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아이돌 생태계

[모눈 원고지]

독자 독자님이 주신 리퀘입니다!

레드벨벳 : : Ladies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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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으로 사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잘할 필요가 없는 거까지 잘해버리면 인생이 꼬인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다.

"솔로앨범만 내면 연기 주연 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서요."

"근데 솔로앨범이 월간차트 1위 할 줄은 몰랐지……"

"유닛활동까지 하면 영화 오디션 보게 해주신다면서요."

"……유닛 음원 순위를 봐. 너무 잘됐잖아."

"도대체 전. 언제 연기 할 수 있어요?"

 실장 매니저님한테 따지고 싶지 않아서 다짜고짜 이사님을 찾아왔다. 애초에 내가 아이돌이 된 것도 온전히 내 의지는 아니었다. 대형 기획사겠다, 아이돌들이 연기돌이 되는 경우도 많겠다, 그냥 연기자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보다는 인지도를 쌓아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솔로 2집만 하면 정말 하게 해줄게."

"제가 어떻게 믿어요. 이사님 맨날 그러셨잖아요. 이번에만 이번에만. 처음부터 저 이러려고 캐스팅 한 거죠?"

"아니야. 여주야 진짜로. 응? 특약사항에 넣어줄게. 네가 연기 하고 싶어하는 거 알아. 이번에는 꼭 대형 드라마 오디션 보게해줄게."

"그러면요. 듣기로는 박은미 작가님 드라마 곧 제작 시작한다는데 저 봐도 돼요?"

"당연히. 박은미 작가님랑 같이 하는 피디 내 동창이야. 꼭 밀어줄게."

 이번에는 확답을 받아야했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걸 2순위로 미루면서 살 수는 없었다. 이럴 줄 알고 각서까지 준비해왔다.

"여기 지장 찍어주세요."

"각서까지?"

"이사님이 저 캐스팅할 때부터 받아둘 걸 그랬어요."

"아이고. 당연히 찍어야지 찍어야지. 잠깐만……"

각 서

 SGB엔터테인먼트 이사 이은숙은

레나잇 김여주의 연기 활동을 적극 지지할 것을 약속합니다.

솔로 2집이 끝난 후부터 이행합니다.

하반기 드라마 주연 오디션 참가 및 촬영이 가능하도록 스케줄을 계획하지 않겠습니다

이은주 (인)

김여주 (인)

 각서는 곱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나저나. 여주야 약은 잘 먹고 있지?"

"네. 안그래도 어제 병원가서 약 타왔어요."

"그래.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니까…… 걔 누구처럼 브이앱 도중에 갑자기 변하면 어떡해."

"약 잘챙겨먹으면 그럴 일 없으니까요. 괜찮아요."

 저번 주 실시간 검색어를 달궜던 한 아이돌이 생각났다. 다행히 우리 멤버들도 아니었고, 우리 소속사 그룹도 아니었다. 스케줄 이동 중에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브이앱을 틀다가, 피곤해서 그런지 고양이 귀가 튀어나왔다. 수인인 걸 들킨 거다. 그렇게 큰 약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리날만했다. 전세계 인구의 2.1%만 반인반수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숨길건 없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것도 아니었다. 말하는 순간 그사람의 실력과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상관없고 '반인반수'만 집중되니까. 나로써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사님께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이사실 밖으로 나왔다. 이 이사님이 비서실 달린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내 덕이었다. 이사님도 그걸 알아서 내게 잘해주시고 허물없이 대하는 거였다. 회사의 구세자. 킬러 컨텐츠 생산자의 공을 인정받은 거였다. 아마 차기 대표도 이사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사님의 업적은 나를 캐스팅해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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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사님 만났다며!"

"응. 이번에는 연기해야지."

"그니까. 아니 남들은 연기하고 싶다고 하면 옳다구나 시키는데, 근데 이사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해."

 숙소 생활은 어느정도 적응됐다. 처음에 아이돌이라는 건 꿈도 꾸지 않다가 시작한 숙소생활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지금 멤버들도 모난데 없이 잘 했다. 큰 문제 없이 5년 째 잘 활동하고 있었다. 리더도 책임감 있고, 다들 열애설이다 뭐다 문제를 일으키지않았다. 회사에서도 제일 밀어주는 걸그룹이었다. 음반판매량도 좋았고 음원성적이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남자아이돌보다 항상 높았다.

 은지를 한 단어로 말하면 좋은 사람이었다. 리더로써 책임감도 강했고 제일 오래된 연습생에다가 멤버들을 살뜰히 잘  챙겼다. 게다가 메인보컬까지 맡고 있었다. 팀에서 빠질 수 없는 주축이었다. 데뷔 직전에 합류한 나를 미워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이 하나도 없었다.

"홍차 탈건데 줄까?"

