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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화산 폭발에 지진등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 일본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요새 인터넷의 뉴스를 보다가 자극적인 제목 에서 낚씻밥 을 물게되어 클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과는 달리 별것 없다는?
인터넷에 “자판기 사정없이 털렸다… 日 지진 현장에 무슨일이? (김동현 기자) ” 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아는 일본인들이라면 그럴리가 없는데.... 싶어서 읽어 보니 역시나! 또 낚씻밥 이네요?
지난 삼십년 동안 일본은 열여덟차례나 여행을 했고 또 일본에 관한 책은 많이 읽었으며 40여년 동안 신문
을 정독하며 매일 스크랩을 하면서 자료 를 챙기고 있는지라.... 저 제목의 내용은 믿을수 가 없었습니다.
2011년 3월이던가요? 동일본 대지진 이 나서 2만여명이 죽고 부상자도 많으며 수만채 가옥이 파손된 상황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도쿄 시내도 지진으로 인해 비상이 걸렸으니 시내 도로는 차들이 다니지 않아 텅 비었습니다.
큰 지진이 지나면 곧 다음 여진 이 오는지라 빌딩 안에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도망치는데.... 네거리에 이르러 횡단보도에 붉은 불 이라? 차들이 다니지 않으니
그냥 건너도 되건만 일본인들은 횡단 보도에서 푸른 불 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미국의 도시에서 정전 이 일어나면 그 지역은 질서가 무느지고 바로 무법지대로 변하니 상점들은
하나같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약탈 을 당하고 폭력 사태 가 일어나곤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지진으로 도로가 파손되어 공급이 안되는 상황에서 마트에 2시간씩 줄을 선 사람들이 언제
공급될지 모르니 곧 품절될 것 임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상품을 쓸어담지 않고 꼭 필요한 것
으로 조금씩만 사는지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지는 “인류 문명이 진보 하는걸 보았다” 고 보도했던가요?
비슷한 사례로 네덜란드 무역선장 빌렘 바렌츠 의 이야기가 있으니 북극해를 가로질러 중국 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1596년 3차 탐험에 나섰다가 북위 80도 못미쳐 얼음 때문에
배가 갇혀 조난 당하자 육지로 화물을 나르고는 배의 갑판을 뜯어 움막을 지은후
1년여 동안 북극 곰 3마리와 여우 26마리 를 잡아 먹으면서 버텼으나..... 대원 2명을 잃었습니다.
얼음이 풀린 이듬해 4m 소형 보트 두척에 나눠타고 귀로에 나선지 일주일만에 영양실조로 쇠약해진 바렌트
선장은 죽었지만 선원들은 8월 중순, 러시아 어부들에게 구조돼 11월 네덜란드로 돌아왔으니 17명
중에 12명만 살았는데, 그들은 위탁 화물 을 온전한 상태로 화주에게 돌려줬으니 얼어죽고 굶어죽고,
병들어가면서도 투자자들이 맡겼던 옷과 약품등 위탁 화물만큼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상도의" 를 지켰습니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인 데.... 갑진년 새해 들어서자 말자 1월 1일 호쿠리쿠(北陸)의 이시카와현 노토
(能登) 반도 에서 7.6의 강진으로 사망자 161명 에 부상자 565명이 발생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와지마(輪島) 시에서는 강진 직후 일어난 화재로 건물 200동이 소실 됐고,
노토 반도 지역에 쓰러진 건물이 많은데다가 연락이 두절된 주민 도 있어 인명 피해
가 추가로 파악될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스즈(珠洲)시와, 나나오(七尾)시 도 피해가 심합니다.
지진 사망자가 100명을 넘은건 1995년 6,443명이 죽은 고베 지진 과 276명이 숨진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라는데, 인명 구조 '골든타임' 으로 여겨지는 지진 발생 이후 72시간을 훨씬 넘겼지만
구조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나 피해 지역에 10cm 의 많은 눈이 내려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고베 는 2번을 갔었고 구마모토에는 2023년 2월 23일 세 번째 로 들렀는데 7년 가까이 지난 탓에
시내는 완전히 복구가 되었고 구마모토성은 천수각은 지진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올라가는 길에 성벽 일부는 7년 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복구 공사 중 이었습니다.
