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이야기 자주 하는데 꼭 인위적인 이야기 할 장소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하늘 해 묻은 색깔이 좋았다.
햇살아래 있는 그녀의 모양새도 좋았다.
굳이 커피숖 같은 곳에 이 시간의 몸을 맡기기가 싫다
. 이렇게 같이 외출을 했는데
그냥 오후의 하늘속에 구름이 흐르면 그 아래서 그녀와 자연스런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다.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이 흐른다. 그리고 강 가에는 앉을 곳이 많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괜찮을 듯 싶었다.
"어디 아는 데 없어요?"
"강가에 갈래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강가에요?"
"그냥 강둑에 앉아서 강 건너 서울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시간 별로 없잖아요."
"뭐 그리 오래 있겠어요."
"그래 갑시다."
강가는 하나의 큰 공원이었다. 저기 멀리 여의도가 보인다.
육삼 빌딩의 색깔이 많이 금빛을 띠고 있다.
오후가 짙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강바람이 참으로 시원하다.
곳곳에 심어놓은 유채꽃들은 남보다 늦게 핀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냥 파란 줄기와 잎들로만 치장되어져 있다.
팔은 왜 벌리냐?
그녀가 내 옆에서 걷다가 꼭 배우처럼 바람을 맞으며 팔을 벌렸다.
거기서 한 바퀴 돌아보면 진짜 영화 장면 같겠다. 진짜 돌려고 했다.
돌려다 들고 있던 옷가방이 날려 내 얼굴을 때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한바퀴 돌았을 것이다.
"어머 미안해요. 안 아파요?"
"안 아파요. 대신 좀 쪽팔리네요."
좀 무안할 거다.
걸었다. 학원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쪽으로 제법 걸었다.
걷다 보니까 작은 가게가 있는 간이 건물이 보였다..
"저기서 아이스크림이나 사서 강둑에 앉아 볼까요?"
신났구만. 가게를 보며 달려가는 그녀를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오늘 잘 데리고 나온 것 같다.
생일날인데 집에 있었으면 솔직히 좀 속이 상했겠지.
게다가 누구 하나 자기 생일이라고 축하 한마디 없었으면 더 그랬겠다 싶다.
작은 파도가 찰싹 찰싹 때리는 강둑은 앉기에 좋았을 뿐더러 깨끗했다.
지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야기가 오고 가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고
고개를 멀리 하면 건너 편에 우리 처럼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 그녀가 내 옆에 제법 밀착해서 앉았다.
뭐 내 방에서도 그러는데 확트인 여기서 좀 붙어 앉는다고 이상할 게 있겠냐.
"드세요."
포장지를 뜯어낸 메롱바를 그녀가 건넸다.
"콘은 없었어요?"
"있었는데."
"난 콘이 더 맛있던데."
"주는데로 먹어요."
분위기도 모르는 여자다. 영화 같은데 봐라.
연인끼리 강둑에 앉아서 콘 먹는 거는 봤어도 메롱바 먹는 꼴은 한번도 못봤다.
하기야 뭐 니하고 내하고 연인사이는 아니지.
오고 가는 이야기는 예전에 한 번쯤 했음직한 얘기였지만 강이 흐른 만큼 시간도 흘려 보냈다.
해가 멀리 보이는 육삼 빌딩 꼭대기에 걸렸을 정도로 기울었다
. 시계를 봤다. 네시 사십분. 뭐여?
"나영씨?"
"왜요?"
"나 학원 갈 시간 지났걸랑요."
"어머, 그래요? 몇신데요?"
"네시 사십분이요."
그녀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정말 그렇네. 나 애들 저녁 차려야 되는데."
"지금 가서 차릴 수 있을래나? 어머님이 차릴까요?"
"그럴거에요.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학원 못 간 것은 안중에도 없구먼.
"지금 급히 가서 차리면 일곱시면 애들 저녁 먹일 수 있겠네요."
"아니에요. 제가 없으면 분명 엄마가 차릴거에요.
엄마 혈압이 불안정해서 힘든 일 하면 안된다 말이에요
. 어디 전화 할 때 없어요?"
"저기 아까 가게 옆에 공중 전화 있던데..."
그녀가 일어서 공중전화를 찾아 떠났다. 옷가방은 끝까지 손수 사수하는 구만.
나도 일어서 그녀에게로 갔다.
오후가 깊어 가면서 가게 옆의 고수부지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들어 있었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전화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 갔다.
"엄마 절대 식사준비 하지 마세요. 지금 집에 누구 없어요?"
"..."
