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마우지
이 홍사
늙어도 변하지 않는 신체 기능 중에서 하나는 바로 눈물샘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어서 기능이 떨어지기는커녕, 눈물샘은 늙으면서 오히려 더 발달하는 모양이다. 조금만 서운한 일을 당해도 눈물이 핑 돈다. 예전에는 무시하고, 예사로 생각하고 지나갈 일도 가시가 되어 심장 모서리에 박힌다. 그렇게 가시가 박히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핑 돈다. 자식들에게, 젊은 타인에게 조그만 일로 무시당해도 마찬가지다. 싸가지라고는 서 푼어치도 없는 자식들, 그런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늙으면 이렇게 되는가. 이게 늙는 것인가?
싸가지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시내버스를 이용하고부터다.
오지게 싸가지가 없구나.
잊고 있었던 용어인데 버스를 탈 때마다 그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는 시내버스를 타기 전에 그런 싸가지라고는 서 푼어치도 없는 놈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싸가지를 들먹이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떠올려서 기분이 좋은 인물은 결코 아니다.
대략 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건설경기가 좋아서 중기 임대업자인 나는 중장비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었다. 굴착기 조수로부터 기사를 거친 나는, 굴착기에 관해서라면 문무를 겸비한 셈이고, 지금 돌이키니 그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일은 넘치는데 기사가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그때 어렵게 기사를 하나 채용했다. 성이 정확하지 않지만, 최 기사였지 싶다. 기사가 모자라던 시절이라 파격적인 최고의 급료를 약속하고 채용했다. 그런데 처음 와서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쉬겠다는 것이었다. 일요일도 아닌 평일이었다. 볼일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이유를 묻지 않고 하루 쉬라고 했다. 일은 밀려 있는데 서 있는 중장비를 보니 애가 탔다. 그래도 마음 편히 볼일을 보고 보라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쉬고 와서 겨우 이틀을 일하고는 또 쉬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말로 하기 어려운 집안에 피치 못 할 일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편히 쉬라고 했다. 그런데 또 이틀을 일하고 다음 날 일이 잔뜩 밀려 있는데 또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 연유를 물었다.
“아! 고추가 다 물러터지는데 일이 손에 잡혀요?”
무슨 고추? 느닷없이 고추 타령을 하길래 고추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줄 알았다. 집안에 불화가 있고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서 법원에 볼일을 보러 간다는 말을 다른 기사들에게 들은 터라 그 고추가 그 고추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촌집에 딸린 텃밭에 고추 농사를 짓는데 그 고추를 빨리 수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앞에 이틀을 쉰 것도 텃밭에서 고추를 땄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텃밭이 이백 평이라고 했으니 고추 농사를 이백 평 지으면 일 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좀 생각하더니 대략 어느 정도라고 했는데 얼른 셈을 해도 굴착기가 공사 현장에 가서 일하고 받는 사흘 일당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생각할 여지가 없다.
일이 바쁘다고 더 데리고 있다가는 수습 기간이 넘어서 법적으로 자르지 못한다. 만약 자른다면 해고수당을 주어야 하는, 번거롭고 골치 아픈 일이 된다.
더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디 가서 굴착기 기사로 취직하지 말고 집에 가서 고추나 따라고 그 자리에서 일한 만큼의 월급을 계산해서 주고 보내버렸다. 깔끔했다. 아무리 기사가 귀하지만 월급을 받는 사람이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쓸 수가 없는 이치다. 차주인 나에게 그렇게 하는데 현장에 나가면 오죽하겠는가? 현장에 나가면 일을 몰고 오는 기사와 일을 까먹고 오는 기사가 있다. 성심껏 일을 알아서 해주면 일감을 몰고 오는데, 반해 일을 건성으로 하면 일거리가 줄게 마련이다. 굴착기 기사는 두 종류가 있다. 일을 물고 오는 기사와 일을 까먹고 오는 기사가 있는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였다. 고추가 물러터지는데 일이 손에 잡힙니까? 그런 싸가지라면 미련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그가 왜 떠올랐을까?
인생의 지도는 펼쳐져 있는데 독도법을 모른다. 그 독도법을 싸가지라고 명명하자.
싸가지!
싸가지가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가끔 아내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술을 자주 마셔서 알콜로 인한 순간적인 치매인지 치매의 전조증인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전화해서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려면 그때서야 이름이 떠오른다. 웃을 일이 아니라 기가 막히는 일이다.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싸가지라는 얘기는 하지 않고 사랑이 식고 정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전화기에 아내라는 명칭을 지우고 권 여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전화가 오거나 걸 때마다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었다.
