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에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엄마가 이모와 통화하며 울고 있었어.
“응, 응. 언니, 알았어. 얼른 출발할게….”
많이 편찮은 시골 할아버지께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너에게로 눈이 갔어. 앞발에 턱을 괴고 엎드린 네 눈가에 눈곱이 가득 끼어있었어. 너에게 가려다 멈칫하고 엄마 옆에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어.
“윤석아, 할아버지가 위독….”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어.
“아빠한테 전화할까요?”
“그래. 할아버지 위독하시니 얼른 오시라고. 엄마는 필요한 것들 좀 챙길게. 아, 아니다. 엄마가 전화할게. 너는 피아노 학원에 가서 윤주 좀 데리고 와.”
엄마는 허둥지둥했어.
윤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마루에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었어. 잠시 후 아빠가 도착했어.
“엄마…. 바우는, 바우는 어쩌죠?
너를 보며 물었어.
“아, 바우. 여보, 바우를 어쩌죠? 아무래도 반려견 호텔에 맡기고 가야겠죠?”
“그래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아빠가 나를 건너다보며 말끝을 흐렸어.
“그렇지만 바우도…. 우리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나는 간절한 눈으로 아빠를 봤어.
“바우도 데리고 가요. 네? 네?”
곧이어 윤주가 아빠 손을 잡고 흔들었어. 아빠가 난처한 표정으로 엄마를 봤고, 엄마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윤주와 나는 아빠 차 뒷좌석에 타 너를 가운데 눕혔어. 너는 불안한 듯 초점 없이 흐린 눈동자를 연신 굴렸어.
너는 내가 일곱 살 때 우리 집에 왔어.
“우아!”
아빠가 새하얀 털을 가진 너를 안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멎고 말았어. 윤주도 좋아서 아빠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어.
“어머, 뭐예요?”
부엌에서 나오던 엄마가 놀라 아빠에게 물었어.
“당신, 내 친구 서겸이 알죠?”
아빠가 엄마 눈치를 살피며 되물었어.
“그럼요. 얼마 전에 부인이 아기 낳았잖아요.”
“응.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일이 좀 복잡하게 됐는데 아기 때문에 개를 도저히….”
“결국은 당신이 키우겠다고 이 개를 데리고 왔다는 거군요? 이 털 많은 개를 말이죠. 우리 집에도 아직 어린애가 둘이나 있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어. 그러더니 곧 이렇게 덧붙였어.
“도로 데려다주고 와요!”
“그게 그럴 수 없는 게 말이지….”
그때 네가 내 손을 핥았어. 너의 미끈덩하고 따뜻한 혀가 내 손에 닿는 순간, 전기 놀이를 할 때처럼 온몸이 찌릿했어.
“애들 호흡기라도 나빠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키워도 애들이 좀 더 큰 다음에 키워야지, 의논도 없이 이렇게 덜컥 데리고 와서 어쩌려고요?”
엄마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
“어쩐다? 데려다 줄 수는 없고 키울 사람을 알아봐야 하나?”
아빠는 아주 난처해 보였어.
“그럼 키울 사람 찾을 때까지 며칠만 데리고 있는 걸로 해요.”
엄마가 한발 물러났어. 하지만 그 며칠 사이 엄마도 애교쟁이 너에게 푹 빠지고 말았지. 그렇게 해서 너는 우리 가족이 되었어. 너는 가족 중 나를 가장 잘 따랐고, 잠도 나랑만 잤어.
그때 나랑 동갑이던 너는 빠른 속도로 나이를 먹었어. 나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인데 너는 사람으로 치면 여든이 넘었다고 했어. 지금 위독한 할아버지랑 비슷한 나이야. 할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무렵 너도 노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윤기 있던 털이 푸석해지며 한 움큼씩 빠졌고, 시력이 약해져서 벽이나 가구를 자꾸 들이받았어. 사료도 거의 먹지 않았지. 네가 먹기에 편하도록 부드러운 사료로 바꾸고, 영양 주사도 놓아주었지만, 너의 노화를 막을 수 없었어.
