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역경이라고도 함)
모든 것은 변화한다
가는 것은 모두 이 시냇물과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어느날 공자가 시냇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면서 한탄한 말이다.
우리들도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내다가, 문득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라게 된다. 앙상하던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연두빛 이파리에서 계절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주름진 얼굴
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읽는다.'변화'에 대한 인식, 여기에서부터 철학적 사유가 시작된다.
기원전 6세기경 희랍의 한 서정시인은 세월의 흐름에 따르는 인생의 무상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보게나, 세월이 내 관자놀이 위로흰 서리를 뿌리더니, 어느새 내 머리를 흰 눈밭으로 만들었네.
이가 빠져 버린 잇몸은 자꾸 넓어지고 젊음도 기쁨도 오래 전에 스쳐가 버렸네.
희랍인들의 다정하고 민감한 감성은 인생과 자연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라는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덧없음의 느낌은 한편으로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종교적인 희구를 낳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 있어서 무엇인가 변화하지 않는 근원적인 것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주역(周易)』은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다.
'역'은 본래 도마뱀의 일종을 그린 상형문자이다.
도마뱀은 주위의 상황에 따라 색깔이 수시로 바뀐다.
여기에서부터 '바뀌다', 즉 '변화'라는 의미가 도출되었다.
'역'을 키워드로 하여 성립된 『주역』이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근본 양상을
변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변화의 성격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고대 희랍인과 구별된다.
고대 희랍에서는 변화하는 자연과 인생을 덧없고 부질없는 무상한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심화되면서 '덧없지 않은 존재', 삼라만상을 변화시키면서도
그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 즉 그러한 변화를 있게 하는 이법(logos)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것을 희랍인들은 '피시스(physis)라고 불렀다.
입장은 다르지만, 변화하는 세계를 무상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고는 불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교 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명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여기에서 '제행'은 주관과 객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무상은 고유한 실재성을 부정하는 말로서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변화'가 된다.
따라서 '제행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의 변화는, 한갓 외적인 모습이나 성질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그 어떤 연속체로서의 실체마저도 부정하는 철저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변화 속의 불변자는 인정될 수 없다.
'무상함'은 모든 존재자가 걸머진 필연적 속성인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끊임없이 낳고 또 낳는 것을 역이라 한다"고 하여
변화를 생명의 창조 과정으로 본다.
유교 경전 가운데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주역』인데 유교에 있어서
생명은 최고선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창조 과정으로서의 변화는 절대적 가치성을 가진다.
적어도 『주역』의 본문 자체만을 충실하게 분석해 본다면,
변화하는 현상계를 덧없는 것으로 부정하고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가 이 현상 세계를
넘어서서 존재한다는 관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변화해 나가는 세계의 변하지 않는 운동 질서 그 자체가 '도(道)로 규정된다.
다 같이 변화를 자연과 인생의 본질적 속성으로 보면서도 변화에 대한 이해가
이처럼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하나의 요인은 외적인 조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 희랍의 주요 도시였던 밀레토스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하여
가난에 허덕이거나 상업적인 이익에 혈안이 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부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유흥과 방탕한 생활을 할 만큼 풍요로운 재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알맞은 '여유'를 갖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삭막한 삶의 현실에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자연과 인생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함을 읽게 되고 그에 따른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불변하는 실체인 피지스(physis)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던 것이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자연 환경도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열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매년 황하의 범람이라는 자연 재해와 싸우거나 기아에 허덕여야 했다.
주역』 괘사와 효사의 원형이 성립되었던 시기로 추정되는 은(殷)ㆍ주(周) 교체기는
당시 서쪽 제후(西伯)였던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은대 마지막 왕이었던 주(紂)를 치고
주(周)의 시대를 새롭게 연 이른바 '혁명'이 수행되던 때였다.
또한 '십익(十翼)'의 성립기인 춘추전국시대는 170여 개의 나라가 10여 개로,
다시 7개의 나라로 축소될 만큼 극심한 전쟁을 겪은 시기였다.
이처럼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성립된 『주역』은 형이상학적 초월의 세계나
종교적 명상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계사전」에 "역은 중고(中古)시대에
일어났을 것이다.
역을 지은 자는 우환(憂患)이 있었을 것이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주역』은
현실 사회에 대한 강한 우환의식에서 태어났다.
즉,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자연적ㆍ인위적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주역』의 이러한 점 때문에,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며,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알겠는가?"라고 했던 공자의 말처럼,
사후의 세계나 신의 영역에 대해서는 일단 판단을 보류한 채 현실을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세계로 변혁하려 했던 유가의 사상에 입각하여 경전으로 채택된 것이다.
