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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1학년 김보민입니다!
벌써 숲터에서의 들살이를 마치고 와서 이렇게 들살이 동안 매일 써온 일지를 올립니다.
이번 들살이는, 모둠끼리 같은 주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모둠 들살이와 개인의 주제로 활동하는 개인 들살이, 그리고 다 함께 놀며 들살이를 마무리하는 취지의 전체 들살이로 나눠 보냈습니다.
작년에 이미 한 번 해봤다고 이번에는 나름 수월하게 다녀왔지만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기도, 감정은 다채롭기도 했던 저의 여정, 함께 보실까요!?
모둠 들살이 목적글
원래는 화가 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려 봐도 딱히 힘이 나지 않고 억지로 부르는 꼴이 됐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음악을 듣고 부를 때 진심으로 기분이 전환되거나 힘을 얻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내 일상에서 음악이라는 것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음악이랑 더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이번에 음악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그 자체를 느끼는 경험을 해보려 한다. 그리고 특히 직접 하는 연주는 다른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든 노래를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연주를 해보면서 음악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기분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사람들과 함께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음악을 다른 이의 노력이 아닌, 나의 노력으로 연주하며 음악을 느끼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9/4
오늘은 드디어 부산 들살이 1일차다! 작년에 이미 한 번 숲터 들살이를 경험했고 또 이번에는 작년처럼 제주도로 비행기까지 타고 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어제도 하나도 실감이 안 났고 오늘 아침에도 새벽에 일어났을 때 내가 지금 왜 일어나야 하지? 하고 잠시 생각했을 정도였다..그렇게 살짝 정신이 덜 차려진 채로 출발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출발하자마자 밴드 연주 때 필요한 멜로디언을 두고 오기까지 했다. 그래도 서울역에서 늦지 않게 무궁화로를 잘 타고 약 여섯 시간의 운행 중 약 다섯 시간 반을 자면서 왔다. 그렇게 부산 해운대 쪽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부산이 도심이기도 했고, 길거리에 있는 상점들도 고양시와 다를 게 없어서 (오히려 더 서울의 핫플레이스 같았다) 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야 내가 부산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면서 기분도 좋아졌다. 그런데 그럼과 동시에 이 해변에서 연주를 하려니 갑자기 걱정되기도 하고 벌써부터 창피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지도, 찾아가지도 않는 것이 의도였지만 애원해서 그나마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서 연주를 했다.
9/5
오늘은 모둠 들살이 이틀 차였다. 부산으로 이동하느라 오전 활동을 못한 어제와 달리 하루 종일 활동하니까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더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를 온전히 보내 보니까 진짜 부산에 왔구나 싶었다.
아침에 맛있게 딸기잼 빵을 먹은 뒤 삼락생태공원에 가서 연주를 했다. 정말 땡볕이라서 힘들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전세 낸 것 같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 오늘 비올 줄 알았는데 비도 안 오고 하늘이 파래서 영상도 되게 예쁘게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흰여울문화마을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삼락생태공원에 비해 사람이 꽤 있어서 처음에는 자리 잡고 연주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역시 무리로 다닐 때는 자신감이 생기는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무지개 피아노 계단에서도, 예뻐서 나름 포토스팟이라고 할 수 있는 터널 앞에서도 당당하게 촬영했다. 어떤 분들은 기다려주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귀엽다고 하시면서 지나가 주셔서 감사했다.(어른으로 보일 줄 알아서 귀엽게 봐주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카페에서 쉬는 것까지 완벽했다. 더운 날씨에 계속 돌아다니다가 카페에서 시원하게 음료를 먹으면서 들살이의 묘미가 이런 거지(고생하다가 작은 것에 전에 없이 행복해지는 것) 하는 생각까지 했다.
어제 하루했다고 조금은 더 편하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씩 틀리지만 합주하면서 점점 여러 악기의 소리를 듣고 서로 맞추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서 더 여유롭게, 맞추며 나는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들살이는 아직 6일 남았지만 모둠 들살이는 하루밖에 안 남아서 이제 막 익숙해지고 있는데 아쉽다. 마지막 날인 내일은 더 잘 맞추고 더 즐겁게 띵가띵가 하자!
