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땅 애벌레야
이종문
어머니가 보내 주신 채소들을 다듬는데
애벌레 한 마리가 그냥 툭, 떨어졌다
온몸을 둥글게 말고 시치미를 딱 뗀다
아무리 벌레라도 내 고향 땅 애벌렌데
쓰레기통에다가 내동댕이 칠 순 없고
벌레와 한이불 덮고 같이 살 순 더욱 없고
애벌레야~ 애벌레야! 내 참말로 미안타만
풀밭에 놓아주꾸마, 제발 부디 죽지 말고
나비 돼 고향 가거라, 내 고향 땅 애벌레야
반지하
이처기
지구촌서 들려오는 다급한 사이렌 소리
징검돌 건너는 사이 여기까지 들리구나
지하창 꼭꼭 닫아도 솔기는 더 터지는데
가난 안고 태어난 핏줄 그래도 축복인가
강요된 선택인가 대피할 수 없는 여기
방범창 넘는 폭우는 광란의 노도인가
돌봄도 어쩔 수 없는 몸부림치는 이 막장
아끼는 죗값으로 정강이를 세워보지만
흙물 밴 한 켤레 신발 속절없이 뜨고 있다
휘파람 언어
임영숙
전철의 흔들림이 박자를 넣는다
퇴근길 전철 안 사람들 사이를
지팡이 짚고 서성이는
눈먼 아이 지나간다
가시밭 정글 숲을 더듬더듬 헤쳐 가듯
흔들리는 걸음으론 갈 수 없는 사람들
얼굴을 스마트폰에 묻고
사람들은 무심한 척
듣는 사람 하나 없이 눈먼 아이 구걸한다
오늘도 바람결에 휘파람 날려가며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송
멀리 가는 휘파람 언어
캘리그래픽 억새밭
장은수
스산한 바람들이 몸을 떠는 긴 겨울밤
억새 무리 뭇을 세워 허공을 젓고 있다
간간히 눈발이 치는
히끗한 여백 위로
괴발개발 흘림채로 써 내린 관념의 붓질
메마른 낡은 세월 애무하듯 다독여도
난해한 그 상형문자
획이 너무 가볍다
아직도 탈고 못한 비밀스런 문장인가
쏟아지는 불립문자 억새밭에 묻어놓고
포르릉 날아오른다
수천 수만
새떼들
-《시조미학》2023. 봄호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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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調의맛과˚˚˚멋
이종문 시인의 <내 고향 땅 애벌레야> 외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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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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