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 張潮] 유몽영 幽夢影
讀經宜冬, 其神專也; 讀史宜夏, 其時久也;
讀諸子宜秋, 其致別也; 讀諸集宜春, 其機暢也.
경서를 읽기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한 까닭이다. 역사서를 읽는데는 여름이 적당하다. 그 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를 읽기에는 가을이 꼭 알맞다.
그 운치가 남다른 까닭이다. 문집을 읽자면 봄이 제격이다.
그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經傳宜獨坐讀;史鑑宜與友共讀。
경전(經傳)은 혼자 앉아 읽어야 좋고, 《사기》와 《통감》은 벗과 더불어 함께 읽어야 좋다.
無善無惡是聖人
(如:帝力何有於我,殺之而不怨,利之而不庸;
以直報怨,以德報德;一介不與,一介不取之類.),
善多惡少是賢者
(如:顏子不貳過,有不善未嘗不知;子路,人告有過則喜之類.),
善少惡多是庸人,有惡無善是小人(其偶為善處,亦必有所為.),
有善無惡是仙佛(其所謂善,亦非吾儒之所謂善也.)
선함도 없고 악함도 없는 것은 성인이다.
(예컨대는 “황제의 힘이 내게 무슨 상관이리요.”나 “이를 죽여도 원망치 아니하고,
이를 이롭게 하여도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나, “곧음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써 덕에 보답한다”, 또는 “조그만 것도 주지 않고 조그만 것도 남에게서 취해오지 않는다”는 류이다.)
선함은 많지만 악함이 적은 것은 어진 이이다.
(예를 들어 안연顔淵이 허물을 되풀이 하지 아니하고, 선하지 않음이 있으면 모르는 법이 없었던 것이나, 자로子路가 남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해 주면 이를 기뻐했다는 것 같은 류이다.) 선함은 적고 악함은 많은 것은 보통 사람이고, 악함만 있고 선함이라고는 없는 것은 소인인데, 이들은 우연히 선한 일을 할 때에도 또한 반드시 의도하는 바가 있다.
선함도 없고 악함도 없는 것은 신선과 부처인데, 이때 이른바 선이란 것은 또한 우리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바 선은 아니다.
天下有一人知己,可以不恨。不獨人也,物亦有之。
如菊以淵明為知己,梅以和靖為知己,竹以子猷為知己,
蓮以濂溪為知己,桃以避秦人為知己,杏以董奉為知己,
石以米顛為知己,荔枝以太真為知己,茶以盧仝、陸羽為知己,
香草以靈均為知己,鱸以季鷹為知己,蕉以懷素為知己,
瓜以邵平為知己,雞以處宗為知己,鵝以右軍為知己,
鼓以禰衡為知己,琵琶以明妃為知己。一與之訂,千秋不移。
若松之於秦始、鶴之於衛懿,正所謂不可與作緣者也。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한스럽지 않다고 할만 하다.
유독 사람 만이 아니라 사물 또한 이것이 있다.
국화는 도연명으로 지기를 삼았고,
매화는 임포(林逋)를 지기로 삼았으며,
대나무는 왕휘지(王徽之)를 지기로 삼았고,
연꽃은 주돈이(周敦頤)를 지기로 삼았다.
복사꽃은 진나라 사람을 지기로 삼았고,
살구꽃은 동봉(董奉)을 지기로 삼았으며,
바위는 미불(米芾)을 지기로 삼았고,
여지(荔枝)는 양귀비를 지기로 삼았다.
차는 노동(盧仝)을 지기로 삼았고,
향초(香草)는 굴원을 지기로 삼았으며,
미나리와 농어는 장한(張翰)을 지기로 삼았다.
파초는 회소(懷素)를 지기로 삼았고,
참외는 소평(邵平)을 지기로 삼았으며,
닭은 처종(處宗)을 지기로 삼았고,
거위는 왕희지를 지기로 삼았다.
북은 예형(禰衡)을 지기로 삼았고,
비파는 왕소군(王昭君)을 지기로 삼았다.
한번 더불어 맺고는 천추에 옮기지 않았다.