9/6
오늘은! 벌써 모둠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ㅠ! 3일이 이렇게 빨리 갈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당번인 솔이와 현욱이 오빠가 준비한 누룽지를 먹었다. (고마웠던 점 1) 김치 같은 반찬 하나 없이 먹으려니 후반에는 조금 먹기 힘들었지만 ‘들살이니까 뭐’하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준비하면서 머리 묶는데 채원이 언니가 새우 모양으로 머리를 땋아줬다.(고마웠던 점 2)
모둠 들살이 마지막 날 일지에서야 쓰는 거지만, 나는 모둠 활동할 동안 네비게이터를 맡아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네비게이터로서 열심히 길을 안내하며 몰운대로 갔다. 하지만 나는 카카오 맵이 없으면 길을 잘 못 보고 심지어 지쳐서 기력과 기능 모두 다해서 전혀 이끌지 못했는데 또 몇몇 분들이 정신 차리고 이끌어주셔서 (이런 표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멱살 잡고 캐리해 주셔서) 감사했다.(고마웠던 점 3) 그렇게 어찌어찌 몰운대에서 산을 타고 전망을 봤다. 힘들게 올라야 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망대에서 본 바다는 예뻤지만 연주할 때 힘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들살이 와서 산 한 번 안 타는 줄 알고 아쉬웠는데, 이번에 거의 산을 탄 거니까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다대포 원조 해물칼국수에 가서 매우 맛있는 아주 만족스러운 칼국수를 먹었다. 이것이 모둠원들과 먹는 마지막 점심이라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주르륵.. 까지는 아니었고 아쉬웠다. 소운이 언니가 자상하게도 조개를 까줘서 잘 먹었다.(고마웠던 점 4) 이제 혼밥 하면 혼자 알아서 해야 하지만…
다음으로는 다대포 해수욕장에 갔다. 매우 땡볕이었지만 얼른 털썩 앉아서 연주를 했다. 확실히 사람들 있는 곳에서 연주하는 게 처음보다는 편해졌다. 역시 사람들이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기도 했다. 모둠 들살이 목적 중에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우리끼리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있었는데, 왜인지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돼서 편해졌달까. 어쨌든 이것도 결국 목표한 것과 다를 게 없으니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주를 한 뒤에는 이번 들살이 중 처음으로 바다에 발을 적셨다. 오랜만에 바다에 들어가니 행복하면서도 감질나게 발만 적셔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거의 망했지만 매 장소에서 찍은 다 같이 서서 위아래로 빙 돌리는 영상(?)을 찍은 뒤(이 영상에 한해서 촬영 담당이 되어줬던 소운이 언니에게 고마웠던 점 5를 바칩니다) 모래에 발도 말렸다. 보통 발은 개수대에서 씻어서 닦는 식으로 말리는데 왠지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말리니까 다시금 들살이 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감천문화마을에 갔다. 상당히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막상 가니까 흰여울 문화마을보다 훨씬 집들이 빽빽하게 있어서 연주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많이 촬영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장소인데 생각보다 마땅치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마치고 나서 꽤 홀가분하게 쉬었다.(채원이 언니하고 소운이 언니는 아스팔트 위에 누웠다. 이런 게 들살이지)
그리고 모둠 들살이 마지막 식사로 화반이라는 비빔밥집에 갔다. 가는 길이 되게 복잡하기도 했고 특히 진짜 길이 없을 것 같은 골목도 지나야 했다. 그렇게 식당에 도착해서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먹자니 너무 행복했다. 자꾸 먹는 것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게 좀 웃기지만 들살이는 원래 익숙해져있던 편한 곳에서 벗어나 기본적이고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거니까 맞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소에 와서 모둠 들살이 돌아보기를 했다. 모둠 들살이를 통해 합주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나의 대표적인 목표였는데 솔직히 매번 그러지는 못했지만 하면서 가끔 감동 비슷한 감정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조금 더 다양하고 벅찬 음악들을 연주했으면 더 많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밴드 경험이 처음인 나로서는 이만하면 괜찮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더 욕심을 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 일지 쓰느라 침대를 범하고 있는데 자리를 내주는 수연이도 고맙고(고마운 점 5) 모둠 들살이 동안 길 갈 때마다 맨 뒤에서 지켜주신 노을도 감사하다.(감사했던 점 6)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서 무엇을 깊게 느끼진 못했고 또 목표한 것을 더 이루도록 계획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쉽지만 잠깐잠깐 느꼈던 감정들에라도 감사하겠다!
