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서 이북을 몇 개 다운받았다. 와이파이가 항상 되는 것이 아니니 될 때 되도록 이런 일들을 처리해야 좋다.
7:30경에 우리 모두 일어나 준비했다. 약간 온도가 낮아진듯 하나 그다지 춥지는 않다. 점점 겨울로 들어갈 것이다. 안개가 끼어 있다. 안개는 하루종일 끼었고 날은 흐렸다.
다비드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차도와 좀 떨어져 나란히 가는 흙길을 걷기도 하고 따로 길이 나기도 하다. 길이 별로 특징적인 것이 없다. 아침을 중간에 벤치에서 먹고 추워서 장갑을 꼈다.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간다는 사인이 보인다. 중간에 사하군이라는 제법 규모있는 도시를 지난다. 레온 주에서 레온 다음으로 큰 도시인 것 같다. 다비드가 다른 길로 앞서간다. 카미노가 다른 길도 있나보다.
가던 중간에 벤치에서 쉬면서 오늘 목적지를 살펴보는데, 다비드가 지나간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베르시아노라고 답하니 자기는 엘 부르고까지 간단다. 무려 41킬로이다. 그런데 자료를 보니 베르시아노에는 알베르게가 닫혀있다고 되어 있다. 베르시아노는 구간의 종점인데 알베르게를 모두 닫는 건 문제가 있다. 그나저나 닫은 것이 사실이라면 나도 41킬로를 걷던지 거기서 호텔을 찾아야 한다. 겨울 카미노는 이런 점이 싫다. 마을이 삭막한 것도 그렇다. 원치 않게 40이상을 해야될 지도 모르겠다.
베르시아노에 도착하여 알베르게를 찾았다. 문은 닫혀있지만 따로 붙여놓은 것이 없어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근처 집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물으니 세라도란다. 스페인말로 닫혔다는 뜻이다. 현재 4시가 다 되었으니 7.7킬로를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저멀리 다비드가 걷는 것이 보인다.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엄청 서둘러서 드디어 엘부르고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찾지 못하여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찾아갔다. 직원은 없고 다비드가 바에 간다고 나선다. 의도하지 않게 너무 무리했다. 이 알베르게도 어제처럼 우리 둘뿐이다. 침실은 2층에 있고, 4개의 방에 6-8인용 침대가 있다. 다비드가 일찍 움직인다고 하니 다른 방에 짐을 풀었다.
난방이 안되니 춥다. 겨울의 이런 면이 싫다. 추워서 방에 있을 수 없다. 다비드처럼 바에 가서 몸 좀 녹여야겠다. 근처에 불켜진 레스토랑이 있어서 갔더니 다비드가 있다. 카페콘레체 한잔 주문했다. 1.1유로.
다비드가 수퍼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먹는다고 해서 같이 갔다.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데워 먹을 것을 팔지 않는다. 빵과 음료만 사서 나왔다. 1.9유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주문하려 했는데 안판단다. 도대체 어쩌라구. 수퍼에 가서 스프와 맥주를 샀다. 2.4유로.
알베르게로 와서 스프를 전기 레인지에 데웠다. 맛이 시큼하다. 다 먹지 못했다. 다비드가 모따렐라를 남겨주어 먹었다.
알베르게 직원이 왔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이것도 하니 하던 일을 끝내고 오느라 늦었다고 다비드가 설명한다. 사용료는 기부제이다. 페치카에 나무를 넣고 난방을 한다. 이것이 알베르게에서 하는 유일한 난방인 듯하다. 뜨거운 것이 들어가고 좀 따뜻해지니 괜찮다.
다비드는 내일 3-4시에 레온에 도착해야 한다고 일찍 떠난다고 한다. 내일도 거의 40킬로를 뛰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내일 레온 직전 마을에서 쉴 예정이다. 많이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다.
12월13일 목
역시 따로 난방이 안되니 방안이 춥다. 중간에 깨기를 몇 번. 다비드가 옆방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7시가 안 되었다. 나는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더 자야지.
