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서 동 근
한식을 맞아 선영에 올랐다. 해마다 4월 5일 전후 선영 선대 조상님들 묘소에 제를 올린다. 종갓집 종손이 고향을 떠나 인천에 살고 있기에 한식이 돌아오면 청주 인근 자손들이 선영에 모여 조상님께 예를 표한다. 그런데 선대 조상님들을 모신 선영이 산업단지로 편입되면서 부득이 묘지를 이장해야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명절 때마다 오르내리던 선영이 없어진다니 마음이 왠지 무겁고 찹찹하다.
선대조는 종손이 따로 서울 쪽 가족묘원으로 모시고 부모님 대부터는 집안별로 각자 모시기로 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전에 준비해놨던 산성 쪽 야산에 모셨다. 마지막이 될 조상님들 묘를 돌아보며 절을 올렸다.
“여기 할미꽃이 피었네.”
친척 일행 중 누군가의 말에 돌아보니 산소 주변에 할미꽃 한 무더기가 보였다. 예전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어느 때부턴가 할미꽃 보기가 쉽지 않다. 꽃대와 꽃잎에 보송보송 아기 솜털처럼 잔털을 두르고 꽃은 늘 고개를 숙인 채 아래로 향해 있다. 꽃으로서는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눈에 드러나지도 않게 수줍은 듯 피었다 지고 만다.
한때 야생화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요즘 가정에선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한두 개씩은 흔히 키우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식물을 선호한다. 꽃들도 화려한 양화 일색이다. 야생화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에는 꽃잎이 화려하지 않고 외형 자체가 빈약한 편이다. 사람들 손길이 비교적 닿지 않는 산이나 들에 자생하기 때문에 수수하고 조용하다.
가끔 산행을 하다 보면 등산로 주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을 보게 된다. 이른 봄 낙엽 사이로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복수초, 노루귀 등 조그맣고 앙증맞은 모습에 정감이 간다. 야생화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무심코 지나치거나 관심을 주지 않으면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결코 자기를 돋보이려 하지 않고 자체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그 모습이 고결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생명력은 어느 꽃보다 강인하고 끈질기다. 한겨울 찬 흙 속에서 견디다 이른 봄 잔설을 비집고 올라오는 노란 복수초를 보고 있노라면 가녀린 어린 새싹의 생명력에 경이심이 든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어머니는 늘 헐렁한 옷에 투박하고 거칠어진 손마디,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바쁜 농사일과 자식 걱정에 당신의 치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쩌다 외할아버지 제삿날이면 막내아들 손에 씨암탉 들려 밤길 앞세워 집을 나서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곱게 빗질한 쪽진 머리에 은빛 비녀가 달빛에 유난히 반짝거렸다. 난 어머니가 모처럼 차려입은 옥양목 치마에 하얀 모시 저고리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봄이면 꽃시장을 들른다. 1년 365일 화려한 조명 아래 계절에 관계없이 꽃을 볼 수 있다. 화훼 농가에서 키운 꽃들이 꽃봉오리가 트기 전에 화원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언제든 원할 때 꽃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화려한 양화보다 다소 빈약해 보이는 야생화에 눈길이 간다.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낀다.
무덤가에 핀 할미꽃을 조심스레 삽으로 떠 비닐봉지에 담았다.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겠으나 얼마 뒤 묘지를 이장하려면 중장비로 파헤쳐 뭉개 버릴 것이다. 집 화단에 옮겨심기로 했다. 할미꽃은 여러해살이로 한번 심으면 그 자리에서 꽃잎이 진 뒤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을 틔워 꽃을 피운다. 자생력이 무척 강하다. 거실에서 키우는 꽃들을 관리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때에 따라 물주고 자주 환기를 시켜 줘야 생명을 유지한다. 잠시 게으름을 피웠다간 죽이기 일쑤다. 봄철에 꽃 한번 보고 고사시킨 꽃이 무지기수다. 그러나 야생화는 한번 심으면 한 자리에서 사계절을 지낸다. 일일이 손이 자주 가는 일반 꽃들에 비해 키우기가 아주 수월하다. 크게 돋보이진 않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 삶을 닮았다.
할미꽃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 없는 두 손녀를 힘들게 키워 모두 시집보냈다. 홀로 남은 할머니가 추운 겨울 손녀집을 찾아 나서다 어느 이름 모를 길가에서 홀로 동사하고 말았다.’ 할머니가 죽은 자리에 피어났다는 전설은 설화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할미꽃은 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부분 꽃들은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 있다. 그러나 할미꽃은 모든 걸 수용하고 체념한 듯 자신의 생애를 묵묵히 견디며 꽃을 피운다. 마치 내 어머니가 가족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다 죽어서도 허리 한번 펴지 못한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볼 때마다 애처롭다. 혹시 무덤가에 꽃으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문득 무덤가의 할미꽃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오작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레 햇볕 잘 드는 마당가 화단에 할미꽃을 옮겨 심었다. 어머님께 제주 올리듯 정성껏 물을 주었다. 이제 내년부턴 선산에서 조상님들을 뵐 순 없다. 그러나 왠지 가슴이 뿌듯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할미꽃은 이제 내 가슴에서 마음을 전하는 전령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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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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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양지바른. 무덤가에 할미꽃이 많지요.
보송한 솜털은 이르신의 백발같고,
환한 웃음은 내 이름을 부르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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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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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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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