개인 들살이 목적글_주인공들
여태까지 아이돌 산업의 여러 문제를 체감했음에도 계속해서 소비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에 익숙해졌고 자연스럽게 그것에만 기대게 된 것 같다. 이번에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꾸며진 그들 말고 완벽하게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다 매력적일 다른 존재들에게 매력과 즐거움을 느끼며 힘을 얻는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부산에서 마주치는 존재들과 오감을 활용해 교감을 하고, 관찰하고 그렇게 모은 영감들과 모습들을 담아 그림책을 만들려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내 책의 주인공으로 존재들을 바라볼 때 그 존재들은 훨씬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 아닌 각자의 개성이 있는 존재들로 보일 것이다.
9/7
오늘은 개인 들살이 첫날이었다. 모둠 활동하다가 혼자 지내려니까, 모둠 들살이 동안 의지했던 것들을 다 혼자 해내야 해서 숲터 들살이 처음이었던 작년보다도 막막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당번이 나와 소운이 언니였기 때문에 막막함을 이겨내고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설탕 맛 계란빵을 먹고 난 뒤 채원이 언니와 가는 길이 겹쳐서 함께 출발했다. 그러다 채원이 언니마저 떠나고 나는 홀로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막상 도착하니까 일단 바다를 봐서 좋았다. 일단 바다를 잠깐 보다가 먼저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관찰해 보았다. 역시 의식하고 보니까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바다에 발을 담그며 바다와 나름의 교감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자연 등에 어떤 스토리를 부여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이 모습들을 담아야 할지 고민돼서 헤맸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 해서 끄적여보는데 가져간 것과 같은 류의 색연필은 익숙하지도 않고 그냥 잘 못해서 그림이 안 그려졌다. 애매하게 끄적이다가 일단 밥이나 먹자 해서 일단 점심을 먹었다. 맛있었고 식당 주인님이 친절하게 인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내가 유난히 인상이 좋은가 그래서 그런가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손님들한테도 똑같은 톤으로 인사하시는 것을 보고 아 내가 관찰하다 못해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했구나 아니면 그냥 자의식 과잉이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앞으로 내 활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하며 먹고 난 뒤(그래도 여전히 답은 못 찾았었지만) 다시 송도해수욕장으로 돌아가는데 찻길에 뜬금없게 있는 송도폭포와 마주했다. 뜬금없어서인지, 시원해 보여서인지, 아니면 뭐라도 관찰해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사람들은 다들 그냥 지나치는데 나 혼자 우뚝 서서 구경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시원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나를 보고 꼭 스토리가 없어도 이 모습 그대로 담아도 매력을 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단 그렸는데 그림은 망했다…그러나 미련을 갖고 여러 번 방식을 바꿔가며 그려봤지만 나의 그림 실력은 폭포를 표현하기는 아직 역부족인가 보다…그래서 계속 송도해수욕장에서 얼쩡거리며 방향을 못 잡고 끄적거리다가 이대로라면 어차피 안된다 싶고 마침 시간이 돼서 흰여울 문화마을에 갔다. 가는 길에 버스를 타려는데 내가 현지인으로 보였는지 어떤 분이 버스 타기 직전에 나한테 이 버스 남포동 가냐고 급하게 물어보셔서 나도 급하게 모른다고 하고 노선도를 보는 사이 그분은 먼저 타셨다. 조금 많이 어설펐지만 이게 내가 들살이에서 사람들과 하려고 한 첫 교감이 되었다.