소나무가 진시황에게서 오대부(五大夫)로 봉함을 받은 것이나,
학이 위의공(衛懿公)에게서 대부의 봉록을 받은 것 같은 따위는
이른바 더불어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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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울타리 가에 국화를 심어 놓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던 도연명,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아 강호에서 삶을 마쳤던 임포(林逋),
하루라도 대나무 없이 어찌 살겠느냐던 왕휘지(王徽之),
멀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사랑해 연꽃을 군자에 비겼던 주돈이(周敦頤),
무릉도원을 꾸며놓고 세상과의 인연을 잊었던 진나라 사람들,
치료비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하여 행림(杏林)의 아름다운 사연을 만들었던 삼국시대의 명의 동봉(董奉), 바위만 보면 꾸벅 절을 올렸다던 미불(米芾),
여지(荔枝)를 좋아해서 수천리의 역말을 달리게 했다던 양귀비,
차를 좋아한 나머지 《다경(茶經)》을 짓기까지 한 노동(盧仝),
향초(香草)를 몸에 둘러 자신의 맑은 마음을 대신했던 굴원,
미나리와 농어가 먹고 싶다며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갔던 장한(張翰),
집에 만여 그루의 파초를 심어두고 종이 대신 그 위에 글씨 연습을 했다던 명필 회소(懷素), 먹을 것이 없어 참외를 심어 생계를 꾸렸다는 소평(邵平),
잘 우는 닭을 새장에 키우며 아끼고 사랑했다는 처종(處宗),
거위를 사랑해 좋은 거위만 보면 달려가 구했다는 왕희지,
조조(曹操)가 자신을 고리(鼓吏)로 삼자 욕을 퍼붓고 떠나갔던 예형(禰衡),
비파에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얹어 노래했던 왕소군(王昭君). 그들은 이들 사물에 마음을 얹어 사귐을 청했다.
한사람의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한 슬픔과 답답함을 이를 통해 풀었다.
그러나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비바람을 만나 소나무 아래 피했다가,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한 일이나, 위의공(衛懿公)이 학을 좋아해서 대부의 봉록을 누리게 하고, 수레까지 하사했던 것은 지기로 만났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한때의 호사로 뒷날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뿐이다. 뜻높은 선비를 아낄 줄 몰랐던 그들이 고작 소나무나 학에게 벼슬을 얹어주고 호사스런 대접을 해 준 것을 두고 어찌 마음을 주고 받는 만남을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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為月憂雲, 為書憂蠹, 為花憂風雨, 為才子佳人憂命薄. 真是菩薩心腸.
달 때문에 구름을 근심하고, 책 때문에 좀을 걱정하며, 꽃 때문에 비바람을 염려하고, 재자가인(才子佳人) 때문에 그 운명의 기박함을 생각하니, 참으로 보살의 마음이로다.
花不可以無蝶, 山不可以無泉, 石不可以無苔,
水不可以無藻. 喬木不可以無藤蘿, 人不可以無癖.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쿨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은 벽(癖)이 없어서는 안된다.
春聽鳥聲, 夏聽蟬聲, 秋聽蟲聲, 冬聽雪聲.
白晝聽棋聲, 月下聽簫聲.山中聽松風聲, 水際聽款乃聲.
方不虛生此耳. 若惡少斥辱, 悍妻詬誶, 真不若耳聾也.
봄엔 새 소리, 여름엔 매미 소리, 가을엔 풀벌레 소리, 겨울엔 눈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백주 대낮엔 바둑 두는 소리, 달빛 아래선 피리 부는 소리, 산 속에선 솔바람 소리, 물가에선 어기영차 노젓는 소리를 들으며 살진대 바야흐로 이 인생이 헛되지 않을 따름이리라.
못된 젊은이의 욕하는 소리와 사나운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 같은 것은 정말 귀를 먹느니만 같지 못하다.
上元須酌豪友, 端午須酌麗友,
七夕須酌韻友, 中秋須酌淡友, 重九須酌逸友.
정월 대보름엔 모름지기 호탕한 벗과 술 마시고,
단오에는 고운 벗과 잔 나누며, 칠석에는 운치있는 벗과 잔질하고,
추석에는 담박한 벗과 술잔을 나누며, 중구절重九節엔 뜻높은 벗과 술을 마시리라.
鱗蟲中金魚, 羽蟲中紫燕, 可云物類神仙.
正如東方曼倩避世金馬門. 人不得而害之.
물고기 중에는 금붕어가, 새 중에는 제비가 사물 중의 신선이라 말할만 하니,
동방삭이 금마문에서 벼슬하며 세상을 피하여 사람들이 이를 해치지 못했던
것과 꼭 같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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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은 곱지만 삶으면 맛이 써서 금붕어를 끓여먹는 사람이 없다.
