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5 / 양희용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과 이별, 행복과 불행의 감정이 영원할 것 같지만 한순간입니다. 사람들은 백세시대라고 떠들지만, 기나긴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한 점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연표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미물에 불과합니다. 아쉬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누구나 가야 할 길이라면 조금 서둘러 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는 울산의 현대자동차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대도시 부산으로 시집온 지 18년째입니다. 조선 시대 양갓집 규수처럼 정략결혼에 의해 지금의 주인 남자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별 남자 없다는 중매쟁이의 수완에 넘어가 몇몇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향하는 탁송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조립되면서 꿈꿔왔던 좋은 집안의 멋진 남자는 아니었지만, 간소하게 혼례식은 올렸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저를 한산한 이면도로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의 앞머리와 뒷머리를 올려주고 거추장스러운 비닐 옷을 벗겨주었습니다. 돗자리에 몇 가지 음식과 물품을 준비한 후, 혼례주를 한 사발 부어 초례상을 차렸습니다. 저에게 큰절을 올리더니 막걸리 한 모금을 마셨습니다. 남은 술을 저의 가슴과 바닥에 뿌리며 안전운전과 무사고를 비손했습니다. 그의 지극정성에 감복하여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소박한 의례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몸과 마음을 허락했습니다.
지금은 통영에서 여객선을 타고 연화도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이와 함께 다섯 번째 방문하는 섬이지만 이번이 최종 이별 여행입니다. ‘이별 여행’이란 용어는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가끔 언급됩니다. ‘이별하는 데 왜 여행을 같이 가지. 서운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표현처럼 상대방의 더 나은 행복과 미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여겨집니다.
저를 향한 주인의 사랑은 일편단심이지만 제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이의 안전하고 즐거운 노후 생활을 위해서입니다. 저의 심장을 비롯한 내부기관 전체에서 알 수 없는 이상 반응이 계속 나타납니다. 1년 가까이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면서 엄청난 치료비가 발생했지만, 끝까지 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주치의가 오랜 숙고 끝에 한 달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을 때, 그이는 하늘만 바라보며 애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쌓아 온 추억과 애정을 돌아보기 위해 마지막 섬 여행을 나선 것입니다.
연화도에 가면 해발 212M의 연화봉 꼭대기까지 엔진에 무리 없이 쉽게 오를 수 있고, 연꽃 모양의 드넓은 바다 위에 햇살과 파도, 고깃배가 어우러져 춤추고 있는 풍경을 내려다보면 괜히 가슴이 떨립니다. 그이가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은 곳이어서 더 애착이 갑니다. 수국이 절정인 여름철에 꽃길을 따라 오르내리면 신혼여행을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연화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이는 객실로 올라가지 않고 저의 가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동반자와 곧 헤어져야 하는 현실에서 잠시 회상에 잠긴 듯합니다. 저도 나름 호위 무사로서 궂은날, 험한 길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주인 양반도 저를 위해 혼신을 바쳤습니다. 특히 고마운 것은 혼자 외출하고 돌아오면 집으로 들어가기 전, 꼭 저의 숙소에 들러서 “야! 잘 쉬어라. 내일 보자.”라면서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일입니다. 주변 친구들이 저를 참 부러워합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특별한 사고가 없어서 처음 만날 때의 무사고 약속을 지켰지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주인의 막내아들이 군 생활을 하던 강원도 양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저는 중앙고속도로를 시속 165Km까지 달렸습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콤비라면서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1주일 후, 그 신기록을 달성한 기념사진이 날아왔고 그와 함께 과태료를 내기 위해 은행에 갔습니다. 메달을 목에 걸었다가 박탈당한 기분이었습니다.
한번은 저를 골목길에 세워놓고 주인이 볼일 보는 사이, 단속반이 저를 견인하러 왔습니다. 레커차에 천천히 끌려갈 때, 소식을 들은 그이가 급하게 뛰어나왔습니다. 짧은 다리에 두꺼비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를 움켜잡은 채 “아저씨! 아저씨!”를 외치며 달려왔습니다. 연결 고리에 묶여 끌려가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오는 한 남자를 바라보자 눈물과 웃음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차를 세운 기사와 그이가 대화하면서 뭔가를 주고받더니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이의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 덕분에 저는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연화도 정상 턱밑에 있는 보덕암에 도착했습니다. 그이는 저의 손을 잡은 채 한참 동안 바다만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내려 암자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다시 저의 품에 등을 기대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고 너무 고맙구나. 잘 가거라. 나도 언젠가 따라갈 것이다.” 저는 속울음을 삼키며 작별을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그이를 영원히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한 이별 여행이었습니다.
주인 남자와 새 여자의 만남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햇볕을 쬐며 조용히 쉬고 있을 때, 바쁘게 날아가던 까치가 동백나무에 내려앉더니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얘, 네 고향 친구, 빨간색 ‘4287’이 지난주에 어디론가 끌려갔어. 주인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모든 만물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이치를 이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때제때 밥 먹고 잘 달리며 편하게 살아온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이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고 젊은 여인이 기다리는 영업소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시집올 때보다 훨씬 더 아리따운 여자를 본 그이는 입이 찢어질 듯 벙글거리며 그녀의 품에 덥석 안겼습니다. 남자들이 다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훌쩍 떠났습니다. 질투도 잠시, 뒷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저는 못생긴 외간 남자의 손에 끌려 폐차장으로 갔습니다. ‘6905!’는 찌그러지면서 몸뚱이는 고철로 분해되었지만, 여러 가지 용품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무엇으로 환생하든 그이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양희용 선생님은
경상도 말로 역시 글쟁이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노우 회장님.
부족한 글 읽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게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홍윤선 카페지기님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양희용(일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