흰여울문화마을에서는 가자마자 그림으로 담고 싶은 담이 있어서 일단은 선만 따서 스케치했다. 그러면서 생각 정리를 해봤는데, 대상 하나하나마다 스토리를 부여하는 건 무리이고, 장소별로 그 장소의 여러 모습들을 한 흐름에 보여줌으로써 나의 시선을 담고 할 수 있으면 서사를 최대한 찾아내서 같이 담아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 정리를 드디어 끝내고 흰여울문화마을을 쭉 걸었다. 걷는 길에 고양이도 만나고 외국인과 커플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 그렇게 사람과 서로 스쳐가는 사이에 관찰하긴 어려워서 다양한 구조물과 자연을 위주로 보려 했다. 그런데 길은 좁고 사람은 계속 지나가니까 정신이 없어서 잘 안됐다. 그래도 하나 뿌듯한 것은 아니 뿌듯하다고 하기에는 꽤나 수준 낮은 일이지만, 길치로서 뿌듯한 것은 길을 전혀 헤매지 않았단 것이다! 거의 그림 지도만을 보고도 길을 잘 찾았다. 하지만 수준 낮다고 한 이유는 그 길이 너무 쉬웠고 지도가 매우 단순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뿌듯해하기로 하자. 어쨌든 그렇게 길을 잘 찾아서 저번 모둠 들살이 이 일차 때 갔던 터널을 지나 해변에 갔다. 해변에서 드디어 그늘을 발견해 자리를 잡고 30분쯤 풍경을 그리다가 30분 전부터 나를 몰래 지켜보고 계시던 노을과 만나 활동 방향에 대해 열심히 논의를 했다.
그리고 저녁 먹을 식당에 갔는데 저녁 시간임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좀 불안했지만 해가 지고 있었기에 얼른 먹어야 해서 그냥 먹기로 했다. 익숙한 우동을 주문하려다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처음 보는 메뉴인 가마타마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할 때 주문 들어오면 무언가를(기억 안 남) 조리하기 시작한다고 뜬 안내글을 대충 넘긴 게 잘못이었는지 한 이십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후회하며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동안 일지 쓰려다가 책 보려다가 하는 등 이도 저도 아니게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가마타마가 나왔을 땐 버스가 오 분 있다 도착 예정이었고 다음 버스를 타도됐지만 최대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오 분 만에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먹었다. 그게 돼서 입안에 면을 가득 채운 채 직원 분께 쟁반을 급하게 반납하고 바로 뛰쳐나와서 간신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렇게 일상이라면 아쉬워할 순간들이 들살이에서는 그냥 하나의 재밌는 해프닝으로 남는다는 것 역시 들살이의 묘미인 것 같다. 그게 별일이든, 아니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엇이 어긋나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기간인 것 같다.
돌아오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잘 관찰하지는 못했고 솔직히 옆에 앉은 분 문신이 워낙 화려해서 쫄았다가(편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어쩔 수 없었다) 통화하시는 말투 듣고 괜찮겠다 싶어 안심한 채 앉아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개인 들살이 첫 돌아보기를 나누고 지금 1층 침대인 수연이 침대와 채원이 언니 침대를 오가며 일지를 쓰고 있다.
9/8
오늘은 벌써 들살이 5일차, 개인 활동 2일차였다. 첫날이었던 어제 혼란을 겪어서 그런지 반면에 오늘은 좀 수월했다.
