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동(錦山洞)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동. 법정동으로, 행정은 안성3동이 관할한다.
동쪽으로 구포동, 서쪽으로 석정동, 남쪽으로 연지동, 북쪽으로 당왕동과 접한다.
통일신라 때는 한주·백성군, 고려시대에는 안성현·수주에 속하였다.
-1413년(태종 13)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된 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안성군 읍내면 금산리가 되었다.
-1931년 안성면 관할을 거쳐,
-1937년 안성읍 관할이 되었다.
-1998년 안성군이 도농복합형 안성시로 승격하면서 행정동인 안성3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금산동에는 백호동산 또는 백호머리로 불리는 나지막한 동산이 하나 있었다. 북쪽 비봉산(229.5m)에서 뻗어 내린 낮은 산줄기가 이 곳에서 멈추는데, 가을이면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장관을 이루는 까닭에 마을 이름을 금산으로 지었다고 한다.
금산동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물을 길어다 먹어야 할 정도로 때묻지 않은 산촌이었다. 그 뒤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져 예전에는 논밭이었던 땅 거의가 지금은 택지와 상가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이 때문에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주민도 토박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외지 사람이다.
석정우체국, 새마을지도자연합회, 방위협의회 같은 지역 기관 및 단체가 있고, 백성초등학교·안성중학교·안성고등학교가 있다. 23번국도가 지난다.
금산동(金山洞)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자연환경
금산동은 조계산 일출봉과 월출봉 아래 산간벽지의 마을로 전형적인 산간 농촌 마을이다. 동쪽과 북쪽으로 베틀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꼭 여자가 머리를 풀고 누운 옆모습과 유사하다. 옛날,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베 짜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베틀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어은골에서 소상골로 넘어가는 고개는 달구미기[鷄鳴峴]라고 불리는데, 이는 닭의 목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계산 상봉에 중애사(衆愛寺)가 있었다고 전하나 건축 연대와 폐사 연유는 알 길이 없다. 서쪽에 바위언덕이 솟아 중간에 석굴이 있으며, 그곳에 동화사라고 부르는 암자가 있다.
명칭유래
금산은 소상골과 어은골로 나누어져 있는데, 행정구역상 소상골은 금산1리에, 어은골은 금산2리에 편제되어 있다. 소상골은 마을에 소상강이 있다고 하여 소상곡이라 하다 점차 어휘가 변하여 소상골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뒷산에 철이 많이 난다고 하여 쇠산골로 칭하다 소상골로 변화했다는 설이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후자로 알고 있다. 어은골은 예전에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못 안에 물고기가 숨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은곡이라고도 부른다.
현황
총 94가구에 234명[남 126명, 여 1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중 60세 미만은 7~8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노인으로 직접 논농사를 짓고 있다(2009년 2월 현재). 소상골은 해평길씨와 해평김씨의 세거지였으나 지금은 김해김씨가 가장 많고, 백씨 1가구, 박씨 3가구, 최씨 2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비육우 사육 집단 우사가 늘어서 있고, 그곳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좌측 산록에 고려시대 해평부원군을 지낸 영의공 윤석(尹碩)의 단소(壇所)와 그를 추모하는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현판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마을 중앙에 마을회관과 노인정, 그리고 찜질방 시설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사철 이용하고 있다.
어은골은 주민이 가장 많았을 때는 50~60호 정도가 주거했다고 한다. 본래 단양우씨의 집성촌이었으나 다 떠나고, 현재는 약 38호의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논농사를 짓는다. 최근 소상골에 국도 25호선과 연결되는 큰 도로가 개설되었다.
금산동(金山洞)
경상북도 김천시에 존재했던 행정동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신동이다.
금산동(錦山洞)
황해남도 연안군 풍천리의 남쪽에 있는 마을. 본래 황해도 남연백군 해룡면에 소속된 리였는데,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골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