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283) / 독일
로르슈의 수도원과 알텐뮌스터(Abbey and Altenmunster of Lorsch;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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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슈(Lorsch)는 헤센(Hessen) 주 베르크슈트라세(Bergstrasse) 지역에 위치하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부흥했던 이곳의 수도원에는 기념비적인 입구인 토어할레(Torhalle; ‘문지기의 집’이라는 뜻)가 있으며, 알텐뮌스터의 희귀한 건축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카롤링거 왕조 시기의 조소 작품과 회화가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로르슈 수도원으로 대표되는 이 종교 단지에는 1200년 된 독특한 누문(樓門; gatehouse)인 토어할레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희귀한 건축물로 구성된 수도원에는 당시 조소 작품과 회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이 누문은 이곳이 최초의 왕이자 황제인 샤를마뉴 치하의 수준 높은 중세 정신에 대해 서구 사회가 깨어 있었음을 나타내는 건축학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보름스(Worms)와 다름슈타트(Darmstadt) 사이에 있는 로르슈의 작은 마을에 있는 토어할레는 원래 모습을 간직한 카롤링거 시대의 희귀한 건물이다. 토어할레는 760~764년경에 설립된 로르슈 수도원이 과거에 얼마나 웅장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로르슈 수도원의 첫 번째 원장은 메츠(Metz)의 주교인 크로데강(Chrodegang; 766년 사망)이었다. 764년 이전에 크로데강 주교는 괴르츠(Goertz)에서 수도사들을 데려와 로르슈에 거주하게 하였고, 로마에서 획득한 성 나자리우스[St. Nazarius]의 유물을 765년에 기부하였다. 767년에 로르슈 수도원 설립자의 형제인 튀링크베르트(Thurincbert)는 원래 위치에서 500m쯤 떨어진, 홍수로부터 안전한 모래 언덕 위의 새로운 부지를 기부하였다. 로르슈 수도원은 772년에 황제의 보호를 받았다. 774년 마인츠의 대주교는 샤를마뉴가 참석한 자리에서 성 페터, 성 바울, 성 나자리우스에게 새 교회를 봉헌하였다. 로르슈 수도원의 연대기[Codex Laureshamensis]에는 778~837년에 로르슈 수도원장 가운데 아주 중요한 세 인물인 헬메리히(Helmerich), 리히보트(Richbod), 아델로크(Adelog)가 이루어놓은 개선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카롤링거 왕조의 독일 왕 루트비히 2세가 사망(876년)하자 이곳이 독일 카롤링거 왕조의 묘소가 되었다. 이때부터 로르슈 수도원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루트비히 3세(876~882)는 아버지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이곳에 지하 납골당을 건축하였다. 이후 자신은 물론 아들인 휴고와 콘라트 1세[독일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왕인 루트비히 4세의 사망으로 독일의 선제후가 된 프랑코니아 공작]의 배우자 퀘네공드(Cunegonde)도 이곳에 묻혔다. 로르슈 수도원은 10세기에 번성하다가 1090년 화재로 황폐해졌고, 12세기에 들어 처음으로 재건되었다. 13세기에 들어 로르슈가 마인츠 선거후(選擧侯;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 황제의 선거권이 있던 7명의 제후)의 영토에 통합되면서(1232), 이곳에서 보유했던 특권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로르슈 수도원은 처음에는 베네딕트 수도회를 따르다가 시토 수도회를 따랐고, 그 다음에는 프레몽트레 수도회를 따랐다. 교회 건물은 또 다른 화재를 입고 복원·재건되었다. 이 영광스러운 카롤링거 왕조의 교회는 정치와 전쟁에 따른 예측불허의 변화를 겪으면서 서서히 쇠퇴하였다. 로르슈는 1461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령에 복속되었고, 1623년에는 선거후 영토에 반환되었다가 1803년 헤센의 선거후 영토로 통합되었다. 30년 전쟁 기간이던 1620~1621년에 스페인 군대는 종교 개혁 이후 방치되었던 수도원 건물을 약탈하였다. 현재 이 유적에는 토어할레,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일부, 중세 수도원의 폐허, 그리고 마인츠 선거후의 통치기에 세운 고전적 건물들만이 남아 있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