각설하고, 처음 버스를 타고는 몰랐는데 몇 번 타보니 싸가지라는 말이 자꾸 입에서 맴돌았다. 요즘은 가끔 시내버스를 탄다. 그게 편하다. 예전에는 걸어 다니던 길이었는데 이것도 나이라고 걷기에는 좀 멀고 택시를 타기에는 기사에게 눈치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서 버스를 탄다. 눈치에 너무 민감해서 그런지 택시보다 그런 길은 시내버스를 타면 마음이 편하다.
저녁에 술 약속이 생기면 나는 절대로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차를 가지고 나가면 주차 문제도 그렇지만 들어올 적에 대리운전자를 불러 운전을 맡기는 게 상당히 마음이 쓰인다. 내 차에 내 기름을 때고 들어오는데 택시비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대리운전 기사에게 주어야만 한다?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사는 구미에는 지하철이 없다.
한마디로 이 시대의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다. 노인이 시내버스에 타면 발딱 일어나 자리를 양보할 줄 모른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걸 배우지 않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뭘 가르치나? 먼저 타서 자리를 차지하고는 스마트폰에 눈길을 박는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짐을 들고 바로 앞에 서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싸가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것은 어제저녁이었다. 중앙시장에서 가까이 지내는 선배를 만나 막걸리를 마셨다. 싸구려 돼지국밥집에서 시국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돼지국밥을 안주로 술추렴을 했다. 불콰한 얼굴과 더불어 술 내음이 다른 승객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들어오는 길에는 택시를 타려다가 마침 집 방향으로 오는 버스가 아가리를 벌리고 중앙시장 입구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기에 바로 올라탔다.
타고는 바로 싸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잠깐, 싸가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싸가지가 뭔지 모르는, 아주 싸가지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싸가지란 싹수라는 말의 경상도 방언으로 지금도 흔히 쓰는 말이다. 싸가지라는 말을 더 심하게 비하하면 싹바가지라고도 한다. 역시 경상도에서는 통용되는 말이다.
싸가지 상실의 시대!
어제저녁에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오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속으로 웅얼거리며 돌아왔다.
세월은 참으로 빨라서 내가 벌써 버스를 타면 자리를 양보받을 나이가 된 모양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반백의 머리에 다른 이들에게 그런 나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버스를 타면 늘 자리를 양보하고 살았는데 이젠 아닌 모양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으로, 어른답게 산다는 것이 실로 어렵다. 어제저녁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보니 만석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학원을 다녀오는 길인지 학생들이 많이 앉아 있었는데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물론 짧은 거리니 서서 와도 되겠지만 그게 서운했다. 그렇다고 앉아서 핸드폰을 주물럭거리는 아이의 멱살을 잡고 일어서라고 하기에는 체통이 없는 일이라 버스 천정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이렇게 야박한 사회가 되었구나.
그런데 야박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리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어르신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한 사내는 얼른 보기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대머리의 사내였다. 그 사내의 눈에는 내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자리를 양보받는다는 것이 심히 불편했다. 금방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괜찮다고 했는데 기어이 자리를 양보하면서 앉으라고 하는 바람에 앉기는 했는데 자리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과연 내가 이 대머리 사내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만큼 늙은 것인가?
이건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시대 탓이다. 버스 정류장마다 현수막이 붙었다. 불신을 조장하는 현수막이다.
그놈의 목소리, 3Go, 의심하Go, 전화끊G0, 확인하G0.
어느 새끼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확실히 불신을 조장하는 현수막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저런 걸 현수막까지 만들어서 걸어야 하나. 시대가 변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믿지 말라는 훈계와 가르침이 만연하고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나?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그런 정도이니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이들만 탓할 게 아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른답게 살지 못하는 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뉴스가 삼심찮게 매체를 장식한다. 모르면 좋으련만, 정보 홍수, 그런 시대의 폐해 중 하나다.
시계를 팔았다.
차고 다니던 시계를 팔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모른다. 작년에 회갑 선물로 아이들에게 시계를 받았다. 몸통을 비롯하여 시곗줄이 금으로 된 상당히 고가였는데 시곗줄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고급 시계가 하루에 이삼 분 남짓 늦어진다는 점이다. 시계의 본질로 따지면 상당히 중대한 결함이었다. 시계를 산 곳에 가서 하소연했더니 충분히 고칠 수가 있다면서 맡기라고 했다.