노토 반도의 도로가 크게 파괴 되어 왕래가 어려운 고립 지역의 주민도 2천 30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으며.....일본 기상청은 이시카와현 노토지방에
대쓰나미 경보 를, 일본해(동해) 연안 각지에 쓰나미 경보와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다시 저 낚씻밥 얘기로 돌아가자면..... 김동현 기자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했으며,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
을 즐겨보는 기자라는데....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 한 이야기 를 전달해 드린답니다?
“지난 1일 노토반도 지진 현장에 피난민을 도우려는 온정(溫情)의 손길 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6~7일 주말에 이어 8일(성인의날) 까지 3일 연휴인데, ‘자원봉사를 가겠다’ 는 문의가
이시카와현에 쏟아지면서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하고 자원봉사 특설 사이트 를 개설했습니다”
“이시카와현에 자원봉사자 수용 센터가 마련된 건 가가시·스즈시·우치나다마치·노토초 등 네곳
이지만 모집을 개시한 곳은 가가시 하나 인데, 이시카와현 도로 대부분이 통제 되고
있고 피해 상황도 조사 중인데다가 여진과 건물 붕괴로 인한 안전 우려 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가가시에선 시내에 거주하는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정리와 피난소
시설 지원, 피난민 심리 상담 등 자원봉사 활동이 시작됐으며 스즈시에선
시청 직원들이 전화를 일일이 받을수 없을 정도로 자원봉사 문의가 쇄도 하고 있다 합니다.”
이시카와현은 “ 마음은 고마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인 마을 이 대부분” 이라며 “자원봉사 희망자는
사이트에서 사전 등록 을 해달라. 수용할 준비를 마치는 대로 연락하겠다” 며“ 개인이 독단적으로
현장에 가거나, 지자체에 무작정 전화를 거는 행동은 혼란을 초래할수 있으니 지양해달라” 고 전했습니다.
지진 피해가 심했던 이시카와현 아나미즈마치에선 1일 지진 직후 시내 자판기가 부서져 음료들이 모두 도난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혼란을 틈탄 범죄무리의 악행 이라며 비난이 쏟아졌으나, 일부 주민들이
피난소마다 식량을 나눠주기 위해 운영업체 측 허락을 맡고 행했던 것으로 후에 밝혀졌습니다.(낚씻밥이라?)
마이니치신문은 이시카와현 재해지역을 지원하려 전역에서 “‘후루사토(고향) 납세’ 를 통한 기부와 모금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고 보도했습니다. 원하는 지방 도시에 ‘고향세’ 를 납부하고 세액 공제와 답례품
혜택을 받는 제도로 한국 에서도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 지난해 1월부로 ‘고향사랑 기부제’ 를 시작했습니다.
노토반도 강진 이후 ‘답례품을 희망하지 않는다 ’ 면서 고향세를 지불하려는 이들이 쇄도하고 있다 합니다.
‘사토후루’ 는 지난 2일 ‘재해 긴급지원 기부사이트’ 를 개설했으니 이시카와현, 도야마현 등 피해가 닿은
16개 도시에 대해 기부할 수 있는 곳인데, 현재 무려 1만건, 총 1억엔(9억원) 의 기부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또 ‘후루사토 초이스’ 에도 같은 기간 1억7000만엔의 기부가 들어왔고.....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긴급지원 모금’ 플랫폼엔 7일 오후 4시까지 84만명이 15억엔 이상을 접수했습니다.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에 있는 오래된 온천 여관 인 카가야(加賀屋) 료칸 은 영업을 중단한 뒤
인근 피난소에 이불등 생활용품 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지진 이후 1400명이 몸을
피해 있는 나나오시 와쿠라소학교 등에 피난민 한 명당 하나씩의 이불이 배급됐다고 합니다.
