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해녀들의 노래 / 서경림
손기정에 이어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 선수의 어머니 이 씨는 며칠 동안의 감격을 달래고, 다시 바다에 자맥질하는 일상의 일로 되돌아갔다. 온 국민이 아들이 이룩한 승리에 들떠 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그 위험하고 고된 천직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에 짙은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나는 가까이에 있는 호텔 목욕탕에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황 선수를 만났다. 당장 인사를 하고 출가 해녀인 그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말았다. 이제는 영영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출가(出稼)물질은 본토(육지)나 동북아 일대로 나가서 물질을 하는 것인데, 이른 봄에 나가 가을에 돌아오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도민대이동(島民大移動)이었다.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동해안을 비롯하여 본토 각 연안에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일본·중국(대련, 청도 등), 소련(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서 벌어들인 소득으로 자기 혼수(婚需)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몸짱으랑 집을 삼앙(모자반정일랑 집을 삼아)
눗고개랑 어멍을 삼앙(놀고개랑 어머닐 삼아)
요바당에 날살아시민(요 바다에 내 살았으니)
어느바당 걸릴웨시랴(어느 바다 걸릴 리 있으랴)
모자반덩이는 집을 삼고, 놀고개는 어머니를 삼는다면, 거친 파도는 집안이 되고, 노도는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노동상황과 이에 대한 굳건한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성산포야 잘이시라(성산포야 잘 있거라)
멩년이철 춘삼월나민(명년 이 철 춘삼월 나면)
살아시민 상봉이여(살았으면 상봉이네)
죽어지민 영이별이여(죽어지면 영이별이네)
위 노래는 출가할 때의 비장한 삶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들은 19세기 말 갑오경장(甲午更張)을 전후하여 부산·동래·울산 등으로 출가하였다.
우뭇가사리 등 해조류의 이용도가 불어나면서 부산 등을 근거지로 한 해조상(海藻商)과 객주(客主)들이 새해가 되면, 제주도를 드나들면서 전도금(前渡金)이나 생필품 등을 먼저 주어 해녀들을 모집하였다.
예전 해녀들이 출가할 때는 돛배·발동선·기선을 타고 갔었지만, 가까운 본토 각 연안에는 거의 돗배를 이용하였었다.
ᄇᆞᄅᆞᆷ이랑 밥으로 먹곡(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룸으로 똥을싸곡(구름으로 똥을 싸고)
물절이랑 집안을 삼앙(물결이랑 집안을 삼아)
설룬어멍 떼어두곡(섧은 어머니 떼어 두고)
서룬아방 떼어두곡(섧은 아버지 떼어 두고)
부모동싕 이별ᄒᆞ곡(부모동생 이별하고)
한강바당 집을삼앙(한강바다 집을 삼아)
이업을 ᄒᆞ라ᄒᆞ곡(이 업을 하라 하고)
이내몸이 탄생ᄒᆞ든가(이내몸이 탄생하던가)
생계를 위해 바다에 사활(死活)을 건 해녀들에게는 바람이 곧 밥이요, 바다와 강파(強波)가 바로 집안이 된다. 섧은 부모, 동생과 이별하고, 밤낮 쉬지 않고 며칠씩 창망한 바닷길을 힘겹게 나아간다.
열두뻬를 놀려근에(열 두 뼈를 놀려서는)
요네착을 젓어보게(요 노짝을 저어보자)
요벤드레 근차진덜(요 벤드레 끊어진들)
신서란가 씨져서냐(신서란이 씨 말랐더냐)
요네 홀목 부러진덜(요내 손목 부러진들)
부산벵원장 씨져서냐(부산 병원장 씨 말랐더냐)
질긴 밧줄의 재료가 되는 신사란이 있는 한, 노를 저을 수 있게 배 멍에와 노손을 묽는 밧줄, ‘벤드라’가 끊어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부산엔 병원장들이 많은데, 손목이 부러져도 치료할 수 있으니 힘껏 노를 젓자는, 매서운 의지와 권력(勸力)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를 소리쳐 부르며, 힘차게 노를 저어 보면, 억센 운율의 강렬함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어느제나 나민두어(언제가 되면은)
ᄒᆞᆫᄃᆞᆯ죽장 시백인물질(한달 줄곧 때 정해진 물질)
철장ᄒᆞ영 어정칠월(거둬 꾸려 어정 칠월)
동동팔월 돌아오면(동동팔월 돌아오면)
폿짐설렁 내고장가리(봇짐 챙겨 내 고장 가리)
출가 생활을 5~6개월을 무사히 치르고, 음력 8월이 되면, 신명(身命)을 걸어 번 수익을 꼭 쥐고 귀향한다는 대망(待望)으로 해녀들의 가슴은 설렌다.
TV를 보면, 가끔 본토의 연안에서 해녀들의 자맥질을 상영하면서 그녀들과의 대화도 들려주는데, 그중에는 제주 출신인 것을 어감(語感)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들은 그 지역에서 결혼하고 황영조 선수의 모친처럼 훌륭하게 자식을 키우며 지역에 잘 적응하고 있다.
해녀 수의 감소와 함께 출가 해녀의 수도 줄어들고 있지만, 제주해녀들의 진면목은 출가 해녀들의 끈질긴 활동상과 그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신명을 걸고 바다를 휘젓는 해녀들의 삶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