음양(陰陽)과 도(道) 그리고 대대(待對)의 논리
주역』은 변화를 생명의 창조 과정으로 보고 변화의 질서 그 자체를 '도'로 규정한다.
동양 고전에서 도는 주로 진리, 법칙의 의미를 갖는데
주역』에서는 자연계의 변화 법칙이며 규범 원리의 뜻을 갖는다.
그 전형적인 명제가 「계사전」의 다음 구절이다.
한 번은 음의 방향으로 운동해 나가고 한 번은 양의 방향으로 운동해 나가는 것을 '도'라고 한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환한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다시 밤이 오듯 이 순환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변화해 나가는 '길', 즉 세계의 보편적인 운동 법칙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보편적인 법칙은 인간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당위의 규범으로 보는 데에
유교의 특징이 있다.
주역』은, 세계의 보편적인 운동 법칙이자 당위의 규범으로서의 '도'가, 한 번은 음의
방향으로 운동해 나가고 한 번은 양의 방향으로 운동해 나가는 음양의 원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구조 또한 위ㆍ아래의 천지나 전ㆍ후/ 좌ㆍ우 사방이라는 음양적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이 장자는 "역은 음양을 말하는 것이다"고 하여 이 점을 간파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음양이란 무엇인가? 음양은 본래 음지와 양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음양 개념의 성립과 변용 과정을 검토해 보면, 『주역』에 있어 음양은 천지, 일월,
남녀, 상하, 좌우, 왕래 등과 같이 구체적인 사물 또는 한정된 사물의 양상을 지칭하는 개념
이라기보다, 대대(對待) 관계에 있는 모든 개념 쌍을 포섭하는 범주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음양'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대대' 관념은 존재하였으며,
음양은 대대 관념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로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대'란 무엇인가. 대대란 서로 마주하며 기다린다는 의미로서 지금은
일상어로 사용하지는 않으나 문집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용어이다.
대대 관념을 표상한 최초의 매개체는 '—'와 '- -'이라고 하는 기호인데,
이것이 괘(卦)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양효(陽爻)와 음효(陰爻)다.
기호는 의미를 간이화(簡易化)ㆍ직관화ㆍ형상화하여 감성적 직관을 통하여 인식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기호의 의미는 신호등의 적신호나 청신호와 같이 항상 다른 기호와의 연관 아래
에서만 결정되며, 그 기능 또한 상호 작용 속에서 비로소 생겨난다.
그러므로 역학 사상에 대한 최초의 표현 매개체가 기호였다는 사실 자체가 상호 연관성이라고
하는 '관계'를 그 중심 과제로 부각시키기에 충분하다. 양효는 음효와의 관계에 의해서,
음효는 양효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고 기능할 수 있는 상반적인 타자와의 관계성을
표상한다. 이것이 서로 반대가 되어야 감응하여 조화되어 하나가 된다고 하는 '상반응합
(相反應合)'의 논리로서, 『주역』에 있어 대대 관념의 원형이 된다.
이 효들이 3개씩 겹쳐진 것이 8괘이며, 8괘가 두 개씩 겹쳐진 것이 64괘이다.
『주역』은 64괘에 대한 해설과 그 설명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괘사와 효사 그리고 '십익(十翼)이 그것이다.유가의 문헌에서 대대 관념이 명확하게 음양이라는
용어로 표현된 것은 『주역』의 「계사전」과 「설괘전」 등 십익이다.
그러나 『주역』의 괘사나 효사는 물론 『서경』, 『좌전』 등에도 이미 후대에 음양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 관념이 사상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甲骨文)에도 상/하 , 좌/우, 정/반 등 구체적 사물의 대립 계열
이 나타난다. 같은 시대 청동기, 제기(祭器) 등에 꾸며진 무늬와 장식의 위치도 대립되는 힘들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논어』의 다음 구절을 보자.
공자님께서는 온화하시되 엄격하시고 위엄이 있으시되 사납지 아니하시며, 공손하시되
편안하셨다. 이 글에서는 온화함/엄격함, 공손함/편안함 등 서로 공유하기 힘든 상호
배척적인 성향을 갖는 두 덕목이 통일되어 있는 공자의 인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대대 관계는, 무엇보다도 상반적인 타자를 적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로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양효와 음효인 '— / - -'라는 기호로써 역의 원초적인 의식이 표상되었다는 사실과,
음양의 문자학적 분석을 통하여 입증될 수 있다.음양은 본래 '산기슭의 햇빛이 비추는 곳과
그늘진 곳'을 지칭하는 문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다.
