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존파스텔 장애인 합창단
국내 최초 장애인 직업 합창단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 물들이고파”
내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학창 시절 장래 희망에 '성악가' 아니면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적던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소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너는 커피를 배워야 해”, “커피를 해야 해”라며 성악가의 꿈을 키우지 못하게 했다. 그들의 말과 달리 성인이 된 소녀 주희진씨는 지금 골프존파스텔합창단에서 합창단원으로, 또 여성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합창단을 통해 어릴 적 내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골프존파스텔합창단은 주식회사 뉴딘파스텔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 장애인 직업 합창단이다. 뉴딘파스텔은 골프존뉴딘그룹이 2017년 12월 설립한 자회사로 장애인의 경제적·사회적 자립을 돕는 회사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이자 예비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하루 4시간, 주 4일 근무다. 노래 및 안무 연습은 물론 음악 이론 커리큘럼 등도 운영하고 있다. 이 합창단은 희진씨처럼 음악에 재능이 있거나 음악을 전공한 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파스텔합창단을 담당하고 있는 정은진 프로에게 파스텔합창단이 탄생한 계기와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존파스텔합창단.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제공
◇국내 최초 장애인 직업 합창단
2017년 12월1일 주식회사 뉴딘파스텔이 설립됐다. 장애인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기 위해서였다. 그중에서도 문화·예술 부문에서 일자리가 필요해 보였다고 한다.
"골프존뉴딘그룹은 골프라는 하나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업입니다. 장애인 일자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예술 부문에 눈길이 갔죠. 실제로도 문화 예술부문 장애인 일자리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스포츠·문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장애인들에게 음악을 기반으로 한 문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의미있을 것 같다는 데에 뜻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2018년 2월5일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오디션을 진행했다. 절차는 서류 심사, 실기, 면접 순이었다. 서류심사에서만 약 70명이 지원을 했다.
"굉장히 놀랐어요. 이렇게 많이 지원해주실 줄 몰랐죠. 70여명 중에서 조건이 맞지 않는 분들을 제외하고 30명을 추려서 실기와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직업 합창단을 운영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취미 활동으로 하는 합창단으로 생각하고 지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30명 중에서 노래 실력, 합창단에 임하는 포부 등을 보고 최종 12명을 선정했습니다."
제1,2회 정기연주회 모습.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제공
◇열정으로 채워가는 실력
국내 최초로 운영하다 보니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노래 실력에 편차가 있어 같은 곡이어도 단원 모두가 한 곡을 모두 숙지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또 단원이 가진 장애 유형도 모두 달랐기 때문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단원 중 노래 실력은 좋았지만 악보를 읽지 못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커리큘럼 중에 음악 이론 수업이 있는데, 굉장히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셨죠. 그리고 집에 가서도 복습을 너무 열심히 해오셨고 그게 눈에 보였어요. 집에서 진도 나간 것 이상으로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걱정이 돼 집에 전화를 드려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도 했어요. 단원 부모님께서도 말리셨는데, 끝까지 공부하셨다고 해요. 본인의 꿈을 만나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합니다."
합창단원은 보통 한 곡을 완성하기 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은 짧으면 2~3개월, 길면 수개월이 걸린다. 주 4일 근무니 16~20일 정도 연습을 하는 셈이다. 또 노래 연습은 물론 안무, 음악 치료, 연극, 음악 이론 등 단원들의 정서와 음악적 지식을 위한 커리큘럼도 진행한다. 합창단의 목표가 완벽한 노래보다는 단원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즐거운 합창단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 합창대회.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제공
◇가장 규모가 큰 대회에서도 수상
2018년 8월 골프존 경영설명회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매월 크고 작은 공연은 물론 대회에도 참가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코로나19 사태가 심해지기 바로 전에 참가했던 '제27회 전국장애인합창대회'라고 한다.
"가장 규모가 컸던 대회였습니다. 대회 자체가 오래되기도 했고 대규모 합창단이 많이 참여하는 대회입니다. 또 이 대회는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합창예술제에서 1등 한 팀만 참가할 수 있어서 의미가 더 컸어요. 여기서 우리 팀이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전체 3위였어요. 1등은 아니지만 쟁쟁한 합창단을 뒤로하고 상을 받았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창단 1년 만에 얻은 성과라 '우리 할 수 있다', '다음엔 금상 받을 수 있다' 서로 격려할 수 있던 대회였죠."
아쉽지만 현재 코로나19로 대회 및 공연이 모두 중단된 상태다. 지금은 방역수칙을 지켜 근무를 하거나 재택근무로 대체하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공연하기도 했다. 오히려 온라인이라서 그동안 오프라인 무대를 볼 수 없던 사람들에게도 합창단을 알릴 수있던 기회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종종 온라인으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강상민, 주희진 프로.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제공
◇“노래하는 게 꿈만 같아요”
현재 합창단은 지휘자 남철우, 반주자 이소정 프로를 포함해 13명이 활동 중이다. 소프라노에 김혜린·주희진 프로, 알토에 김나연·송현경·엄지연 프로, 테너에 박정민·안형규·전지원 프로, 베이스에 강상민·박무룡·황일선 프로가 있다. 그중 주희진, 강상민 프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희진 프로는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졸업 후 바리스타로 취업을 했다. 그러나 성악가를 꿈꿔왔던 그에게 바리스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바리스타를 그만뒀다. 우울한 시기를 보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합창단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주희진 프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고 합격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
"노래하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좋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꿈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꿈같아요.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또 단원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좋습니다. 음악이라는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단원과 매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강상민 프로는 합창단에서 베이스 담당이자 수석 단원이다. 그는 30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고 장애를 얻었다. 대학생 때 성악을 전공해 장애인이 된 후 노래가 더욱 간절했다고 한다.
"가장으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보다 골프존파스텔합창단 오디션 공고를 봤습니다. '나를 위한 합창단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겐 오디션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바로 지원했고 또 합격했죠. 전에는 장애인이 직업으로 합창단 활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합창단 덕분에 전공을 살려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또 합창단 근무를 시작하면서 장애를 점차 받아들이게 됐고 삶의 희망을 찾았어요. 누구나 저와 같은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통해 장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정은진 프로는 ‘단원과 함께 파스텔이라는 이름처럼 사회를 선한 영향력으로 물들이는 것’이 골프존파스텔합창단의 목표라고 말한다.
"파스텔이 그라데이션으로 색이 번지듯 저희의 노래로 사회를 선한 영향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색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음악을 하나가 되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어떤 초대가수보다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우리만의 힘이 있구나. 이런 활동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선한 영향력을 드리는 합창단으로 성장할 겁니다. 또 합창단원은 수시 모집 중입니다.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