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시> 122호(2024. 3)에 눈꽃과 설원의 풍경을 담았다.
눈꽃과 설원의 풍경
- 훗카이도 도야, 오타루, 비에이, 후라노, 삿포르
차용국
비행기는 구름 위에 떠 있고, 구름은 바다 위에 떠 있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의 공간은 끝을 알 수 없다. 어쩌면 끝이 없는 원형의 세계일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내 시력이 미치지 못하고, 그곳의 신비는 내 지력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 끄트머리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처럼 선이 있다. 나는 그것을 운평선雲平線이라고 부른다. 그 선은 날카롭지 않고 선명하지 않다. 선이라기보다 휘어진 면처럼 보인다. 운평선은 경계의 표지가 아니라 경계가 사라진 세상의 헐거운 여운 같다. 미지未知다.
하강하는 비행기 창문 아래 훗카이도北海道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흰 구름 아래 흰 눈이 덮여 온통 하얗다. 곰과 올빼미의 신성이 숨 쉬는 아이누족의 땅. 자작나무와 졸참나무가 무성한 설국이다.
17세기경부터 일본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훗카이도는 1869년 메이지 유신 이후 공식적으로 병합했다. 지금은 대략 2만 3,000여 명 정도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누족은 일본인으로 완전히 동화되어 만날 수 없고 구별하기 어렵다. 자작나무와 졸참나무가 피워내는 눈꽃과 설원의 풍경만이 아이누족 시원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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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洞爺로 가는 동안 햇빛과 눈이 오락가락한다. 눈은 수평에 가까운 사선처럼 내린다. 아니 훗카이도의 눈은 내리지 않고 흐른다. 쇼와 신잔昭和新山, Showa Shinzan에 도착하여 직접 눈을 맞아 보니 그 말이 맞다. 눈은 하늘에서 흐르고, 쌓은 산봉우리와 구릉과 평원을 박차고 일어나 솟구치며 출렁출렁 흐른다.
쇼와 신잔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이 우스산이고 왼쪽이 쇼와 신잔이다. 두 산은 마주 보고 있다. 날이 흐리고 눈이 흐르고 우스산도 흐리다. 흐린 풍경 속 우스산은 여느 산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눈 쌓인 마루에 화산 분화구를 숨겨 놓고. 사실 우스산은 마그마가 가득한 무서운 활화산이다.
쇼와 신잔은 하나의 웅장한 바위봉우리다. 우스산 화산이 폭발할 때 쇼와 신잔은 보리밭 구릉이었는데 융기하여 산이 되었다. 솟아오른 보리밭 언덕의 흙이 쓸려 내리고, 기반암만 거대한 하나의 바위봉우리로 남았다.
쇼와 신잔의 웅장한 탄생의 신화는 그리 먼 옛이야기가 아니다. 가이드는 1943년부터 2년간 왕성하게 전개된 화산 활동의 결과라고 한다. 훗카이도 사람들은 우스산을 '어머니 산' 쇼와 신잔을 '아들 산'이라 부른다고 덤으로 일러 준다. 나는 두 산을 번 갈이 바라볼 뿐이다. 신성한 까마귀무리가 두 산의 전령처럼 오간다. 자연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세계는 끝이 없어서 언제나 진행형으로 아름답고, 과학과 신화를 아우르며 경이롭다.
리마츠 마사오가 늘 그랬듯이 눈보라를 맞으며 망원경 같은 기구를 통해 쇼와 신잔을 관찰하고 있다. 도야의 눈보라가 제아무리 거칠어도 그의 열정에 녹아버린다. 그의 청동상은 도야의 수호신이다. 젊은 시절 도야의 우편배달부였던 그는 우스산 화산 연구를 위해 방문한 교수팀의 안내를 맡았다. 이를 계기로 화산 분화 예측 연구 방법을 습득한 그는 평생을 쇼하 신잔 관찰에 몰두했다.
리마츠 마사오가 90살이 넘었을 때 쇼와 신잔의 현저한 변화를 관측했다. 그는 그것이 화산 폭발 징조라고 판단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그의 사전 대피 덕분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유독 지진과 화산 폭발 재난이 많은 일본에서는 그와 같은 사람을 진정한 영웅이요 구원자로 추앙한다. 도야는 이웃 같은 영웅들이 지켜낸 설국이다.