다만 그 빛깔의 고운 것을 사랑할 뿐이다. 제비는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도 오히려 제 집 찾아준 것을 고마워할 뿐, 그것을 잡아 구이를 해먹을 생각은 않는다.
살아 별다른 근심이 없고, 듬뿍 사랑만 받으니 신선의 삶이 이런 것 아닌가?
한무제 때 동방삭은 벼슬 속에 몸을 감춘 이은吏隱이었다.
우스개 소리 잘하고 낄낄대며 한 세상 건너갔기에 그 험한 시절 제 한 몸 다치지 않고 인생을 마칠 수 있었다. 금붕어처럼, 제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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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世須學東方曼倩, 出世須學佛印了元.
세상에 들어와서는 모름지기 동방삭을 배워야 하고,
세상을 나가서는 모름지기 불인료원(佛印了元)을 배워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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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화살이 되어 박히는 세상이다.
발밑 도처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동방삭은 우스개 소리나 하며 조정에서 임금의 온갖 총애를 다 받아 복을 누렸지만 정작 그 스스로는 이렇게 말했다.
“세속에 묻혀 지내고 금마문에서 세상을 피하였으니, 궁전 속에서도 세상을 피해 몸을 온전히 할 수가 있다. 어찌 반드시 깊은 산 속 쑥대 갈대 아래에 있어야만 하겠는가?”
불인료원은 북송北宋 때 고승으로 불문에 혁혁한 자취를 남겼으나,
그의 삶은 세속과 끊어진 깊은 산속 암자에 있지 않고, 승속僧俗을 떠나 당대의 명인들과 거리낌 없는 교분을 나누었다.
소동파 형제는 그의 마음 맞는 벗이었다. 출가한답시고 세속을 사갈시하고 저 혼자 고고한 체 하는 출가는 출가가 아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삶은 그런 누추한 구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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賞花宜對佳人, 醉月宜對韻人, 映雪宜對高人.
꽃 구경 할 때는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해야 하고,
달빛에 취할 때는 운치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며,
눈 구경을 할 때는 고상한 사람과 나란히 해야 한다.
對淵博友, 如讀異書; 對風雅友, 如讀名人詩文;
對謹飭友, 如讀聖賢經傳; 對滑稽友, 如閱傳奇小說.
해박한 벗과 함께 있는 것은 기이한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운치있는 벗과 마주함은 이름난 문인의 시문을 읽는 듯 하며,
삼가고 신중한 벗을 대함은 성현의 경전을 읽는 것과 같고,
재치있는 벗과 같이 함은 전기소설傳奇小說을 읽는 것과 한 가지이다.
楷書須如文人, 草書須如名將. 行書介乎二者之間,
如羊叔子緩帶輕裘, 正是佳處.
해서楷書는 모름지기 문인처럼 쓸 것이요, 초서는 모름지기 명장처럼 쓸 일이다.
행서는 이 두 사람의 사이에 놓인 것이니, 마치 양숙자羊叔子가 허리띠를 느슨히 하고 갖옷을 가벼히 하는 것 같은 것이 바로 아름다운 점이 된다.
人須求可入詩, 物須求可入畫.
사람은 모름지기 시에 들일만한 것을 구해야 하고,
물건은 모로매 그림으로 그릴만한 것을 구해야 한다.
少年人須有老成之識見,老成人須有少年之襟懷.
젊은 사람은 모름지기 노성한 식견이 있어야 하고,
늙은 사람은 모름지기 젊은이의 마음자리를 지녀야 한다.
春者天之本懷,秋者天之別調.
봄이란 하늘의 본마음이요, 가을은 하늘의 별다른 가락이다.
昔人云: 若無花, 月, 美人, 不願生此世界.
予益一語云: 若無翰, 墨, 棋, 酒, 不必定作人身.
옛 사람은 말했다. “만약 꽃․달․미인이 없다면 이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내가 한 마디 말을 더 보탠다. “만일 글쓰기와 바둑, 술이 없을진대
반드시 사람의 몸이 되려하지 않으리라.”
願在木而為樗(不才終其天年.), 願在草而為蓍(前知.),
願在鳥而為鷗(忘機.), 願在獸而為廌(觸邪.),
願在蟲而為蝶(花間栩栩.), 願在魚而為鯤(逍遙遊.).