8시 다되어 일어났다. 커피믹스 2개로 커피를 타고 어제 산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창밖을 보니 바닥이 젖어있다. 배낭커버를 씌운다. 8:15에 알베르게를 나선다. 얼마 전에는 이 시간에 환해졌는데, 지금은 아직 어둡다. 동지까지는 일출 시각이 계속 늦어질 것이다.
13킬로 떨어진 마을까지 길이 똑같다. 오른쪽에 차도, 인도가 좀 떨어져 있고 왼쪽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중간에 기차길과 평행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기차길 아래로 통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일한 길이 이어진다.
비가 오다가 그치다 한다.
5킬로 떨어진 다음 마을까지도 동일하다. 1킬로 전에 비가 많이 온다. 배낭커버가 침낭을 커버할 정도로 크지 않아 좀 젖을까 걱정된다. 모자도 젖고 겉옷도 젖는다. 바에 들어가 카페올레를 시켰다. 거기서 점심을 먹을까 생각했는데 그러기에 눈치가 보인다.
마을을 지나서 120번 도로와 평행하게 간다. 차길과 떨어져있긴 하지만 차들이 지나가면서 바퀴가 내는 흙먼지 섞인 물보라에 옷이 엉망이 될까 걱정이다. 조금 더 가니 아예 카미노 길이 차길의 갓길이 된다. 화물차가 만들어내는 물보라를 뒤집어쓴다.
푸엔테 빌라모로스 근처 벤치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 목표지에 도착했는데 너무 한산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리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느낌이다. 그냥 지나쳐 레온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 조금더 무리하면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대도시에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큰 창고형 건물과 자동차회사들이 보인다. 도시로 들어가니 푸엔테 카를로스라는 마을이다.
카미노 사인이 여기는 다르다. 조그만 삼각형에 겉이 유리로 되어있다. 어리석게 만들어서 유리가 다 깨졌다.
여기는 화살표가 확실하게 그려져 있다. 그걸 따라가니 구도시에 도착한다. 알베르게는 오래된 건물이다. 조금후에 다비드가 도착한다. 내 크레덴셜은 상의 안쪽에 넣어두었는데 고에텍스임에도 불구하고 젖어 도장이 번져있었고 자료는 물에 불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이 2명 더 있다. 지난번에 만난 친구. 나중에 보니 한국인 아가씨도 한 명 늦게 도착했다. KKS와는 이미 만났던 사이이다.
구도시 구경도 할 겸해서 나섰다. 아직도 비가 와서 우산을 다시 들어와 챙겼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곳이 구시가지이다. 그다지 크지 않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식당으로 보이는 곳을 찾지 못하겠다. 버거킹이 있어서 햄버거로 저녁을 떼웠다. 비슷한 맛이다.
돌아와 전자책을 읽었다. 안쪽 테이블에서는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소리, 웃음소리가 들린다. 10:30에 소등이라는데 좀 일찍 그러면 좋겠다.
12월14일 금
알베르게에는 10여명이 묵었다. 내 옆 침대에도 누군가 누웠다.
7:00쯤에 알람이 울리더니 7:30에는 불이 켜진다. 일어나라는 의미인 듯. 다들 준비한다. 아침이 제공된다. 비용은 기부제이다. 커피 한 주전자, 밀크 한 주전자가 테이블 놓여있다. 빵과 잼이 준비되어 있다.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를 8:00쯤에 떠난다. 사방이 어둡다. 화살표만으로 길을 찾기 다소 버겁다. 길은 대성당으로 향한다. 어제 좀더 살펴볼 걸 그랬다. 대성당을 지나 시내를 통과한다.
비와 바람이 분다. 하나만이면 좋을텐데. 다행인 것은 기온이 그리 낮지 않단는 점이다. 6도 정도.
모자가 벗겨질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분다. 우의를 입을 걸하는 후회가 든다. 바지는 부분 방수인데 허벅지쪽이 젖어 바지가 살에 붙는다. 신발은 고어텍스면 방수가 기본일텐데 새서 물에 질퍽거린다. 이 상태로 계속 가기 어렵다.
