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영국의 지배에 맞서다
1) 영국의 인도 침략
무굴제국은 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1526∼1857년)이다. 무굴제국은 1526년, 몽골의 후손인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가 인도에 세운 나라이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는 악바르 왕 때였다. 그는 인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아우랑제브 왕 이후 국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이러한 가운데 영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의 침략을 받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신항로 개척은 15~16세기 유럽이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동방과 신대륙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 유럽의 신항로 개척의 중심에는 향신료(香辛料)가 있었다. 향신료(香辛料)는 음식물에 맵거나 향기로운 맛을 더하는 조미료를 말한다. 향신료에는 고추, 후추, 파, 마늘, 생강, 겨자, 깨 등이 있다. 향신료는 향료의 일종이다. 향료(香料)에는 식품용, 화장품용, 향목(香木. 연기 피움), 향수 등이 있다. → 16세기 초 포르투갈에 의해, 인도양을 지나 인도로 항해하는 뱃길 무역이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되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수입되는 후추(향신료)로 유럽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기를 많이 먹는 유럽에, 향신료는 고기 특유의 냄새를 잡는데 절대적으로 필요). → 향신료는 영국과 네덜란드는 인도로 향하는 해상무역에 직접 나서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돈이 됨). 바닷길을 개척하여 인도로 진출은 영국이 앞섰지만 해상무역은 네덜란드가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 동인도회사는 17세기 초 영국(1600)·네덜란드(1602)·프랑스(1604) 등이 자국(自國. 자기나라)에서 동양에 대한 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설립한 무역회사를 일컫는 말이다. 동인도(東印度)는 인도의 동부 지역을 뜻한다. 후추·커피·사탕·쪽·면직물 등은 동인도의 특산품이었다. →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동인도에 국영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인도와의 무역에 집중함 → 무굴제국의 쇠퇴를 틈타, 영국은 인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인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 프랑스와 영국은 인도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두고 경쟁함 → 플라시 전투(1757)는 인도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이다. 영국은 플라시에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고(영국의 승리) 인도 무역을 독점하였다. → 플라시 전투에서의 승리로, 영국은 인도 무역권 독점은 물론 벵골 지방 통치권과 조세 징수권을 갖게 되었다. → 19세기 중엽에는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인도를 그들의 원료 공급지이자 상품 시장으로 만들었다.
2) 세포이의 항쟁(1857~1858)
영국에 의한 인도의 식민지화는, 인도 사람들은 점점 가난하게 만들었다. → 영국의 동인도회사(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수탈 앞잡이 구실을 했던, 국영회사)는, 자체적으로 군대를 모아 인도 지역을 점령해 갔다. → 동인도회사의 군인들은 대부분 영국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인도 출신의 병사도 있었다. 그들을 ‘세포이(병사라는 뜻)’라고 한다. 세포이(sepoy)는 영국 지배 시기 인도에서 채용된 현지 용병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중에서 인도인 용병을 뽑아 배치했는데 이들을 세포이라고 불렀다. →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인도 출신의 용병(傭兵. 고용한 병사)을 세포이라고 부른다. → 세포이 항쟁의 원인은, 영국의 강압적이 식민지 지배 정책과 인도 면직물 산업의 몰락, 종교적 대립을 이용한 인도인 분열 시도, 크리스트교 개종 시도, 그리고 영국의 인도 서쪽(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진출에 세포이의 해외 파병(세포이는 해외 파병에 반대함) 등이었다.
→ 특히 세포이에게 새로이 지급된 총에는, 소기름과 돼지기름이 묻어 있었다. 소는 힌두교에서 신성시 하는 동물이고, 돼지는 이슬람교에서 더럽게 여겨 기피하는 동물이다. → 한마디로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을 무시한 것이다. 이에 세포이들이 항쟁을 일으켰다. → 세포이 항쟁에는 인도인 각계각층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영국군의 반격으로 항쟁은 실패하였다. → 이 과정에 무굴 제국이 멸망하였고(1858), 동인도 회사는 해체되었으며(동인도 회사라는 무역회사를 통한 인도 지배가 어렵다고 판단함), 영국은 인도를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 인도제국의 수립(1877. 영국 정부가 직접 통치한 식민지 인도의 공식적인 호칭으로, 영국 여왕 빅토리아가 인도 황제를 겸함으로써 인도제국이 성립하였다) → 세포이 항쟁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인도인 각계각층이 참여한 최초의 반영 민족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의미)가 있다.
* 영국의 인도 점령 과정 : 동인도 회사 설립(1600) → 후추·차·면화 수입, 면제품 수출 →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의 승리(1757. 영국의 인도 독점) → 세포이 항쟁(1857) → 인도의 무굴제국을 멸망(1858) → 영국령, 인도제국 수립(1877. 영국의 인도 직접 지배)
3) 인도 국민 의회(1885)
세포이 항쟁의 과정에서 인도인들의 민족의식이 성장함 → 영국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 · 학생 · 종교 지도자 · 상인 · 지주 등(중상류층)을 중심으로, 우상 숭배 배격 · 카스트 제도(신분제도)의 악습 철폐와 같은 계몽 운동을 전개함 → 인도 국민 의회
1885년 간디에 의해 조직된 인도의 보수 정당. 영국은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에 협조적인 관리와 지식인들을 조직하여 반영 민족 운동을 막으려 하였다. 국민회의파는 1885년 12월 다다바이 나오로지와 스렌드라나트 바네르지의 주선으로 뭄바이에서 창립되었다. 국민회의는 처음에는 영국에 협조하였으나, 영국이 벵골 분할령을 발표하자, 오히려 반영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진보파의 지도하에 스와라지(독립)를 지상 과제로 삼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간디와 네루의 지도 아래 전 인도로 그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 후 오늘날까지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