나무가 될진대 쓸데가 없어 그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 가죽나무가 되었으면 싶고,
풀이 된다면 앞날을 점치는 시초蓍草가 되었으면 한다.
새가 되어야 한다면 분별하여 따지는 마음 없는 갈매기였으면 좋겠고,
짐승이 된다면 나쁜 놈을 보면 뿔로 받아 버린다는 해태[廌]였으면 싶다.
곤충이 되어야 한다면 꽃 사이를 훨훨 날아 다니는 나비가 되고 싶고,
고기가 될진대 저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곤어鯤魚가 되기를 원한다.
黃九煙先生云: 古今人必有其偶雙, 千古而無偶者, 其惟盤古乎?
予謂盤古亦未嘗無偶, 但我輩不及見耳. 其人為誰, 即此劫盡時最後一人是也.
황구연黃九烟 선생이 말했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반드시 그 짝이 있게 마련인데,
천고를 통틀어 짝이 없는 사람은 반고 뿐이다.” 나는 말한다.
반고 또한 일찍이 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리라. 다만 우리가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짝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이 세상이 끝날 때 최후로 남은 한 사람이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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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는 천지가 개벽할 그때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더불어 마음 나눌 사람이 없었겠지. 그를 일러 절대 고독의 경지를 살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해 기록한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 그를 안 사람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정말 지구가 멸망하여 다 죽고 단 한 사람만 남았다고 할 때, 그가 느꼈을 그 짙고 푸른 고독은 어떤 것일까?
혼자서 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서로 등을 토닥이며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끌어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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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人以冬為三餘. 予謂當以夏為三餘: 晨起者, 夜之餘:
夜坐者, 晝之餘; 午睡者, 應酬人事之餘. 古人詩云:
「我愛夏日長.」 洵不誣也.
옛 사람은 겨울을 ‘삼여三餘’ 즉 세 가지의 나머지라고 하였다.
나는 말한다. 마땅히 여름이야 말로 ‘삼여’가 되어야 한다고.
새벽에 일어남은 밤의 나머지이고, 밤에 앉아 있음은 낮의 나머지이며,
낮잠 자는 것은 사람 일을 응수하는 나머지인 것이다.
고인의 시에 “나는 여름날이 긴 것을 사랑한다”고 한 것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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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동우董遇는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이고, 밤은 낮의 나머지이며, 비오고 흐린 것은 때의 나머지라고 했다. 그 시간을 아껴 책 읽는데 쓰라고 했다.
나는 긴긴 여름날이야말로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믿는다.
새벽에 일어나고 밤중까지 앉아 있다가 낮에는 잠깐 낮잠도 자는 그 긴 여름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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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周夢為蝴蝶, 莊周之幸也; 蝴蝶夢為莊周, 蝴蝶之不幸也.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니 장자의 행복이었다.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니 나비의 불행이었다.
藝花可以邀蝶, 纍石可以邀雲, 栽松可以邀風, 貯水可以邀萍,
築臺可以邀月, 種蕉可以邀雨, 植柳可以邀蟬.
꽃을 심어 나비를 맞이할 수 있고, 돌을 포개어 구름을 맞이할 수 있으며,
솔을 심어 바람을 불러들일 수가 있고, 물을 담아 부평초를 띄울 수가 있다.
누대를 쌓아 달빛을 불러들일 수가 있고,
파초를 심어 비를 맞이할수가 있으며, 버들을 심어 매미를 불어들일 수가 있다.
景有言之極幽, 而實蕭索者, 煙雨也; 境有言之極雅,
而實難堪者, 貧病也; 聲有言之極韻, 而實粗鄙者, 賣花聲也.
경치 중에 말로 할 때는 지극히 그윽하지만 실지로는 쓸쓸한 것이 있으니 안개비가 그것이다. 경계 중에 말로 할 때는 참 우아하지만 정말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가난과 질병이다.
소리 중에 말로 하기는 정말 운치 있지만,
실지로는 비루한 것이 있으니 꽃 파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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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안개비 속을 끝도 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비록 가난하고 병들어도 바른 길을 걸어가리라.
'꽃 사세요'라고 외치는 그 소리에 문득 마음은 봄날처럼 환해진다.
나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 스물스물한 빗속을, 질퍽대는 땅을 걷지는 않겠다.
가난과 질병 속에 의기를 꺾고, 먹고 살기 위해 꽃이라도 팔아야 하는 그 비참함은 말하지 않겠다.
가지 않아야 아름다운 길도 있다. (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