마을 2킬로를 앞두고 바에 들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고 전열기위에 올려둔다. 베낭커버가 바람 때문인지 일부 벗겨져 배낭에 걸쳐있다. 그 바람에 침낭이 좀 젓었다.
콘레체 한 잔을 시키고 양말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신발에는 냅킨을 넣어 물기를 뺀다. 30여분을 양말이 좀 마르도록 기다린다. 점심으로 가지고 다니는 빵을 먹는다. 양말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지만 신고 나선다. 판초우의를 썼다. 바람과 비를 막아주니 한결 낫다.
120번 도로를 바로 옆에 두고 가니 차들이 내는 소음이 심하다. 물보라를 덮어쓰기도 한다. 오늘 무리해서 목적지를 아스토르가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터무니 없는 것 같다. 그냥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까지 가기로 한다. 비바람에 겨우 발걸음을 옮긴다.
4시 다 되어서 오스피탈로 데 오르비고에 도착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가 멋있다. 도시가 적지만 운치가 있다. 가면서 누군가 뭐라고 한다. 알베르게 하니까 어디로 가는지 알려준다. 오늘 걸은 거리 32킬로.
다행히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오스피탈로가 옆에 있어 알베르게로 안내한다. 후안이 이름이다.
샤워하는데 발바닥이 물에 몇 시간 불어서 쪼글쪼글해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후안이 와인을 마시겠냐고 한다. 한 병 사서 같이 마시자는 의미로 생각하고 그러겠다고 했더니 옆의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친구 한 명 더 있다. 웨이터가 와인을 따라준다. 스페인 말이 안통하니 옆의 아줌마에게 통역을 시킨다. 카미노가 몇 번째인지 스페인이 몇번째 방문인지 등. 안주도 더 시킨다. 펜던트도 선물로 준다. 그냥 받아 먹어도 되나. 와인을 비우면 또 따라준다.
대충 마시고 나왔다. 더 있으라는 제스쳐를 보이는데 시장을 간다고 하고 나왔다.
먹을 거리를 사고 돌아오는데, 후안 안토니오의 눈에 띄었다. 다시 불려가 와인 한 잔 더 했다. 후안 안토니오의 친구 후안 까를로스는 와이프가 영어를 하는데 조만간 오니 기다리란다. 얼마 안 있어 조그만 아줌마가 온다. 이름이 안젤라란다. 안젤라는 연신 통역을 해준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아까 저녁거리를 못사서 그러마 했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피자와 다른 음식을 시켰다. 음식값은 아줌마가 냈다. 아줌마와 후안 안토니오는 처음 본 사이라고 한다.
식당에 다비드와 프랑스인이 들어온다. 난 3:30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7:00에 도착했단다. 뭐 하다가.
알베르게로 돌아왔는데, 후안이 한 잔 더하잔다. 또 카페로 따라가서 티 한 잔 했다.
오스피탈로가 침대 하나를 차지하는 건 처음 본다. 따로 자기 집이 없나보다. 60대인 것 같은데, 들어보니 미혼이란다. 배가 엄청나온 배불뚝이 아저씨라 여자가 보기에 매력이 없어보인다.
첫댓글 우천이는 참 인복도 많지^^~
스페인 사람들에게 와인과 저녁을 얻어먹기도 했는데, 은퇴한 연금생활자 오스피탈로에게 와인 얻어먹은게 걸리네..
년말 업계 특수로 한2주 카페에 못들어 왔더니 우천이의 산티아고여행기가 골프회 카페에 있었네... 엇저녁부터 중간중간 읽어보니 정말부러운 여행(도전)이다. 나도 꼭한번 해보고 싶은데 가까운 시일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내년봄엔 3-4일 일정으로 국내 순레길(?)에 도전해 봐야겠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선웅아...나랑 같이 콜?
연말 특수가 일년 내내 이어지면 좋겠네.. 국내 도보여행도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