“곧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해주고 안거나 만지지는 것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얼마 전에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며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는 걸 나는 느낌으로 알았어. 가슴이 철렁했어.
“왜…. 왜 안으면 안 돼요?”
곧 헤어질 텐데 안지도 못한다는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어.
“바우 몸이 쇠약해져서 자꾸 안으면 힘들어해. 이미 싫어할 텐데?”
의사 선생님이 나를 넌지시 봤어.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부터 내가 안으면 너는 힘겹게 꼬리를 한 번 흔들고 눈을 감았어. 힘들고 귀찮았을 텐데 티를 내지 않은 거였어. 알아채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고, 너에게 미안했어.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 병원으로 두 시간 정도 달렸을 때, 엄마 휴대폰 벨이 울렸어.
“아아! 흐흐흑….”
엄마의 흐느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윤주가 엄마를 따라 울었고, 아빠 표정도 침울했어. 나는 네 쪽으로 몸을 기울여 너의 앞발을 살며시 잡았어. 네 얼굴에 내 눈물이 떨어졌어. 너는 깊게 신음했어.
우리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어. 이모가 맨발로 달려 나와 엄마랑 부둥켜안고 울었어. 나는 눈물을 훔치며 차에 혼자 두고 온 네 생각을 하다가 도리질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네 걱정을 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야.
엄마는 장례식장 직원과 뭔가를 의논하기도 하고 주방을 오가며 분주했어. 아빠는 이모부와 함께 손님을 맞았고, 윤주는 고등학생인 사촌 누나 옆에 딱 붙어있었어. 모두 너를 까맣게 잊은 것 같았어.
“아빠, 바우가 차에서 혼자 잘 있을까요?”
손님이 뜸한 틈을 타 아빠 곁으로 가 작은 소리로 물었어.
“아, 맞다. 바우!”
아빠는 정말 너를 잊고 있었어. 섭섭했지만 내색하지 않았어.
“바우 데리고 오면 안 돼요?”
“이를 어쩐다?”
아빠가 난감해했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서 잘 데리고 있을게요.”
“그래. 다행히 바우가 얌전하니 그렇게 하자.”
하지만 너는 아빠 말처럼 얌전히 있지 않았어. 집에서는 잠만 잤는데 낯선 곳이라 그런지 계속 낑낑거렸어.
“장례식장에 무슨 개를….”
손님 중 한 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고, 여기저기서 곱지 않은 눈으로 너를 봤어.
“당신, 윤석이가 아무리 졸라도 그렇지. 어떻게 바우를 여기에 데려다 놓을 생각을 해요?”
나중에 알게 된 엄마가 속상해했어. 결국 나는 사촌 누나, 윤주와 함께 너를 데리고 이모 집으로 가게 되었어.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우리를 이모 집 앞에 내려주며 아빠가 말했어. 아빠가 데리러 온다는 것은 누나와 윤주, 그리고 나일 거야. 네가 안쓰러웠어.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어서 그랬는지, 네 걱정으로 애를 태워서 그랬는지 자리에 눕자마자 나는 곯아떨어졌어. 꿈에 네가 내 볼을 핥더라.
“엉엉엉…. 바우야!”
울음소리에 잠이 깼는데 창밖이 환했어. 네가 없어서 놀라 밖으로 나갔어. 윤주가 베란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어. 윤주 앞에는 눈을 감은 네가 한 방향으로 네 다리를 뻗고 누워 있었고. 가슴이 철렁했어. 네 가슴은 미동도 없었어. 윤주처럼 쪼그리고 앉아 네 가슴에 손을 대봤더니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어. 네가 내 볼을 핥은 게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어. 너의 작별 인사에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찌릿했어. 하지만 그때와 달리 욱신거리며 아팠어.