지진 현장 피난소들은 도로 통행금지 등으로 외부 물자 보급에 차질 이 빚어진 상황이라 현내
민간업체 들의 지원이 시급한 것이며,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선 수퍼마켓 체인
‘와이프라자’ 가 영업을 재개하면서 물건들을 하나당 100엔 이란 싼값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2일 전날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매장을 정리 하고 식료품과 의류, 생활용품들을 추려 4일 아침에
개점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안전하게 장을 볼수 있도록 여진이 발생하면 즉각 대피할수 있는
가설 공간도 내부에 마련 했고요. 업체 측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이익을 올리는 건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주민들에게 도움 이 되고 싶다” 라고 말했습니다.
피난소에 상주하는 의사가 1명 에 불과한지라 전일본병원협회가 민간 급파한 의사·간호사들이 피난소를
돌며 돕고 있으니 의료진은 불면불휴(不眠不休) 로 부상자 피난민들을 치료하고 있지만 식량뿐 아니라
의약품도 고갈돼 가는데다가, 발열 환자 를 격리시킬 시설도 부족해 추가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도로가 무느져 식량과 약품등 물자가 부족해 이재민의 상태가 위험해지자 일본은 헬리곱터와 비행기 로
급히 물자를 보내는 중인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2일 오후 6시경에 보급품을 실은 자위대 항공기
와 일반 여객기가 충돌해 화재 가 발생했으니 대형사고로 이어질 판인데, 승무원들은 평소 90초룰
을 훈련했으니 매뉴얼 대로 시행했고 승객들은 공포스러운 순간에서도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며 지시에 따라 집 열쇠 조차 챙기지도 못했지만 여객기 승객 중에는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이시카와현과 근처 도야마현 그리고 북쪽 니가타현과 남쪽 후쿠이현은
우리가 과거 2차례 여행 을 한 지역이고.... 또 니가타현 북쪽으로 1년 남짓 전에
다녀온 야마가타현 여행기 를 쓰고 있다가 이 소식을 접한지라 당시 여행 사진을 몇장 올립니다.
일본 지진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인데.... 그 5개월 후인 2011년 8월 6일
- 8월 13일까지 일본을 여행하면서 8월 8일 돗토리현의 돗토리시 까지 갔지만 원자력발전소가
손상되고 저 지역이 폐쇄되었다기에.... 센다이 까지는 북상하지 못하고 남쪽 시마네현으로 내려왔습니다.
다시 후쿠시마등 동북 으로 여행한 것은 2015년 6월 29일(월) ~ 7월 13일인데.... 6월 30일 니가타
를 보고 7월 1일 아이즈 와카마쓰 (会津若松) 에 도착했는데, 여긴 후쿠시마현이지만
지진이 난 지역은 현의 동부 이고 중앙 북부에 후쿠시마시가 있으며 서부에 아이즈 와카마쓰시
인데..... 1868년 무진전쟁시 신정부군과 처절하게 싸웠던 와카마쓰성 (会津若松城) 이 유명합니다.
2011년 3월 대지진 이 발생하면서 해일 쓰나미 가 몰려와 높이 20여미터 해일이 시속 120km
로 무서운 속도로 마을을 덥쳤으니.... 후쿠시마현 동쪽 해안인 후타바군 오쿠마정
(오쿠마마치)에 위치한 원자로 4기중 일부가 내부 수소가 폭발하고 외부 건물이 부셔졌습니다.
행방 불명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무려 20,425명 에 이른다니 그저 전율할 뿐인데....
방사능이 누출 되어 수십만명이 이재민 이 발생하여 지금도 고향을
떠나 생활한다나요?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가 녹아내려어 방사능이 누출된 것입니다.
미나미소마시 소학교 에서는 남매가 모두 죽는 등 전교생의 90% 가 희생된 참극 이 일어났으니...