도야코洞爺湖, Lake Toya는 큰 호수다. 바다처럼 넓다. 호수의 둘레는 약 43킬로미터다. 서울 송파구 정도로 일본에서 9번째로 크다. 화산 활동으로 가라앉은 분지에 물이 고여 생긴 칼데라 호수다. 온천수가 솟아나 춥고 눈 많은 지역에 있어도 얼지 않는다.
남쪽에는 우스산과 쇼와 신잔이 우뚝 솟아있고, 외곽으로 크고 작은 하얀 능선이 성처럼 둘러싸여 호수를 지키고 있다. 호수 안에는 섬이 있고, 섬에는 흰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섬 안의 산은 우거진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눈꽃을 피운다. 호수와 섬과 산과 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이 하나의 그림 안에 담겨있다. 유람선을 타고 푸른 물결 일렁이는 호수를 떠돌며 바라보는 풍경을 따라 갈매기는 신나게 날아다닌다.
사이로 전망대Sairo Views에 왔다. 도야코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날이 흐리고 눈보라가 흘러서 어디가 호수인지 평원인지 구별할 수 없다. 하얀 평원에서 하얀 자작나무만 하얀 가지 위에 하얀 눈꽃을 피운다.
도야는 온천 마을이다. 도야코를 빙 둘러서 호텔이 즐비하다. 호텔 온천탕은 언제든지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온천탕은 도야코 가까이에 노천탕을 배치해서 손을 내밀면 호숫물에 닿을 듯한 기분이 든다. 눈보라가 세차게 흐르고 있지만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추운 느낌이 없다. 낮에 부지런히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에는 느긋하게 노천욕을 즐기면서 몸의 피로를 풀고, 마음의 여백을 넓히는 맛도 도야 여행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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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小樽, Otaru로 가는 거리와 평원과 먼 산의 능선은 하얀 침묵의 풍경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 평원에는 침묵의 햇빛과 눈보라만이 오가며 흐르고, 먼 산의 연봉과 능선을 오르내리며 햇빛과 눈보라에 오락가락 출렁거린다. 하얀 산마루는 햇빛이 나오면 눈부시게 빛나고, 눈보라가 흐르면 고요 속에 침묵한다.
멀리 요테이산이 햇빛에 잠깐 머리를 드러냈다. 하늘을 찌르듯 치솟은 삿갓처럼 생긴 하얀 산마루는 웅장하고 신비롭다. 요테이산은 후키다시 공원ふきだし公園의 모태다. 후키다시 숲은 원시림의 고향처럼 맑고 고요하다. 요테이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공원에 샘을 만들고 계곡으로 흐른다. 샘물은 청정수다. 순수한 시원의 물이다.
후키다시 공원은 층층으로 눈이 쌓여서 쓸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눈을 깎아 길을 낸다. 깎인 눈 양쪽으로 눈벽이 생기고 깎인 부분이 길과 길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눈 덮인 원시림으로 들어가 원시의 샘에서 솟아나는 시원의 물을 마신다. 물맛은 싱그럽고 부드럽고 달다. 준비해 간 페티병에 물을 가득 담았다.
후키다시 공원에는 부러진 나뭇가지가 많다. 눈은 내린 자리에서 쌓이고 바람에 이동하며 쌓인다. 눈은 대지에서 쌓이고 나뭇가지에서 쌓이고 또 쌓이고 쌓인다. 그리하여 나무에는 거대한 눈꽃이 핀다. 커지고 커진 눈꽃에 나뭇가지는 부러진다. 꺾이고 찢기고 부러진 자리에 눈이 쌓이고 또 쌓여서 또 거대한 눈꽃을 피운다. 후키다시 공원은 눈꽃의 낙원이다.
오타루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원래 오타루는 삿포르의 외항으로 출발했다. 개척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는 훗카이도에서 생산한 석탄을 실어 나르는 '석탄 무역항'이었다. 1907년 철도가 개설되면서 훗카이도 관문으로 거듭 발전한 오타루는 '북쪽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인구도 급속히 늘어 한때 30만 명이 넘었다.
오타루 운하는 해안과 매립지 사이에서 각종 화물을 하역하고 수송하기 위해 만든 '물류하역용' 시설이다. 폭 40미터 깊이 2.4미터 길이 1.324미터의 수로를 11년에 걸쳐 완성했다.