즉, 그림자가 있는 반대편에는 반드시 빛이 있고 빛이 있는 반대편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음의 개념에는 이미 양이 전제되어 있고, 양에는 음이 전제되어 있는
상호 의존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음과 양의 두 개념은 서로의 존재를 조건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과 양의 관계와 같이 대대 관계에 있는 존재는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서로 배척적이고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상대방을 부정할 수가 없다. 상대방의 부정은 곧 자신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두 번째 특징은 상반적(相反的) 또는
상호 모순적 관계를 상호 성취의 관계, 더 나아가 운동의 추동력의 근거로 본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른바, 서로 반대가 되어야 서로를 이루어 준다고 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논리이다. 즉, 남녀 또는 전기의 양극(+)과 음극(-)처럼, 같은 성 또는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배척하며 다른 성ㆍ극은 상호 감응함으로써 조화되어 서로를 완성시켜 준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논리는 서구의 전통 문화와 사유의 근본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과 분명히 구별되며, 오히려 현대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준 양자물리학의
상보성 원리에 접근 될 수 있다.
너는 나와 반대가 되기 때문에 도리어 나의 존재성을 확보해 주고 서로 감응하여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발전의 원동력이 확보 된다는
주역』의 음양 논리는, 지역과 계층간의 갈등, 서구 문명권과 비서구 문명권의 대립,
종교간의 분쟁, 자연과 인간의 분리, 무한 경쟁의 논리와 패권주의 등 혼란한 상황
속으로 함몰되어 가는 우리를 참다운 사유의 공간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주역』의 두 얼굴, 점과 철학
『주역』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본래 점서(占書)로서 출발했는데,
그 원형인 괘사와 효사는 바로 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진시황이 불온한 사상서들을 불태워 버렸던,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났을 때
『주역』이 화를 모면한 것도 그것이 사상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점서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점이란 무엇인가? 점은 한마디로, 미래에 발생할 사태를 예측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지혜가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중국에서는 기후의 변화와, 지진ㆍ일식 등의 자연 변화 그리고 질병, 전쟁, 왕조의 교체 등의
현상은 절대자인 '상제(上帝)'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냥을
나간다든가 제사를 지낸다거나 또는 전쟁을 일으킬 경우 상제의 뜻을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점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점점 발달하게 되자
자연의 변화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계절의 변화다.
자연계가 일정한 질서에 따라 변화한다는 자각은, 자연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농경 사회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자연계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은 점이 아니라, 그 변화의 질서를 추출해 냄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이 자연에서 추출해 낸 질서를 수로 표상한 것이 바로 달력이다. 달력에 표시된 우수ㆍ경칩 등 24절기는 자연의 변화 과정을 예측해 놓은 것이며, 동시에 파종이나 수확 등 그 절기에 해야 할 농경의 지표이기도 하다.미래에 발생할 사태를 예측하고 그에 가장 합당한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일이 이제는 자연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주역』 역시도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추출해 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음양가와 도가학파의 영향으로 괘사 및 효사를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를 음양의 원리에 따라 설명하는 이론 체계가 확립된 것이다. 즉, 괘사와 효사에 내재된 음양의 관념이, 이 시대에 이르러 '음양론'으로 정립되고 이 음양론에 의하여 자연이 설명되었으며, 이에 근거하여 인간의 당위 규범까지도 규정하는 이론 체계가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합리적 인식에 발맞추어 괘사와 효사에 대한 해석도 보다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각도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주역』은 단순한 점서가 아니라 철학서이며 도덕적인 수양서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주역』의 음양론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음양론에 기초한 유기체적 자연관은 우리에게 의식의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점은 우리를 정신의 새로운 영역으로 안내할 것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와 『주역』의 대대적 논리의 차이는 무엇인가?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는 양자택일적 이분법이며, 『주역』의 논리는 대칭적 논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 그 존재 자체와 그렇게 존재하도록 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로부터 결국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착하여 존재에 대한 최고의 본질을 찾아다니다가 정작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은 잊혀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점은 존재와 존재의 본질을 이분한 발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반면에 『주역』의 논리는 음양의 대대 관계에 입각해 자연과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변화'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주역』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배후에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 내지 본질을 인정하는 사고는 찾기 힘들다. 