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인고 교정/윤용혁
황량한 벌판에
화교들의 땅을 사
교사가 새로
지어진것 같았다
그러나 진입로는
비만 왔다하면
질퍽이고
신발에 떡이졌으니
강화도서 유학을
잘못 왔나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저 멀리
북망산자락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신기촌 화장터서
주검이 매일
불태워 지고 있었다
아니 교실 창문에서
망자의 길을 보고
상상하게 하다니
참 의아했다
얼마 전
창가에 펼쳐진
논과 논사이 길게 난
도랑에
한 어린 아이가
빠져 죽어
천막이 쳐지고
경찰들이 오가고
그 애 어머니의 울음과
절규하는 목소리에
공부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가엾고 불쌍한 애도
신기촌 화장터서 곧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질거라는
생각에ᆢ
다들 조용히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으면
운동장 너머
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의
환담과
합창소리가 들려왔다
내 고향 강화도
흥천 승만네
논가에서 울던
맹꽁이와
개구리의 개굴거림을
석바위골에서도
듣자니 여기가
시골인지
도시인지 소리만
듣고서는
구분이 안갔다
서해의 윤슬과
문학산 정기를
물려받고자
지금 여기
배움의 전당은
배다리서 몇년 전
이전한 가운데
서울 부산의 고교
평준화로
전국 삼백 여개
중학교의 수재들이
비 평준화 지역인
인천으로 몰려들어
고교 입학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들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진학한 곳이 인천고등학교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1895년
한성외국어학교
인천학교로 명명한 이후로ᆢ
운동장에서는
인고 야구부
선수들이
캐치볼 연습과
타격하는 모습에
분명 고교야구계의
명문임을 알게 하였다
가끔 공을 놓친 선수는 감독에게
불려가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다
경남고 출신으로
S사범대 국사학과를 나와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은
반장의 인사도 안 받고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끼고 법어를 중얼거리면서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고교시절
경남여고생과
시를 낭송하며
고상하게
뱃놀이를 할 때
낡은 나룻배 바닥에
구멍이 뚫리며
물이 들어차자 좀전
시를 사랑하고
문화인 같이 행동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사귀던 여고생 보고 "야!
이 니은 아니 가시나야!
어서 신발을 벗어
물 푸그래이
니나 내나 다 죽는데이!" 패닉 상태가 되었고
둘이 물에 빠져
생쥐꼴이 된
그 다음은
교육상 차마
말 못하겠다고
하셨다
계엄령 시절
숭의 야구장서
동산고와
인고 학생들간에
대규모
충돌이 났을 때
2학년인 우리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짓궂은 동기 하나가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탈 때 국사 선생님이
이를 뺏어 타시다가
자전거 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려 멱살을 잡히고 파출소까지
끌려가신 선생님은 망신스러웠어도
끝까지 학생을
보호하셨다
당시 고교 에이스이자 특급투수 경남고의 최동원선수가 후배이니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국사선생님은 실제로 인고가 중앙무대에서
일점차로 이기자
입을 굳게 다무셨다
점차 교정에는
소성이 감돌고
진입로가 포장되어
제법 도시의 면모가
살아난
석바위골은 어느새
상전벽해가 되었다
친구녀석 둘과
궁궐같은 집 동상홍변호사댁
옆 집에서
하숙을 하며 또래의
동변호사 딸을
창문틈을 통해
흠모하고
판검사와 변호사의
꿈을 키웠던 강화도
연개소문의 후배이자
파평 윤씨 가문의
진강산 호랑이는
시나브로 고양이가 되어
전혀 딴 길을 걸었다
월급쟁이
갈급쟁이라는
아버지의 고혈을
늦게까지 축내던
제고 출신의 형님이
번번이 고시에서
물을 먹고
낙방하는 꼴을
보고서야 말이다
인고는 수 많은
선배들이 이룬
역사와 전통이 있고
후배들에게는
꿈의 산실로
나는 지금도
추억을 머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