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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일자:2014. 07.20 부산출발 07: 30 - 부산도착 20:30
답사지 : (1) 국가에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 (2) 회룡포 (3) 금남리 황목근 (4) 초간정 (5) 예천권씨 종택
참가인원 : 15명
(1)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을 정할려고 했던 후보지 예천(醴泉)
(2) 단술 맛처럼 샘물 맛이 달다는 예천
(3)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고려말의 많은 충신들이 은거(隱居)한 예천,
(4) 자연 환경이 사람의 심성을 좌우 한다는 말도 있듯이,
험한 산, 높은 산이 없고 나즈막하니 산세 (山勢)가 좋고, 명당 혈자리가 많은 곳 예천,
(5) 선비의 고장이며 천연기념물이 3 개나 있는 ( 석송령, 황목근, 금당실 송림) 곳 예천
******** 천연 기념물 제 294호 석송령********
소재지 :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
석평 마을의 마을회관 앞에 있는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 미터,
둘레는 3.67 미터이다. 전체적으로 우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약 600 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어떤 사람이 건져서 이곳에
심었는데 그 뒤 이 마으레 살던 이수목(李秀睦) 이라는 사람이 '석송령' -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 -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해 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엇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500 만원을 하사 하기도 했다.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 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장학금을 받아야 할 대상인 학생들이 도시로 모두 나가버려서
장학금을 줄 아이들이 없단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무 앞의
넓은 바위가 제단이다. 우리도 막걸리를 부어 놓고 절을 했다,
고 3 아들을 가진 특권으로 나도 막걸리 한잔 부어 놓고,
"석송령 신이시여 !! 고3아들 원하는 대학에 슛~~ 골인 해 주셔요 !!"
" 아버님, 사진 한 번 찍을께요 ~~" " 허 허~~ 옷이 이래가 ...."
김성호 할아버지 (77세) - 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때 이미 600년이 넘었다고 했단다.
천연 기념물 보호수라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둘레에 철장 담으로 둘러져 있다.
할아버지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3인 중의 한 분이신데, 우리의 뇌물제공? (막걸리 두병)에 문을
열어 주셨다.
이번 답사에 아는 분이 오셨다. 공무원 정년퇴임 하신
분인데, 사진 찍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사진 전시회도 여시고 시도 쓰시고, 묵화 .. 얼마전 부산시청에서
민화 전시회도 가지셨는데, 나와 6기 김태희님과 함께
전시회장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헐 ~~ 여기서 만나다니 !!
^^ 원형에 상관 없이 사진을 참 예쁘게 찍어 주셨다. ^^
********회룡포 (명승 제16호)********
회룡포(回龍浦)는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350 도로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나머지 10도 마저 물을 돌렸더라면
'육지 속의 섬' 이 되었을 것이다. 낙동강 줄기의 하회마을이나 강원도 영월의 동강도 물돌이 이지만
여기에 명함을 못 내민다.
-회룡포 가는 길, 길 옆 밭에 심겨져 있는 옥수수, 참깨, 땅콩 -
어렸을 적 우리집에도 땅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 땅콩을 '애콩'이라고
불렀는데, 내가 도시로 나온 고등학교 이후에는 '땅콩'을 '애콩'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저 옥수수가 익을 때면 언제나 방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회룡포 사진을 잘 찍을 려면 뒤쪽으로 보이는 비룡산 전망대에
올라가야 전체적인 조망도 좋고 회룡포도 제대로 볼수 있단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사진에 관심이 없었는데, 답사를 하면서 사진을 제대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집 어딘가에 쳐 박혀 있는 디카를 다시 끄집어 내야지 "
무더위에 논의 물이 참 시원하여 손을 씻다가 발견한 저게 뭘까?
예쁜 분홍색의 저것은 '우렁이 알' 이란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처음 본다.
