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3)
2012. 7. 23
위태 ㅡ 지네재ㅡ 오대사지ㅡ 오율 ㅡ 궁항 ㅡ 양이터ㅡ 양이터재 ㅡ 본촌마을 ㅡ 하동호
다섯명이 모여서 전(前) 구간 수철리에서 운리를 거쳐 위태까지를 어제와 그저께 이틀에 걸쳐 걷고 ,
오늘은 인도행 2012년 여름 장기 도보 팀을 만나는 날이다.
어제의 마침점이고 오늘 출발점인 위태 상촌 저수지에서 기다리려다가
본대와 기쁘게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은다.
민박집의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옥종면 사무소 앞까지 차로 태워다 준다.
마침 옥종 장날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기웃기웃 장구경을 한다.
다발로 묶은 마늘과 불그레한 쪽파씨는 빨간 고무 함지에 담겨져 소박한 시골 아낙네처럼 수줍다.
코나무 껍질을 둥글게 말아 놓은 다발과 말린 고사리 묶음, 자잘한 감자를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놓은 가게,
그 옆으로 어물전에는 갈치와 전어와 조기가 이리저리 제 멋대로 드러누워 비린내를 풍기고
붉은 고무 함지 가득히 재첩이 담겨져 있다.
둥글고 납작한 피자 판처럼 생긴 누룩이 신기하여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검정 비닐을 한 장 뜯어 싸줄듯이 채비를 하며 할머니가 누룩을 사겠냐고 묻는다.
울긋 불긋한 사탕을 자루 가득 담아놓고 놓고 팔고 있는 옆에서 미역 장수 아주머니는 다리를 뻗고 앉아서
옆 좌판에서 수수와 보리쌀과 노란 서숙과 연두 빛 녹두 등속을 파는 아주머니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듣고 하느라고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고 가는 배낭 이외에 맡길 여분의 옷이 들은 짐의 크기가 30Cm*40Cm라서
그 크기에 맡는 가방을 사려고 시장을 두어 바퀴 돌다가 찾지를 못하고,
결국은 큰 길가로 나가서 문방구점에서 맞춤한 크기의 알록달록한 초등학교 아이들 가방을 하나 구한다.
인생길 따라 도보 여행의 낯익을 글씨와 함께
태극기 휘날리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진 인도행 프랭카드를 페인팅 한 크로바 관광의 인도행 버스에 오르니
반가운 얼굴들이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다.
뒤따라온 제일 푸드의 밥 차에서 밥을 배식 받고 점심을 먹는다, 조별 점호를 한다,
11일간의 일정을 안내한 프린트물을 받는다,
배낭에 붙일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2012년 여름 장기도보 지리산 둘레길(7월 22일 ㅡ 8월 2일 ) 의 헝겊표를 배낭에 매다는등
수선스럽고 부산하며 가벼운 흥분으로 체육관 옆 빈터가 들썩들썩하다.
오늘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상촌저수지에서
하동군 청암면에 위치한 하동호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길은 어제까지 걸은 산청 쪽의 경호강이 흐르는 낙동강 수계권에서,
식생이 다양한 섬진강 수계권인 지리산 남쪽을 걷는 길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김해 분성산까지 이어지는 낙남 정맥을 만나고
위태마을의 상촌제, 궁항마을의 궁항댐 , 하동 청암의 하동호의 시원한 풍경을 연출하는
저수지와 큰 댐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모자를 쓰고 두건을 덧쓰고 선그라스를 끼어 뜨거운 햇볕을 피해보려고 저마다 무장을 단단히 하고 길을 떠난다.
마을앞 정자나무 아래서 출발 기념 사진을 찍고 50여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기 시작한다.
나플레옹의 대 부대가 알프스를 넘어서 러시아로 진군을 해 들어 가듯이 발걸음이 자못 씩씩하다.
지네골로 들어서는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이 호젓하다.
떡갈나무와 신갈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키 작은 산죽이 발목을 간지럽힌다.
발아래 밟히는 부드러운 흙이 순하디 순하다.
남명 조식 선생과 지리산을 유람하는 선비들이 자주 찾았던 오대사 터가 있던 백궁선원을 지나고 다시 땡볕으로 나선다.
한여름의 기온은 35도를 넘어서고 폭염 주의보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생각 난다.
이 더위에 땡볕아래 걸어가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열치열이라 했지 아마.
얼굴로 흘러 내리는 땀과 등과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땀이 숨을 쉬기도 힘이 드는 열기와 함께
치열함의 본질을 느끼게 한다.
아무 생각이 없이 걷는 것에 열중한다.
