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역에 내려서
김태희
산기슭 가쁜 숨도 국수역에 부려놓고
산딸기 붉은 낱알 동이째로 쏟아지면
초록의 언덕 사이로 산들바람 불어와
한지처럼 고요한 물소리가 와 닿는 곳
코앞에 흐르는 강 토란 같은 언덕 근처
역 앞에 자물쇠 없는 집 한 채도 짓고 싶다
산지사방 돋아난 들꽃들을 가로질러
풀벌레 울음소리 철길 따라 매달리다
흙에서 토해 올라온 초록 냄새 그리 좋다
가을, 운곡서원
김지욱
날개를 웅크린 채 축축하게 두른 저녁
청둥오리 붉은 부리 노을을 쪼고 있다
초승달 물꽃으로 핀 눈 맑은 왕신지에,
못물을 거슬러 벋어 가는 물길 따라
발길을 잇게 하는 굽이진 마을 어귀
은행잎 꽃으로 피어 눈길을 사로잡고,
담겨진 화폭 속은 봄부터 농익어서
늦가을 잎맥과 줄기 낱낱이 불러 세운
사백년 물든 섶 너머 십일월이 샛노란,
앵무새 날리면?
김정연
지 버릇 개 줄까만
자리는 가려야지
앵무만 잡도리하는
“이 새끼, 쪽팔려서”
으짜냐 목트는 꼴꺼정
온 지구촌 날았다네
덤 앤 더머
김차순
한겨울 밤보다 더 긴 경전을 읽는다
복사꽃보다 시인 그 시절을 돌아보며 질긴 마음에 묶여 눈 감은 하늘아래 바람이 미소를 지우고 산의 몸통이 잘렸다 쥘부채 너름새 어린 봄 강구 항에서 그 많던 까마귀 떼는 어디로 갔을까 하루치 발을 모으듯 툭, 던진 말 바람 한 잎 숲속의 아가미 마음밭에 자물쇠 딱! 복사꽃 먹는 오후 서 있는 詩 넉살도 참, 슬픔의 뒤편 꼿발 꽃발 당신, 원본인가요*
무소의 뿔이 된 떼루아**
네피림***의 발효여!
* 스물두 분의 시조, 시조집 제목 : 복사꽃보다 시인(옥영숙) 그 시절을 돌아보며 (문석주) 질긴 마음에 묶여(이선중) 눈 감은 하늘 아래(김연동) 바람이 미소를 지우고(김양희) 산의 몸통이 잘렸다(서숙희) 쥘부채 너름새 (이순권) 어린 봄(김영재) 강구 항에서(김석이) 그 많던 까마귀 떼는 어디로 갔을까 (유헌) 하루치 발을 모으듯(정수자) 툭, 던진 말(박홍재) 바람 한 잎(유재영) 숲속의 아가미(배경희) 마음밭의 자물쇠(우은숙) 딱!(강상돈) 복사꽃 먹는 오후(임성구) 서 있는 詩(신필영) 넉살도 참,(윤금초) 슬픔의 뒤편(김미정) 꼿발, 꽃발(김혜경) 당신, 원본인가요(이광)
** 좋은 포도밭
*** 노아 홍수 이후 등장한 거인(민수기 13:33)
-《시조미학》202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