TV프로그램 '1박 2 일' 촬영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는 '뿅뿅다리"
너무 더운 날씨 관계로 뿅뿅다리 가까이 까지는 가지 못하고 멀리서 한 컷
********천연 기념물 제 400호 금남리 황목근(팽나무)********
소재지 :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 번지
느릅나무과의 한 품종이며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가 3.2m 키가 15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구하는 동신묵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하여 황씨 성을 부여하고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목근을 붙여 주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세금내는 담세목(擔稅木)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금 내는 나무가 두 나무 있는데, 맨 먼저 소개한 석송령과
황목근이다. 황목근(팽나무)은 6,000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나무이다.
봄에 노란 꽃이 피는데 노란 꽃이 참 아름답다고 한다.
금원 마을에서 매년 정월 보름,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당제를 올린다.
황목근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저것은 뭘까? 동그랗게 돌로 쌓은 것 말야.
" 소박 맞은 여자가 집을 쫓겨 나와서 보따리를 움켜안고 이 앞에 서 있으면
제일 먼저 이곳을 지나가는 남정네가 그 여자를 데리고 간다."( 완전 구세주!!)
지금도 그 위력이 발휘 될까요 ?^^ 요즘 세상은 남자가 보따리 들고 서있으면
여자가 지나가다 마음에 들면 데려갈까나 ? ^^
- 단신지 사리(壇神之社里)-
금원 마을에서 매년 정월 보름,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당제를 올린다.
********초간정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75호 )********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 번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 대동운부군옥] 을 지은 초간 권문해 (1534~1591)가 세운 것으로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요즘으로 치면 별장이라고 하겠다. 이 정자는 조선 선조 15년 (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4년 (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을 다시 불타 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 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짝지붕이다.
초간정 난간 앞에는 깊은 계곡이 흐르고 있다. 사진은 계곡 건너편에서 찍었다.
-초간정에 얽힌 전설을 들으며 -
초간정 난간에 앉아서 한 포즈,
그런데 내가 앉은 바로 옆의 약간 보이는 기둥을 예의주시 !!
이 기둥에 도끼자루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총무님과 우리는 도끼자루 전설이 진짜인지 확인한다고 도끼자루로 찍은
자국을 열심히 찾다가 드디어 발견!!! -
** 도끼자루 전설은 세가지가 있는데 요것은 인터넷 검색해도 안 나와요 ^^
여기서는 한가지만 들려드리리다 ~~ 어느 선비가 과거 준비를 하다가 초간정
난간을 백바퀴 돌면 과거에 급제 한다하여 난간을 돌다가 떨어져 죽자
그의 아내가 원통하여 도끼로 이 기둥을 찍어버렸다는 전설....
이 초간정은 세번이나 새로 고쳐 지었는데도 후손들이 도끼자루 전설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새로 지을 때마다 이 기둥에다 전설이 얽힌 대로
도끼로 찍어서 전설의 증거를 만들어 놓으셨군요 ^^
********예천 권씨 초간종택(중요민속무화재 제201호)********
소재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3번지
보존 상태가 양호한 조선 전기의 우수한 주택으로 조선시대 주택의 구조와 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예천권씨종택 (醴泉權氏宗宅)' 이었으나, 초간 권문해(權文海)는 예천권씨 시조의 5세손
중 제일 끝집인 오상공(五常公)의 장손임에 따라 '예천권씨종택'으로 유지할 경우 대외적으로 예천권씨 계보상
제일 큰집의 종택으로 오인 될 수 있어, 예천권씨 종친회의 명칭변경 요청과 소유자의 동의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초간 종택 담장에 핀 예쁜 꽃들
-백승각 내부의 [대동운부군옥]목판(보물 878호) -
초간 종택에 있는 백승각은 목판 인쇄로 권문해가 지은 [대동운부군옥]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백승각의 열쇠를 보관하고 계시는 권영지(76세) 할아버지.
바깥에서 보니 합천해인사의 팔만대장경 보관처럼 공기순환도 잘 되게끔 만들어져 있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친견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정말로 신기하였다. 팔만 대장경은 바로 눈앞에서 본 적이 없건만,
권영지 할아버지께서 직접 목판 한 장을 끄집어 내어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 백승각 내부의 [대동운부군옥] 앞에서 사진도 찍고,
오늘 답사는 호사를 누린다.