오타루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제3차 산업 중심의 기술 문명이 저물어 가면서 오타루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인구도 급속히 줄었다. 지금 오타루에는 12만 명 정도가 산다.
변화의 눈보라를 견뎌내며 오타루가 찾아낸 먹거리는 관광이다. 오타루 관광 산업의 비전과 실현 방식은 단순히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동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오타루 번영의 최고 정점에서 생성한 문화와 기술을 보여주고 파는 것이다. 관광객은 그때의 찬란한 문화와 기술에 감탄하며, 그것을 계승한 눈부신 산물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열어 산다. 그들이 사간 제품은 이국에서 자랑거리가 되어 퍼져나가고, 잔잔한 추억이 되어 다시 오타루를 찾아오게 하는 증표가 된다.
오타루역에서 도보로 천천히 걸어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반경 안에서 운하와 거리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을 수용한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가스등 불빛은 아늑한 서정을 불러내고, 눈 덮인 운하의 야경은 시들지 않는 추억의 빛으로 북극성처럼 제자리를 지키는 좌표로 빛난다.
개항 시대의 건물과 창고는 그대로 박물관과 카페와 상점으로 재탄생했다. 기타이치 가라스 공방거리Kitaichi glass workshop road는 유리 박물관과 오르골 전시장을 중심으로 전통 유리 공예 공방과 오르골 상점으로 가득하다. 대부분 옛 건축물을 개조해서 쓰고 있는데, 촌스럽거나 허술해 보이지 않는다.
훗카이도의 추위는 질 좋은 유리 공예 기술 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일반 유리는 추위에 쉽게 깨지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화 유리 기술이 발달했다. 거기에 색과 그림을 새겨 넣는 섬세한 공예 기능이 더해졌다. 타지로부터 유리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재창조해낸 오타루의 유리 제품은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 새로운 창조의 여정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유리 박물관과 상점에 빼곡히 진열된 제품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환상적인 유리 제품에서 풍기는 정취는 상상 이상이다.
뚜껑을 열면 천상의 소리가 들린다는 오르골. 1912년에 지은 오르골 전문점은 3,400여 종, 2만 5,000여 점의 오르골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오타루는 일본 최대의 오르골 산지다. 진열된 오르골 제품의 종류와 특징은 피아노와 같은 악기, 만화와 영화 캐릭터...... 너무도 많고 다양해서 언급하기조차 숨 가쁘니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편이 낫겠다.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여기 전시된 오르골 제품을 벗어날 수 없을 듯싶다.
오타루는 100년이 훌쩍 넘은 정점의 번영에서 창조한 문화와 기술을 버리지 않았고, 100년이 훨씬 넘은 건물을 허물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에 현대의 문화와 기술을 끌어와 덧붙였다. 그래서 오타루는 고풍스러움 속에 현대의 감각이 스며있다. 그것이 사람의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신구의 서정이 어우러져 빛나는 감성의 천국이다. 영화 '러브레터'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훗카이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해산물이 풍부하고, 내륙의 평원은 넓어서 낙농업이 발달했다. 소가 사람보다 많다. 사람은 500만여 명이 살고, 소는 1,000만여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풍부한 해산물과 육류를 재료로 음식 문화가 발전했다. 해산물과 육류와 유제품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별미다.
그래도 오타루에서는 우선 스시부터 먹을 일이다. 사람들은 스시의 으뜸으로 오타루 스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시카리만과 인접해 있는 오타루는 매일 신선한 식재료를 공수받아 스시를 만든다. 스시가 나오기 전에 손님은 말차를 마시며 기다린다. 말차는 녹차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 마신다. 스시의 생선은 다양하다. 생선과 생선알, 김 등으로 만든 스시는 부드러워서 입안이 편안하다. 오타루 스시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등장하기도 했다. 오타루의 거리에는 어딜 가나 스시 가게가 성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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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美瑛, BIEI 패치워크 로드 설원과 구릉은 하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자작나무에서 피는 눈꽃 행렬은 끝을 알 수 없다. 저 눈 바다는 원래 광활한 농지인데 겨울이면 눈이 쌓여 설원이 된다. 저 멀리 평원 끝에서 다이세츠산大雪山과 토카치다케산十勝岳, 2,077m 연봉이 눈보라에 보였다 숨었다 한다.
