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반려견 / 김선경
“망망” 오늘도 어김없이 뒷산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같이 운동 나온 동네 어르신의 반려견이 내는 소리다. 운동하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흰색 털에 똥그란 눈망울로 산책길 할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포메라니안 종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만, 나도 한때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 곁을 스쳐 간 것만 해도 여섯이나 된다. 어릴 적에는 덩치가 큰 셰퍼드 반종을 키웠다. 중학생 때는 누런 잡종견을, 군대 가기 전까지는 하얀 털의 스피츠 종과 점박이 무늬가 있는 사냥개 달마시안을 키웠다. 나중에는 스파니엘 계통의 자그만 개도 어린 아들딸 곁에서 뛰놀았다. 이 중 누런 잡종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중학생 시절, 남부민동에서 셋방살이할 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전에 살던 동네에서 노란 복슬강아지를 하나 얻어 왔다. 진돗개 혈통인데, 약으로 쓰려고 땅개와 교배를 해서 태어난 잡종이라고 했다. 집에서 키우던 개는 잡아먹기가 그렇다고, 우리가 대신 키워서 새끼를 낳으면 모견母犬은 다시 돌려주기로 했단다. 당시에는 보신탕의 성행으로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목형 일을 하는 큰형이 나무판자로 얼른 뚝딱 개집을 만들어서 마당 한쪽 석류나무 밑에 두었다. 작은형이 영화에서 이름을 따와 ‘벤허’라고 명명했다. 흔해 빠진 복실이, 해피, 메리와 다르게 작명한 것인데, 암캉아지의 이름으로는 어딘가 어색했다. 우리는 발음을 부드럽게 하여 고상하게 ‘베느’라고 불렀다.
요즘 뒷산에 운동을 가면 이런 현수막이 여러 곳에 붙어 있다.
“반려동물 동반 산책 시 유의사항 – 목줄과 인식표를 꼭 착용시킨 후 산책하고, 배설물은 배변 봉투를 이용하여….”
이렇게 현수막을 붙여 놓아도 배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길옆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있다. 반려동물의 수가 인구의 1/3이라고 한다. 그만큼 반려동물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다. 반려견이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으려면 견주의 공공질서 의식부터 개선되어야겠다.
베느는 긴 양철지붕 밑에 세 들어 사는 다섯 가구원 모두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어미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어른들은 이를 암내 낸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무 개나 교배하면 안 된다고 목줄 단속을 심하게 했다. 특히 다리가 짧은 땅개 종류는 질색이었다. 마침 겉보기에도 튼실해 보이는 갈색 털의 잡종 개가 집 주위를 맴돌았다. 베느도 싫은 기색이 없어 짝으로 정해졌다.
성에 엄격하고 내밀하던 시절, 개들의 행위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인네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짝짓기를 끝낸 수캐가 황급히 뒤를 수습하며 내빼자, 아이들은 돌팔매질하며 야유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길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관 마루 밑으로 거처를 옮긴 베느는 2개월 후 일곱 마리의 포실한 새끼를 출산했다.
우리는 마루를 오르내릴 때마다 어미 개를 자극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육아에 힘쓰던 어미가 새끼를 자꾸 떨쳐낼 무렵, 어머니는 베느의 젖꼭지에 보라색 약을 구해다 발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충 젖먹이를 끝내자, 새끼들이 하나둘 어미 곁을 떠나갔다. 먼저 암캉아지 한 마리가 수캐 주인에게 무상으로 보내졌다. 시차를 두고 똘똘한 강아지 세 마리가 분양되어 나갔다. 이제 그런저런 새끼들만 남았을 즈음, 어머니는 베느와 헤어질 마음의 갈무리를 시작했다. 생선 머리도 삶아서 먹이고, 털이 곱게 보이도록 뜨끈한 물에 목욕도 시켰다. 그러고는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디 좋은 데 가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동생 둘이 한 시간 반 남짓 거리에 있는 대신동으로 베느를 끌고 갈 채비를 한다. 대신동은 나의 안태고향이다. 베느가 돌아갈 곳도 어릴 적 내 친구네 집이다. 동생들은 베느에게 먼저 목줄을 채우고, 길을 가다가 버티면 유인할 간식거리도 챙겼다. 베느는 동생들이 앞장을 서자 아무런 의심 없이 꼬리를 흔들며 재바르게 떠나갔다. 나중에 돌아온 동생들 이야기로는 군데군데 오줌으로 흔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고 한다.
보름쯤 지났을 무렵이다. 이른 아침, 어머니가 일어나 현관문을 열자, 마루 밑의 새끼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뛰쳐나갔다. 곧이어 베느가 새끼들을 달고 집안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끼잉, 끼잉” 하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마루 위로 올라갔다가, 어머니 치마 밑으로 들어갔다가, 막판에는 오줌까지 찔끔거리며 마구 뒹굴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몸짓이 생生의 환희 그 자체였다.
가족들이 모두 뛰쳐나와 베느의 귀환을 반겼다. 가만히 살펴보니, 얼마나 고생을 심하게 했던지 삐쩍 마른 몰골에 털이 엄청나게 빠졌다. 목에는 철삿줄로 옭아맨 상처까지 나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를 조합하면, 베느는 동생들과 헤어진 그날부터 낑낑거리며 발버둥을 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결국 이튿날 저녁에 목줄을 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흘이 넘는 기간을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아마 찾아오는 동안 어딘가에 붙잡혀 있다가 2차로 탈출을 감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진돗개의 핏줄을 반밖에 물려받지 못했지만, 주인인 어머니를 향한 일편단심은 소문난 명성 그대로였다. 그렇게 베느는 제2의 견생犬生을 살았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 견주犬主들은 반려견을 마치 자식처럼 대한다. 베느를 대신동으로 끌고 갔던 동생은 늘그막에 토이푸들을 키웠다. 동생이 외출했다 집에 오면 한결같이 반기며 기쁨을 주었다. 푸들이 노쇠하여 골골거릴 때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수명이 다했을 때는 화장하여 유골함을 잠시 집에 두고 기렸다. 이들은 전생에 어떤 덕悳을 쌓았길래 현생에 이런 관계로 만났을까?
나를 스쳐 간 견공犬公들도 다음 생엔 부디 귀한 인연因緣으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