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는 독일과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독일 뮌헨에서 오스트리아의 국영철도(OBB)를 이용하여 3시간 만에 브레겐츠에 도착했다.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이뤄졌다는 보덴 호수는 작은 바다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건축물이 눈을 가득 채우던 뮌헨과 달리, 보덴 호수를 덮은 청명한 하늘은 눈을 말끔히 씻어낸다. 호수 주변에 말끔히 닦인 도로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품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 호수의 낭만과 어우러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1946년에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벌(7월 22일~8월 23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쟁의 피로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온 휴양객들을 대상으로 소형선박 2대를 띄워놓고 오페라 공연을 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89년에 페스티벌을 법인화했다.
이 축제의 성공 비결은 여름밤의 호수를 수놓는 화려한 무대와 그것이 연출하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있다. 올해 오른 작품은 푸치니의 〈투란도트〉로 연출은 스위스 출신의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 그는 푸치니가 가졌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낮에 들른 무대 뒤는 공사 현장 같았다. 335개의 벽돌로 쌓은 성벽은 중국의 랜드마크인 만리장성의 일부를 뚝 떼어 옮긴 것 같았고, 진시황 무덤의 토용 144개는 무한 복제된 듯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실제 공연에선 토용에 조명을 비춰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울긋불긋 빛을 냈다.
객석에 들어서니 마치 야구장에 온 듯하다. 6,950석의 객석은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석양이 지고 밤 9시가 되자 공연이 시작됐다. 지역 시민들로 가득 찬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객석과 달리 브레겐츠의 객석은 첫눈에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이들로 가득했다. 이 도시의 인구는 2만여 명. 한 해에 25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레스토랑과 호텔은 연일 만원을 이룬다는데, 공연 전 식사를 하던 곳에서나 객석에서나 그 소문을 체감할 수 있었다.
| 공격적 마케팅과 뚝심
비교적 좋은 좌석에서 관람했지만 배역의 큰 움직임은 보여도 미세한 표정까지 읽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호수에서 진행되는 오페라답게 ‘밤’과 ‘물’의 블렌딩은 색다른 맛을 제공했다. 중국식 전통 등불을 매단 배를 타고 등장한 투란도트 공주, 그녀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이방의 왕자는 참수된 후 성벽 꼭대기에서 호수로 버려진다. 어디에선가 오리 떼가 날아오더니 꽥꽥 울기도 한다. 음악은 조용히 흐르는데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관객들은 재미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한 작품에 2,000만 유로(한화 약 270억 원)를 투입한다. 처음에는 목재 말뚝을 이용한 수상 무대였지만 폭우와 같은 자연재해를 견디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대치되었다. 60년간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리노베이션을 거치면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오페라 무대는 이제 첨단 장비와 음향 시설을 갖춘 세계 최고의 무대가 되었다.
홍보 전략도 진취적이다. 2008년에는 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촬영지로 무대를 내주었다. 무대 공간 자체가 주인공격인 이 무대 위에서 총격신이 펼쳐졌다. 영화를 통한 홍보 덕에 그 후 티켓 수입도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런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큰 특징은 수상 오페라라는 공연 콘텐츠를 유지해온 뚝심과 이를 수변 공간이 제공하는 낭만성과 잘 연결한 것이다. 사실 공간이 품고 있는 기운과 성격은 그곳과 연계된 공연은 물론이고 소비하는 이들에게 큰 작용을 한다. 한국도 몇 년 전에 서울의 한 고궁을 배경으로 야외 뮤지컬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공연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콘텐츠를 브랜드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부족했던 기억이 난다.
공연이 끝난 뒤 숙소로 40~50분 동안 걸으면서 보덴호가 주는 낭만에 취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6,950석을 채우던 관객들은 그렇게 호숫가의 산책자가 되어 있었다.
| 음악들을 엮는 실(다양성)과 바늘(입체성)
다음 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돔 성당, 프란치스카 성당, 성 베드로 성당의 위엄을 위해 일제히 제 키를 낮춘 건물들이 주는, 역사에 대한 겸손함이 이 도시의 첫인상이었다. 이곳 역시 뮌헨처럼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도심의 한가운데로는 알프스에서 흘러나온 잘자흐 강이 신시가와 구시가 사이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지휘자 카라얀의 고향이다. 잘츠부르크에 대해 ‘게르만주의와 라틴주의가 황홀하게 만나 키스하는 곳’이라고 말한 프랑수아 모리악. 그의 말처럼 게르만주의로 대변되는 엄격함과 라틴주의의 사색과 자유분방함이 빚은 지기(地氣)가, 형식미와 파격미를 상생하게 한 모차르트와 지휘자 카라얀을 태어나게 한 힘이 아닐까. 그 외에도 명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이 있으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매년 7~8월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있다. 올해는 오페라, 연극, 콘서트 188개가 7월 18일부터 30일까지 극장 12곳에서 열렸다.
