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지, 풍등이 날다 / 김순경
텅 빈 들판에는 늦가을 햇살만 가득하다. 질펀한 가슴으로 벼를 키워낸 논바닥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터지고 갈라진 민낯을 드러낸다. 빈집을 지키는 노인처럼 남아 있는 벼 그루터기도 덧없이 퇴색되어간다. 새하얀 억새꽃이 하늘거리는 논두렁에 발을 들이자 인기척에 놀란 메뚜기들이 사방으로 튄다.
한참을 가도 이정표가 없었다. 얼핏 들어도 짐작이 가는 곳이라 쉽게 찾을 줄 알았다. 들판 가운데 있는 작은 숲을 보고 다가갔더니 절터가 아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보문들 끝자락에 황복사지 삼층석탑만 가물가물하게 보일 뿐 전부가 논이었다. 여러 번 다녀간 적이 있는 진평왕릉 주변이라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잡풀을 헤치고 다가오는 용달차를 발견했다. 그곳에 보문사지普門寺址라 적힌 이정표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경주 보문사지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다. 사적 제390호로 지정된 유적은 경주 낭산(사적 제163호)과 명활산성(사적 제47호) 중간에 자리 잡은 보문동 앞들에 있다. 폐사지에는 당간지주(보물 제123호)와 석조(보물 제64호),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제910호)가 있고 석등과 석탑과 같은 석물의 부재도 많은 곳이다. 절터 대부분은 논이 되었으나 남아 있는 크고 많은 석물이 큰 절이었다고 말한다. 정확한 기록이나 전설이 없어 일제강점기 때 발견된 보문사普門寺라 새겨진 기와에서 이름을 얻었다.
들판 가운데 뭔가가 보였다. 흙을 모아둔 둔덕이었다.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들이라 농로도 황톳길처럼 구불구불했다. 너무 좁은 길이라 도로에 차를 세우고 볏짚이 너저분히 널려있는 논길을 택했다. 한여름 치열했던 열기가 사라진 늦가을 들녘에는 스산한 바람만 가끔 지나갔다. 물기가 남아 있는 흙을 밟으니 허리가 휘도록 모를 심고 땀띠가 나도록 지심을 매며 무논을 헤매던 기억과 아무리 힘들어도 말끝마다 힘이 들어가던 가을도 생각났다.
가을 하늘은 청자보다 푸르고 동해보다 깊다.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향한 쑥부쟁이꽃이 해맑게 웃는다. 나도 웃는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묻고 싶은 미국쑥부쟁이도 마디마다 하얀 꽃을 내걸고 있다. 다가가 만져보고 싶어도 참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뚜기들이 놀라 달아난다.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는 눈이 튀어나올 듯 있는 힘을 다해 튀어 오른다.
유적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논두렁에서 한참을 둘러보다가 석조石槽가 있는 쪽으로 동선을 잡는다. 여러 번 본 적 있는 친숙한 석물이다. 장식 문양이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물통이다. 불국사 석조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통일 신라 시대의 특징인 장중함이 배어난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금이 갔다. 비스듬히 땅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흔적이 안쪽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산화가 빠른 화강암이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금당 터로 발길을 돌린다.
논길 가에는 큼지막한 돌들이 버티고 서 있다. 논두렁에 사용되는 잡석과는 크기와 모양부터가 다르다. 듬성듬성 박혔지만 누가 봐도 주춧돌이고 축대에 사용되었던 석재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람하다. 검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반쯤 땅에 묻혀 있어도 한때 육중한 건물을 짊어졌던 기개가 느껴진다. 날마다 울려 퍼지는 염불과 목탁 소리가 그리운지 찾아온 이방인을 반가운 듯 쳐다본다.
토성 같은 법당 터다. 주변이 논이 되자 섬으로 변했다. 투박하고 큼직한 주춧돌이 뿌리를 드러낸 채 영역을 지킨다. 우뚝 솟은 금당 터에 줄지어 앉아 있는 돌에는 이끼꽃이 피었다. 물기 하나 없는 검고 흰 이끼꽃 사이에는 노란 이끼도 칠을 한 듯 끼어 있다. 기와 파편과 각종 부재가 패총처럼 쌓여 있는 금당 자리는 장방형이다. 둥글게 다듬어진 기단 돌에는 밀려나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꺾쇠의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왕궁에서나 사용했을 장대석이 사찰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불상이 앉았던 금당 자리에 자그마한 묘가 있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봉긋하게 솟은 형태를 보면 봉분이 분명하다. 기단석과 주춧돌 중앙에 자리 잡은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비석은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이나 자료를 뒤져봐도 전혀 언급이 없다. 풀이 자라기도 전에 예초기가 동원되는 곳이라 적어도 벌초 문제는 없어 보인다. 여름이면 푸른 파도가 출렁이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이 넘실거리는 들판이라 명당이 분명하다.
당간지주는 비교적 규모가 작아도 안정감이 있다. 해인사나 통도사 당간지주같이 위용을 과시하지 않고 소박하다. 그나마 북쪽 기둥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남쪽 기둥만 온전한 모습이다. 한쪽에는 세 개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지만, 반대쪽 당간지주는 바깥쪽이 막힌 홈만 파여있다. 아래쪽 구멍을 보면 땅에 묻힌 부분이 많은 듯해도 그냥 추측만 한다. 남쪽 당간지주를 관통해 짧은 쪽의 홈에 끼워 당간을 고정했던 돌기둥 주변에는 낮은 철책이 둘러쳐져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곳곳에 검붉은 기운이 서려 있는 화강암을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선다.
숱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갔던 길로 돌아 나온다. 허무와 무상함을 가슴 가득 안고 올라오는 논에는 여전히 벼메뚜기가 튀어 오르고 하얀 억새꽃이 하늘거린다. 철새들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늘 가고 오지만, 한번 뿌리 내린 풀은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처럼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땅을 지킨다. 논두렁으로 밀려난 억새는 곡기를 끊었는지 핏빛 반점 가득한 잎과 줄기가 점점 말라간다.
한줄기 소슬바람이 휙 지나간다. 억새꽃이 구름처럼 피어난다. 새하얀 풍등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나도 덩달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