사람들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패치워크 로드 설원의 나무에 이름을 붙였다.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 옆에서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담배 광고에 나왔다고 세븐스타 나무라고 부른다. 구릉 위에서 다정히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는 부모와 아이 나무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홀로 서서 세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는 나무는 시어머니 나무라고 부른다. 켄과 메리 CF에 나왔다고 켄과 메리 나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패치워크 로드 설원의 나무는 제각각 ‘고유명사’가 되어 있다.
아오이이케青い池는 인공의 연못이다. 훗카이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다이세쓰산 국립공원의 도카치다케산은 주기적으로 화산을 분출하여 비에이 평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 1980년대에 도카치다케 화산이 폭발할 조짐을 보이자 비에이는 화산재 퇴적물이 농지로 유입되는 재해 예방을 위해 비에이강 지류 하천과 계곡 여러 곳에 제방을 만들었다. 시멘트로 계곡에 쌓은 아오이이케 제방은 우리나라 계곡에서 폭우로 인한 급류와 토사 유출로 인한 재해 예방을 위해 만든 사방댐과 비슷해 보인다.
제방 안쪽에 물이 고이자 원래 숲이었던 땅은 수몰되어 연못의 밑바닥이 되었다. 숲속에서 번성했던 자작나무는 허리쯤까지 물에 잠긴 채 연못에 갇혀 고사목이 되었다. 썩어 가는 뿌리는 더 이상 줄기를 지탱할 힘을 잃어가고, 견고한 속성을 상실한 줄기와 나뭇가지는 쓰러지고 부러진다. 아직은 많은 나무가 연못 안에 서서 신비로운 아오이이케 물빛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청록색 물빛 위로 솟아있는 자작나무와 물 위에 펼쳐진 영롱한 산수의 그림자를 담기 위해 아오이이케로 수많은 사진작가, 동영상 제작자, 화가가 모여든다. 그들은 한정판 아오이이케의 풍경을 찍고 촬영하고 그린다. 어쩌면 언젠가 그들의 작품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고가에 팔리고 과학과 역사의 텍스트에 수록될지도 모른다. 아마 수십여 년이 지나면 연못에서 나무는 사라질 것이고, 지금의 풍경은 그들의 작품에서나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작나무가 사라진 연못에는 수생에 적합한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지금 그러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자연은 잠시도 공터를 남겨놓지 않는다. 새롭게 아오이이케의 주연과 조연으로 나타날 생명체가 무엇일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사람에게 이로울지, 해가 될지도 알 수 없다. 사실 이로움이니 해로움이니 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기준이고 잣대일 뿐이다. 자연은 자신의 미미한 일부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의 기준에 관심이 없다. 자연보호니 파괴니 하는 말들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와 이념의 소산일 뿐이다. 자연은 던적스러운 인간의 언어 따위에 관심이 없다. 자연은 인간이 있든 없든,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자연 자체로 존재한다.
아무튼 아오이이케는 생태계의 신구 변화가 진행되고 자연과 과학의 신비를 보여주는 땅이다. 제방이 건설되고 물이 고이면서 아오이이케 물빛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경을 드러냈다. 아쉬운 점은 겨울철 언 호수에 눈이 덮여 있어서 그 신비의 물빛을 직접 육안으로 감상할 수 없다. 그러면 아오이이케 물빛의 신비는 상상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계곡 쪽 열린 제방을 통해 연못의 물은 흘러나오고, 흐르는 물살은 얼지 않아서 전경은 아니더라도 물빛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더하여 인근에 있는 하얀 수염 폭포에 가서 물빛의 신비와 대면할 수도 있다.
흔히 아오이이케 물빛을 신비로운 푸른색 또는 영롱한 청록색이라고 한다. 이 말은 섬세함을 자랑하는 내 모국어에 비추어 볼 때, 성의 없고 느낌 없고 영혼 없는 표현이다. 물론 아오이이케 물빛은 청록색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그 속에는 잠재태의 오묘한 색상의 변화가 끊임없이 번쩍인다. 물빛은 푸른색 바탕에 스며있는 하늘색이며 에메랄드색이며 비취색이며 고려청자색이다.
