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處事)
송도성 수필, 『수필 법설집 2』
이춘풍이 선생에게 고하되, 「제가 마음에 처리하다가 판결이 나지 못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선생 「무슨 일인고?」
춘풍이 말하되,
「지난달에 저의 자식이 산에를 갔다가 포수의 짐승 잡는 탄환에 맞았었나이다.
때에 저는 마침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인데, 동리 사람이 급히 나와서 그 말을 전하여 주옵더이다.
소자는 이 말을 듣고 경황(驚惶)하여 정신없이 그 사람의 향도(嚮導)를 받아 해(該)장소를 갔습니다.
가는 길에 마음에 모든 걱정과 번민이 북받혀 올라서 능히 자제치 못하겠더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횡액이 나의 앞에 떨어지는고.
천행(天幸)으로 무사하게 되었으면 이거니와 만약 불행하여 사망하는 경우가 되고 보면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꼬’ 생각하여 보니,
‘이 일을 관청에 알려서 포수를 법률로 다스림이 가할까?
또는 저 포수가 짐승을 취하려다가 불행히 사람에게 맞은 것이니, 그만 덮어두는 것이 가할까?’
어찌하여야 옳을는지 상당(相當)한 생각을 얻지 못하였사으니, 어찌하면 가하겠습니까?」
선생이 춘풍에게 반문하시되,
「춘풍이가 그때에는 창졸(倉卒)간에 당한 일이라 무슨 요량이 나지 못한 것이나, 지금 생각에는 어찌하면 가할꼬?」
춘풍이 대왈,
「대범 법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일을 다스리는 것이니, 원컨대 법에 알려서 포수를 다스려서 부자된 심정을 표하겠나이다.」
선생이 또 송적벽에게 이문(移問)하시니, 적벽이 고왈,
「소자는 백천만사가 다 자연으로 되는 줄 아옵나이다.
사람의 생(生)하는 것도 자연으로 생함이요, 사(死)하는 것도 자연으로 사함이라.
그러한 일은 횡액인 듯 싶으나, 그도 역천정(亦天定)이거늘 어찌 자식의 원수로 나의 원수를 만들겠습니까?
저는 아무 일이 없이 하겠습니다.」
선생이 또 오창건에게 이문하시니, 창건이 고왈,
「전일 공부하지 아니할 때 견지로 말하면 반드시 기사(起事)하여 보수(報讎)를 하겠으나,
금일 공부하는 목적으로는 기사할 게 없다 하나이다.
포수는 짐승을 향하여 놓았거늘 불행히 사람이 맞았으니 귀지어천명(歸之於天命)하고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생이 가라사대,
「3인의 말이 다 중(中)을 얻지 못하였도다.
내가 말할 것이니, 들어보라.
내가 만약 그러한 경우를 당하였으면 이렇게 처리하겠노라.
사람이 죽으면 법률에 진단서를 첨부하여 사망신고를 하는 규칙이 있으니, 그 법대로 보고하되 사실대로 기록하여
즉, 산에 갔다가 불행히 포수의 짐승 잡는 탄환에 맞아서 죽었다고 관청에 드리면 관청에서 반드시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말하되, 나의 자식이 그와 같이 죽었기에 그 사실대로 신고한 것이니,
그 뒤의 처결은 법에서 할 것이요, 나는 관계치 않겠다고 하겠노라.」 하시더라.
출처 : 원각성존(圓覺聖尊) 소태산 대종사 수필 법문집, pp.82~83.
『대종경』 인도품 55장
이 춘풍이 여쭙기를 [지난 번에 저의 자식이 산에 갔다가 포수의 그릇 쏜 탄환에 크게 놀란 일이 있사온데, 만일 그 때에 불행한 일을 당하였다 하오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사올지 취사가 잘 되지 아니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생각대로 한 번 말하여 보라.] 춘풍이 사뢰기를 [법률이 이러한 일을 다스리기 위하여 있는 것이오니, 법에 사실을 알리어 부자된 심정을 표함이 옳을 듯하나이다.] 대종사 다시 송 적벽(宋赤壁)에게 물으시니, 그가 사뢰기를 [모든 일이 다 인과의 관계로 되는 것이오니, 그 일도 인과의 보응으로 생각하옵고 아무 일 없이 하겠나이다.] 대종사 다시 오 창건(吳昌建)에게 물으시니 그가 사뢰기를 [저도 공부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반드시 법에 호소하겠사오나, 또한 천명으로 돌리고 그만 두겠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의 말이 다 중도를 잡지 못하였도다. 대개 지금의 법령 제도가 사람이 출생하거나 사망하면 반드시 관청에 신고하게 되어 있으며, 더욱 횡액을 당하였거나 의외의 급사를 하였을 때에는 비록 관계 없는 사람이라도 발견한 사람이 관청에 보고할 의무를 가졌나니, 외인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부자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처지리요. 그러므로, 나는 오직 국민의 처지에서 부모로서 즉시 관청에 사유를 보고할 것이요, 그 후의 일은 법을 가진 관청의 처리에 맡기고 나의 알 바 아니라 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