고치는데 정밀 검사가 필요하고 수리하는 기간이 열흘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맡길 수가 없었다. 믿고 맡기기에는 너무나 고가이고 누구의 손으로 어디로 흘러 다닐지 몰라서 맡기기에는 불안했다.
이 시계를 팔고 다른 시계를 하나 사면 어떨까?
궁리했지만 그것도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얼마씩 갹출해서 회갑 선물로 사준 것인데 그걸 알면 아내나 아이들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고치는 게 아니라 팔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계기가 아니라 사고였다.
시계를 책상 위에 벗어놓고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시계가 책상 아래 사무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의자에 앉아서 시계를 줍겠다고 의자를 움직이다가 의자의 바퀴가 시계의 몸통을 정확하게 밟아버린 것이었다. 빠지직, 작은 유리판의 파열음을 들으며 낭패감보다는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봉곡득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시계를 들어보니 유리가 박살이 났고 침은 물론이거니와 시계의 바탕까지 우그러져 있었다. 바퀴가 달린 의자에 체중까지 실었으니 정확하게 시계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하던 일은 제쳐두고 부서진 시계를 들고 시계를 샀던 시계포로 갔다. 그 시계포는 금은방과 같이 운영하는 곳인데 단골이라 주인 내외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들러 구경만 해도 커피를 대접받곤 하던 곳이다.
“완전히 박살이 났네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요?”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일부러 싫증이 나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농을 하며 값을 얼마 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얼레? 의외로 값이 많이 나왔다. 그동안 금값이 올라서 샀던 금액에서 얼마가 빠지지 않았다. 그 시계를 팔아서 다른 시계를 사려고 했지만, 금으로 된 시계는 딱 하나가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둔탁해 보이고 디자인인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시계포 안주인에게 다른 디자인이 나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하고 시계값은 내 통장으로 입금을 해달라고 했다. 여주인이 핸드폰으로 입금하는 걸 보고 시계포를 나왔다. 시계를 사준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본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멸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 시계포를 다시 찾은 것은 열흘이 훨씬 지나서였다.
시계포 안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아 시계! 하며 시계를 떠올렸다. 잊고 있었는데 새로운 디자인의 시계가 입고되었으니 와서 구경이나 하라고 했다. 그게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시계포는 시내 상가 밀집 지역에 있어서 차를 가져가면 주차를 하고 한참이나 걸어야 한다. 그곳에 가려면 오토바이가 편하다. 오토바이 사이드백에 책 몇 권을 실었다. 그 금은방 안주인도 몇 안 되는 내 독자다. 가끔 지나가다가 커피를 마시러 들르면 책에 관한 얘기도 하는 사이였다. 그동안 새로운 소설집이 나와서 가까운 문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던 터라 책을 집히는 대로 오토바이에 싣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먼저 온 서너 명의 손님으로 보이는 무리가 진열장의 금에 대해서 보고 묻고,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와 건성으로 눈인사를 하고 뒤에 멀찌감치 서서 손님이 줄기를 기다렸다.
“웬 책이에요?”
주인아주머니가 내가 끼고 있는 책을 보고 물었다. 아마도 주인아주머니 눈에는 진열대에 붙어선 사람들이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인지 나에게 관심을 던졌다.
“아, 요번에 새로운 책이 나왔어요. 팔려고 가져온 거예요.”
어머, 그래요? 라는 말고 함께 주인아주머니는 진열장 밑의 서랍을 뒤져 지폐 두 장을 꺼내 흔들었다. 호들갑스럽기는, 주인아주머니는 다른 손님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돈부터 받고 책을 건넸다. 여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책은 돈을 받고 주어야 읽는다. 그냥 주면 책의 소중함을 모를 뿐만 아니라 절대 읽지 않는다. 책을 받아든 아주머니가 표지가 쌈박하다느니 어쩌면 글을 이렇게 잘 쓰느냐느니, 과잉 반응으로 침을 튀기자. 손님으로 와서 팔찌를 구경하던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마머리에 키가 작달막한 아주머니였는데 인근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책을 쓴 작가가 선생님이셔유?”
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그렇다고 하면서 이 책이 첫 번째 책이 아니라 책을 많이 내신 분이라고 덧붙이며 유명 작가라는 말까지 했다.
“유명 작가는 아니고”
겸손이 아니라 유명 작가라는 말에 머쓱해져서 덧붙인 말이었다.
“저에게도 한 권 팔면 안 되나요?”