아빠가 너를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에 맡겼어. 동물병원에서 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사진을 아빠 휴대폰으로 보내왔어.
‘할아버지 장례식만 아니었으면 바우를 혼자 떠나게 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랐어. 할아버지한테 미안해 고개를 푹 숙였어.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며칠을 앓았어. 나도 딱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데 아무런 의욕이 없었어.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 손잡이를 잡을 때면 네가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것 같아 가슴이 뛰었어. 너의 밥그릇과 물통을 내 방으로 옮겨 왔어. 너도 아닌데 네 물건들이 애틋했어. 네가 먹다 남긴 사료와 물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그대로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어. 내 방으로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계속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야.
아빠는 일이 밀렸다며 며칠 내내 늦게 들어왔어. 윤주는 한 번씩 “바우 보고 싶다.”라고 하기는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바빴어. 나는 네가 너무 그리웠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니 네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어.
내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끙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돌아누웠어.
“많이 편찮으세요?”
“젊어서 혼자 돼 재혼도 안 하고 엄마랑 이모를 키우셨는데…. 더 자주 찾아뵙고 살폈어야 했는데 사는 게 뭔지. 늘 바쁘다고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엄마는 할아버지 얘기를 하며 또 울었어. 네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엄마가 우는 걸 한참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어. 누가 내 가슴을 솜뭉치 같은 걸로 꽉 틀어막은 것 같았어.
금요일 방과 후에 교실을 나설 때였어.
“윤석이도 같이 하자고 해봐.”
우리 반 축구팀 주장 목소리였어.
“윤석이는 못 해. 키우던 개가 죽어서 요즘 통 기운이 없거든.”
내 사정을 잘 아는 승민이 대답이었어. 고마워서 뒤돌아 승민이를 봤어.
“그깟 개 죽어서 축구를 못 한다고?”
주장의 커다란 목소리가 날아와 내 명치를 때렸어.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주장에게 성큼 다가가 따졌어.
“뭐… 그렇잖아. 고작 개 죽은 걸로.”
내 기세에 주장의 목소리는 누그러졌지만, 뜻은 아까와 같았어.
“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 바우는 고작 개가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고, 하교 준비로 소란하던 교실이 일시에 음 소거가 된 듯 조용해졌어. 주장과 나는 선생님께 불려 갔어. 주장이 사과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어. 주장을 먼저 보낸 다음 선생님이 물었어.
“요즘 급식도 많이 남기고 힘이 없어 보이더니 키우던 개가 죽어서 그런 거였어?”
교실 바닥만 내려다보며 대답하지 않았어.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개 때문이었어?’로 들렸기 때문이야.
학교를 나와 학원에 가지 않고 집 앞 놀이터로 갔어. 멍하니 앉아 있으니 눈물이 나왔어. 누가 볼까 봐 눈물로 가득 찬 눈을 닦지도, 깜박이지도 못했어.
“윤석아.”
엄마 목소리였어. 내 앞에 서 있는 엄마 모습이 어룽어룽했어. 뜬금없이 엄마가 놀이터에 나타난 것을 보니, 담임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이 전화한 것 같았어.
“흡….”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어.
“바우 때문에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다가와 나를 안았어.
“죄송해요.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도 속상하신데….”
엄마 몰래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어.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 엄마가 할아버지 잃은 게 슬픈 것처럼 너도 바우를 잃은 게 슬펐을 텐데 미처 생각 못 했어. 엄마 눈치 보지 말고 바우 얘기도 하고, 슬프면 울어도 돼.”
“그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엄마에게도, 할아버지께도 죄송한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
“괜찮대도. 그 대신 엄마랑 할아버지 얘기도 실컷 하면 되잖아! 응?”
“….”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하지만 곧 애써 삼킨 울음이 복받쳤고, 엄마에게 안겨 너를 부르며 엉엉 울고 말았어.
첫댓글 조현미 작가님, 공유해 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