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이등을 이유로 서울시장 출마를 완강하게 사양하고 있던 한명숙을 끌어낸것도 이해찬이고 100% 국민 여론조사 경선방식을 이끌어낸것도 이해찬입니다. 지금은 서울시장 선거 공동본부장 직함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해찬은 한국 민주주의사에 있어서 3대대첩으로 불리는 95년 서울시장 선거,97년 대선,02년 대선을 모두 승리로 이끈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이해찬이 공을 세운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이해찬 덕분이라고 하는 것은 과한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적으로 이해찬 덕분 입니다. 이해찬이 없었다면 김대중 노무현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수 없었을것입니다.
95년에 조순이 서울시장이 된것은 기적입니다. 3대대첩 중에서도 저는 이 승리를 가장 믿기지 않는 승리로 봅니다. 당시 조순의 당선가능성은 지금 차기 대통령에 허경영이 박근혜를 제치고 당선될 확률을 조사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것보다도 낮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박찬종 아니면 정원식이었습니다. 2강1약 구도가 아니라 그냥 2강구도였던것입니다. 조순은 열외였습니다. 이걸 뒤집어낸게 바로 이해찬입니다.
이때 그가 들고 나온게 바로 TV토론 입니다. 이해찬은 TV토론이 시작되면 머리에 깡통만 찬 정원식과 이미지정치의 대가 박찬종이 논리의 대가 조순 앞에서 쩔쩔매게 될것이라고 공언했는데 과연 TV토론이 시작되자 대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일부 사람들은 이해찬을 정신병자 취급까지 했습니다. 누가봐도 박찬종이 확실한데 TV토론때문에 조순이 박찬종을 이길것이다. 그럼 아이패드 때문에 허경영이 박근혜를 꺾을것이다도 말되겠구만. 뭐 이런식이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TV토론이 시작되자 2강(조순따윈 열외)->2강1약(조순 드디어 후보로 취급)->1강 2중(정원식과 경합)->1강1중1약(정원식 추월)->2강1약(박찬종과 경합)의 믿기지 않는 상승세가 시작된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막판까지 좀처럼 승리를 낙관할수 없었습니다. 박찬종이 대통령후보급 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온 두가지가 바로 박찬종의 유신발언록 파문과 이해찬의 정무부시장 자폭입니다.
박찬종이 박정희때 유신을 찬양했다. 충격적인 이슈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박찬종은 당연히 극구부인 했습니다. 그러나 조순이 즉각 TV토론도중 증거를 들이 밀었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와중에서 도덕적 치명타를 입은 박찬종은 침몰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해찬의 작품입니다.
또 하나는 이해찬의 의원직사퇴와 정무부시장 자폭이었습니다. 서울시장도 아니고 정무부시장따위 때문에 의원직을 사퇴까지 한다. 지금의 잣대로도 당선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지 않다라면 의원직 사퇴는 쉽지 않은 결정일것입니다.
그때는 지방선거가 워낙 오랜만에 실시된것이라 더욱 그랬습니다. 더욱이 서울시장도 아니고 부시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찬은 이를통해 지자제 탈환이 2년뒤의 대선승리에 있어서 얼마나 전초적의미가 있는지를 김대중은 안된다는 패배의식의 나이브함에 쩔어있는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몸을 폭사해 건국이래 최초의 정권교체. 그것의 불쏘시개가 되려 했던것입니다. 그것도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말입니다. 결국 선거초반 2강(조순따윈 열외)의 구도는 선거막판 이 두가지 사건으로 인해
조순 42.4% 박찬종 33.6% 정원식 20.7%의 대역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훗날 97년 감격적인 첫 정권교체의 디딤돌이 됩니다.
이 97년 선거에서도 사람들은 이해찬의 역활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것은 사실상 기적입니다.
당시 자민련은 충청권전역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지역까지도 초토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민련과의 연합. 여기에 이인제가 경상권을 중심으로 500만표 이상의 표를 이회창에게서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IMF외환위기까지.
이 전부분에 이해찬이 개입하지 않은곳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김대중 자신의 공도 큽니다. 흔히 김대중의 3가지 공을 들라고 하면 독재정권과 맞서 야당의 존재수호,87년 직선제 쟁취 그리고 91년 지자제 쟁취를 듭니다.
이중에서도 저는 지자제쟁취를 김대중의 가장 큰 업적으로 봅니다. 사실 이것은 노태우정권때 5공 청산과정에서 얻어낸것입니다. 그러나 3당야합이 일어나면서 슬그머니 수면아래로 가라앉습니다. 바로 이때 김대중이 장장 12일에 걸친 목숨을건 단식으로 지방의회와 지자제선거실시를 위한 법개정관철을 이뤄내 95년선거가 실시될수 있었던것입니다.
