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힐링 여행
효재 문 장 옥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천리포 수목원 여행길에 나섰다.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 마음이 들떠 잠을 설쳤던 것처럼 건성으로 잠을 자고, 잠실 롯데 마트앞 출발지에 일찍 도착했다. 문우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니겠으나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큰 밝은 낯빛들이다.
호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앤드류 매튜의 말처럼 ‘여행이란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했던가.
오전에 일찍 출발했는데도 도로에 차가 밀린다. 예정된 시간보다 십여 분쯤 지체 되었다. 그래도 천리포 수목원에 도착하기까지 지루함보다 설렘을 안고 수목원으로 들어섰다. .
수년 전, 미국인 민병갈 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바쳐 조성한 이 수목원을 예전에도 두 번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방문한 계절이 달라서인지 한 발짝씩 숲길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꽃들의 모양, 색감, 향기가 새롭게 보였다.
진초록 잎사귀에 싸여 앙증스럽게 활짝 핀 남바람꽃, 짙은 향으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삼지닥나무와 서향나무, 남빛 개불알풀, 자주광대나물, 수양벚꽃, 호랑가시나무, 수선화, 보랏빛 빈카, 설강화, 만병초, 영춘화, 붉은꽃통조화, 골든벨 수선화, 노란 앵초, 흰 동백꽃, 흰빛 진달래, 사순절장미, 분홍빛 꽃송이를 단 엘라티오르앵초, 무스카리, 수양올벚나무 등. 수없는 꽃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눈여겨 읽으며 그들의 모습을 마음속 깊이 새기려 애썼다. 아마도 이들 모두가 꽃 문을 열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게 될지도 모른다.
봄소식을 듬뿍 안고 소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자태를 뽐내는 듯한 키 작고 앙증스런 꽃무리도 제법 대견해 보였다.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 기억해 주듯이 그것들이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모른 체 하고 싶지가 않다.
정원을 거닐며 유난히 꽃이 만개한 나무들에 시선을 옮기니 대체로 목련이다. 과연 목련 축제일에 맞춰 찾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잎의 곱디고운 빛깔, 모양과 수형의 멋진 자태 등. 이 수목원에서 내 생에 처음 만난 여러 가지 목련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곳을 오기 전 까지는 백색과 자색으로만 꽃을 달고 있는 목련만을 기억했다. 그러나 다양한 빛깔, 모양으로 활짝 핀 목련 꽃들을 무수히 만나며 그간 가졌던 내 안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었다.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다는 이곳의 목련은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이 우아한 귀부인 같은 모습으로 녹색 정원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엔 세계적으로 희귀한 종이라는 노란 목련 꽃봉오리까지 보게 된 행운까지 있었다. 그것은 외래종 브루크린인데 ‘엘로우 버드’라고도 불렀다.
최근 천리포 수목원이 세계적으로 아름답다는 수목원으로 손꼽히게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175,000평이란 크나큰 땅에 16,822분류군의 다양한 식물들과 목련만이 아니고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무궁화 등 이들의 집중적인 수집만이 아니고 아름다운 우리의 서해(西海) 해변과의 조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목원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해변의 정경도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선다.
나도 한때 충주 전원에 내려가 남편과 함께 2천 평이나 되는 밭에다 비타민 나무 5,000주를 심고 가꾼 적이 있었다. 3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솟아나는 풀을 뽑느라고 고된 일과를 보내며 진땀을 흘렸다. 시작은 미미해도 내일은 창대하리란 커다란 꿈을 안고 나무 한 그루마다 정성을 다해 심고 가꾸었으나, 갈수록 힘에 겨워 꿈을 접고 말았다.
그 때부터 식물을 가꾼다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님을 알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깊은 관심과 사랑을 쏟지 않고서는 기를 수 없다는 것도.
수목원을 돌아보다가 설립자의 동상이 놓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안경을 끼고 의자에 앉아 계신 그 분의 얼굴은 주름으로 꽉 차 있으나 밝게 웃는 얼굴이었다.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행복했던 것 같다. 목련이 꽃피는 이 계절에 이곳을 찾게 한 그 분의 동상 옆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환하게 웃고 계신 그 분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살아 계실 때 만나 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외국인이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주느라 밤낮으로 애쓰셨던 민병갈 님을 생각하니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준 식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사랑, 끈기, 열정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졌다. 우거진 숲 사이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보며 그의 육신은 떠나셨지만 영혼만은 꽃의 정령이 되어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환희의 미소로 우리를 반기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목련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안면도 바닷가에 위치한 횟집에 가서 실치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를 먹었다. 실치는 배도라치의 치어라고 한다. 야채와 함께 나온 실치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맛을 보니, 아주 가늘게 썰어 놓은 물모징어를 먹는 느낌이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어 시장기가 있는 데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안면도 실치 요리였기에 별미였다.
간월암, 꽂지 해변을 돌아보고, 광활하게 펼쳐진 서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나문재 카페도 갔다. 이곳 카페의 전경도 마음에 쏘옥 들었다. 낮에 만난 천리포 정원과 달리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조형물이 군데군데 설치된 정원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이곳 분위기가 잠시 스치는 여행객인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돌아서며 이곳에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무엇보다도 따사로운 사월의 햇살 아래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만든 천리포 수목원과 봄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닐던 갈매기들의 유희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이다. 힐링 여행으로도.
첫댓글 3년이나 나무를 가꿨네요.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