"응. 한잔만! 근데, 난 아직도 언니 캐스팅 일화 얘기 들으면 웃겨."

"방송용? 비방용?"

"방송용도 웃기게 짜주시긴 했는데…… 비방용이 진짜 웃기지. 이사님도 이사님이고, 언니도 진짜 언니야."

"어디가서 나도 말 못하지. 누가 코 후비고 있다가 캐스팅 당해……."

 홍차를 한모금 머금었다. 아직도 울적한 날이면 이 이사님께 캐스팅 당했던 그때를 생각했다. 지금은 이사님이 고급진 일만 맡았지만, 이사님이 캐스팅 담당자일 때 별명이 거머리였다. 한번 마음에 든 친구는 끝까지 설득해서 회사에 연습생으로 영입한다는 의미였다. 나도 그 거머리 권법에 당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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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염 환자들은 환절기마다 코와의 전쟁이었다. 특히 점점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나는 제일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막힌 코를 세척하느라 남들보다 십분 일찍 일어나야했다. 가방에는 항상 베이비 물티슈와 휴지가 있었다. 어딜가든 코를 풀어야했다. 연기학원 레슨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카페로 들어왔다. 따뜻한 티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괴로워하면서 코를 훌쩍였다. 밖에 나오면 집에서처럼 강렬하게 코를 풀 수 없는 점이 불편했다. 물티슈로 흥흥, 하고 풀다가 너무 답답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차피 창가자리이긴 해도 구석자리라 아무도 안보겠지.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물티슈 집고 코를 팠다. 아무리 해도 뚫리는 느낌이 안들었다. 대충 마무리하고 손을 씻으러 가기 위해 일어서니까, 카페 밖에서 나를 누군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뚫어져라.

"...뭐야."

 카페는 높은 통유리창이었다. 그 사람은 유리창을 톡톡 치더니 두 손을 쫙 펼쳐서 내가 손바닥을 보여줬다.

"잠깐만이라는 건가."

 코 파는 걸 다 봤겠지 생각하니 민망했다. 그 사람은 카페 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 섰다. 나는 가방에 넣어둔 손소독제로 일단 손을 닦았다. 물티슈로 파긴 했지만 찝찝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잠깐 앉아도 될까요?"

"예? 네."

 앞에 앉은 여자의 복장을 훑었다. 세미 정장인 걸 보니까 회사원인 거 같기도 했다.

"혹시, 뭐하고 있는 지 물어봐도 돼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어..네. 이상해보이진 않으세요."

"혹시 연습생이에요? 아니면 학원 다녀요? 가수 지망생?"

"아뇨. 연영과 입시생인데요. 재수생..."

"연예계 지망생이라는 거죠? 저 SG엔터 캐스팅 담당자예요. 한번 카메라 테스트 받으러 올래요?"

 SGB면 배우 소속사는 아니었다. 아이돌 기획사. 게다가 대형기획사. 명함을 보니 진짜였다. 캐스팅팀 이은주 대리.

"꼭 와줘요. 알겠죠?"

 마침 카페 대형스크린에서는 김도영이 나왔다.

SGB 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자아이돌. 연기돌로도 꽤 이름을 떨치고, 박은미 작가님 드라마에도 주연으로 나오는 사람. 그래 저런 방법이 있었지. 무조건 연영과 입시만을 고집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게요!"

 엄마 나 어떡해. 나 진짜 대 슈퍼스타되면 어떡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에 쥔 명함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쩐지 정수리 부근 머리가 간지러웠다. 설마. 설마.

"어.."

"...이것도 못본 걸로 해주세요."

 나는 황급히 가방 안에서 버킷햇을 꺼내서 썼다. 대리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본 사이에 수인인 거까지 들켜버렸다.

"여주씨. 늑대 수인인 거 비밀로 해줄게요. 내일 오후 3시에 회사 건물로 꼭 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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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내는 OST 곡만 연습하면 됐다.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도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만족이 안됐다. 아침 먹고 바로 회사 연습실로 와서 내내 연습했다. 요새 가을이어서 비염이 더 심해졌고, 살짝 감기기운도 있어서 코맹맹이 소리가 고쳐지지 않았다. 드라마 OST 작업 같은 경우에는 촉박하게 이루어져서 당장 내일이 녹음일이었다.

"아..진짜. 하필 이럴 때."

 아까부터 열이 오르고 머리부근이 간지럽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귀가 솟아 있었다. 진짜 왜이래. 컨디션이 최악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코러스2부분만 연습하고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될 거 같았다. 목도 점점 쉬어가는 거 같았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연습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대표선생님의 지침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라."였다. 당연한 말이다. 대형기획사 수십 수백명의 연습생들 중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은 기본이었다. 실력은 당연히 있어야하고 그걸 뛰어넘을만한 매력이 있어야했다. 나는 다행히 춤과 노래를 어렵게하는 편이 아니었다.

