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영향과 결과
1. 경제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따라 방직 공업, 식품 공업 등이 발전하였다. 도시화가 진행되어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철도 등 근대시설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조선인 대부분은 경제 수탈로 인하여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산미증식계획에 의한 쌀 수탈로 기존의 농민 등 1차 산업 종사자들이 몰락하여, 열악한 노동환경의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에는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발생하였다. 흉작과 만주산 잡곡 수입 제한, 수송 수단 문제 등으로 식량난도 심각했다.
광복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도 심각하였다. 광복이 되자 많은 일본인이 귀국을 위해 현금을 인출하면서 대량의 지폐를 찍어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꼽힌다.
2. 생활
고무신, 운동화, 구두, 양복 등 서양식 의복이 확산되면서 ‘모던걸’, ‘모던보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였다. 여학생들 사이에선 단발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커피, 빵, 맥주 등 서양 식품들의 소비가 늘었고 우동, 어묵 등 일식이 대중화되었다.
3. 사상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3.1운동 이후에는 지식인 계층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사회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민족 개조론을 주장하는 지식인도 있었다. 일본의 지배 아래 조선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화를 이루자는 이론으로, 대표적 인물로는 이광수가 있다.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며 농민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상승을 외치며 노동운동을 벌였다.
청년과 학생들은 청년회를 조직하고, 수업 거부 투쟁과 6·10 만세운동 등을 일으켰다.
여성과 어린이 등 소수자의 지위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남녀평등을 외치는 ‘신여성’들이 등장하며 일제의 여성 차별 정책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이 전개되었고, 천도교의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날이 생겨났다.
4. 문화
조선어 학회 등을 조직하여 한글을 보존하고 문맹 퇴치 운동을 펼쳤다. 학자들은 일제의 한국사 왜곡과 식민 사관 주입에 대항하며 민족주의 사학을 발전시켰다.
연극,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가 발달하였다. 민족 정서를 담은 작품도 있었지만, 친일적 성향의 작품이 많았다. 저항 의식을 담은 문학을 발표해 일제에 맞서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출처: 비상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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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