김대중은 바로 이 지자제 쟁취만 해내면 사상최초의 정권 교체 교두보가 열리게 될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도 최소한 2번연속 정권지속이 가능할것이라고 보았습니다.
why? 당시 선거라는것은 신문과 유세가 다였습니다. 결국 돈과권력이죠. 이른바 권력에 의한 금권선거,관제선거가 되버리고 마는것입니다. 아무리 바둥거려도 절대로 그 틀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지자제가 정착이 되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커버할 선거횟수,지역 그리고 사람의 숫자가 급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숫자란 결국 국민을 말하는것이고 국민참여를 말하는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에 힘입은 국민정부,참여정부의 등장이 가능해 지게 되리란 예측이었던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론 책과 학원수강증에 불과한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도구가 주어진 시작에 불과한것이지 그것이 내실을 만들어내기까지는 또다시 고단한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해찬이 바로 그에 대한 해법으로 "바람"을 내놓았던것입니다.
수십년에 걸쳐 독재정권과 수구언론의 프로퍼갠더에 쩔은 국민들. 그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깨어나게 하려면 최소 30~7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할것 입니다. 죽어야 끝이 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역사,교육,언론의 폐혜라는것이 그토록 지대한것입니다.
결국 단기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합리적인 설득을 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의 한계를 넘어설수 있는 감성적공명으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던것입니다. 조순 산신령,김대중 인동초,노무현 눈물등은 바로 이런 이해찬의 철저히 계산된 논리적 프레임위에서 탄생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정판이 바로 2002년 대선입니다. 2002년 대선직전 노무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자신의 지지율은 횡보하는 가운데 정몽준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고 그 속에서 이회창의 당선이 확실해져 갔기 때문 입니다. 당연히 단일화 압박이 거세졌습니다.
노무현은 단호히 거부 했습니다. "단일화 가능성은 0.1%도 없다."그러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정몽준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정녕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일까. 주위에 물어본 결과 대세는 단일화는 있을수도 없다라는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끝까지 완주.
이때 이해찬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섭니다. 단일화에 응해라. 여론조사로 가자. 노무현은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에 지면. 나의 정책 가치 철학을 믿고 지지해준 유권자의 신의를 배신하는것이 되는것이 아닌가.
이해찬의 대답은 단호 했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 이해찬은 단일화 여론 조사에 응하는 것이 신의를 배신하는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믿지 못하는것이야말로 신의를 배신하는것이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해찬이 믿었던것은 당시 여론의 향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터넷의 힘과 폭발력이 이끌어낼 "바람"이었습니다. 반면 정몽준은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신문등의 기득권 매체를 신뢰했습니다. 인터넷대 조중동. 그 결과는 인터넷의 압승이었습니다.
단기간의 승부에서 자금력을 앞세운 언론 도배와 지명도가 아닌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 그속에서 이루어지는 쌍방향 소통과 무한 피드백 과정에서의 신뢰망 구축. 그 구축 과정에서 파도처럼 일어나는 이성적 신뢰와 감성적 공명의 물결.
정몽준은 결국 그 앞에서 허망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던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인터넷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이해찬은 민심의 수면 아래에서 끓어 오르고 있는 국민적 분노와 변화를 향한 열망의 에너지는 엄청 났지만 그것이 훌륭한 정치인과 융합해 제대로 점화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제대로 간파했기에 이 셋을 "단일화"란 재료를 매개로 그것을 단 한번 단 한지점에 모아 폭발 시켜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당시 노무현이 없었다면,인터넷이 없었다면,극한의 분노와 열망의 에너지가 없었다면,이해찬이 없었다면,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라서 지금처럼 언론을 조작하고 인터넷을 탄압 했더라면 이 중 단 하나라도 없었다면 승자는 노무현이 아니라 정몽준이 되었을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해찬이 없었더라면 결국 단일화는 없었을것이고 노무현은 결국 패배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번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장을 탈환해야 차기대선을 탈환하는 교두보가 된다는점. 경기지사부분에서 후보단일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
결정적으로 이해찬이 직접 한명숙을 후보로 밀어 올리고,선거 본부장으로서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이번 지자제 선거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유시민과는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다라는점등이 그러합니다. 이해찬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절체절명의 변곡점에선 시기에 또 한번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 있게 된것입니다.
그런 이해찬의 무서운 점은 논리적이고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감성적이고 숙명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자신이 합리주의적이면서도 그한계를 명확히 인식 돌파해낼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인물이라는것입니다.
이런 인물은 이해찬전에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렇죠. 바로 김대중이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사에 있어 최대거목으로 기록되고 있는 바로 그 풍운아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정치현역으로는 이해찬 단 한명만이 남았습니다.
노무현은 김대중처럼 합리적이긴 했지만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응하라는 이해찬의 서릿발같은 요구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반면 김대중은 고개를 끄떡이며 기꺼이 응했습니다. 자민련과의연합을 외형적으로 진두지휘한 사람은 한광옥,김용환 같은 인물이었지만 뒤에는 이해찬이 있었습니다. 실무는 그가 다한것입니다.