 연습실이 모여있는 층에 불이 다꺼져있었다. 벌써 새벽 한 시였다. 어쩐지 피곤하다고 했다. 계속 앉아있다가 서있다가를 반복하니 허리가 아팠다. 척추를 주먹으로 통통 치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중앙 연습실이 보였다. 누구지. 호기심이 일었다. 허리가 아프긴 했지만 나보다 늦게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연습생 때 항상 내가 제일 일찍와서 제일 늦게 갔는데. 이상하게 진 느낌이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새벽이어서 그런지 발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

 김도영이었다. 근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뭐야..."

 이번에 드라마 하나 더 들어간다더니 늦게까지 연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아니었다. 김도영은 대본집을 들고 머리를 연신 쓸어 넘겼다. 피곤해보이는 얼굴과, 머리 위에 뿅하고 솟은,

"세상에."

 토끼귀가 있었다. 나는 입을 막았다. 맙소사. 전세계의 2.1%라면서요. 이사님은 회사에서 나만 수인인 거처럼 말하던데 아니었다. 이사님은 보기보다 입이 무거웠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나는 문에 밀착해서 가까이봤다. 저건 머리띠가 아니다. 헤어밴드가 아니다. 분명히 수인이 기쁘거나, 힘들거나 등등 감정기복이 심할 때 튀어나오는 증상이었다. 동족을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못본 척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돌리려고 할 때 김도영도 내쪽을 바라봤다.

"……"

"씨히히……발."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나는 살짝 뒷걸음질 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인사 겸 죄송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마침 도착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 버튼을 눌렀다. 문 닫힘 표시를 연타했다. 혹시나 김도영이 쫓아올까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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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계는 가장 자유로운 척하지만 사실상 위계질서가 제일 심한 곳이었다. 특히 기획사 직속선후배 사이에는 더더욱 해당되는 말이었다.

"도영이가 여주 연기하고 싶어하는 거 알고 같이 셋이서 밥먹자고 하길래. 약속 잡았어. 괜찮지? 둘 다 내가 캐스팅 해 온 사람들이니까 잘 지내봐."

"어……네! 예! 그렇죠! 괜찮죠. 정말 맛있겠네요!"

 김도영은 앉아서 눈인사를 했다. 시발 그렇게 도망간 의미가 없잖아. 이사님이 데려온 곳은 코스 한정식이었다. 코스요리면 적어도 대화하면서 다 먹으려면 한시간은 족히 걸렸다. 가시방석이었다. 어떡하지.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이사님은 다 알고 계시겠지.

"잠깐만 둘이 먼저 먹고 있어. 대표님 전화 오셨네."

 설상가상 이사님도 대표님 전화를 받으러 나가셨다. 이제 정말 둘만 남았다. 적막으로 가득찼다. 듣기로는 김도영 선배님이 활발한 편은 아니라고 들었다.

"선배님. 저 그날."

"여주씨. 말 편하게 해도 돼요."

 김도영은 정갈한 젓가락질로 조기구이를 입에 넣었다. 혼자서 괜히 찔렸다. 그러니까 아무리 궁금해도 누가 연습하는지 연습실 훔쳐보지 말 걸. 괜히 화를 샀다. 흥분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김도영 선배님은 그에비해 침착해보였다.

"꼬막도 먹어봐요. 이 집 맛있어요."

"예... 꼬막 맛있죠. 좋아해요."

 아 안돼.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녹음 끝내고 피곤해서 감정기복 완화약을 두알이나 먹긴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컨디션이 안좋은 날에는 약발도 안받았다. 아무래도 모자를 써야겠다. 누가 그랬는데 자기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는 모자쓰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었다. 꼬막 먹다가 갑자기 늑대 귀 튀어나오면 앞에 사람이 얼마나 당황할까. 내가 모자 쪽으로 손을 뻗자, 김도영의 입이 열렸다.

"여주씨도 수인이죠?"

"예?"

"이사님이 말해준 건 아니에요. 저도 새벽에 연습실 지나다가 봤어요. 모자 쓰기 전에요."

"와..어...네.."

 김도영은 태연해보였다. 조용하게 젓가락질 하고 얌전하게 먹으면서, 맛있는 반찬은 내쪽으로 다 밀었다. 아무래도 못참겠다. 얼굴이 잔뜩 뜨거워졌다. 이미 늑대 귀가 나왔다. 얌전하게 놓여진 숟가락에 내 얼굴이 비쳤다. 제대로 튀어나왔다.

"..아. 늑대였어요?"

".....예 맞아요."

"전, 그때 봤죠?"

"네...죄송해요.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었어요."

 김도영은 살풋 웃었다. 그리고는 내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어서 외로웠거든요. 여주씨 앞으로 잘지내봐요."

