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건국의 기원이 된 도시이자(포르투->포르투갈? 포르투는 영어로 port, 항구란 뜻) 대항해 시대에는 해양 무역의 거점이었던 포르투갈 제2의 도시란다. (두번째라지만 인구 20만 정도의 작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와 그 앞을 흐르는 도루강 풍경이 관광 포인트이며, 서핑을 하러 혹은 와이너리 투어를 하러 오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한다. (포트 와인=포르투 포도주. 생산하는 곳은 근교에 있지만 포르투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을 해서 포트 와인이 되었다고)
# 2023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만 안 왔어도 새해 첫날이 힘들지 않았을텐데...
9시 반에 산티아고를 출발한 버스가 비고, 브라가, 포르투공항을 들러서 캉파뉴 포르투 복합 터미널에 도착한 것이 12시 반. 3시간 걸렸냐고? 아니지, 4시간 걸렸다. 포르투갈은 서유럽 시간대가 아니라 영국 시간대라서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영국보다 더 서쪽에 있는 스페인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서유럽 시간대. 그래서 겨울에는 8시가 넘어야 해가 뜬다.)
한국에서 미리미리 예약해 두었던 아파트형 숙소Porto Downtown Lovers' Suites는 터미널에서 너무 멀어서 도저히 배낭 지고 걸어갈 만한 곳이 아니다. 지하철 역에서도 멀고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어서 이리저리 경로를 찾다가 (비만 아니었으면 지하철 한 번 혹은 버스 한 번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갔겠지만,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린다.) 지하철 + 버스로 선택했는데, 지하철 표를 사느라 헤매기도 하고 배낭 지고 버스를 10분이나 기다리면서 옆지기의 불평(이 시간이면 벌써 다 걸어갔겠다. 배낭 지고 서 있는 게 걸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어)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시 반 - 3시 체크인까지 1시간 반이나 남았다. 지금까지 묵은 숙소들은 다 얼리 체크인을 해 줘서 좋았는데, 아파트는 바깥문이 잠겨 있고 호스트는 시간이 되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아침에 메일을 보내더니 그 다음에는 메일을 보내도 응답이 없다.
처음에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시간 보내면 되겠지" 했는데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이 안 보인다. 구글 지도에 영업중이라고 나온 식당도 닫혀 있고, 마침 한식당이 검색되길래 찾아갔더니 (문은 열렸지만) 내일부터 영업을 한다며 밀어낸다. 비가 오는데 어디 들어가 기다릴 만한 데가 없겠냐고 물어봤으나, (도와줄 생각은 없는 듯)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까지 쉬는 식당도 많다고 맥빠지게 하는 소리만 한다. 빗길을 걸어다니며 들어갈 만한 곳을 찾다가 (못 찾고) 어느 문닫힌 식당 밖 처마를 발견해서 겨우 배낭을 내려놓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2시 반쯤 되어 드디어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비밀번호는 뭐뭐뭐뭐이니 3시에 열고 들어가라고...
3시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바로 쳐들어가 대문을 열고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우리 방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안에서는 한창 청소 중이다. 어차피 얼리 체크인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군. 그래도 호스트와 일찍 연락이 되었으면 아래층 작은 로비에라도 들어와 앉아서 기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1월 1일에 식당이 많이 닫는 걸 알면서 왜 이렇게 일정을 짰냐고 불평하는 옆지기를 로비에 앉혀 두고 길을 나섰다. 문을 연 식당이 없으면 수퍼라도 찾아서 먹을 걸 사 와야 하니까.
구글 지도에서 영업 중이라 나오는 식품점을 몇 군데 찾아갔지만 모두 문이 닫혀 있다. 점점 먼 곳으로 진출해서 성 안토니오 병원 뒤편에서 드디어 영업 중인 작은 빵집을 발견했다. 앗싸! 엠파나다, 타르트 종류 안 가리고 한 봉지를 샀다. 비상 식령은 확보했고! 이왕이면 왔던 길 말고 다른 쪽으로 돌아가 볼까?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영업 중인 식당을 발견했다. 마침 문앞에는 영어로 Take Away Restaurant라 적혀 있다. 만세! 소통이 원활하진 않았지만 소고기 스테이크와 대구찜(조금 비싼가 했더니 밥과 감자 튀김이 사이드로 따라나왔다.)을 사서 들고 신나게 호텔로 돌아왔다.
오후 내내 힘들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 .깨끗하게 청소된 10평짜리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새해 첫날을 마무리했다.
# 2023년 1월 2일
밤까지도 비가 쏟아지더니 아침에는 거짓말처험 날이 갰다. 오늘은 포르투 구시가지를 돌아보는 날. 성 안토니오 병원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니 금방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는 거리가 나온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곳에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성당이 예쁘다 - 오른쪽이 까르모 성당이라는데 밖에서만 구경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있는 쪽으로 가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렐루 서점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렐루 서점 앞에는 표를 사려는 줄이 길다. 문 앞으로 가서 슬쩍 들여다보니 고색창연한 분위기는 괜찮은데 내부가 생각보다 작다. 들어가 본 걸로 치고 뒤돌아 종탑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클레리구스 성당.
