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도 4월이 되면 산이 잎이 피어서 녹색으로 변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보았고,
산이 파래지기 시작하면 산으로 달려갔었다.
산두뤂이 돋아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에 산이 이미 연두색으로 변하기 시작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미적거리고 있었던 것은
산에 가는 재미가 심드렁해지기도 했지만 아내가 잔소리를 덜했기 때문이다.
퇴직한지 15년 동안 나는 안방샌님으로서 적응을 했지만,
아내도 심심풀이로 외출하던 것에 재미를 붙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데 왜이리 바쁜지 모르겠다"라는 아내 자신의 말대로
'의용소방대'나 '난타교실'에 나가면서 비슷한 처지의 아줌마들과 사귀면서
다른 모임까지 가졌기에 점점 외출하는 날들이 많아져 간다.
나로서는 같이 있어도 어차피 나만의 일로 바쁘기에
아내가 외출하는 것이 크게 불편할 것도 없고,
같이 앉아 있으면서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나아서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3번째 쯤 되어야 될 산행이 첫번째가 되고 말았다.
8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기에 아직은 밤동안의 차가움이 남아 있어서
오토바이로 달려드는 바람이 조금은 차가왔지만 상쾌했다.
내가 가는 산은 마곡사 쪽으로 10키로 정도 2차선 도로를 타고 가야 되는 산이다.
2차선 도로변엔 드문드문 심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갈가의 집들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만이 음달에 남아 있는 얼음덩이처럼 봄이 온 것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임도로 들어서자 산비탈에 진달래가 울긋불긋했다.
40년전만 해도 작은 길 하나를 닦거나 개울에 작은 다리를 놓는데도
온 동네 사람이 모두 모여서 장날 같았는데,
지금은 수키로의 임도를 닦는데도 그저 포크레인 하나만 굉음을 낼 뿐이고,
몇시간이나 몇일 후이면 그럴 듯한 길이 만들어 진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만큼 우리의 곁에 익숙한 것들은 빨리도 사라진다.
임도라고 하지만 옛날에 학교 가던 비포장 도로에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길이다.
두룹은 임도주변의 비탈에 자생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쉽게 발견하고 해마다 올수 있는 있는 것은 길이 닦여 있기 때문이다.
두룹이 돋았나 살펴 보면서 천천이 오토바이를 모는 동안
낯선 침임자를 경계하듯 이름 모를 산새들이 쉼 없이요란하게 짖었대고,
비둘기가 구구대어 다시 봄이 오고 산에 온 것을 실감하게 했다.
토요일이니까 몇시간이 지나면 나처럼 산나물을 보려는 사람들이 올 테지만
아무도 없는 넓은 산과 끝없이 뻗어있는 임도에 혼자 있는 것은 외롭다.
혼자서 산에 오면 느끼는 그런 감정은 해가 갈수록 더해 가는 것 같다.
웬만하면 아내가 따라 오겠다고 졸라대어 같이 왔겠지만
이른 봄 부터 공연히 다리가 아프다고 집에서도 불편해 하는 중이라
같이 오자고 조르지도 않았다.
산나물을 뜯으려면 아내와 같이 다녀야 한다.
나는 그냥 지나치는 곳에서도 아내는 산나물을 발견하였고,
가방에 뜯은 나물을 챙겨 넣을 때는 항상 내가 뜯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곳곳이 아내가 기웃거리면서 고사리를 발견하던 곳이었지만
아직은 돋지 않았는지 내가 건성인지 보이지 않았다.
두룹은 이미 누가 다녀 간 것 같았다.
굵은 줄기에 난 것을 꺾어간 흔적만 있을 뿐이고 , 늦게 돋아난 것은 따기에는 너무 어렸다.
가는 가지에 남은 몇개를 줍듯이 따면서 산비탈을 오르내렸다.
작년에도 이렇게 몇일 늦어서 허탕을 치고 약이 올랐었는데
오늘은 이상스러울 만큼 약이 오르지 않았다.
퇴직 했을 때는 50을 갓 넘긴 나이였다.
날마다 가던 곳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기에
시간도 보낼 겸,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몸부림으로 악착스럽게도 산에 올랐었다.
그래서 이 산의 두룹이 거의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따던 두룹은 어떤 노인이 따던 것이었는데,
내가 워낙 악착스럽게 드나 들기에
몇년을 헛걸음을 하다가 어느 해 부터인가 산에서 볼 수 없었다.
어느 누군가가 그 때의 나처럼 악착스럽게 드나드는 모양이고
나도 이렇게 몇년을 헛탕을 치다가 슬며시 드나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새벽운동을 거르지 않고, 몇달째 윗몸일으키기를 한 덕인지 산에 오르는 데 숨이 덜 찼다.
2015년 겨울 최저점을 찍은 건강이 조금씩 회복 되어 가는 중인 것 같은데,
혈압약을 먹지 않고 혈압을 잡는 일이 너무 고달프다.
가끔 "이렇게 새벽마다 일어나고, 이를 악물고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것들을 빼면 무엇이 남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비둘기 소리가 오늘 따라 유난히 서글프게 들린다.
아마 빈 보따리가 채워졌으면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
같이 가자는 말대신 "조심하라"며 집에 남았던 아내와 같이 왔으면
허전한 기분이 덜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산비탈과 산길마다 아내와 헤매던 지난 날들의 기억이 겹쳐진다.
작년에는 한동안 아팠다가 나아 져서 몇번 같이 다녔는데 올해는 더 오래 불편해 한다.
지금처럼 노는 일에 재미가 들리거나 다리가 호전 되지 않으면
같이 오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여하튼 산에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산비탈에 피어 있는 벗나무가 작년에는 저렇게 큰 나무로 기억되지 않는데
겹사구라꽃 못지 않게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봄이 꽉차게 와 있는 중인 것 같다.
어제 그렇게도 모질게 불던 바람이 잠잠하다.
오토바이가 아니라면 더위를 느낄지도 모르는 길을 천천히 한번 더 돌아 보았다.
며칠 후에 혼 또 혼자 오거나 아내가 욕심을 부려 같이 올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다니더라도 몇번 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잘 읽고 갑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