설령 송나라시대의 역학에서 세계의 형이상학적 궁극자로 태극을 말하더라도 다시 한 번 궁극자의 초월성과 현상에의 내재성을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는 대대적 사유의 틀로 소화해 낼 뿐이다. 이처럼 『주역』에서는 어떠한 '둘'을 인정하지만 그 '둘'을 영영 분리된 존재로 사유하지는 않는다.2. 현대 과학과 주역 사상의 연관성에 대한 시각은 무엇인가?주역을 대할 때 처음 접하는 이들이 범하는 오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역은 점'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미신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와의 대비 관계를 쉽게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주역』은 『논어(論語)』와 같은 '책(Text)'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책 속에 내재된 여러 사유를 끄집어 내어 체계적으로 전개시킨 것을 주역 사상이라고 한다. 주역에는 철학, 종교, 정치,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방면과 연계하여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산재해 있다. 그러므로 주역과 과학과의 관계를 논할 때 과학의 이름으로 주역의 한계를 논하려는 선입견 혹은 일방적으로 주역이 과학에 앞선다는 발상 자체가 주역을 곡해하는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양자의 관계는 현대에서 논점에 따라 심리학, 생명과학, 수리과학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각별한 통찰과 관심이 필요함을 당부할 뿐이다.3. 역학 사상에서 『주역』을 근간으로 하는 이론은 어떠한 것들인가?역학 사상과 『주역』의 사상은 일단 구분되어야 하지만 현존하는 『주역』이 역학 사상을 가장 잘 보존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역의 발단은 은ㆍ주시대의 점(占)에 기반을 둔 미래의 예측 및 이에 합당한 규범의 제시라는 측면과, 자연계의 존재 양상이라는 구조적 설명 체계라는 두 측면이 『주역』의 성립으로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역에는 자연계의 순환적 변화 원리와 이에 근거한 당위적 규범이 중심 과제로 다루어진다. 그 중심 이론은 변화론적 우주관과 괘ㆍ효 변화의 원리, 사회 변화의 법칙, 변화에 대응하는 실천 철학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원전으로 읽는 주역』, 최영진 편저, 민족문화문고, 2005.『주역전의』, 성백효 옮김, 전통문화연구회, 2000.
출처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5.22
청소년을 위한 고전 입문서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오늘의 눈으로 동양의 고전을 다시 살펴보는 책이다. 주옥같은 동양의 고전을 망라하여, 서양 고전에 편중된 시각...자세히보기
저자 권중달 외 14인
제공처
휴머니스트 http://www.humanistbooks.com, 제공처의 다른 책보기
------------------------------------------------------------------------------------------------------------------
주역(周易:역경이라고도 함)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진다. 공자가 극히 진중하게 여겨 받들고 주희(朱熹)가 ‘역경(易經)’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주역≫은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참고]사서 오경
사서 :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주역≫은 상경(上經)·하경(下經)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 등 10편을 말한다.
한대(漢代)의 학자 정현(鄭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 하였고, 송대의 주희도 “교역(交易)·변역의 뜻이 있으므로 역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이간이란 하늘과 땅이 서로 영향을 미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이법(理法)은 실로 단순하며, 그래서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다. 변역이란 천지간의 현상, 인간 사회의 모든 사행(事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고, 불역이란 이런 중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컨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주희의 교역이란 천지와 상하 사방이 대대(對待)함을 이르는 것이고, 변역은 음양과 주야의 유행(流行)을 뜻하는 것이라 하였다. ≪설문 說文≫에는 역이라는 글자를 도마뱀(蜥易, 蝘蜓, 守宮)이라 풀이하고 있다. 말하자면, 易자는 그 상형으로 日은 머리 부분이고 아래쪽 勿은 발과 꼬리를 나타내고 있다. 도마뱀은 하루에도 12번이나 몸의 빛깔을 변하기 때문에 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역은 일월(日月)을 가리키는 것이고 음양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상 여러 설을 종합해 보면 역이란 도마뱀의 상형으로 전변만화하는 자연·인사(人事)의 사상(事象)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례 周禮≫ 춘관편(春官篇) 대복(大卜)의 직(職)을 논하는 글에 “삼역법(三易法)을 장악하나니 첫째는 연산(連山)이요, 둘째는 귀장(歸藏), 셋째는 주역인데 그 괘가 모두 여덟이고 그 나누임이 64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대의 두자춘(杜子春)은 연산은 복희(伏羲), 귀장은 황제(黃帝)의 역이라 하였고, 정현은 역을 하(夏)나라에서는 연산이라 하고 은(殷)나라에서는 귀장, 주(周)나라에서는 주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아무튼 연산·귀장은 일찍이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주대(周代)의 역인 ≪주역≫뿐이다.
