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뤘던 일기 쓰기
박래여
며칠 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동안 딸이 반 살림을 하고 있다. 딸은 시댁 짐 정리를 하면서 울기도 한다. 두 어른의 자랑이었고 사랑받았던 손녀다. 두 어른 모시고 결혼하겠다던 소망을 이루지 못해 마음 아파한다. 딸이 시댁에서 오면 수영장을 가고, 보리 산책 시키고 저녁에는 부녀가 명상을 한다. 나는 허리 때문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고 좌식은 금세 지치니 누웠다. 의자에 앉았다 하며 인터넷으로 중국 드라마만 줄기차게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춘추전국 시대 중국 왕실가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재미있다. 무협영화를 즐긴다. 그 시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옷차림도 볼만하다. ‘중국 배우들은 저 옷값만 해도 무지막지하겠다.’ 혹은 ‘옷으로 청소 다 하네. 질질 끌고 다니니 따로 걸레질 할 필요도 없겠어.’ 이런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한다. 나는 중국 젊은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들을 보며 ‘어쩜 저리 잘 생겼을까.’ 감탄한다.
어떤 드라마든 줄거리는 똑 같다. 권선징악이다. 권력, 복수, 사랑을 위한 투쟁,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행복한 마무리로 끝나기 십상이지만 극중의 대화들 중 주워 담을 문장이 제법 된다. 침술, 독초, 약초에 관한 것, 천지조화 속에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삶도 생각할 점을 준다. 중국 드라마는 머릿속을 비우고 무심하게 봐도 된다는 거다. 보는 둥 마는 둥 해도 줄거리를 꿰맞출 수 있다는 거다. 눈의 피로를 풀고 싶을 때, 생각하기 싫을 때, 보기 딱 좋은 영화들이 많다. 황당무계한 천계, 인간계, 악계에 대한 것, 농부는 내가 중국드라마를 보는 것에 대해 이해불가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보는지 모르겠단다.
왜, 재밌잖아. 머릿속 비우고 멍 때리기 하기 딱인데.
어쨌든 요즘 나는 침체기에 빠진 것 같다. 의욕이 안 생긴다. 인간의 삶, 순리, 도리란 것에 통달해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소설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린 것일까. 어떤 것을 봐도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던 버릇도 없어졌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집요할 만큼 파고들던 것도 무심해졌다. 한물 가버린 노인이란 의식이 강해서 그럴까. 내가 쓴 것들조차 죽고 나면 쓰레기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이 강해서 그럴까. 내가 쓴 글에 대한 애착조차 없어진다. 글을 계속 써야 하나 싶다.
그동안 정 선생 부부가 다녀갔다. 이번에도 생선을 한 박스나 들고 왔다. 일 년에 한두 번, 잊을만하면 들렸다 가는 그들 부부다. 참 반갑다. 이십여 년 전 산청간디학교 학부모로 만났었다. 생선 도매상을 하는 정 선생은 팔방미인이다. 5개 국어를 구사한단다. 아직도 삶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 두 딸도 결혼했고, 외국에 나가 산단다. 막내아들까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단다. 자식농사 잘 지었다. 세 아이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 인연이 깊다. 그들이 주고 간 생선이 냉동실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생선 살 일은 없겠다.
세월은 참 빠르다. 두 어른 모시고 살 때는 숨 좀 고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두 어른 돌아가시고 나니 일 년도 안 돼 너무 편한 것 같아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애들 키우고 어른 수발하면서 아옹다옹할 때가 좋았니라.’ 어른들 말씀이 진리다.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축내는 것 같을 때 찾아온 정 선생 부부는 내게 활기를 주는 귀한 벗이었다.
농부는 3주 명상을 가기 위해 날마다 땀을 빼고 있다. 마당의 잔디 깎기에서 감산 방제, 풀치기까지 정신없다. 누구든 오랫동안 집을 비우려면 할 일이 많다. 꼼꼼한 농부 성격이니 오죽 하겠나. 환자인 아내조차 딸에게 맡기고 가야 하는 처지다. ‘나 혼자서도 잘 지내. 괜히 딸 오라 가라 해서 힘들게 하지 마소. 내가 어린앤가.’ 그래도 소용없다. 내버려둔다. 사람은 모두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야 편하다.
5월 말에 아들이 왔다. 가정학습기간이라 일주일을 쉬고 갔다.
그 사이 산속 물통 청소를 했다. 식수통에 가재가 들어가 사는지 물이 흐릴 때가 있었다. ‘물탱크 청소 좀 해 주고 가소.’ 부탁했더니 아들이 오자마자 식수통 청소부터 했다. 큰 물통 두 개를 두고 걸러서 식수로 사용하니 일 년에 한 번씩은 식수통 청소를 해 줘야 한다. 식수통 청소를 끝내니 내 속이 시원하다. 예전에는 내가 했었다. 힘들고 바쁜 농부에게 부탁하기보다 내 손으로 해 치워야 맘이 편했었다. 그러던 내가 환자가 되고 노인이 되면서 산길은 겁나서 오르지 못한다. 내 몸을 살살 달래가며 사는 삶이다.
유월 초, 농부는 명상센터로 떠나고, 아들은 제 집으로 떠났다. 딸과 둘이 남으니 홀가분하고 좋다. 농부가 떠난 다음 날 새벽에 수도꼭지에서 콸콸 흐르던 물이 뚝 그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었다. 꿈이었다. 그것도 흉몽이었다. 이번 헤어짐으로 부부 사이에 끈끈하던 막이 맑게 걷어질 것 같다. 사랑도 미움도 없이 각자 편안해진 부부 사이로 살아가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딸과 삼가 기름집에 다녀왔다. 텃밭 가를 온통 점령한 돌 들깻잎을 따서 된장에 한 통 박았다. 야생이라 향이 엄청 강하다. 해마다 씨도 안 뿌리고 거두기만 하는 나를 보고 그는 ‘당신은 착취자다.’ 빈축을 사지만 나는 ‘태평농법에 무공해 농사잖아. 된장에도 박고, 양념도 바르고, 졸여도 먹고, 쌈도 먹어주니 들깨가 고맙다고 인사 하던 걸.’ 말이나 못하면 미움이라도 덜 받지.
며칠 미뤘던 일기를 한꺼번에 쓰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귀찮아지니 마음이 문젠지. 몸이 문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허리를 비비 꼬고 있다. 꽤 가물다. 비가 올 때가 됐다. 장마가 다가오는데. 텃밭의 풋고추와 오이를 따 먹기 시작했다. 푸성귀가 남아돈다. 나는 날마다 수확한 푸성귀를 누구에게 갖다 줄까. 기분 좋은 고민에 빠진다.
2024. 6.
첫댓글 이런 글도 읽을 맛이 있나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을 인터넷상에 발표를 하니
남의 사생활 엿보기가 솔솔한 재미라면 다행이지만요. 식상하면 거두어 들이고 싶기도 합니다.^^
일반 가정사보다 더 시시콜콜 잡스러운 정치계를 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