그렇게 물었지만, 도저히 책을 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따로 있는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그런 물음을 던졌다. 선입견이다. 남을 무시하는 데서 오는 선입견이다. 당장 고쳐야 한다. 난해한 연구서나 철학 서적도 아니고 소설인데. 그런 답을 내리고, 바로 가게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로 가서 사이드백의 책을 한 권 꺼내 들어가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책값은 묻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손지갑을 뒤져 꼬깃꼬깃한 지폐를 한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이걸 받아야 하나?”
중얼거리며 잠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받고 싶지 않았다. 읽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작가들도 자신의 책을 사서 준다던데 당연히 받아야죠”
진열장 너머의 여주인이 말했다.
얼떨결에 받았다.
“작가 선생님! 명한 한 장 주시면 안 되나요?”
그 말에 명함을 꺼내서 내미는데 뭔가 께름칙했다. 기분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날은 시계를 사서 돌아왔다. 새로 나온 시계가 디자인이 깔끔하고 착용감이 좋았고 군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시곗줄이 투박하지 않고 얄팍해서 그런지 지난번에 판 시계값으로도 충분히 살 수가 있었다. 그 돈은 통장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렇게나 쓸 수가 없는 귀중한 돈이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아내가 몰랐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시계가 바뀌었지만 그런 것까지는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입을 떼지 않는 이상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다.
책을 사 간 그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새로 산 시계에 만족하며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모르는 번호가 뜨기에 누군가 싶었는데 시계포를 운운하는 걸 보고 그녀의 얼굴을, 아니 모습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낭패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모래를 씹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시대의 가난한 자는 별을 볼 수가 있다고 했죠?”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물론 인사도 생략되어 있었다. 그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었는데 그걸 주워섬겼다. 대답을 기다리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 말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요지는 한번 만났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땐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역시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아줌마였다. 책 한 권 읽은 독자가 작가를 만나자고 하면 작가는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작가는 무슨 죄인인가? 눈자위를 손등으로 누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난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제가 다른 글을 구상하고 쓰느라 좀 바쁘다고 하면서 전화로 말씀하시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바닷가 하늘을 선회하는 가마우지 한 마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가마우지는 수면 가까이 노니는 물고기를 노린다. 만만한 물고기가 보이면 체중을 싣고 그대로 낙하하여 뾰족하며 긴 부리로 물고기를 물고 수면을 박차고 날개를 펼친다. 그 가마우지가 통화를 하면서 왜 떠올랐을까?
가마우지의 부리에 물린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전화기를 들고 쩔쩔매면서 나는 왜 만나자고 하는지 묻고 있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책 한 권은 넘을 것 같아서요.”
아하! 그거였구나. 읽은 책과 이념이나 정치적인 성향이 맞지 않아서 따지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일로 시비가 걸리면 끝도 없다. 막말을 할 수도 없고 해명하기는 작가로서 보통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다.
주관적으로 생각하면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이 안 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면 그게 인생이다. 가끔 할머니들은 말을 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책이 열 권은 넘는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책으로 쓰면 시들한 주제가 된다.
책을 읽은, 독자가 전화를 했으니 내가 할 말만 하고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난다고 하면 최소한 한나절이다. 한나절 동안 뻔한 이야기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 자식 이야기가 아니면 남편 이야기다. 거기다가 시집와서 고생한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만나서 말씀을 들을 시간은 안 되구요. 명함에 제 메일 주소가 있으니 살아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어서 메일로 보내주시면 참조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백이면 백 메일이 오지 않는다. 나는 가마우지의 부리에 물린 물고기 살아나는 방법을 영악하게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메일로 적어보면 시들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조목조목 정리하여 적을 사람이 몇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 책을 반납할 것이니 책값을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눈시울을 훔쳤다. 늙어서 그런지 눈시울이 주책이었다. 긴장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전화를 끊고 책상에 턱을 괴고 생각했다.
내가 왜 순간적으로 가마우지를 떠올렸을까?
그렇다.
예전에도 가마우지를 만난 적이 있다.
대구에서 구미까지 나를 찾아온 아주머니였다. 고생하지 않고 살았는지 곱게 늙은 육십 대의 아주머니였는데 사전에 연락도 없이 불시에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고 중후한 품위가 풍기는 아주머니였는데 요지는 자서전을 쓰고 싶은데 대필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나를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도서관에서 우연히 내 책을 읽고 문체가 마음에 들어 신춘문예가 당선된 신문사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출판사로 연락해서 주소마저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전화를 먼저 하면 결례인 것 같고 거절당할 것 같아서 바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체중을 싣고 수면으로 낙하하는 가마우지를 떠올렸다.
