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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명창) 듣기방 스크랩 이희완 명창의 `창부타령`
예쁜안나 추천 0 조회 321 10.12.16 21:4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 시대의 숨은 명창..

이희완 명창의 '창부타령'

 

 

 

이희완 옹은 여자 명창이 유독히 많은 경기 소리계에서 유일하게 몇 안 되는 남자 명창이시다.

 

부계와 모계에게서 물려받은 음악적 소양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회적 풍토 때문에 뒤늦게 소리를 배운

그는 학습과정에서 다양한 권번출신의 소리 선생들을 만나 전수받았으며  특히 이들 스승들에게 배운 것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옛 가사와 가락을 배웠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노랫가락은 생존해 있는 다른 경기민요 명창들과는 다른 창부타령조로 불려졌고

특히 경기도에서 난 산이(세습 국악인)만이 낸다는 소리의 진수를 맘껏 보여주고 있다. 

 

 

       

      창부타령 이희완

         

      아~~디리리~ 어야, 아니 노진 못하리라.

      공도라니 백발이요 면치 못 할 것은 죽엄이로다.

      천황지황 인황씨며 요순 우탕 문무주공 성덕이 없어 붕했으며

      말 잘하는 소진장이도 육국제왕을 다 달랬으나

      염라대왕을 못 달래고 한 번 죽엄을 못 면했으나

      그러하신 영웅들은 죽은 사정이라도 있건마는

      초로 같은 우리 인생 한번 아차 죽어지면

      움이 나나 싹이 나나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 잎진다. 서러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은 너는 다시 피건마는

      우리인생은 한 번 늙으면 다시 갱소년 어렵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다. 인생 백년이 꿈이로구나.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움을 운다.

      무슨 새가 울려마는 석벽화전에 비운이라

      하야 귀치 진터를 보고 실리 통곡을 하는 모양

      사람의 인정 치고는 차마 어찌 가이 없구나.

      이후에 님 만나 보면 후회막급이 잊어 질거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아. 아니 노진 못하리라.

       

      만리창공 은하 흩어지고 무산 십이지근.

      월색도 유정 터라 님이 라면 다 다정하고 이별이라고 다 슬픈가.

      이별마자 지은 맹서를 태산같이 믿었더니

      태산이 허망이 무너질 줄은 어느 가인이 알어 줄거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아. 아니 노진 못하리라.

       

      서산에 해 기울고 황혼은 짙었는데

      안 오는 님을 기다리며 마음을 조일 적에

      동산에 달이 돋아 왼 천하를 비쳐있고

      외기러기 홀로 떠서 짝을 불러 슬피 우니

      원망스런 우리 님을 한없이 기다리다

      일경 이경 삼사오경이 어느 덧이 새벽일세.

      추야장 긴긴 저 밤을 전전불매 잠 못들제

      상사일념 애 타는 줄 그대는 아시는지.

      둘데 없는 이내심사 어디다가 붙여 볼까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아. 아니 노진 못하리라.

       

      한 송이 떨어진 꽃이 낙화 진다고 서러워마라.

      한 번 피었다 지는 줄은 너도 번연히 알 것 마는

      모진 손으로 꺾어다가 시들기 이전에 내버리니

      버림도 쓰라리거던 무심코 밟고 가니 낸들 아니 슬플 소냐.

      숙명적인 운명이라면 너무도 아파서 못 살겠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아. 아니 노진 못하리라.

       

      지척동방 천리 되어 바라보니 묘연쿠나.

      은하작교 꽉 무너졌으니 건너갈 길 아련하다.

      인적이 끊켰으니 너도 차라리 잊을까나.

      아름다운 자태 거동 이 목에 매양 있어.

      잊으리라고 애를 쓴 들 그래도 못 잊어 한이로구나.

      눈감은 널 보여 진다면 숙영조차 끊켜 질거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자 좋아. 아니 노진 못 하리로다.

       

 

 

(http://bbs5.miznet.daum.net/gaia/do/miztalk/miztoc/life/episode/read?bbsId=00551&articleId=43895)

 

 

 

경기민요 명창 이희완   글/노재명(국악기록보존연구소장)

 

이희완은 1938년 음력 3월 6일(호적:7월 9일)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어천리 426번지

부친 이중식과 모친 차간난 사이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이희완은 전주 이씨 19대 손으로서 족보에는 이강춘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있다.


그의 부친 이중식은 예술에 소질이 있었으나 국악에 대한 사회의 천시 풍조 때문에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며

모친 차간난 역시 국악에 종사한 이는 아니고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리고 이희완의 아내(제길용)와 아들(3남) 역시 국악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옛 집안 어른 중에는 매우 유명한 국악인들이 많았다.


이희완의 조부 이봉운은 일제 때 활동한 국악인으로 민요, 가야금, 줄타기 등 만능 재주꾼이었다.

