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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훔치는 자들에게 던지는 송곳같이 날카로운 14가지 질문들
표절은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은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비밀이다. 고위공직 후보자가 과거 학위 논문을 베낀 적 있다는 논란이 매년 불거지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 가수가 해외 뮤지션의 음악을 따라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적재산 도용과 창작물 보호는 일부 지식인 및 예술가들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로 취급되고는 했다. [표절을 대하는 위험한 질문들]은 국내 최초로 대중에게 표절이라는 주제를 소개한다.
저자는 1990년대 가요계를 휩쓸던 톱스타가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은퇴해야 했던 이유, 천재로 추앙받는 가우디가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 등을 추적하며 14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동서양의 역사와 현대 대중문화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통해 독자들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웹툰이나 게임처럼 최근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물론, 피카소나 바흐와 같은 예술계 거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을 살펴본다.
대한민국은 진정 표절 공화국일까?
- 신경숙 작가도,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도 피해가지 못한 논란
2015년 6월, 신경숙 작가가 전국을 들썩였다. 그의 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는 문장을 포함한 여러 표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설]은 결국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더불어 올해 9월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번에 의혹을 제기한 이는 수필 작가 오길순이다. 그는 신경숙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가 자신의 작품 [사모곡]을 따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표절은 문단文壇을 비롯한 일부 예술계의 문제를 넘어 온갖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사건'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가장 철저해야 할 학문의 전당에서도 버젓이 일어나는 중이다. 올해 8월,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가 다른 이의 논문을 베껴 석사 학위논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심지어 오타까지 그대로 옮겼더라는 지적을 들으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한편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도 장관직 후보자 시절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고,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이 문제로 인해 낙마하기도 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이들의 한결같은 과거를 보면 대한민국이 표절 공화국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표절 여부, '아는 만큼 보인다'
- 윤은혜는 정말 디자인을 베낀 것일까?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의혹이 실제 표절로 밝혀지는 것은 아니며,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엇갈린 판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연예인 윤은혜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중국의 예능 프로그램인 '여신의 패션'에 출연해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선보였다. 그런데 소매에 프릴 장식이 달린 옷이 국내 디자이너의 작품을 따라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두 벌의 옷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돌았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무척 닮은 듯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프릴 양식은 유명 브랜드인 겐조KENZO나 끌로에Chloe, 혹은 엠마뉴엘 웅가로emanuel ungaro에서도 발견되는 스타일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낯선 디자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의상에 대해 잘 아는 이에게는 익숙한 모양새였던 것이다. 이처럼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나타나는 문제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의 깊이가 사람을 만든다. 서양 복식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더라도 쉽게 이해될 문제들이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단순한 인터넷 헤드라인 몇 줄에 따라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곤 하는 일이 많다. 디자인 영역에서도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 때문에 비전문가인 대중 입장에서 디자인 표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사람들의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논쟁 내용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이 문제에 접근했어야 했다.
(/ p.62)
세계적 작가들이 파리로 모여드는 이유
- '지적 도둑질'을 엄격히 관리하는 프랑스의 법 제도
실제로 표절을 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윤은혜 디자인 논란'은 당시 인터넷을 휩쓸었다. 국내 연예인이 한국도 아닌 중국 땅에서 내놓은 의상이 이토록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표절이라는 행위가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훔친다는 점에서 '도둑질'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국민들의 정의감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들끓는 여론과 달리, 각계각층에서 표절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표절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윤리와 습관의 측면에서 먼저 찾는다. 유행하는 옷이라면 '짝퉁'을 만들어서라도 판매하려는 의류 업계의 관행, 대학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얻는 학문적 성취보다 '간판'을 위해 학위만 빠르게 취득하려는 풍토, '걸리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슈 표절, 사상 표절 등을 모두 '넓은 의미의 표절'로 분류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표절 가운데 법적 제한을 받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지적재산권'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규제 강화를 위해 교육부는 올해 말부터 국, 공립대학의 교수나 교육공무원이 논문 표절과 같은 행위를 할 경우 최대 파면 조치가 가능하도록 징계 수위를 정했다.
표절은 개인의 양심과 윤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 사안이다. 저자는 프랑스가 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하기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꼽힌다는 점을 지적한다. 프랑스는 표절에 대해 징역형을 부과하기도 하는 등 강력한 법적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한국이 '표절 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지식 기반 사회로 성숙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그러려면 표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이 던지는 14가지 질문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기를,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표절의 전성시대에 사는 우리가 떠올려야 할 질문
1장 산에 사는 호랑이가 대나무 숲으로 간 까닭은?
- 일본, 조선의 상징을 훔치다
2장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복제품인가?
- 생각의 범위가 사상을 만든다
3장 피팅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은 명품 옷, 동대문에 가면 있다
4장 애플의 아이맥과 닮기만 해도 죄?