 잘지낼 수 있을까. 나는 오른손으로 튀어나온 귀를 꼭 잡고는 나머지 손으로 악수를 했다. 이사님은 언제 들어오시는거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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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영과 연락을 하고나서 변화한 점은 세 가지였다.

1. 카메오 출연도 막던 회사에서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출연시켜줌

2. 내 앞으로 오던 각본 컷하지 않고 나한테 전달해줌

3. 오디션 볼 수 있는 기회

 아직 솔로 2집을 준비중인데도 말이다. 이건 아마 김도영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보다 년차도 높았고 하는 일마다 족족 잘되니까 회사 내에서 힘이 크기도 컸을거다. 그러면서 김도영은 내게 요구하는 게 없었다. 부담스럽게 들이대지도 않았고,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는 애칭 강요도 하지 않았다. 가끔 담백하게 안부를 물어오고 전화를 걸었다. 밖에서 만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회사 미팅실에서 가끔 만나서 얘기하고 그랬다.

"여주야. 긴장 돼?"

"실잘님. 혹시 저 귀나왔어요?"

"아니... 근데 얼굴은 빨개."

 드라마 오디션 날이었다. 흥행 웹툰을 원작으로 해서 공중파에서 방영될 예정이었다. 작가, 감독진도 괜찮았고 일단 원작 인기가 높아서 안정성이 있었다. 제발 제발. 제작 확정 기사를 보고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막상 내 앞에 온 각본을 보니 믿기지 않았다.

"다른 임원분들이 솔로 2집이 먼저다, 그랬는데 이 이사님이 여주가 네가 연기 정말 하고싶어한다고 밀어붙여주셨대. 그리고 워낙 좋은 작품이니까. 게다가 주연이잖아."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저 너무 떨려요 실장님."

 이러다 귀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멤버들과 이사님, 그리고 실장 매니저님만 내가 수인인 점을 알았다. 여기에 김도영정도. 헤어 메이크업 스태프님들한테도 꼭꼭 숨겼다.

"연습은 많이 했어? 작가님이랑 감독님이 좀 냉정하시대.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 아니면 완전 짤이라던데."

"네. 많이 하긴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김도영이 도와줬다. 아무리 내가 연기를 하고싶다고 해도, 연영과 입시를 준비한 것도 오년 전이었다. 짬짬이 연기 레슨을 받긴 했지만, 노래나 춤보다는 아니었다. 퇴화됐을까봐 걱정했다. 내가 각본을 받았다고 하자 김도영이 선뜻 봐주겠다고 했다. 넓직한 연습실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김도영이 의자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 봤다.

"나…… 이제 포기할래요."

 내가 오디션을 볼 역할은 여자주인공. 오랜시간 사랑했던 바이올린과 짝사랑을 포기한다는 중의적 대사였다. 처음에 대본을 읽자마자 울컥했던 부분도 이곳이었다.

"이제 그만…… 하려구요."

 지문에는 이렇게 되어있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은 그렁그렁하지만 절대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심장이 콩콩 뛰었다. 다시금 깨달았다. 노래와 춤을 했을 때도 행복했지만 역시 나는 연기였다. 집에서 말리는 연영과 재수까지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연기였다. 김도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박수쳤다.

"잘하는데요? 상대역은 누구예요?"

"아직요. 여자주인공이랑 같은 날 오디션 보나봐요."

"아. 그렇구나. 잘보고 와요 여주씨."

 김도영은 웃으면서 내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김도영이 상대역이면 편하긴 하겠지만, 지금 준비하는 게 많아서 안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

"잘봐요."

 오디션장에는 다름 아닌 김도영이었다. 남자주인공 오디션 먼저 본다더니, 김도영이 오디션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옆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괜히 여기서 친해보이면 이상한 소문이 퍼질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고개만 까딱했다. 김도영은 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다가 살짝 멈춰섰다. 그리고 무릎을 굽히고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확신에 찬 말투였다. 나는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 추가된대요. 수인 설정. 토끼랑 늑대로요."

 작게 속삭이던 김도영은 입고 있던 자켓을 벗고 내 손에 쥐여줬다. 긴장한 탓에 차에서 겉옷을 챙기지 못하고 내렸다.

"아..."

"이건 행운의 옷이에요."

 김도영은 그러면서 씨익 웃었다. 이미 나를 지나쳐갔지만 나는 그자리에 굳어서 서있었다. 주차를 마친 실장님이 내 어깨를 툭 칠 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갑자기 이런식으로 치고들어오면 설렐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반칙이잖아.

[NCT Dream Mark]

저 어깨로 옷을 벗어주면 ㅎ...

[홍시]

자켓 벗어준 김도영 유죄다...
여주가 늑대고 도영이가 토끼인거 미치게 좋아요 진짜ㅠ 돌았나 으아아아아!!!!!!!!!!!!!!!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아 토끼랑 늑대라니;;;; 존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