뜨거운 한여름 낮의 열기와 숨 가쁜 호흡과 걸음걸이에의 집중이 가슴 먹먹한 순수함으로 다가온다.
절대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다.
절대 세계란 모든 관념의 멈춤을 뜻한다고 틱 낫한은 말한다.
탄생과 죽음, 있음과 없음, 나타냄과 사라짐을 포함한 모든 관념의 소멸.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하고 걷는 이 순간, 한잔의 차를 마실 때처럼 ,
이 순간 속에서 그 절대 세계와 만난다.
지금 이 뜨거운 열정의 걸음을 통하여 역설적이게도 나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를 만난다.
궁항 마을 버스 정거장을 지난다.
마을 할머니들이 그늘의 평상에 앉아 쉬면서 길가는 우리를 격려한다.
궁항 마을을 지나서 나본 마을로 들어선다.
고개마루를 오르며 사방을 둘러본다.
멀리 가까이에서 낮으막 하고 정다운 산들이 여름 초록으로 한껏 잔치 마당이다.
고개 마루에 배낭을 풀어 놓고 쉰다.
까치발하고 두손 깍지 끼고 위로 올려서 하나, 두울, 셋, 넷 . .. 빙 둘러 서서 구령에 맞추어 체조를 한다.
왼쪽으로, 또 오른 쪽으로 , 팔을 쭉 뻗어서 몸을 굽힌다.
강원도 **에서 온 ***입니다.
전라도 **에서 온 **입니다.
서울 ***에서 온 ***입니다.
저마다 한발짝 앞으로 나서서 자기 소개를 하면 모두들 박수를 치고 동지를 만난 기쁨의 환호를 외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은 인생들의 열정으로 가득한 시간이
바람이 부는 고갯길에서 산 속으로 바람결따라 흩어진다.
본촌마을로 가면서 양이터재에서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좁은 산길에서 나보다 앞 서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서로 다른 걸음 걸이와 배낭이 건들거리는 모습과 스틱이 앞뒤로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들꽃을 보려고 몸을 구부리고, 나무 잎들 사이로 걸쳐진 거미줄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본다.
여름 숲이 , 여름 산이 , 여름의 길이 두루마리가 펼쳐지듯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인가.
바람 시원한 그늘로 들어 섰다가 눈부신 한여름의 땡볕 속으로 나서기를 반복한다.
등 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나무 우거진 숲길을 걷고,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걷고,
여기저기 흩어진 마을길을 돌아 걷고 또 걷는다.
산 언덕 아래로 잔 물결이 찰랑찰랑 은빛으로 빛나는 하동호를 내려다보며,
새로 지은 민박집 동호정 으로 들어선다.
첫댓글 바위솔님~^^
유람할 제를 다시읽을수 있어 반갑습니다.^^ *
지난번 넓다란 누룩 사진에 마음이 빼앗긴터라
(누룩 한 장 샀으면 ^^~ㅎㅎ)
땡볕아래 흐르는 그때의 땀이 느껴져요.
청람님과 유람 하시는모습도 생각납니다.ㅎㅎ
그때의 열정이 관심이.. ..
지금은너무도
시원한 도서관에서 나무에 관한 책을 쌓아두고
그림공부에 열공중 입니다.ㅎㅎ
여름숲이 가져다준 결과이죠.
바위솔님!
지리산 유람할 제를 조근조근 또 들려주세요.^^ㅎㅎ
그림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소설님, 언제 한번 볼 기회가 있을런지요.
지리산에서, 태백에서 함께 즐거웠습니다.
언제 다녀왔냐는 듯..벌써~먼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지리산 둘레길 유람을?..윽~힘들었는디유??
맛갈스럽게~이리 생생하게~ 정감어리게..적어논 글 잘 읽었습니당...지리산 유람할 제(3)이라 함은...계속 이어지는 거죠??
기둘리겠습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달아님과 샘이님,
환상의 콤비! 아시지요?
여러가지로 힘이 되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겉다가 잠깐쉬는시간 다들 지쳐 각자의편한자세로 쉬기바빴는데 바위솔님은 쉬는틈을타서 매모를 꼼꼼이 하시더니?!옆에서 나두 저렇게 메모를 해야지 잊지않텐데 했는데~~ 바위솔님글을 보면 더 자세히 그때생각이 생생해집니다 ~~**
아 ! 차칸 미수기님 !
힘차게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걸으시는 모습 생각나요.
빨간 티 새스를 입으셨지요, 큰 배낭을 메시구요.
언제나 당당한 모습 뵈면서 젊음이란 참 빛나는 거구나 했어요.
힘은들었지만 정말행복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볼수있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성이 가득들어있는 후기
정말 잘보고갑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