"그럼 현철이 좀 바꿔 주세요."
"..."
"응. 현철이니? 누난데. 오늘 일이 있어 저녁을 못 차렸다. 미안해."
"..."
"나는 일이 없니? 쪼그만한게 뭘 그리 묻냐? 하여튼 오늘 저녁은 중국집에서 시켜 먹어라.
애들 보고 그렇게 말해줘."
"..."
"그래, 내일은 맛있는 거 해줄게. 고마워."
그녀가 전화를 끊고 나를 쳐다 본다.
"저녁 그냥 포기한거에요?"
"여기 왜 왔어요?"
"안가요?"
"동엽씨 학원 갈 시간 지났고 또 중간에 한시간 빈다면서요
. 내가 가면 동엽씬 뭐해요?"
저게 날 배려하는 말일까?
아니면 자기 놀려고 아예 날 학원 못가게 처음부터 계획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까 앉았던 자리로 도로 돌아갔다.
가면서 그녀가 어떤 꼬맹이가 산책시킬려고 데리고 나온 개새끼를 보더니
그 앞에 앉아 그 개새끼를 쓰다듬었다.
꼬맹이는 한 일곱 여덟살 남짓 되어 보였다.
"강아지 한 번 안아 봐도 되니?"
"네 그러세요."
그녀가 강아지를 안아 나를 보며 웃는다. 허허.
"개 이름이 뭐니?"
참 친한척 한다.
"아임에프요."
꼬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참 우습다.
아임에프 된지 육개월여만에 개새끼 이름에도 아임에프가 등장할 줄이야.
"호호!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니?"
"울 집에 노는 삼촌이 있는데 그 삼촌이 그렇게 지어 주었어요. 울 삼촌이 저 아저씨 하고 닮았어요."
야이 씨. 왜 가만 있는 날 끼워 넣냐?
"그래? 삼촌이 잘 생겼니?"
그녀가 나를 돌아다 보며 재밌다는 듯 호호 거렸다.
"아니요. 나는 잘생겨 보이는데 울 할머니가 맨날 삼촌보고 못난놈, 못난놈 그러시는 걸 보면
못생겼나봐요."
"동엽씨 들었죠?"
뭐여.
"개가 무슨 종류니? 털이 참 복슬하다."
"포메라이언인데요. 가끔씩 마루 닦을때 걸레로도 써요."
새끼 똑똑하네. 나는 발음하기도 어렵겄만...
"호호."
"누나 참 예쁘네요. 우리 아임에프가 참 좋아 했겠다."
꼬맹이 녀석이 상당히 끼가 있어 보였다. 나중에 여자 여럿 울릴 것 같다.
내 나이 곧 서른이지만 그런 말 잘 못하는데...
"안녕."
그녀가 꼬맹이에게 인사를 하고 뒤에 서서 개새끼를 한 마리를 놓고 이야기 하던
어떤 여자와 꼬맹이를 쳐다 보고만 있던 나에게로 돌아 섰다.
"개가 좋아요?"
"아니요. 꼬마가 귀여워 보여서 그랬던 거에요."
그렇게만 답하고 그녀가 강둑으로 갔다.
어짜피 다음 수업 들을 때까지는 그녀와 있어야 하는 거 아까 못했던 이야기나 계속 하자.
그녀가 먼저 가 앉아 있는 옆으로 가서 앉았다.
하늘 한쪽은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참 초라하게 느끼게 할 것 같은 바람이 분다.
물결 소리가 그 바람소리 보다 크게 들린다.
"노을이 예쁘죠?."
그녀가 한참이나 출렁이는 강물을 보며 아무말이 없자, 따로 할 말이 없어서 노을 얘기를 했다.
"물속에도 맺혔네요."
갑자기 얘가 왜 분위기를 가라 앉히며 말하냐?
"물결이 살이 많이 쪘네요."
나도 글공부 하는 사람으로서 이정도 비유야.
"흠. 저 물살이 조금 더 살이 쪄 둥글면 꼭 무덤 같겠다 그죠?"
"네?"
왜 비유를 그런 곳에다 하냐.
"우리 아버지는 무덤이 없어요."
"그건 무슨 말..."
"급하게 돌아가셔서 묫자리 써놓은 거 없어서,
묫자리 돌 볼 아들하나 없어서 우리 아버지 그냥 화장시켜드렸어요.
그리고 저 한강 상류에 흘려 보냈어요."
어제 참 그녀 아버님 제사였지
. 돌아 가신지 제법 되었는데 아직 저러는 걸 보면...
