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여행4 - 단노우라해전 모자이크를 보고 옛마을 초후에 가다!
8월 12일 야마구치(山口) 에서 신야마구치 와 북규슈의 고쿠라 를 거쳐 기차를 모두
3번을 갈아 타고는 드디어 시모노세키 下関 しものせき 역에 도착합니다.
시모노세키역 구내에는 서부 일본 혼슈의 최서단 관문 답게 지도며 위치
그리고 관광지 소개 를 하는 그림과 사진들로 가득해서 볼만합니다!
바로 내일 8월 13일 밤에 간몬 해협 을 수놓는 하나비(불꽃놀이)
대회가 있음을 알리는 포스터 가 우리 눈길을 끕니다.
그러고는 역사 내에 걸린 대형 시내 지도 를 보며 우리 부부가 찾는 호텔의
위치며 그후 시내관광에 나설 동선 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 봅니다!
그때 귓전으로 들리는 반가운 한국말 소리..... 뒤돌아보니 저만치 7~ 8명의
우리나라 학생들 이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말하며 두리번 거리는데....
아마도 어제밤 8시에 부관페리 www.pukwan.co.kr 를 타고는 오늘 아침에 시모노세키항
에 내려 10여분을 걸어서 여기 기차역 으로 온 모양인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봅니다.
옛날 우리가 일본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서 미도리노마도구치 에서 JR 패스 교환권 을
JR 패스 로 바꾸고 기차 좌석을 예약 하는 것을 도와 주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저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방법 을 찾아야 보람 이 있을테고 빨리 해외 여행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경험을 쌓도록 그만 모른체 지나치기로 합니다.
그러고는 니시구치 西口 로 나와 두리번 거리노라니 2분 거리 반대편에 보이는게....
인터넷에서 예약한 Hotel WING International Shimonoseki 건물이 보이기로
도로를 건너기 위하여 지하도로 내려가니...... 지하도 벽 에는 무사들이
배를 타고 싸우는 "해전도가 모자이크" 로 길게 만들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무사들이 싸우던 해전도의 마지막 부분 에는 한 여인 이 배에서 바다 속
으로뛰어드는 장면 이 보이니.... 그럼, 이는 바로 "단노우라 해전" 이라!
천 7백년 일본 역사에 국내 전투에서 해전으로 불릴만한 것은 서너차례 정도에
불과하고 외국과의 전투도 몽고와 고려군이 침략한 해전 이 2차례 있을 뿐 입니다.
몇차례 되지않는 해전 가운데 역사에 남을 큰 해전은 단 한번 밖에 없었으니 바로 단노우라
해전 인데.... 교토에서 패하고는 서쪽으로 쫃겨온 다이라(平, 헤이케)씨 의 조정이
시모노세키 에서 미나모토(源, 겐지) 씨 와 해전으로 자웅 을 겨루었으나 거듭해서 패합니다.
다이라(平) 가 출신 황태후인 외할머니 다이라노 도키코 가 8살, 어린 안토쿠왕(천황) 을
가슴에 품고 3종의 신기 와 더불어 바다로 뛰어들었던 그 슬픈 그림인가 보네요!!!
안토쿠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바다속에 용궁이 있으니 극락세상 으로 간다고 말했던?
1185년에 여기 시모노세키에서 벌어졌던 단노우라 해전의 유래 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자면..... 660년에 웅진성과 수도 사비성 이 함락되니 백제가
망합니다. 해서 의자왕을 비롯해 왕족과 귀족 및 수도에 살던 사람들
1만 3천명은 모두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잡혀 갔다는 소식이 왜국에 전해집니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 에 보면 의자왕의 사촌 누이동생(?) 왜국의 사이메이(劑明女帝)
여왕(천황) 은 이제 성묘며 조상의 제사 를 어찌하나 슬피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후 도침과 복신이 백제 부흥운동 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왜국에 인질(?) 로
와 있던 의자왕의 동생 왕자 풍 에게 5천 왜군 을 주어 귀국시켜서 백제 왕위 를 잇게합니다.
수도를 아스카에서 규슈 후쿠오카 로 옮긴 다음에 왜국 백성들을 징발해 산에 보내 나무를 찍어
배를 만들고 무기와 식량 을 준비해 663년에 3만 왜군 을 파견하지만 백강(금강) 전투에서
당나라 수군에 패하고는 왜군과 백제인들은 일본으로 도망쳐 오는데 이 때 핏비 血雨(혈우)
가 내린다는 노래 가 770년에 4,536수 시가 를 모아 엮은 만요슈 萬葉集(만엽집) 에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이두나 향찰로 지은 처용가나 찬기파랑가등 향가(鄕歌) 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등 25수 가 전하는데.... 일본은 770년 만요슈 萬葉集(만엽집) 에 4,536수와 그 백년후
속일본기등 5,000수에 이르니 시기나 양에서는 뒤지지만, 25수는 질적인 면에서는 앞선다고 자부 합니다!
왜국은 신라와 당나라 추격을 염려해 도주해 온 왜군과 백제 백성들을 모아 규슈 와 여기
시모노세키 下関(하관) 에 백제식 산성 을 쌓는 것도 모자라, 아들 나카노오에는
천지왕(천황) 으로 등극하고는 아스카에서 내륙 비와호수 오쓰로 수도 를 옮기는데,
만요슈에 "돌아오지 못하리" , “조상의 묘소는 영원히 잃어버렸다” 고 한탄하는 시가....