좀 당황했다.
당황했다기보다는 여자의 목소리로 자서전을 대필할 자신이 없었다. 쓰면 간신히 줄거리는 이어 나가겠지만 그 시간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 속박된다. 자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남의 자서전을 써주고 원고료를 받을 만큼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았고 책이란 자다가 아기가 생기듯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남의 자서전을 쓰려면 뇌를 비틀어서 뇌수를 짜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대구에서 구미까지 찾아오셨는데, 생각하니 가마우지에 물린 물고기처럼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가마우지의 부리를 빠져나갈까 궁리했다.
“여성분의 자서전은 여류 작가가 쓰는 게 맞습니다. 제가 쓰면 어딘가 모르게 남자의 문체가 나옵니다. 여류 작가를 찾아보십시오.”
“여류 작가 중에서도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들이 있나요?”
“대구에도 몇 명이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아무래도 전화도 자주 하고 몇 번은 만나야 할 것이니 대구에 있는 작가가 편리하겠죠. 어렵게 먼 걸음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저는 선생님의 문체가 마음에 드는데.”
아주머니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 여류 작가들 책을 읽어보면 문체가 섬세합니다. 제가 소개하는 작가의 책을 먼저 읽어보고 결정하십시오. 저한테 소개받았다고 하시면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달래고는 같이 소설을 교류하는 J 누나를 소개해주고는 가마우지의 부리에서 풀려나 비로소 잠수할 수가 있었다. J 누나가 그분의 자서전을 썼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서로가 그 일은 입에 담지 않았다.
생각하니 가마우지는 수면 가까이 얕게 떠도는 물고기를 노린다. 가마우지는 물새이지만 육식성 조류다. 새들은 다 육식성인가? 아니다.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이라는 말이 있다. 참새는 물고기를 노리지 않는다. 방앗간의 곡식을 노린다.
가마우지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가마우지가 없으면 생태계와 먹이사슬의 변화가 온다. 가마우지도 자연의 조화를 위해 꼭 필요한 조류다.
요즘은 버스를 타면 가마우지가 득실거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좌석을 양보하지 않고 노인이 타도 못 본 척 핸드폰을 주물럭거리는 싸가지가 없는 자식들은 다 가마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노인을 물고기로 생각하는 가마우지. 우리 시대의 노인은 천대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노인을 공경하던 시대는 지났다.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지혜와 통찰력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어느 싸가지 없는 정치인 새끼는 노인들은 선거에 투표하지 말자고 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자 노인들은 몸이 불편하니 그런 수고를 아껴야 한다고 말을 고쳤다. 그걸 변명이라고 했다. 궁색하기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마우지가 아닌가?
과연 나는 싸가지가 있는가?
싸가지를 더듬다가 노인을 떠올렸다. 고향 동네에서 연세가 가장 많은 분인데 친구의 부친이다. 한번 찾아뵌다면서 뭘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참! 더 늦기 전에 찾아봐야지. 못 뵌 지가 몇 년이 되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르신인데 정신이 맑을 적에 찾아뵈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니 나도 싸가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고 마음이 바빠졌다.
나도 참 싸가지가 없는 놈이구나.
고향 다른 친구의 모친인 우실아지매도 찾아뵌다면서 미루다 늦었다. 노인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실부모한 나는 친구의 부모님들을 찾아뵈면 푸근하다. 자식의 친구이니 자식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우실아지매는 내가 외국에 있을 적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놈이 되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마음먹었을 적에 당장 찾아뵈어야지.
도회의 변두리가 되어버린 고향이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차로 이십 분이면 도착하는 지척인데 여태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뭘 사 들고 가지?
고기가 좋겠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정육점은 문을 연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럼 파리바케트에서 빵이라도 사서 갈끼? 파리바케트도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뭘 사 들고 오는 것을 바라는 노인들은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가면서 빈손으로 가기는 그렇다. 편의점에 가면 노인들이 주전부리하실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싸가지 없다고 아이들만 탓한 게 아니라 나의 싸가지를 챙겨야 할 나이다.
노인들은 새벽잠이 없으니 벌써 일어나서 아침을 자셨을 것이다.
나의 싸가지부터 챙겨야지.
찾아뵈면 눈물샘이 자극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그건 만나서 생각하고, 뒤적거리던 인터넷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노인은 나와 가마우지와 물고기의 관계가 결코 아니다. 이 싸가지 없는 놈을 반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