클레리구스 성당, 큰 성당이고 내부도 볼 만한데 76미터 높이의 종탑은 5유로를 내야 올라갈 수 있단다. 큰 돈은 아니지만 별로 땡기지 않아서 패스하고, 골목길을 돌아다니거나 무슨무슨 전망대란 이름이 붙은 곳에 앉아 쉬기도 하고(지도에 전망대라고 나와서 기대를 했으나 언덕 중간에 있는 작은 광장 혹은 마당일 뿐이다. 도루 강을 내려다 보는 전망은 딱히 어떤 전망대에서 보는 게 더 아름답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보나 비슷하다는 얘기)
포르투 대성당을 찾아가니 박물관 입구에서 표를 파는데 (모처럼 돈을 쓰려고 했으나) 현찰만 받는다고 해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구경을 했다. 여긴 작은 성당도 아닌데 어째 카드를 안 받지? 혹시 현금이 필요한 일이 더 생길까 걱정되어 루이스 다리 가는 길에 40유로를 인출했다. 수수료가 건당 3.95유로. (수수료 없는 은행도 있다지만 찾아다니기 귀찮아서... 근데 뽑는 김에 더 뽑을 걸 그랬다. 겨우 이틀 후에 리스본에서 또 현금을 인출해야 했으니)
루이스 다리를 건너니 바로 모루 정원인데, 까르모 성당에서 모루 정원까지 거리가 너무 가깝다. 포르투가 이렇게 작은 동네였어? 그리고 모루 정원 자체도 명성에 비해 작고 소박한 공원이다. 다만 이곳에서 강건너 구시가지를 보는 전망은 명성 그대로 멋지다. 바로 옆에 있는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 마당으로 올라가면 ( 더 높으니까) 전망이 더 좋아지고.
다시 다리를 건너 강가로 내려가서일단 점심을 먹고 (어제와 비슷하게 오늘도 소고기 스테이크와 대구찜, 좀 짰지만 맛은 괜찮았다. RC 레스토랑)
1820년부터 운행 중이라는 전차를 구경한 다음에 성 프란시스코 성당(+박물관)과 볼사 궁전을 들어가 구경했다.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제법 많았지만 성당 지하에서 본 지하 무덤이 인상적이었다. 성당 바닥에 띄엄띄엄 보이는 무덤들은 많이 있었지만 지하에 대규모로 안치된 무덤은 처음이다. 포르투 상공회의소 건물이라는 볼사 궁전은 마지막의 아랍식 화려한 방 말고는 그다지 남는 게 없다. 가이드가 역사적 맥락을 열심히 설명해 줬지만 (알아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기도 했지만) ㅎㅎ 스페인어 가이드였으니, 우리가 알아듣질 못한 탓이겠지. (영어 가이드도 있다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아랫도리가 뚱뚱한 나무들과 재미있는 조각상들이 있는(그리고 남녀 여여 커플의 애정 행각?이 있었던) 코르두아리아 정원을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 2023년 1월 3일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근교에 있는 브라가와 기마랑이스를 당일치기로 다녀와야겠지만, 첫날 아무 구경도 못한 여파로 포르투 구경이 밀렸다. 근교는 포기하고 오늘은 숙소 근처에 있는 수정궁부터 시작해서 바닷가 쪽을 다녀오기로 했다.
수정궁Jardins do Palacio de Cristal이란 이름이 붙은 공원에서는 커다란 돔이 먼저 눈길을 끌었는데, 대형 온실처럼도 생겼지만 식물원이 아니라 무슨 경기장이란다. 수퍼복 아레나. 우리는 수퍼복이 유명한 맥주 브랜드라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알고 나니 거리에서 수퍼복이란 글자가 자주 눈에 띄었다.)
공원은 겨울이라 그다지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꾸며놓은 티가 팍팍 났고 도루 강과 아라비다 다리 방향의 전망도 꽤나 훌륭했다.
다음에 들른 곳은 보태닉 가든 (+자연사 박물관). 가든은 무료 개방이고 박물관은 5유로를 받는데 수준이 애매하다. 박물관 규모가 작아서 볼 게 많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을 위한 초보적인 내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물 다양성에 관한 심도있는 자료들도 보인다. 식물원에는 생뚱맞은 캐릭터 인형들이 많아서 역시 어린 학생들 용인가 했으나 마지막에 선인장이 있는 곳은는 제대로 관리하는 식물원 느낌.
점심을 먹고
해변까지는 버스를 탔다. 잘 몰랐었는데 여기도 (비야리츠와 산세바스티안이 그랬듯) 서핑 명당인가 보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해서 (작은 성벽에도 안 올라가고)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쉬었다.
지도를 잘못 읽었나? 가까운 줄 알았던 도시 공원이 제법 멀다. 그래도 공원을 한참 걸어 반대쪽 입구까지 갔는데 아뿔싸, 공원 안에 있는 지도를 보고 놀라서 구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아주 큰 공원의 한쪽 귀퉁이를 걸어온 거네. 이 큰 공원을 다 돌아보는 건 무리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