******** 그 외 몇 군데 둘러 본 곳 사진 올리기********
섬진강 나루터 주막에 있는 '통시' (변소) - 완전 노천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볼일을 봐야겟다. 나는 비위가 많이
약한 편이라 저런 거 보면 토해내는데, 사진 찍느라 정신이
나갔는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ㅋㅋ
자료출처 : 검색 인용, 일부 추가 편집 사진 : 전지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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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드디어 사진이며 글들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네요.^^
회룡포는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구비 돌아가는 회룡포 사진이 없군요^*~~
몇년사이에 초간정 축대를 보수한듯하네요...
삼강주막은 뒤에 흐르는 강이 있어야 삶의 애환이 서린 존재의미가 있겠지요.
안가본데가 있어서 다음 여행에 참고자료가 되겠습니다.~ㅎ
네. 그 사진을 찍을려면 비룡산 전망대에 올라가야 된대요. 날씨가 너무 덥고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여건이
충분하지가 않아서 밑에서 한장 밖에 못 찍었습니다.
산 전망대는 가을이 되면 많은 사진 작가들이 굽이 돌아가는 회룡포를 찍을려고 항상 벅적거린다고 합니다.
삼강주막도 답사기에 제대로 올릴려고 했는데.....
사실 위에 올린 것 만으로도 힘들었습니다. ^^
사진 올리는 기술도 부족하니 어쩌다 잘못해서 사진이 삭제되어 버리지를 않나 ㅋㅋ......
혼자 가셨던가요?
삼강주막 운영권을 놓고 마을부녀회와 원래 주막주인이 분쟁이 있다던데 혹시 들어보셨는지?
4기 이동호선배님이 이끄는 답사팀에 합류했습니다. 먼곳이라 개인적으로 가기 쉽지 않기에...
교수님의 질문 덕분에 삼강주막 공부 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한 삼강주막의 분쟁 이야기입니다. -
삼강주막의 이권다툼은 마지막 주모인 유씨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차기 주모 선발에 대해 동네 회의를 열었는데 그 결과
(1) 자기가 직접 술을 담글수 있고 (2) 항상 손님에게 친절할것 (3)반드시 주막을 지키고 있을것과 문을 늘 열어놓을 것,
이 세가지를 만족시키는 동네 이장부인이 선정되어 2년 계약을 하고 영업을 시작했구요, 주모의 후한 인심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단 말입니디. -다음 댓글에 계속-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시샘을 하여 1년만에 삼강주막을 못하게 하고 부녀회자치회에서 직접 운영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계약위반에 관련 분쟁을 하였고, 예천군청에서는 부녀회에 손을 들어주어 부녀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 현재의 운영상태는 삼강주막을 다녀간 관광객들이 불친절과 바가지, 비위생적인 음식상태 등으로 예천군청에 항의가 빗발치고 비난 댓글들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다음댓글에 계속-
@촉석루(9B 전지현) 허 참 ~~ 제가 답사때 석송령신한테 고3아들 둔 특권으로 절을 한 댓가로, 삼강주막에서 술상을 한턱 쐈거든요 ^^ 좀 비싸다 생각은 했지만,,,
지금 조사해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네요
또 한가지 공부했습니다.- 안동권씨와 예천권씨의 관련설입니다. 예천 권씨는 본래 흔 (昕 기쁠 흔)씨 였습니다. 그런데 고려 명종 (明宗)의 이름이 흔(昕) 과 같아서 함부로 왕과 같이 사용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의 외가성(外家姓)인 권(權)씨로 고치게 했습니다. 결론은 예천권씨와 안동권씨는 조상대에 사돈간 이었습니다.
예천은 두어번 가 보았던 곳인데 재산세 내는 나무 이야기는 처음이며 즐거이 읽었습니다. 부경문해를 입문 하기 전에 교수님을 따라 나섰던 예천답사와 지난 5월에 비룡산에 올라 회룡포를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열심이신 모습 아름답습니다~♧
태희님도 비룡산 전망대에 올라가셨군요. 가을 누렇게 익은 들판을 기억해 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