어제 12시 반에 잠들었는데도 웬일인지 오늘 아침에 아침 당번이라 일찍 준비하고 있던 수연이와 채원이 언니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7시 10분쯤 눈을 떴다. 사소한 거지만 원래 잠귀도 어둡고 잘 깨지 않는 편이라서 왠지 뿌듯했다. 여유 있게 준비하고 나서 부족한 딸기잼으로 풍요로운 아침을 먹었다. 출발할 때도 역시 어제보다 마음이 가벼워서 채원이 언니와 함께 버스에 탔다가 헤어질 때도 전혀 씁쓸함이 없었다. 모둠활동 때 가본 해운대해수욕장에 먼저 갔는데 역시 엄청난 땡볕이었다. 그래도 바다에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보니까 예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자리 잡고(이젠 돗자리도 안 깐다.) 한참을 앉아서 바다 보고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 보고 주변에 계속 걸어 다니는 마른 비둘기 보고 중간중간 그릴 거 생기면 그렸다. 한두 시간 정도 그렇게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께서 땡볕에 있지 말고 저기 그늘에 가라고, 자기 따라오라고 하셔서 교감해야 하는데 다가가기 어려워서 고민하고 있던 나는 잽싸게 일어나서 따라갔다. 토박이라고 소개하신 것이 정말이었는지 아주 좋은 장소여서 그곳에 앉아서 사람들 관찰하다가 가까운 데서 보고 싶어서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파라솔 펴고 아래에 있는 가족들, 누워서 햇볕 쬐다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하시는 분 등등 관찰하다가 이동하는데 모래 속의 조개껍데기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조개껍데기를 한참 줍다가 갑자기 이 조개껍데기를 한곳에 모아두면 누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그 사람을 관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개들로 하트를 만들고 나서 밑에 ‘가져가세요-Take it’라고 적어두고 기다렸는데 끝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어쨌든 기다리는 사이 갈매기들이 바다를 되게 신중하게 보길래 관찰했다. 그러다가 갈매기들이 갑자기 날아서 바다에 착지해 오리처럼 둥둥 떴다. 그래서 그런 갈매기들을 또 흥미롭게 관찰하다가 채원이 언니가 이쪽으로 와서 또 만났다. 그래서 잠시 같이 굴 파서 사진 찍고, 신발 신은 채로 발이 젖은 채원이 언니와 다시 헤어졌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발을 담그며 바다와 놀았다. 그런 뒤 근처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는데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시던 한 아줌마께서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시길래 사람과의 교감을 노리고 있던 나는 적극적으로 도와드렸다. 내 김밥도 받고 나서 자리에 가 앉으려는데 한 할아버지도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시길래 이번에는 먼저 가서 도와드렸다. 모르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원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며 쩔쩔매는 편인데 이렇게 먼저 도와드리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졌고 할아버지께서 여러 번 감사하다고 해주셔서 더 마음이 따뜻해졌다.
뿌듯한 마음으로 김밥을 먹고 그림책방 디얼에 오픈 시간 30분 후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어서 설마..? 닫았나..? 싶어서 인스타 공지도 보았지만 그런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이것도 교감이다 싶어 냅다 전화를 걸었더니 차가 막혀서 늦는다고 미안하다고 비밀번호 알려주시고 들어가서 불하고 에어컨을 켜라고 하셨다. 말씀대로 들어가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 사장님이 오셔서 미안하다고 무료로 차와 과자를 주셔서 감사히 받아먹었다. 생각보다 그림책은 적었지만 영어 그림책이 많아서 해석하며 보느라 4시간이나 그림책을 봤다. 초반에는 한글이든 영어든 긴 글이어도 열심히 읽었는데 후반에 가서는 일단 글이 길면 살짝 덮었다(;;^^) 그래도 본 책들은 다 진심으로 좋았고 감동이어서 다 사고 싶었다. 그리고 다 그림책 만드는 것에 영감이 된 것 같다. 탄생을 하고 죽는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그림책 <때마침> 과 여름의 기억하고 싶은 사소한 순간들을 담은 그림책 <여름빛> 중에 진심으로 고민하다가 <여름빛> 은 그림 위주고 <때마침> 은 글이 꽤 있어서 인터넷에서 더 보기 어려울 <때마침> 을 구매했다.