- 일반 상식과 다른 ‘표절의 법적 기준’
5장 가요계의 톱스타, 왜 최정상에서 은퇴했을까?
- 인터넷이 비밀을 폭로하는 시대
6장 고고학계의 천재 학자, 사기꾼으로 추락하다?
- 전 세계 앞에서 펼쳐진 ‘유물 발굴 쇼’
7장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도 베낀 것일까?
- NBA 경기 장면을 따라한 전설적인 스포츠 만화
8장 피카소, 경쟁자의 ‘여인’을 보고 영감을 얻다?
- 입체파의 두 거장이 남기고 간 밝혀지지 않을 수수께끼
9장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을 레퍼런스로 삼아도 될까?
- 표절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개념들
10장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진짜 뜻은 ‘스승을 따라하라’?
-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가우디
11장 학자의 양심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짜깁기 논문들, 출처를 숨기다
12장 고미술 상가에 가면 여러 명의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가 있다?
-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들의 향연
13장 [하멜 표류기]는 하멜이 쓰지 않았다?
- 조선의 실상과는 다른 ‘조선 관찰 보고서’
14장 라파엘로는 모방의 전문가?
- 르네상스 시대에 갇혀버린 그림의 대가
헨델이 표절 논란의 최고봉에 속해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다른 작곡가들의 멜로디를 여러 번 가져다 써놓고는 '그 곡이 괜찮아서 내 이름을 붙였을 뿐'이라고 대놓고 말하던 사람이다. 서양 음악사를 보면 당시에는 다른 곡의 일부를 차용해서 자기 곡에 사용하는 것이 일정 부분 허용되었는데, 이 사실이 헨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헨델의 주장대로라면, 잘 알려진 멜로디를 여러 곡에 사용해서 대중성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고나 할까?
(/ p.36)
그럼 콜라 병 모양을 흉내 내서 음료수 병을 만들었다면 이는 표절일까? 또는 동그라미를 이용해 미키마우스Mickey Mouse가 연상되도록 쥐의 귀와 머리 부분만을 그려서 문구나 티셔츠 등에 사용했다면 이 경우도 표절에 해당되는 것일까? 이 경우 국내에서는 '의장 특허디자인 특허'의 침해 여부를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정 제품의 외형이나 로고의 모양과 색상 등에서 형태의 유사성을 고려할 수도 있다.
(/ p.71)
1990년대, 국내에 X세대가 등장했을 무렵이다. 외국 문화를 접하려면 비디오테이프라는 미디어를 이용해야 했던 시대, 한국 가요계에 등장한 이 남자 그룹은 무척 신선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었던 힙합 스타일과 의상을 입고 흥미로운 음악과 춤, 가사를 사용해서 만든 노래들로 순식간에 한국의 젊은 세대를 파고들었다. 그들은 곧 대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이 주요 미디어로 자리 잡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 그룹이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은퇴를 발표한 것이다. 인터넷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이들의 은퇴 시기가 인터넷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와 겹친 것은 그저 공교로운 일이었을까?
(/ pp.91~92)
프랑스에서 표절을 그 자체로 얼마나 큰 문제로 보는지 한국인들도 잘 새겨 배워야 하지 않을까? 툭하면 불거지는 유명 인사들의 논문 표절 논란도 그렇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90년대의 일이다. 프랑스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이 박사학위 논문을 냈다. 그런데 나중에 표절로 밝혀지면서 학위가 취소되었다. 문제는 이 일로 다른 한국인 학생들조차 그 대학에 입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국가 위신 차원에서도 심각한 일이었다.
(/ p.125)
이번에는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비교해보자. 피카소의 작품 '잔느Jeanne'는 1901년의 작품이고, 마티스의 작품 '푸른 누드Nu bleu'는 1907년의 작품이다. 그림 속 여성의 동작을 유심히 보자. 머리에 팔을 올린 동작, 다른 팔을 뻗은 위치, 두 다리의 포개진 정도. 두 그림은 상당 부분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화실을 찾아온 피카소를 보며 "아이디어 훔치러 왔나?"고 말했다던 마티스가 이 두 그림을 보고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다.
(/ pp.131~132)
어느 날, 일본 사회에 대한 한 권의 비판서가 우리 사회에 화제를 몰고 온 적이 있다. 저자가 일본에 가서 생활하며 체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리포트 형식으로 출간한 책이었다. 나도 우연히 서점에 들러 그 책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훗날, 이 책의 일부분이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표절로 결론지어지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알고 보니 두 저자는 서로 만난 적이 있으며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글의 원저작자는 집필과 기고를 하는 동안 글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의 행동을 했으며, 이런 여러 정황을 볼 때 해당 원고는 '공표'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 p.188)
표절을 대하는 위험한 질문들 : 원제 : Dangerous Questions on Plagia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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