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연휴기간을 맞아서 천고마비 쾌청한 가을날씨에 대구광역시 달성군관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서원유적을 찾아 마이크로기행 Go Go!!
(탐방코스)
인흥서원(화원읍)~용호서원(다사읍)~녹동서원(가창면)
1.인흥서원(仁興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2길 26
조선후기 추계추씨 4현인 추황(1198~1259), 추적91246~1317), 추유(1345~1404), 추수경(1530~1600)을
제향하기 위해 1866년(고종3년)에 건립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38년에 복원.
서원건물은 강당,동재와 서재,문현사(사당),신도비각,장판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장판각에는
"명심보감" "조군영적지" "추계가승" "추계가승속편" "추계가승집록"등의 책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인흥서원으로 진입하는 인흥교와 입구안내판
남평문씨세거지 반대편에 있는 다리입구에서 200m정도 걸어가면 인흥서원이 나옵니다.
#도보하이킹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시내버스를 타고 화원읍 명곡리 화남초등학교 정류소에 하차하여 인흥교
까지 주변풍경 감상하면서 하이킹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입니다(약 2km)
2)명심보감로종합안내도(인흥서원앞에 위치)
3)인흥서원 전경(평소엔 정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사진촬영함)
4)인흥서원 정문(숭태문)
5)장판각에 소장중인 명심보감 판본
6)추계추씨 중흥기적비
7)신도비각(추적의 신도비는 1864년(고종1년)에 건립)
8)인흥서원(강당) : 옆에 문현사(사당)가 있음
9)장판각
10)동재와 서재
2.용호서원(龍湖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본4길 18-27(성주도씨 용호문중 종중유물 제1호)
1704년(숙종30년) 세덕사로 건립되었다가 1707년(숙종33년) 용호서원으로 승격되어 성주도씨 도성유(1571~
1649), 도여유(1574~1640), 도신수(1598~1651) 3현을 제향한 서원으로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용호서당으로 개칭되었고 1984년에 중수한뒤 1988년부터 향사를 재개함.
강당인 용호서당이 경사면의 상단에 일곽을 이루고 있고 하단에는 최근에 건축된 치경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내에 용호서원유적비가 있고 서원정문인 입덕문은 평소에 닫혀있어 치경당정문인 재현문으로 들어가면 됨.
#시내버스로 갈 경우 서재금봉타운 정류소에 하차하여 길건너 죽 올라가면 대자연유치원이 나오고 유치원앞
도로를 따라 300m정도 걸어가면 용호서원이 나옵니다.
1)정열각(旌烈閣) : 용호서원 입덕문방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
성주도씨 용호문중 종중유물 제2호이며 나라로부터 고상한 행실과 탁월한 절의에 대해 정려를 받은 세 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환 것으로, 당초 3문은 각각 별채로 있었지만 오랜 세월에 퇴락되고 동편마을입구에 새겨진
아주신씨 암각비도 1990년 도로확장으로 훼손되어 하단에 정절비를 세우고 이곳에 합건하였는데 오야 장병규의
기문이 있습니다(아주신씨/월성최씨/순천이씨)
2)용호서원 입덕문방향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3)용호서원입구 전경
4)금정 도진환(1925~2003 : 29세손)공 공덕비
5)용호서원 유적비명
6)용호서원 유적비
7)입덕문(용호서원 정문)
8)치경당(致敬堂) 건립기념비
9)재현문(치경당으로 들어가는 문)
10)치경당 전경
11)용호서당(치경당 뒤편에 위치)
3.녹동서원(鹿洞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
조선중기 충절보국의 삶을 산 사야가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의 위패를 봉안하고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서원으로 영조말기부터 3도유림이 뜻을 모아 상소했으며 1789년(정조13년) 다시 유림에서 공의를 모아 상소한 결과
1794년(정조18년) 서원을 준공하고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서원은 1864년(고종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885년(고종22년) 영남유림과 김씨문중이 합심하여 재건했고, 1971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녹동서원에는 녹동사(사당),숭의당,향양문,충절관,유적비,신도비,한일우호관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우록리(友鹿里)의 유래
우록리는 대구도심에서 동남쪽으로 25km에 위치한 마을로 임진왜란때 귀화한 일본인 모하당 김충선장군이 세거지로 삼은 곳으로, 이곳은 삼정산,최정산,청산,삼성산,자양산,우미산 등 해발고도 500m이상의 높은 산으로 감싸여있는 지형이라 무곡성자리라고 하며, 이런 지형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큰 인물(재상)이 나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400여년전의 우록리는 원래 우미산아래에 있는 소(牛)굴레 모양의 마을이라 해서 우록리로 표기해 왔으나
김충선장군이 전쟁이 끝난 후 이곳에서 범사냥을 하면서 주변환경을 보고는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물은 깊지않으나 맑고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선비들이 사는 곳으로는 제일 적합한 곳이라 생각하고 이곳에 정착
하여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리(友鹿里)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한일우호관
2012년5월3일 녹동서원옆에 개관한 건물로 2009년부터 3년간 총사업비 46억원을 들여 4,198m2부지에 지상2층규모로 세워져 한국과 일본의 문화관광교류에 교두보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앞에 세워진 모형
*건물1층과 2층 전경
2)김충선장군 묘역
한일우호관 건물뒤편에 묘역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는데 약 300m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타납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입구)
(등산로 풍경)
(김충선장군 묘소)
(김충선장군의 차남으로 공조참판을 지낸 김경신의 묘소)
김경신의 묘비명에서 김충선의 가계도를 읽을수 있고 자손들도 나라에 충성했고 그 가문이 번성했음을 알수있다
(김충선장군 묘역 전경)
#김충선장군 묘역에서 내려갈때는 반대편에 있는 넓은 길(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수준)로 내려갔는데 올라
올때보다 훨씬 편하게 하산했고 다 내려오니까 "NOSE COFFEE"란 간판의 커피점이 있더군요^^
(내려가는 넓은 길 풍경)
3)김충선장군 신도비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5월 건립된 것으로 신도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그는 문과 예를 공경했고 그것과 여생을 같이 하고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불의앞에서는 그토록 경멸하던 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 이괄의 난에 나가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때는 늙은 몸을 이끌고 나가 적과 맞섰다"
4)녹동서원 유적지 정문
5)향양문(녹동사 들어가는 정문)
6)녹동사(사당)
김충선은 1642년(인조20년) 72세를 일기로 우록동에서 별세하여 녹동서원에 배향되었고 조정에서는 그에게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 정헌대부의 벼슬을 내렸으며(광해군10년) 김충선의 위패를 모신 녹동사에서는 매년3월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서 제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7)녹동서원 들어가는 정문
8)녹동서원
9)충절관(忠節館)
김충선의 후손, 일본인, 대구시의 후원으로 1998년6월에 건립한 유물전시관으로 왜란당시 사용된 조총을 비롯해
유물,유품과 한일 양구구의 역사,문화,왜란관련 전문도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0)고첨당(顧瞻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