그리고 나와서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가는데 이미 해가 지기도 했고 길이 골목이라서 좀 무서웠지만 용감하게 나아가서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먹은 카레라이스까지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9/9
오늘은 벌써! 개인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믿기지 않는다. 이번 들살이는 모둠, 개인 나눠서 활동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조식이 나왔다. 조식을 먹은 뒤에는 여유롭게 준비를 마저 하고 아홉 개의 골짜기가 있는 아홉산숲으로 향했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그늘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대나무보다도 그 그늘이 더 반가웠던 것 같다. 그늘을 만끽하고 둘러보니 대나무가 빽빽하게 있었다. 대나무를 본 적이 많진 않아서 신기해하며 만져보았다. 소나무 등도 있어서 그런 나무껍질도 만져보았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평소에는 내가 나무에 기대느라 손을 얹는 때 말고 나무를 만져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어제 그림책방 디얼에서 읽은 <겹겹의 도시>라는 그림책에서 본,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꺾은 나무에서 피가 나는 장면이 생각나서 조심히 만지게 되었다. 사람들도 꽤 있어서 사람들 대화에도 귀 기울이며 갔다. 중간중간에 기록하고 싶은 풍경이나 사람들이 있으면 걸으면서 급하게 스케치했다. 그림책을 그리기 위한 영감을 찾는 들살이로 이번 들살이를 정리하니까 기록할 때도 이것이 맥락에 맞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아홉 살 숲에 들어오고 약 30분 되었을 때부터 배고파서 숲을 나와 먹은 콩국수가 조식 못지않게 어쩌면 더, 훨씬 더 맛있었다. 식당에서 나와서 여태까지 서로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고 같이 있고, 20분 정도 시간차를 두고 들어가서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수연이와 헤어졌다.
다음 행선지는 부산시립미술관의 <많은 사람들>이라는 전시였다. 가는 길에 거의 처음으로 가져간 책을 조금 펼쳐 보다가 도착했다. 어린이 전시라서 정말 어린이들만 있으면 뻘쭘할까 봐 걱정됐는데, 역시 어린이들만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재료들로만 미술 작품을 만드는 틀에서 벗어나, 미술 작품 재료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스티로폼을 재료로 해서 여러 존재들을 조각한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었다. 나도 여러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담는 활동을 하니까 나랑 맞겠다 싶어서 갔다. 그런데 제목은 <많은 사람들>인데 어떤 의도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강아지, 소, 양, 돼지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도 과학자, 약사, 곤충 채집가, 기타리스트, 학생, 홀아비, 바보 등 되게 다양했다. 사진으로 보거나 멀리서 봤을 때는 되게 견고하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스티로폼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스티로폼 조각하는 체험수업에서 만들어진 작품들도 전시돼있어서 구경했는데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어린이들 작품이 더 재밌었다.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이 죽 늘어져 있으니 <많은 사람들> 주요 전시 공간은 오히려 이곳 같았다. 어쩌면 작가님도 의도하신 걸지도…
전시를 30분 만에 다 관람해버려서 벡스코에서 하는 부산일러스트페어도 기웃기웃하고(입장료가 있어서 못 들어감…) 어디서 남은 시간을 보낼지 찾아보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니 40분 정도면 걸어서 갈 수 있겠다 싶어서 40분 걸어서 숙소 근처 카페에 가서 그림책을 구상하며 활동 마치려고 했다. 그런데 걷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고 알라딘도 보여서 들렸기 때문에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40분이 아닌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카페가 일찍 문을 닫는 등 계획이 틀어지고, 틀어져서 그냥 어제 저녁에 먹은 곳과 같은 곳에서 일찍 저녁을 먹었다. 사실 부산 마지막 날이라서 이곳저곳 가보고 싶어서 그 식당 반대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 식당에서 먹었다. 먹고 나서도 미련이 남아서 그 아파트 단지에 가볼까 싶어 그쪽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현장 경찰 저위험 권총 1인 1정 지급’이라는 어떤 후보 정치인이 내 건 현수막의 내용을 봤다. 그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다가 아 맞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야기 같은 거 보면 꼭 이렇게 ’왠지‘ 뭐 하고 싶어서 할 때 사건이 일어난다는 생각까지 들자 노을도 아직 지지 않았을 때 얌전히 숙소로 들어가게 됐다.
