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텅 빈 바구니 좋아요
“아이쿠 숨차! 이제 마지막 집이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12층까지 따라다니는 뽀리를 보며 착실이는 1208호라는 현관문 앞에 잠시 발을 멈춤니다. 그리고 역시 숨을 헐떡이는 뽀리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봅니다.
뽀리는 착실이와 같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애완용 강아지입니다. 언제나 둘은 어디를 갈 때도, 집에서 놀 때도 늘 같이 지냅니다.
어머니의 떡 심부름 나선 착실이를 따라 그 짧은 다리로 힘겹게 깡충깡충 계단을 뛰어 오르며 착실이 뒤를 졸졸졸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온지 며칠 되는 오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착실이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같은 통로에 살고 있는 이웃 한 집, 한 집에 인사 떡을 갖다드리라는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뽀리도 착실이를 따라 나서 깡충깡충 따라다닙니다.
승강기를 타고 다녔으면 힘이 덜 들 텐데 층층마다 멈추었다 가는 것이 어쩐지 말없는 승강기가 더 힘들것 같아 한층 한 층 계단을 밟고 다음 층으로, 다음 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뽀리나 착실이는 힘이 더 들었지만 이제 마지막 12층 현관 앞에까지 올라 온 것입니다.
처음 장바구니에 담아 온 열 두 개의 도시락이 몇 개 남아 있었고, 다시 열 두 개의 새 도시락에서 향긋한 떡 냄새가 승강기 안에 사르르 퍼졌습니다. 12층까지 올라온 착실이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습니다.
한 집에 떡 도시락 한 개씩 모두 스물세 개를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바구니에는 많은 떡 도시락이 남아 있습니다.
-107호-
“띵 똥!”
현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
“띵 똥!”
“....”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안계신 가 봐.”
착실이는 꼬리를 흔들고 있는 뽀리를 내려다봅니다. 그렇다고 떡을 담은 도시락을 현관 앞에 둘 수는 없습니다. 도시락을 다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108호-
“띵 똥!”
“누구세요?”
반가운 아줌마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저, 308호에서 왔는데요. 여기 떡을.”
착실이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현관문이 열립니다. 예쁜 아줌마가 빼꼼 내다봅니다.
“이번 308호에 새로 이사 왔어요. 여기 엄마가 떡을....”
“아! 그래, 고마워라. 잘 먹겠어요. 엄마에게 잘 먹겠다고 전해 줘요!”
“네,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힘차게 굽혀 인사를 합니다. 뽀리도 꼬리를 흔듭니다.
-207호-
“띵 똥!”
“.....”
조용합니다.
-208호-
“띵 똥! 띵 똥!”
“멍, 멍멍! 멍, 멍멍”
강아지 짖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뽀리는 놀란듯 착실이를 쳐다 봅니다
“.....”
아무 대답도 없습니다.
-307호-
“띵 똥! 띵 똥!”
“....”
“우리 앞집이네! 아무도 없나봐!”
-308호-는 착실이 집입니다. 또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오릅니다.
-407호-
현관문에 교회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띵 똥! 띵 똥!
“......”
-408호-
맞은편 현관문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을 울리지 말아주세요!-
“그냥 올라가자!”
다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507호-
“띵 똥! 띵 똥!
“....”
-508호-
“띵 똥! 띵 똥! 띵 똥!”
“......”
“아참! 모두 집을 비우고 어디로 갔단 말이야!”
“오늘 일요일도 아닌데.모두 꽃구경 갔나?”
착실이도 뽀리도 층계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다시 층계를 오릅니다.
-607호-
“띵 똥! 띵 똥! 띵 똥!”
“누구세요?”
귀가 찡 울리는 아줌마 목소리 크게 울려 나왔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저. 308호에 이사 왔는데요... 여기 떡을 가져왔어요”
“그냥 가거라! 우린 떡을 안 좋아한다!”
“.....?”
착실이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뽀리를 바라봅니다.
-608호-
“띵 똥! 띵 똥!”
“고마워요! 잘 먹겠어요!”
-707호-
“우린 안 먹는다. 그냥 가져가거라!”
-? ? ? ! ? ? ? ! ? ? ?-
708호 807호 808호 907호 908호 1007호 1008호 1107호 1108호 1207호-
이 집 띵 똥! 저 집 띵 똥!
오르고 또 오르고 앞집 뒤 집 띵 똥! 띵 똥!
“고맙다!. 필요 없다! 아이구 맛있겠다! 멍 멍 멍! 그냥 가지고 가거라! 우린 먹을 사람 없다!”
마지막 십 이층 1208호 현관에 도착했을 때 착실이와 뽀리는 층계를 오르느라고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띵 똥! 띵 똥! 띵 똥!”
“누구세요?”
현관문이 조금 열리면서 아주머니 얼굴이 나타납니다.
“아!”
순간 착실이는 너무나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여기 떡 좀 가져 왔어요. 308호에 새로 이사를 왔어요!”
착실이는 도시락 떡을 아주머니에게 드림니다.
“아이고 고마워라! 반갑구나! 잠간만 기다려라”
도시락을 받아든 아주머니가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내다 봅니다.
“자! 수고하는데.... 덥지?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다. 내려가면서 먹으렴! 엄마에게 잘 먹겠다고 전해라!”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현관문이 닫힙니다.
“와! 신난다!”
착실이와 뽀리는 층계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합니다.
“나도 좀!”
뽀리가 낼름 찢어진 아이스크림에 혀를 대고 핥았습니다.
“야! 같이 먹어야지! 너 요만큼만 먹어!”
착실이는 뽀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조금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이걸 어떡하지? 많이 남았는데.저녁때 또 돌아다닐 수도 없고.어느 집에 드리지 않은지도 모르고. 떡이 다 식었어!”
“......”
“알았다! 빨리 엄마에게 가자!”
착실이는 급히 승강기를 타고 집으로 내려와 엄마와 한참 속삭입니다.
“고마워요! 엄마! 빨리가자 뽀리야!”
떡 도시락이 남아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뽀리와 같이 아파트를 나온 착실이는 빠른 걸음으로 남대천 다리를 건너 중앙시장으로 갑니다.
노점에서 채소를 놓고 앉아있는 할머니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다가가 도시락을 드리기 시작합니다.
“이것 드세요! 맛있는 떡이에요! 우리,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아이구 고마워라! 누군지도 모르는데.”
“맛있다! 학생 고마워!”
“우리도 좀 주시구려!”
여기저기 상점 안에서 아주머니들이 할머니들이 잡수시는 떡을 하나씩 집어 들며 착실이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합니다.
“아이구, 착한 학생이구나! 네 엄마가 주시던?”
“네, 우리 엄마가 주셨어요! 맛있게 잡수세요! 할머니 떡 맛있게 잡수세요! 우리 가요!”
착실이는 빈 장바구니를 빙빙 돌리며 시장을 나옵니다. 뽀리도 좋아라 꼬리를 흔들며 살랑살랑 따라옵니다.
“할머니들! 떡 잡수세요!”
남대천을 건너오며 착실이는 소리를 지릅니다. 텅 빈 장바구니가 너무나 좋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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