역의 작자에 대해서는 ≪주역≫ 계사전에 몇 군데 암시가 있다. 그 중 뚜렷한 것은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 상(象)을 하늘에서 우러르고 아래로 법을 땅에서 살폈으며 새와 짐승의 모양, 초목의 상태를 관찰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 이로써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비기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 혹은 伏羲氏, 夏禹氏, 文王)가 64괘로 나누었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루어진 뒤에 그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이에 공자가 십익을 붙였다고 한다. 이것이 대개의 통설이다.
역을 점서(占筮)와 연결시키고 역의 원시적 의의를 점서에 두는 것은 모든 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어느 민족도 그러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대사(大事)에 부딪히면 그 해결을 복서(卜筮)로 신의(神意)를 묻는 방법을 썼다. 하여튼 처음 점서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 시대를 거치면서 성인(聖人) 학자에 의해 고도의 철학적 사색과 심오한 사상적 의미가 부여되어 인간학의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정착된 것이다.
참고문헌
• 『오경정의(五經正義)』
• 『역전(易傳)』
• 『역본의(易本義)』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8괘
『주역』에 나와 있는 팔괘와 관련이 있는 글귀 중 중요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변화함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이것이 양의(兩儀, 즉 陰陽)를 드러내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드러내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팔괘가 열을 이루니, 상이 그 가운데 있다.음양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여 괘를 만들었다.
앞의 세 인용문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괘란 것은 음양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고 그 참[眞] 바탕[相]을 본떠서 만든 것[象]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태극이 양의(兩儀)를 드러내며 진행되어 팔괘까지 이어진다.여기서 논자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이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림 1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달을 꾸준히 관찰하면 달은 매일 그 모양이 변한다.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은 밝은 면이 점점 커져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점점 작아져 없어지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역철학의 첫걸음은 달의 변화에 있어 눈에 보이는 밝은 면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까지 보는 데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의 면을 무(無, 존재하지 않음)로 여기지 않고, (역철학적 안목을 통해) 눈에 보이는 면과 대등한 사물의 존재함이 드러나기 위한 다른 하나의 요소 혹은 방식으로 본다는 것이다.부연하면, (밖으로) 드러남을 상(象)이라고 하는데, 그 상(象)을 볼 때 눈에 보이는 면, 즉 양(陽)만 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 즉 음(陰)도 보았기에 '태극이 양의(兩儀)를 생(生)한다'고 하였고, 또 '음양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여 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는 말이다.
[참고]64괘
------------------------------------------------------------------------------------------------------------------
주역[ 周易 ] (역경)
유교의 경전(經典) 중 3경(三經)의 하나인 《역경(易經)》.
단순히 《역(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이 역에는 易簡(이간)·변역·불역(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한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허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든 뒤 이를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 하였으며, 마융(馬融)은 괘사는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다.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이다.태극(太極)이 변하여 음 ·양으로, 음 ·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 괘가 되었다. 건은 하늘·부친·건강을 뜻하며, 태는 못[池]·소녀·기쁨이며, 이는 불[火]·중녀(中女)·아름다움이며, 진은 우레·장남·움직임이며, 손은 바람·장녀, 감은 물·중남(中男)·함정, 간은 산·소남(少男)·그침, 곤은 땅·모친·순(順)을 뜻한다. 그러나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經文)이다. 《주역》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십익》의 성립으로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십익>은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전국 시대부터 한(漢)나라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학자들에 의해 저작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 열 가지라는 뜻으로, 즉 단전(彖傳) 상·하편, 상전(象傳) 상·하편, 계사전(繫辭傳) 상·하편,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출처 : 두산백과
----------------------------------------------------------------------------------------------------------------------------------------------------------
주역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문구
음과 양의 관계와 같이 대대(待對)관계(대대란 서로 마주하며 기다린다는 의미)에 있는 존재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서로 배척적이고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상대방을 부정할 수가 없다. 상대방의 부정은 곧 자신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두 번째 특징은 상반적(相反的) 또는 상호 모순적 관계를 상호 성취의 관계, 더 나아가 운동의 추동력의 근거로 본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른바, 서로 반대가 되어야 서로를 이루어 준다고 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논리이다. 즉, 남녀 또는 전기의 양극(+)과 음극(-)처럼, 같은 성 또는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배척하며 다른 성ㆍ극은 상호 감응함으로써 조화(화합)되어 서로를 완성시켜 준다는 것이다.
위 글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반대개념, 상대개념이 대대(待對) 관계라는 점이다.
(나와 반대인 대상이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경쟁하고 화합해야할 대상이라는 것)
이 대대(待對)관계(대칭관계)의 이해를 통해 경쟁과 화합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