특히 장기였던 줄타기 솜씨로 널리 이름을 떨쳐 이웃나라 일본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한번은 일본인들이 그 기예를 시험해 보려고 이봉운이 노들강(한강)에 줄을 매고 재주를 부리고

있는데 줄을 일부러 끊었다 한다. 그러자 끊긴 줄이 수면 위에 뜨고 이봉운은 물에 살짝 잠겼다가 수영 반,

줄타기 반으로 중심을 잡으며 줄 위를 타고 물 밖으로 유유히 나왔다 한다. 마치 마술같은 그 갑작스러운

묘기에 당시 구경하던 이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하는데 이는 이희완이 어려서 집안 어른들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라 한다.


그리고 이희완의 할아버지뻘 되는 이봉업은 경기민요 명창으로서 서울 서대문에서 살면서 자신의 딸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한다. 이는 이희완이 서울 아현동에서 살고 있던 젊은 시절에 목격한 장면이라 한다.
또한 현재 인천에서 삼현육각 악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수는 이희완의 종조부이며 줄타기와 판소리

고법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정업은 이희완의 부친 이중식과 6촌간이다. 그리고 현재 서울에서 피리, 대금

악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한국의 부친 김광채(경기 민속악 장고 명인)와 이희완의 조모 이춘삼은 이종간이고

김광채의 동생 김광식은 경기 민속악 대금의 대명인이었다. 이희완의 말에 따르면 이춘삼은 시흥군 군자면

사람으로 소리를 아주 잘했다 한다.


이희완은 어려서부터 국악에 흥미가 있어 유성기음반이나 라디오를 통해 민요를 익혀 따라부르곤 했다 한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10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경기민요를 배우기 위해 수소문끝에 수원의 권재옥(여자)을

찾아갔다. 권재옥은 수원 화성권번 출신으로 지금 생존시 약 72세 가량되는 사람인데 약 4년 전에 작고하였다.

그런 권재옥에게 이희완은 수개월 동안 경기민요를 두루 익혔는데 권재옥은 인간문화재 이상의 실력가였으나

소리제가 이희완이 만족할 만큼의 수준은 되지 않아 그 문하를 나와 다시 고민끝에 명창 김옥심(의정부 사람)

을 찾아갔다.

 

그런데 김옥심(사진)은 당시 병으로 몸이 불편하여 가르쳐줄 수 없다며 대신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한다. 그 친구는 다름아닌 한성권번에서 김옥심과 동문수학한

김정희였다.

김옥심이 이희완의 소리를 듣고 칭찬하며 웬만한 사람한테 배워선 안되겠고 기량이

높은 실력가한테 배워야 겠다며 은거 생활 중이던 김정희를 소리 선생으로 특별히 주선

해준 것이었다.

김정희는 서울 사람으로서 지금 살아있다면 약 75세 가량되는데 작고한지가 10년이

넘었다. 그런 김정희에게 이희완은 만 1년 동안 경기민요 전반을 두루 사사받았다.

이희완의 나이 20여세 때의 일이다.

이희완은 김정희의 소리가 김옥심이나 인간문화재를 능가하는 대명창이었다고 말한다.

 

김정희는 목이 곱고 어느 소리를 해도 다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젊어서 거부와 혼인한 후 가정에 들어앉아

대외적인 활동은 중단하고 서울 서대문의 자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소일거리 삼아 소리를 가르쳐

주었다 한다. 김정희의 수제자로는 이희완과 최영란을 꼽을 수 있다. 이희완 증언에 의하면 최영란은 지금

생존시 약 54세이며 약 7년 전에 일본서 세상을 떠났는데 소리를 아주 잘했다 한다.


이희완은 김정희 문하에서 소리를 학습한 후 ‘멋이 가득한’ 이동안, 방인근 같은 경기 예인들과 교류하면서

기량이 나날이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본 음반에서 이희완의 소리 녹음에 장구 반주를 맡은 방인근은

이희완과 교류한지가 약 25년 가량되었다. 그리고 이희완은 이동안이 과거에 서울에서 민속예술 학원을

운영할 때 4년여 동안 같이 활동하였다. 한편 전태용과는 별로 교류가 없었다 한다.


이희완은 1990년대 중반 충남 태안에서 약 3년 동안 그곳 국악협회 회원들과 함께 공연, 강연 등의 국악

활동을 했다. 이희완은 현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2동에 거주하면서 수원의 민예총과 장애인협회

경기도지부, 백중 풍물단 등의 회원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함께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1999년 9월 21일 KBS 본관 RS16스튜디오에서 본 음반에 수록된 경기민요를 녹음하였는데 이 모두

 스승 김정희의 소리제라 한다. 이희완은 전태용 이후의 남창 가운데 경기민요의 진수를 제대로 발휘하는

보기 드문 소리꾼으로 평가된다.


* 이 글은 KBS에 의해 1999년 말 제작, 2000년 1월 발매된 '우리 시대의 숨은 명창 소리집' 음반

  (신나라뮤직, 1CD) 해설서에 실린 내용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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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26 13:04

    첫댓글 창을 아주 잘 하십니다.듣기좋습니다.남창중엔 잘하시는군요.
    그런데 직접 사사받았다 하여 스승인 김정희선생이 김옥심선생을 능가했다는 평은 좀 잘못된것 같습니다.
    실제로 김정희선생은 대단하신 명창이심엔 틀림없지만 김옥심선생과 비교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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