유시민 또한 김대중처럼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처럼 치밀한 사람은 못됩니다. 많은 사람들,심지어 유시민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유시민이 대권욕이 강하다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옳다고 믿는바대로 행동할뿐이며,그 길 그대로 나아갈뿐인것입니다. 서울시장이건,경기지사건,대통령이건 그게 욕심 만으로 될수 있는것일까요. 아닌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해찬에게 배운것입니다. 그가 만약 혈기방장한 30였대였더라면 그리고 노무현처럼 02년 단일화상황이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그처럼 등에 식은땀을 흘렸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몇년전 언제부터 김대중처럼 초연한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믿는 바대로 대의를 추구하며 나아가되 최종부에서는 대세를 추인할줄 아는 큰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이 노무현이 되어가고 있는것이 아니라 김대중이 되어가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이해찬으로부터 배운것이며 좋은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안좋은것이기도 합니다. 이해찬은 냉혈한같은 인간입니다.
그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물러설줄 압니다. 그래서 역으로 그는 멀리 넓게 볼수있는 양수겸장의 면모를 갖출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한쪽면만 갖춘 노무현과 만났을때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가장 큰 시너지가 발휘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추가 유시민에게로 기울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유시민의 김대중화인것입니다. 많은사람들은 유시민에게서 제2의 노무현을 기대하겠지만 이제 그런 기적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단기필마의 효용은 노무현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효용은 무려 60년 간에 걸쳐 민주주의와의 투쟁,직선제쟁취,지자제쟁취등으로 이루어낸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그걸 또 만들어내기 위해 60년을 싸워나가느냐. 아니면 합리적인 힘,감성적인 힘, 그리고 연대의 힘등을 총동원해 새로운 버젼을 만들어내느냐의 두길중 하나의 선택만이 남게되는것입니다.
국민들을 하나하나 합리적으로 설득시킬수도 있어야 하고,그러면서 전혀 이성기반적이지 않은 감성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킬수도 있어야 하며,정치를 구도적으로 재편해내 국민 앞에 투표의 당위성을 깔아줄수도 있는 세가지 능력을 겸비할수 있을때만이 오로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라는것입니다.
유시민은 그중 두가지를 갖춘 유일한 현역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부분 ,그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기 위해 이해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해찬이 움직이며 정치구도 개편을 서서히 해나가고 있는것입니다. 그는 지금 분명히 정치인으로서의 욕심은 부리고 있지 않지만 구도재편의 욕심은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권장악,당대당통합,당대당연대등의 모색등을 혹은 "만을" 의미 하는것이 아닙니다.
바로 인물을 정점에 놓고,정책 가치 철학을 포함한 모든것을 망라해 양보해줄수 있는 카드를 말하는것입니다. 유시민이 어디까지 성장할수 있느냐는 역설적으로 오직 두가지에 달려있는것입니다. 하나는 그가 독자적으로 어느수준의 바람을 일으켜 낼수 있느냐. 또다른 하나는 그가 어디까지 양보해낼수 있느냐하는것입니다.
전자는 유시민펀드 2일만의 모금으로 어느정도 입증되었습니다. 지지율도 지금 시중여론조사기관의 결과는 한나라당 당직자들조차 믿지 않는 상황입니다. MB 열풍으로 전국이 초토화되어 가는 와중에서 대구의 심장인 수성구에서조차 33%의 지지율을 얻어낸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시민에게 필요한것은 앞으로 얼마 만큼의 양보를 해낼수 있느냐 하는 그릇의 크기를 보여 주어가는 일이 될것입니다. 정답은 최종적으론 "아내만 빼고는 다 내주어야 한다"라는것입니다.
그것은 유시민이 노무현식 정치를 하고 있다라는 분통과 음해를 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다가가 김대중식 정치를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광주와 대구가 만나는 정치를 하겠다라는 의지를 표출하는 것입니다. 유시민에게 지금 필요한것은 바로 광주이고 광주정신이고 그리고 김대중정신인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김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유시민을 국민들에게 알려 나가는것입니다. 그길을 지금 이해찬이 움직이며 하나하나 깔아주고 있는것입니다.
이해찬은 이미 한손에는 한명숙을 쥐고 그를 통해 여성계 전체의 표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다른 한쪽 으로는 유시민을 쥐고 그를 통해 노무현 지지자 전체의 표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이것에 광주를 더하려 들것입니다.
이해찬은 광주정신을 입에 언급할 자격이 있는 몇안되는 정치인중 하나이며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유시민을 아우를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 이기 때문 입니다. 바로 지금 그 이해찬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해찬의 안목과 능력 그리고 정권교체를 향한 국민적열망을 믿기에 결국 서울시장은 한명숙 경기지사는 유시민이 될것이라고 보며
차기 대선 또한 한명숙 유시민 둘중에서 박근혜를 제압하는 승자가 나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