아오이이케 물빛의 신비는 콜로이드 현상 때문이다. 화산 지대인 연못 주변의 지하수에서 수산화알루미늄AI(OH)3을 함유한 백색 계열의 미립자가 숲의 물과 섞이면서 용해되지 않고 분산되어 콜로이드를 생성한다. 콜로이드 입자는 물속으로 스며든 태양광과 충돌하면서 다채로운 투과광을 발산하는데, 이 환상적인 색상이 아오이이케 물빛에서만 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과학 현상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연의 신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자연에 숨어 있는 과학의 신비는 오히려 신화적이다. 자연은 스스로 과학이며 새로운 과학과 신화를 창조한다. 아오이이케 물빛은 신비로운 색의 비밀을 보여주는 창조의 텍스트다.
유모토시로카네 온천 호텔 인근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시라히게노타키라고 한다. ‘흰수염폭포’라는 말이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마치 하얀 수염처럼 보인다. 흰 수염 같은 물줄기는 상류에서 흘러온 협곡의 물과 합해져 신비로운 물빛을 드러낸다. 언 물줄기는 그대로 긴 수염 고드름이 되어 절벽에서 거꾸로 자란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와 협곡의 물빛은 역동적이면서 몽환적이다.
타쿠신칸TAKUSHINKAN은 아름다운 자작나무숲이다. 눈 덮인 숲속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에다 신조의 작품 전시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는 비에이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남겼다. 그의 사진을 감상하면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의 작품은 뭐랄까, 쉽게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사진에 조예가 많지 않은 나의 언어는 그것을 섣부르게 표현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의 작품이 왜 CF와 엽서와 영화 등에 널리 사용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지 느낌은 오지만 내 언어의 붓은 그것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그가 담아낸 비에이의 풍경은 그대로 예술이며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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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노富良野의 닝구르 테라스는 자작나무숲에 통나무집과 놀이시설을 갖춘 공원이다. 하얀 설산에 하얀 자작나무 사이로 길이 연결되어 있고, 통나무집은 카페와 상점이다. 상점에는 오르골과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판다. 사람들은 눈길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고 통나무집에서 쇼핑을 한다. 닝구르는 원래 훗카이도에 살고 있다는 전설의 요정이라는 뜻이다.
후라노는 한때 '냄새 나는 땅'이었다고 한다. 인접한 유바리夕張市의 탄광 산업이 성황일 때 발생한 냄새가 후라노로 흘러들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유바리 탄광 산업은 1960년대 정점을 찍고 사양화되었다. 이제 유바리의 탄광 냄새는 후라노에 흘러오지 않지만 후라노에는 여전히 냄새가 난다. 후라노가 선택한 냄새는 꽃 냄새다.
이시카리강石狩川의 지류인 소라치강空知川과 후라노강富良野川이 합류하는 후라노는 동서의 산악지대와 남쪽의 천연림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후라노는 이 광활한 분지의 평원에 꽃을 심어 무지개 꽃밭을 만들었다. 드넓은 평원에서 라벤다를 비롯한 수십 종의 꽃이 피고, 그것이 식재료와 화장품의 원료가 된다. 꽃이 지고 눈이 내리면 후라노의 평원은 전동스키의 놀이터가 된다.
청정 농업 생산지로 탈바꿈한 후라노는 인접 지역인 유바리에서 개발한 신품종 멜론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 멜론의 특허권은 유바리가 가지고 있지만 후라노 멜론이 일반인에게 더 친밀하다. 유바리 멜론 생산이 주문 생산 방식이라면, 후라노 멜론 생산은 일반 생산 방식이다. 그래서 유바리의 멜론은 일반인이 먹기가 쉽지 않다. 상점에서 파는 멜론이나 그것을 원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같이 일반인이 사 먹는 멜론 맛은 후라노 멜론이다. 어느 생산 방식이 두 지방에 부를 안겨 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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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札幌 지하철 스즈키노역 근처 호텔에 숙소를 잡고 오오도리 공원大通公園, Odori Avenue Park으로 간다. 지하철을 탈까 생각하다가 삿포르 도심의 거리를 구경할 겸 걸어서 가기로 했다.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눈축제가 절정이다. 2월에 개최하는 '삿포로 유키 마츠리' 눈축제는 훗카이도에서 가장 큰 축제다. 공원과 공원으로 연결된 대로에는 눈과 얼음의 대형 조형물이 가득하다. 완성된 작품에는 여러 색의 불빛과 그림을 연결하였고, 작품 작업 중인 작가의 손놀림은 진지하고 바쁘다. 차가운 눈과 얼음을 깎아 만든 조형물에 저토록 섬세하고 영롱한 감각을 부여하는 재주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과 얼음의 작품이 진열된 공원과 거리를 거닐었다. 거대한 설국의 성이 세워져 있고, 동화와 만화와 영화의 캐릭터들이 있고, 온갖 동물들이 있다.