이유를 살펴 보자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모이게 한후 혹시나 학교 건물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없나 싶어 인원 파악 을 한후 산으로 올라갔는데 쓰나미가 급히 뒤따라와서 덮친 것입니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 이므로 개인이 판단하는게 아니라 매뉴얼에 적힌대로 꼼꼼하게 하나하나 빠트리지
않고 실행하는 것으니.... 문제는 매뉴얼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지진해일 이 몰려 온지라
선생님들은 그렇게 빨리 덮쳐올지는 모르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다는게 오히려 독 이 되어버렸습니다.
2015년에 아이즈 와카마쓰에서 기차를 타고 고리야마(郡山) 에서 환승해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난 후타바군
북서쪽 후쿠시마(福島)시 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 야마가타 山形(산형) 에 도착해 다시 아키타를 거쳐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로 건너가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하치노헤를 거쳐 모리오카 에 도착해 1박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3시반에 지진 이 일어났으니.... 어제 우리가 여행한 하치노헤는 진도 5.7 지진 이지만 여기
모리오카는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지라 진도 5.0 으로 진도가 조금 작은데다가 연일 강행군으로
녹초가 되어 깊이 잠든 시간이라 진동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또 피해를 보지는 않았으며....
가쿠노다테를 다녀와서 4년 전에 지진이 났던 센다이 로 가서 북상해 일본 3경 마츠시마 에 갔습니다.
지진 진앙지에서 가까운 마츠시마(松島) 도 피해가 컸던 지역이지만 4년이 지난 후라 복구되어 겉으로 드러난
흔적은 없었는데..... 큰 쓰나미가 왔지만 마쓰시마 앞 바다에는 다도해 처럼 무수히 많은 섬들이 있어 막아
준 탓에 도시는 피해가 덜했다고 하며.... 우린 일본 3경이라는 마쓰시마를 구경하고 도쿄로 갔던게 떠오릅니다.
후쿠시마 원전 은 국제 원자력기구(IAEA) 직원들의 검정 하에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 (ALPS) 를
통해 세슘등 방사성 물질들을 처리하고 물로 희석해 바다로 내보내는데, 처리하지 못하는
삼중수소 는 그 농도를 WHO(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식수 기준의 1/7 까지 낮춘후 방류하고 있습니다.
저 오염수는 늘 일정한 해류의 방향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서 알라스카와 캘리포니아 를 돌아
멕시코를 거쳐 콤롬비아로 내려간후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 에 도착해 다시
그 일부분이 한국으로 오자면 4~5년 이 걸리니.... 태평양에서 희석되어 농도가 약해집니다.
2011년 원자로 내부 수소 폭발 시 처리 없이 바다로 유입된 오염수 는 태평양을 돌아 2015~ 2016년경
우리나라에 도착했었지 싶은데.... 우리나라 생태계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며, 작년에 한국에서는
소금 사재기 에 나섰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그런 사실에 오히려 놀랐다고 합니다. 왜? 소금을 사재기 하는지!
문제는 1시간 만에 도착한다는 동해(일본해) 쓰나미 인데 1983년 5월 26일 아키타현 서쪽 근해에서
규모 7.7 지진이 발생해 울릉도와 동해, 삼척, 속초에 최대 2m 해일 이 발생해 5명의
인명 피해와 선박 81척 이 피해를 입었는데 비해.... 이번에는 지진 해일 최고 높이는
묵호 67㎝, 속초 41㎝ 로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독도와 울릉도가 막아준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쿠로시오난류 는 북상해 일본 동쪽 태평양으로 가지만 일부는 동해로 올라오니 동한난류 라 하는데....
옛날 연오랑과 세오녀 처럼 한반도인들이 왜국으로 건너갔고, 1987년 김만철 일가가 탄 고장난
목선은 해류를 따라 후쿠이현 쓰루가항에 도착했듯,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흐르지만
저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는 워낙 강력한 힘이라! 동서남북 바다로 퍼지니 동해안 으로도 온다는.....
