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도(貧道) 배운 뒤라야 도와 친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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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道先須且學貧 학도선수차학빈이여.
學貧貧後道方親 학빈빈후도방친이리라.
一朝體得成貧道 일조체득성빈도하면
道用還如貧底人 도용환여빈저인하리라.
도를 배우려거든 우선 빈도를 배우라.
빈도를 배운 뒤라야 도와 친해지리라.
어느 날 빈도를 체득하기만 한다면
무한거부처럼 도를 쓰게 되리라.
빈도란 무소유를 말하며 진리에 눈뜬 참 부자를 뜻합니다. 수행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지만 얼 만큼 철저해야 빈도란 말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수행은 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생겨난다고 옛 부터 말합니다.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해도 먹을 생각하지 말고 무릎이 아무리 시려도 불 쬘 생각조차 하지 말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생활은 너무나 풍요로움 속에 젖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아귀 같은 중생심을 들어주다보면 끝내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초심의 용기로 단호히 끊어내야 합니다.
편한 것을 마다하고 불편함을 택하기는 어렵지만 애초에 그것을 감당하리라는 정신으로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성인 가신 때가 멀수록 정법은 흐려지고 도심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굳건한 신심으로 다져진 사부대중이 모였습니다.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그쳐야 할 때 반드시 그칠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수행자들입니다.
대정진심으로 밀고 나아가 무명의 산 정상에서 빛나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거친 생사의 바다를 건네주는 훌륭한 선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히 정해졌습니다. 사상의 산이 수미산보다 높다 해도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권력과 물질이 우선인 현실이라지만 그것도 이미 돌아볼 대상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 것은 당당하게 걸어야 할 길로 나아가지 못한 우리 각자의 책임입니다.
정작 자신은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절실하게 눈 밝은 선지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활활 타오르는 생사의 불길 속에서 시들지 않는 연꽃이 피어나게 해야 합니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는 이 말을 더 이상 다른 이의 몫으로 돌려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일을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습니까?
세상 어느 곳에도 그런 법은 없습니다.
이 공부는 밖으로 치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근본을 들여다보는 공부입니다.
먼 길 떠났던 나그네의 간절한 바람은 자신을 맞아줄 편안한 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마음 고향을 찾아 가는 수행자는 자신이 서있는 곳을 잘 살펴 곧바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 뭣고든 무(無)자든 그 놈과 한바탕 혹독한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서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는 불타의 용맹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흔히 무문관(無門關)에 들어간다 말합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들어앉는 것이 아니라 물러남 없는 마음으로 무문관을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법석이 여느 때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한 번의 결재에 한 번의 해제를 위한 거룩한 자리,
시주의 무거운 은혜를 갚고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목숨을 갈아먹는 무상한 시간은 한시도 멈춰 서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금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徧界唯一門 변계유일문이어늘
汝何不入來 여하불입래오.
參透趙州無 참투조주무라사
方始鎖自開 방시쇄자개리라.
온 법계가 오직 한 문이거늘
그대는 어찌 들어오지 못하는가?
조주의 무자를 참구해 뚫어야만
비로소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