“백제의 주류성이 마침내 당에 항복했다. 이에 국인(國人)들이 말했다. ‘사태가 돌이킬수 없게 됐다.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이제 조상의 묘 가 있는 곳을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호례성
(弖禮城· 전남 보성) 에서 일본 장수들과 만나 어떻게 할지 의논하자.’ 그리고 침복기성 (枕服岐城·
전남 강진) 에 있던 처자들에게 나라를 떠나가려 한다는 마음을 알렸다.” (『일본서기』 663년 9월 7일)
일본의 수군 과 함께 좌평 여자신, 달솔 목소귀자, 곡나진수, 억례복류 와 국민들이 호례성
(弖禮城· 전남 보성) 에 이르렀다.” “이튿날 비로소 배가 출항해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서기』 663년 9월 25일), 백제 유민 2천명을 오우미구니(近江國) 간자키군(神前郡)
과 동국에 아주시켰으며 좌평 귀실집사와 여자신을 포함 달솔 60여명에게 벼슬을 하사했다.
종래에 한반도의 가야 및 백제와 연결된 시대의 국호인 倭國(왜국) 을 버리고 (탯줄을끊고)
"해뜨는 나라란 뜻으로 해의 뿌리" 즉 일본(日本) 을 710년에 새 국호로 정합니다!
하여 지금 일본의 국기 "히노마루 노 하타 日の丸の旗 " 도 붉은 태양 을 상징하는데...
이는 대륙의 기마민족인 부여씨 가 한반도를 거쳐 "해뜨는 곳 일본열도" 에 이른 것입니다?
교토에서는 이후 조정의 실권은 일왕(천황) 으로 부터 대귀족 후지와라(藤原) 씨 에게로
넘어갔으나 후지와라씨 가문이 분열하여 서로 편을 갈라 다투니.....
그 아래 무사 가문 인 다이라(平 헤이케) 씨와 미나모토(源, 겐지) 씨가 세력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다이라(平, 헤이케) 씨가 미나모토씨를 격멸 하고 세력을 잡았으나 이후
유배되었던 어린 미나모토(源,겐지) 씨의 후손이 극적으로 성장하여....
동쪽 가마쿠라 에서 세력을 모은후 다이라씨의 교토 조정을 함락하고는
다이라군을 추적해 여기 시모노세키에 이르러 최후의 결전 을 벌였던 것이지요?
그러고는 지하도를 올라와 Let's 508 빠칭코 건너편에 Hotel WING
International Shimonoseki 건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이 호텔은 1인당 4,700 엔으로 아침과 저녁은 돈내고 사 먹어야 한다는데, 우리 부부는
체크인 시간이 3시 라기에 배낭을 맡기고는 앉아서 잠시 쉽니다. 일본 사람들은
엄청 친절하지만 메뉴얼 사회 라서 규정시간에서 1분도 빨리 방을 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리셉션의 여직원 이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우리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주 공손히 앉더니..... 방이, “노스모킹 룸” 이 없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네요?
만약에 한국의 호텔 여직원이 일본인 손님 에게 호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저렇게 했다면... 신문에 났으면 "갑질하는 악질 왜놈" 이라고 큰 소동 이 벌어질 것입니다?
일본 여직원이 호텔 바닥에 공손히 무릎을 끓고앉아 사정하는게 딱하기는 하지만 우리 마눌은
담배 연기 알레르기 가 있는지라 곤란하다고 했더니, 좀 비싼 다른 방이 있다는데...
하지만 비용 때문에 거절 하니, 그럼 “담배내미” 를 책임지고 빼주겠다고 한국말로 말합니다?
여직원이 우리가 관광에서 돌아올 밤 까지 창문을 열고 환기 를 하는등 최선 을
다하겠다고 말하기에 그러라 하고는.... 다시 지하도를 건너 시모노세키
기차역 으로 가서는 반대편인 역 東口(동구) 광장 에서 버스 노선도 를 살핍니다.
그러고는 수백년 된 옛 무사 마을 인 부케야시키 武家屋敦 (무가옥돈) 를 구경하기
위해 역 광장의 1번 노리바(정류소) 에서 초후 長府(장부) 행
버스를 찾아 한국과는 반대로 뒷문으로 올라 타면서 정리권 번호표 종이 를 뽑습니다.
무사 마을 초후 長府(장부) 행 버스는 시모노세키(下関 하관) 시내 를 벗어나 10여분
만에 가라토 시장 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간몬 해협 바다 를 끼고 달리는 데......
오른쪽 차창 밖으로 해변 공원 이 이어지며 배들이 지나는 모습이 보이더니...
북규슈의 옛 항구인 모지 로 연결 되는 "간몬대교 다리" 가 보입니다.
무슨 체육관인양 큰 건물도 지나고 20분을 더 달려서는, 옛 무사들의 마을인 초후
長府(장부) 의 죠카마치 죠후 城下町長部 정류소에서 내리는데....
요금은 버스 전면 모니터 에 우리가 타면서 뽑은 번호표를 보니 350엔이 나옵니다.
일본의 버스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맞추어 요금통에 넣어야 하는데, 잔돈이
없으면 천엔이나 5백엔을 환전상 구멍에 넣으면 잔돈으로 나오니 맞추어 넣으며 버스가 멈춘
다음에 좌석에서 일어나야 하고 천천히 계산해도 나무라지 않으니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는데,
일본여행이 열몇번인데도 한국에서 하던 버릇으로 차가 멈추기 전에 일어서다가 주의를 받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