자 제 마지막 들살이가 끝이 났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결과물 글도 올라갈 건데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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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필름 카메라로 담은 세상 모습도 꼭 보고싶네요. 어떤 시선이 담겨있을지~
창비부산은 소운이에게도 추천했던 곳이었는 데... 채원이가 다녀왔구나... 1920년대 병원으로 지어졌던 건물인데, 병원이 망하면서 중국식당이 되기도 하고, 그 후 일본군들이 쓰기도 하고, 아주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100년 건물인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지..
채원이의 마지막 들살이도 그렇게 멋진 일이었기를..
띵콘에서 깨어있는 정신을 맡고 있는 채원의 글은 정말 제 정신을 깨어나게 하네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마주하고 들여다 보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알아가는 시간이 들살이의 힘일까? 일찍 이 시간을 만나고 있는 친구들이 좀 부러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