마지막 날이라서 개인 들살이 돌아보기를 하자면, 막막했는데 생각보다 활동은 잘 한 것 같고 학교로 돌아가서 모은 소스들을 잘 활용하면 결과물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존재 모두를 주인공처럼 보고 매력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말로 3일 동안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존재들이 주인공으로서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그림책이 만족스럽게 완성되지 않더라도 이미 만족이다. 그리고 내가 개인 들살이 시작하기 전에 막막해서 괜히 엄청 찡찡댔는데 개인 들살이 첫날을 보내면서 생각한 것은 나도 한다면 야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한테 자신이 없어서 태도를 바꿀 생각 없이 게으르게 그렇게 변해갔다는 것도 이제야 느꼈다. 어쩌면 더 성숙해질 수 있었는데 11학년이나 된 것에 비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서툴러서 가끔 자괴감이 들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이렇게 새로 한 생각, 새로 느낀 지점을 봤을 때 이번 들살이 동안 꽤 큰 수확을 거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9/10
오늘은 전체 들살이 첫날이었다. 여태까지는 주로 몇 시에 일어나야하든 누가 깨우기 전에 일어났는데 오늘은 수연이가 깨워줄 때까지 못 일어났다. 어제와 같이 조식을 먹은 뒤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여섯 밤을 함께한 숙소에서 나왔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부산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 가서 떡과 김밥을 샀다. 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서울에서 부산에 갈 때는 약 6시간 운행이었는데 이번에는 3시간이라 금방 도착한 것 같았다. 버스에서 얕고 길게 졸며 오다 내리고 조금 걸으니까 나무가 울창한 장태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으려니 힘들었지만 풍경만큼은 어제 돈 내고 간 아홉산숲보다도 예뻤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니 반가웠지만 지쳐서 숙소에 들어오고 한동안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까막잡기 변형, 아이엠그라운드, 마피아, 눈치게임을 했다. 저녁을 먹고 들살이 돌아보기도 하고, 나가서 별도 보니 잘 때가 되어 일지를 쓰고 있다.
9/11
오늘은 대망의 들살이 마지막 날이다. 아침 7시에, 인기척에 눈을 뜨고 좀 누워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스트레칭도 하고 다 같이 하는 마지막 식사로 누룽지를 먹었다. 각자 짐을 싸고 다 같이 숙소를 나섰다. 숙소 근처에 있는 숲길 어드벤처에서 전망대도 오르고, 사진도 찍고, 출렁다리도 걷고, 놀이터에서 놀았다. 숲터 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숲터 다 같이 놀이터를 갈 때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기지만 막상 가면 또 재밌게 놀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어릴 때의 놀이터 활용력에는 딸리는지 얼마 안 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급기야 데크에 누워 잤다. 그래도 숲에서 자니까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번 들살이 전체를 통틀어서 느낀 점을 얘기해 보자면, 작년에 들살이를 한번 경험해 봐서 그런지 준비 과정 때부터 큰 떨림은 없었다. 또 저번의 들살이가 재밌긴 했지만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도, 기대되는 마음도 확실히 덜했다. 전날까지, 심지어 당일 아침까지도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았고 도착 후에도 부산 시내의 모습이 서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여서 마찬가지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상태였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이유는, 이런 잔잔한 상태를 들살이 끝까지 유지한 것 같기 때문이다. 들살이를 하면서도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작년처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학교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게 맞지만 말이다.) 두 번째라고 벌써 무뎌진 것인가 싶어 아쉽기는 하지만 여유가 생긴 거라고 생각하겠다. 여유가 있어서였는지 작년에는 내가 해야 하는 활동만 생각하며 활동했다면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생각도 이번 개인 들살이 주제인 모든 존재를 주인공으로 바라보자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주인공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인 것이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이 주체가 된다는 것으로, 이번에 내가 주체적으로 살자고 생각한 것은 나도 주인공으로서 존재하자는 결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막연하고 구체적이지는 못한 결심이지만 새로 고민해볼 것을 또 만난 기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이번 들살이가 잔잔해서 나중에 생각했을 때 임팩트가 별로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은 것과 달리 내 결심에 있어 흔들릴 때마다 돌아보는 여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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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들살이의 묘미라니.. 과연 어떤 느낌일까! 자유학교 학생들이 부럽네요.
머릿속은 복잡하기도, 감정은 다채롭기도 했던 저의 여정, 함께 보실까요!? ----아니 다들 뭐 이렇게 흥미롭게 서두를 끌어내는 건가요? 누가 가르쳐주는 건지? ^^ 조개껍데기를 줍다 조개껍떼기를 관찰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하트를 만들다니~ㅎ 그 하트를 발견한 누군가를 혼자 상상하며 즐거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