대낮의 시내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오페라를 선전하는 현수막 아래서 커피를 홀짝이는 이들은 해가 떨어지면 공연장으로 들어갈 사람들처럼 보였다. 올해로 95년이 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공공지원의 규모는 20% 정도이다. 대부분 공연은 매진이며, 20만 명의 관광객을 통한 티켓 판매 수입만 2,822만 유로(380여억 원)에 달한다. 항공사, 호텔, 상점, 레스토랑 등이 누리는 특수까지 합치면 경제효과는 티켓 판매 수입의 10배에 달한다. 하지만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이다. 강원도 속초나 통영국제음악제가 있는 통영과 비슷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특징은 다양하고 입체적인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데뷔 40주년을 맞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라의 여왕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의 스타들이 별들의 전쟁을 치르는가 하면, 현대음악 작곡가들을 조명하고 기념하여 서서히 신화화하고 있었다. 길 가다 잠시 들린 음악서적매장의 쇼윈도에는 작곡가 볼프강 림(1952~)의 악보가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볼프강 림은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공연인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작곡가이다. 이유를 묻자 그의 음악극 ‘멕시코 정복’이 오른다고 한다. 또한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라’고 외친 반(反)전통의 기수 피에르 불레즈(1925~)는 탄생 90주년을 맞아 명연주자들이 ‘잘츠부르크 컨템포러리’ 시리즈에 출연하여 그에게 오마주를 바치고 있었다.
| 공유를 위한 장과 소수 애호가를 위한 최고의 시설
은둔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리사이틀이 있기 몇 시간 전. 대축제극장 너머의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 모인 군중은 초대형 스크린에 흐르는 오페라 영상물을 즐기고 있었다. 2003년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선보여 인기를 모았던 오페라와 콘서트를 7월 25일부터 8월 30일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페라라는 유산을 공유하기 위한 장치이자 내년 축제를 위한 홍보처럼 보였다. 오래된 건물의 외벽을 반사판 삼아 울리는 테너 카우프만의 아리아가 어둑해져 가는 하늘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소콜로프의 리사이틀은 대축제극장에서 있었다. 2,400석의 거대한 극장이다. 잘츠부르크 오페라 실황을 영상물로 접할 때는 무대미술이 가득하여 그 크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음향판과 피아노만 덩그러니 있는 무대는 널찍하다 못해 휑한 느낌을 준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밤 9시. 소콜로프는 ‘은둔의 피아니스트’답게 무뚝뚝하다. 등장, 인사, 곧바로 연주, 인사, 퇴장. 마치 무뚝뚝한 걸음으로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영화감독 히치콕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가 선사한 바흐의 파르티타, 베토벤의 소나타 7번, 슈베르트의 소나타 D.784 그리고 앙코르로 이어진 쇼팽의 곡들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소콜로프의 유려한 연주와 대축제극장만의 완벽한 음향. 티켓 가격에 상관없이 어떤 자리에서건 완벽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최고의 향기만을 모아 만든 향수에 취하는 것 같았다. 9시에 시작한 공연은 12시가 넘어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잘츠부르크의 밤은 굵은 빗줄기에 젖고 있었다.
| 도시의 ‘자산’과 ‘유산’으로 빚은 오스트리아의 음악축제
브레겐츠 페스티벌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이다. 브레겐츠가 하나의 오페라 작품과 무대에 집중하는 ‘원 소스’ 전략을 취한다면, 잘츠부르크는 여러 장르와 스타 음악가와 역사를 한데 섞는 ‘다양성’과 ‘입체성’의 전략을 취한다는 점이 각각의 특징이며 차이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자산과 유산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있다. 브레겐츠는 호수라는 ‘자산’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카라얀이라는 ‘유산’을 활용한다. 음악이란 모든 예술들 중에서 가장 늦게 피는 식물로, 그 문화가 가을을 맞이해 시들 무렵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 철학자 니체. 하지만 그의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가장 늦게 완성된 음악은 가장 앞서 피운 문명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모두 조상이 쌓은 문화적 적금을 후손들이 물려받아 그 원금의 이자로 문화의 꽃을 피우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축제’란 ‘축재(蓄財)’에서 오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 급하다. 고급화 전략을 추구한다며 클래식 음악의 기반이 전혀 없는 곳에 갑자기 음악 축제가 들어선다. 지역시민의 힘이 반영되어 소통해야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급격히 진행되고 빠르게 꽃피우길 원할 뿐이다. 도시·사람·음악을 엮는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작지만 느리게 걸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