축제가 열리는 오오도리 공원과 거리는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일본의 타지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붐볐지만 혼잡하지 않다. 일본인은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그 앞으로 나서거나 가로지르지 않고, 멈추어 기다리거나 뒤로 돌아간다. 길을 걸을 때도 마주 오는 사람의 발길을 서로 피해준다. 그래서인지 번잡한 행사장에서도 사람들끼리 부딪히지 않는다. 관람객은 많아도 여백은 많다. 그 여백에 들어오는 서정 또한 여유롭고 편안하다.
오오도리 공원은 삿포르 중심부에 있는 시민공원이다. 폭은 100미터 안팎으로 넓지 않다. 길이는 동서로 대략 1.5킬로미터다. 동쪽 끝에는 90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있는 TV 타워가 우뚝 서 있고, 서쪽 끝에는 삿포르 시 자료관이 차지하고 있다.
오오도리 공원을 걷는 것은 훗카이도의 역사를 산책하는 일이다. 삿포르는 150여 년 동안 훗카이도 문화와 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해 왔는데, 그 중심지가 오오도리 공원이다. 그래서 오오도리 공원 주변에는 개척 시대의 근대 건축물과 문화재가 즐비하다.
삿포르 겨울 해는 동선이 짧아 일찍 저문다. 해가 지면 오오도리 공원임을 알리는 이정표처럼 삿포르 에펠탑은 불빛을 밝히고 여러 색깔의 불빛을 쏜다. 파리의 에펠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건축물 중간에 시간을 알려주는 디지털시계 불빛이 환해서 자칫 삿포르의 상징인 시계탑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삿포르의 상징인 시계탑Hokkaido Clock Tower은 따로 있다. 오오도리 공원을 돌아보며 만나는 시계탑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진자식 대시계를 설치한 탑으로 1970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실 탑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건물에 설치한 큰 시계 정도다. 원래 이 건물은 삿포로 훗카이도 대학의 모체가 된 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감인 클라크 박사가 1876년 연무장(군사 훈련장)을 짓고 3년 후 시계를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건물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벌룬프레임 건축양식이다. 지금은 삿포르 농학교의 역사와 시계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맥주를 마시며 훗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지금 마시는 맥주는 낮에 방문한 삿포르 맥주 박물관 진열장에서 산 국내용 ‘삿포르 클레식’이다. 수출용인 ‘삿포르’는 서울에서도 마실 수 있으니 훗카이도 여행 기간에는 줄곧 ‘삿포르 클레식’을 마셨다. ‘삿포르 클레식’은 부드럽고 편안한 쉼터의 맛이다. 훗카이도는 비옥한 평원과 청정한 물이 풍부해서 질 좋은 맥주 원료인 호프와 맥아 생산의 적지로 꼽힌다. 이런 천혜의 땅을 배경으로 1876년부터 독일에서 제조술을 배워 삿포르 맥주를 생산했다.
커텐을 젖히자 삿포르 야경을 흔들며 눈이 흐른다. 브하그완 S. 라즈니쉬는 여행은 적어도 세 가지 유익함을 준다고 말했다. 세상에 대한 지식과 집에 대한 애정과 자신에 대한 발견이 그것이다. 겸허하게 ‘적어도’라는 토를 달았으니, 적어도 세 가지 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여행은 여유가 있어 다니는 소일거리가 아니고, 재미나 낭만적인 서정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은 부지런한 삶의 과정이다. 일상의 현관문을 열고 떠나, 일상의 현관문을 열고 돌아오는 일이다. 여행은 일상의 마침표와 쉼표를 건너 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새로운 문장의 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