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 떡볶이 가게 사장님에게 다가갔다. 두근거렸다. 이 분이 누구냐 하면, 나이는 50대쯤 됐을까. 늘 빨간색 위생모를 단정히 쓰고, 카리스마 넘치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배가 고파 조바심이 나서 냄비뚜껑을 자꾸 열려고 하면 혼이 났다. 어느샌가 다가와 "끓으면 드세요"라고 외치곤 했었다. 투박한 정(情)이었고, 만드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는 그에게 대뜸 "이거 드세요"하고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이랬다. '이 이상한 XX는 대체 뭐지?'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했다.
"제가 아내 덕분에 여길 처음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왔다고 하더라고요. 떡볶이 좋아해서 숱한 데를 다녔는데, 여기가 최고 맛있어요. 적당히 맵고, 해물 때문에 국물은 시원하고요. 맨날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에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오래 장사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계산하고 나가던 손님이, 처음 건넨 얘기였다. 주방에서 가만히 듣던 사장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너무 고맙다"며 주름이 깊이 패도록 환하게 웃었다. 몇 년을 다녔지만, 그리 밝은 웃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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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영 기운이 안 나 멍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상사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다니는 요가 선생님이 있는데요. 기사 정말 잘 봤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마음이 똑같이 느껴졌다고요. 그러니 요가 배우러 오라고요." 생각지 못한 말 한마디에, 허리를 다시 꼿꼿이 세웠다. 그날 하루, 그 기운 덕분에 잘 보냈다.
잘 봤다고, 마음을 울렸다고,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할 수 있었다고. 오래도록 기사를 써줬으면 싶다고, 그러니 건강 잘 챙기라는 안부도 있었다. 쓰디쓴 비판은 더 생각하게 하는 큰 힘이 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화려하기보단 사소하더라도, 대단한 성과를 내진 못했더라도, 그게 꽤 주목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매일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당신은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막연히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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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미화원 여사님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자, 그는 "감사하다"고 웃으며 벌컥벌컥 마셨다. 1층부터 5층까지, 계단을 닦았단다. 미끄럼 방지 부분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단다. 그래서 목이 많이 탄 모양이었다.
마시면서 잠시 얘길 나눴다. 그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줌마!"라고 언성을 높였다는 얘기부터 했다. 출근 체크를 할 때, 기계가 잘 안 돼 여러 번 하고 있으니 그리 부르며 핀잔을 줬단다. 자기가 청소한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그날 밤까지 그게 생각나서 잠을 설쳤다고.
그에게도 늘 하고 싶었던 얘길 했다. 오가며 동네가 늘 깨끗해서 참 좋다고. 여사님 없었으면 얼마나 지저분했겠느냐고. 청소가 보통 일이 아니고, 꼼꼼히 잘하는 게 쉽지 않다고. 그래서 늘 감사하다고 말이다.
여사님은 비로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와 잠시 더 얘길 나눴다. 그는 헤어질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을 걸어줘서 참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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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조경관리'란 조끼를 입은 걸 보고, 누군지 짐작했다.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한 호스를 어깨에 이고 있었다. 한 명은 그걸 들고, 다른 한 명은 잔디에 그걸 흩뿌렸다. 그렇게 물을 주고, 나뭇가지를 치고, 화단에 가서 꽃들을 돌봤다.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그러면서 "여기 공원을 참 좋아하는데, 괜히 잔디와 꽃이 예쁜 게 아니었네요. 산책할 때마다 힐링이에요. 이리 살뜰하게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들은 조경관리 직원은 "감사하다"며 환히 웃었다. 그러면서 "여기 꽃들도 한 달에 한 번은 바꿔서 심어줘야 해요. 저희가 다 심었어요. 잔디도 자라면 제때 깎아줘야 하고요"하며 자랑스레 자기가 하는 일을 더 얘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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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어찌 보면 참 소소한 응원이었다. 말 한마디에 비타민 음료 하나 정도. 표현하는 게 쑥스러워서 좀 머뭇거리기도 했다. 마음은 늘 있었으나, 입 밖으로 그렇게 말하고 다닌 건 첨이었다. 처음엔 낯이 간지러웠다, 많이. 후다닥 얘기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다가가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스쳐 지나간 이들이라서,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만큼 침묵하고 지냈었다.
(생략) 그래서 얘기해주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니 좋았다. 환히 웃는 얼굴을 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더 큰 힘을 얻었다. 처음엔 쭈뼛거리다 갈수록 구체적인 얘길 해줬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그 삶이, 사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게 좋았고 또 어떤 게 아쉬운지 말이다.
그들도 좋았다고 했다.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누군가 알아줘서, 사소하다 여겼던 일을 칭찬해줘서, 반복되는 삶에 때론 지루할 때도 있었는데 가치가 있다고 해줘서. 그래서 고맙다고 했다. 한 고객센터 상담사에겐 "상담사님 덕분에 그 회사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거기 사장님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얘긴 처음 들었다"며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https://v.daum.net/v/20190928061005443
첫댓글 감동이야
사소하고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 어찌보면 나도 그런데,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들 만나면 뿌듯하고 일 더 열심히 하게되더라
이런 것 때문에 살 맛 나는 거 같아 힘들다가도 이런 기억 하나로 다시 힘내게 되고
이래서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나 봐
.... 왜 날 울려...
저렇게 칭찬도 딱 잘 골라서 하는것도 능력인거같아 닌 그냥 어버버거렸을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