일본은 매년 태풍에다가 화산 폭발과 지진이며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일상사 이다 보니 자연히
자연에 대한 외경심 을 갖게 되고 신토와 불교를 믿으니 무종교인은 매우 적은데....
제어하기 어려운 위력적인 자연 때문에 겸손하고 자기 분수를 생각하며 소박 하게 사는가 봅니다?
다른나라는 재벌그룹 회장쯤 되면 사모님은 몇백평 저택에 가정부 에다가 운전수와 조경사까지 두니 손에 흙
과 물을 안묻히고 사는게 보통인데.... 일본 경단련 회장은 30평도 안되는 작은 집 에 살며 사모님은 가정부
나 운전수도 없으니 매일 자전거를 타고 시장 에 가서 장을 보아 손수 부엌에서 회장님 저녁을 짓는가 봅니다?
일본 호텔 방에는 지진이나 화재등 비상사태 를 대비해 몇가지 물품이 비치되어 있는데 후래쉬
나 안전모 같은 것으로, 교토의 작은 호스텔인 Kyoto Higashiyama Hale Temari Hotel
에는 벽에 거치된 후래쉬를 떼어내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걸면 다시 꺼지는
방식인데....... 사고시는 엘리베이터 사용은 안되는지라 항상 대피로 계단을 미리 살펴 봅니다.
우리 부부는 열 다섯차례 일본 여행 중에는 다행히 큰 지진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일본 열도에서
살아야 하는 일본인들은 늘 불안한 마음 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과거 여러 재해를
극복했듯 이번에도 일본인들은 저런 어려움을 꿋꿋하게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것 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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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해요
자연 풍광은 참 아름다운 나라이며......
전국 도처에 질 좋은 온천들도 많지만
태풍과 화산 폭발에 홍수와 지진과
쓰나미등 자연재해가 많은게 아픔이네요!
작년 12/14 신주쿠역에서 토쿄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제부주위로 배낭을 선반위에 놔둔채로 내렸습니다.
이틀후 모리오카역 분실센터에 문의하니까 도쿄 츄오선 무사시코카네이역 분실센터에 보관 중이라는 말을듣고 다시 찾으러 갔는데 어느것 하나 손댄거 없이 분실당시 상태 그대로 찾을수 있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결코 남의 물건엔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모리오카역 분실센터와 무사시코카네이역 직원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저희도 몇년전에 후지산을 반쯤 올라갔다가 내려온후 버스를 타고
야마나시현의 고후에 내렸는데 중용한 작은 배낭을 놓고 내렸다는....
인포에 가서 말하니 버스회사로 연락하더니 몇시간 후에 찾으러 오랍니다.
택시로 다케다 신겐의 신사를 보고 돌아오니 인포에 배낭이 있더라는....
저 버스는 고후에 도착하자 말자 다시 후지산으로 출발했는데
우리더러 후지산 까지 오라고 하지 않고 도중에 후지산에서 고후로 오는
같은 회사 버스와 전화 연락해서 중도에서 배낭을 넘겨주니
자 배낭이 빨리 도착한 것입니다.
사실 후지산에 보관중이니 찾으러 오라 하면 눈물나지만
귀중품은 포기할수 밖에..... 우리가 여행 일정이 타이트 해서
여기 고후에서 기차를 타고 나가노현 마쓰모토로 내려가야 하는지라.....
저희 나라도 많이 발전 했네요. 저도 몇 년 전 어느 백화점에서 구두 수선을 받고 기차를 타고 집에 내려 오는 길에 그만 구두를 기차 선반에 두고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역에 전화를 했더니 확인 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3일 차 인가 집 인근 역으로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구두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하아.......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나 봅니다?
저 구두를 기차 종점에 보관하지 않고
역부러 분실한 사람의 주소 인근 역까지
운송을 해서 보관했다니...... 그저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