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열 번째 - 4)
(거제∼부산, 2023년 12월 16일∼17일)
瓦也 정유순
창원시를 벗어나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로 들어선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으로서 우리나라 남동단에 위치한다. 부산(釜山)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식민지 항구로 개항되었으며, 釜山(부산)이란 이름은 1910년 일제 때 부산부가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조선시대까지의 富山(부산)은 동래부 아래에 있었다. 현존하는 사료 중 고려시대나 그 이전 사료에서 釜山(부산)이란 지명을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자료가 나오기 까지 지명의 어원은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부산광역시 지도>
사하구(沙下區)는 부산광역시의 남서부에 위치하며, 1983년에 신설된 구로서 행정구역은 16행정동(8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단동의 하단(下端)이라는 지명은 낙동강의 끝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원래 동래군 소속이었으나 1942년에 부산부로 편입되었으며, 1957년에 서구 관할로, 1983년에 사하구 관할로 되었다. 관내에는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와 낙동강 하굿둑사무소, 낙동강 홍수통제소가 있다.
<을숙도에 있는 단군상>
을숙도는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끝 지점으로 삼각주에 토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하중도(河中島)다. 생긴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대동여지도에는 기록이 없고, 1920년대 무렵에 섬의 형태가 잡혔다고 전한다. 갈대와 수초가 무성해 먹이가 풍부해 한 때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다.
<을숙도>
그래서 1966년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제1789호)로 지정되었으나 1987년 낙동강하굿둑이 들어서면서 섬 전체가 공원화되어 갈대밭과 습지가 많이 훼손되었고 문화회관이 생기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져 철새도 대폭 줄어들어, 뒤늦게 특별보존지역을 설정해 철새를 다시 불러오려고 하고 있지만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을숙도문화회관>
4대강 국토종주자전거길 종점인 을숙도에는 낙동강하굿둑기념탑이 하늘을 찌르고 낙동강문화관, 낙동강하굿둑전망대, 을숙도문화회관과 주차장 등 사람만을 위한 공간과 시설들이 다른 생명들의 서식지를 빼앗아 차지해 버렸다. 물론 사람들도 정서적 문화적으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 실아 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월적 지위가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낙동강 하굿둑준공기념탑>
“낙동강 오리알”이란 속담이 있다. 이는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에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갈대밭 둥지에 있던 오리알들이 물에 둥둥 떠 내려와서 생긴 말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소외되어 처량하게 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낙동강전투에서 북한군이 필사적으로 도하를 시도하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북한군이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당시 중대장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진다!”고 소리치면서 남을 조롱하는 비속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도 한다.
<낙동강 하류>
바다 짠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낙동강하굿둑은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의 낙동강 하구를 막은 총 연장 2.4㎞의 둑으로 1983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하굿둑의 건설로 부산시민의 식수원 확보에 도움이 되었고, 부산∼진해 간 거리를 10㎞ 단축하였으며, 김해평야의 해수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되었으나, 하굿둑이 들어서면서 물의 흐름이 막히고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되어 을숙도의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기능을 상실하였다.
<낙동강 하굿둑>
물은 계곡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강물은 하구(河口)에서 바닷물을 만나는데 이곳이 기수역(汽水域)이다. 이곳에서 바닷물은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민물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의 장이며,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바다로 나가서 산란하는 뱀장어나 참게 등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바다에 대한 적응을 하고, 숭어나 연어 등은 산란을 위해 민물로 들어오기 전에 적응을 하면서 들어온다. 그래서 기수역은 해양생물과 민물생물의 교류의 장이며 생태계의 보고다.
<낙동강 하구 기수역>
하굿둑으로 이러한 기능을 하는 기수역이 사라지면서 육지의 생명들은 더 넓은 세상인 바다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상만 좁다고 탓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도 마음의 완충지대인 기수역을 만들어 점점 확대해 나간다면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폭과 이해하는 깊이도 더 나아지고, 차단된 세상보다 정서적이나 사회적·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상승효과가 있을 것 같다.
<낙동강하굿둑 안쪽>
다시 발길은 다대포로 이동한다. 다대포는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낙동강의 최남단 하구(河口)였다. 다대포(多大浦) 지명의 유래는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주변 바다와 산의 경치가 아름다운데다가 곱고 부드러운 흰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좋은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으며, 따라서 국방상 중요한 요새지였다.
<다대포해수욕장>
그리고 1960년대 말까지 부산 근교의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목재 및 조선업이 유치되면서부터 어촌에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하였고 택지개발로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낙동강변 신평동 56호 광장∼다대포해수욕장 간의 전체 4.1㎞의 군사용 철책이 철거되어 생활공간이 확대되었으며, 강변대로 일부구간의 도로를 확장하고 도로와 하구사이 제방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자전거도로·산책로·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다대포해수욕장 조형물 - 2018년 12월 16일>
백사장 주변으로 조성된 솔밭어귀에는 한 때 매립이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는 다대포를 주민들의 반대로 백지화 시킨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가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 흔적을 이야기 해준다. 일출의 장엄함과 낙조의 현란함이 바다와 강 그리고 철새와 어우러지는 다대포데크를 따라 몰운대 쪽으로 향하다가 등을 넘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선다.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
다대포백사장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몰운대(沒雲臺)는 낙동정맥(洛東正脈) 산줄기의 맨 끝부분이다. 다대포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몰운대>
다음 발길이 이어진 곳은 태종대이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100m 높이의 암석절벽으로 울창한 숲이 굽이치는 파도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명승지로 영도 남단에 위치한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이곳에 와서 활을 쏜 곳이라 하여 이름 하였다고 하며, 조선 때에는 가뭄이 있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보인다.
<태종대 입구의 자연보호탑>
등대를 중심으로 작은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바위, 왜구에게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등 기암기석(奇巖奇石)들이 즐비하다. 태종대 모자상은 자식의 어떤 허물이라도 다 녹여버릴 것 같은 인자한 어머니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태종대 모자상>
태종대 순환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다시 내려오는 지점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얼마나 오래갈까? 마을마다 자연사랑 손길마다 자연보호”라는 둥근 푯말이 서있다. 스치로플과 유리병의 분해는 1000년, 컵라면과 알루미늄캔, 종이기저귀 500년, 양철깡통 100년, 나일론 30∼40년, 플라스틱 20∼30년… 우리가 함부로 버리면 다시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침묵의 경고를 보낸다.
<쓰레기의 분해 수명 탑>
드디어 남파랑길과 해파랑길의 시작점인 오륙도 앞에 선다. 육지에 이어진 작은 반도(半島)였다가 유구한 세월동안 바람과 파도의 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오륙도는 “동쪽에서 보면 여섯,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로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오륙도다. 조용필이 부른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 나오는 그 오륙도가 해맞이공원이나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보아도 나에게는 4개의 섬만 보인다. 혹시 시력이 나빠서 그런지 또는 다른 마음이어서 그런지 여섯 개가 보일 때까지 찾아오라고 명령하는 것만 같다.(終)
<오륙도>
https://blog.naver.com/waya555/223307184266
첫댓글 남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해남 까지 가는데 반하여 역남파랑길은 해남에서 부산까지 가는여정이라.
와야님께서 2023.02월에 시작하여 12월 11개월이 걸렸네. 걷고 또 그 여정을 역사와 함께 하였으니 존경하고 부러워 합니다. 첫글과 마지막 글을 읽었으니 다 읽어 본 셈이네. 수고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