그녀가 꺼낸 말로 난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고 노을에 기대어 무언가에 잠겨 있는 듯 하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배워 본 적도 없고 괜한 말로 분위기 더 가라 앉힐까봐 아무 말도 못하겠다.
노을이 땅 아래로 사라 질 때까지 그녀의 옆에 앉아 만 있었다.
"지금 몇 시에요?"
그녀가 주위가 어두워 지자 입을 열었다.
"일곱시 십분이 좀 넘었네요."
시계를 보며 답을 해준 나는 깜짝 놀랐다.
학원 두번째 수강도 포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요."
아까와는 달리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당한 것 같기도 하고 홀린 것 같기도 하다.
"어디를 가는데요? 나는 이제 학원 못가요. 집에 가면 같이 갑시다."
"이제 배 고파요?"
"조금."
그래서 난 그녀와 밥을 먹으러 갔다.
학원 반대 방향으로 강을 따라 쭉 내려 와서 좋은 집들이 많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오늘 걷는 것도 참 많이 한다.
걸으면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 것은 그녀가 옆에서 걷고 있기 때문일까?
버젓한 식당 참 안 보였다.
저녁으로 패스트 푸드점에서 햄버거랑 치킨튀김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기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어야 했다.
그 패스트 푸드점 이층 한쪽에서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지만 그래도 들렸나 보다.
옆에 앉아 있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처녀들이 날 보며 비웃었다.
내 노래는 무시하고 우리쪽을 쳐다 보는 그 처녀들에게 답례 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공주 같았다
. 내 모습은 시종이었겠지 뭐.
근데 왜 내가 그녀의 부탁을 받고 그대로 해 주었을까.
아까 강을 보며 숙인 그녀의 모습이 슬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웃음을 띠우게 만들었으니 쪽팔렸지만 기분은 괜찮다.
"노래 참 못 부르네요."
불러준 성의를 봐서라도 그냥 고맙다는 말만 하면 아무래도 편찮나 보다.
"에이씨..."
"고마워요. 오늘 동엽씨 덕에 오랜만에 생일 축가도 들어보고 기분 참 좋네요."
그래 그렇게 말해야지.
하숙집 동네로 돌아 왔다.
학원을 빼먹었지만 오늘은 다른 날 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을 한 것 같다.
하숙집으로 그녀와 함께 들어섰다.
마침 마루에 나와있던 학생 한 녀석과 마주쳤다. 꼬아보는 투가 맘에 안든다.
"누나 오늘 참 예쁜 모양으로 외출하셨네요."
"그래, 오늘 저녁 못 차려 준 것은 미안하다."
나는 그 둘이 말하는 틈을 타 그냥 내 방으로 들어 가려고 했다.
"형하고 누나하고 어떻게 같이 들어와요?"
"만났지 임마."
그렇게 말하고 그냥 방으로 들어 서려 했는데 그녀가 뒤에서 소리쳤다.
"동엽씨 오늘 고마워요."
뭘 그렇게 꼬아 봐 임마.
나와있던 녀석의 눈초리가 아까 보다 더 맘에 안들었다.
방에 들어서 옷을 갈아 입고 누웠다.
오늘 학원을 빼먹었기 때문에 뭔가 불안해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해야 할 일도 분명 있을텐데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누웠다. 오늘 일을 생각 좀 하다가 그냥 히죽거렸다.
천정의 형광등 불 빛이 오늘은 왜 저렇게 곱냐.
잠에서 깨어 보니 천정이 아직도 하얗다. 창밖이 밝아 오고 있다.
그냥 히죽거리다 잠이 들었었나 보다.
불을 끄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 꿈꾸는 생활에 기분 좋은 것이 하나 스몄다.
만약에 잘 되면 내 그려지지 않던 미래가 너무나 핑크 빛일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좋아진다. 그래도 아직은 너무 많은 꿈을 꾸기에는 이른 것 같다.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한숨이 나오다가 또 히죽 웃게 되다가 마음에 변화가 많이 생기기는 하지만 오늘 아침이 참 좋다.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 그녀가 지금 아침을 차리나 보다. 괜히 할 일도 없으면서 나가 보았다.
싱크대에 앞에서 그녀가 쌀을 씻고 있다.
"어, 왠일이에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냥 일찍 일어 났어요."
그녀가 밝은 표정이다. 식탁에 앉아 보았다.
"거기 앉아 있을려구요?"
"왜요. 싫어요?"
"싫긴요."
"물 한컵만 줘요. 아우웅."
이 시간에 하품 하는 것이 얼마만이냐. 오늘 하품은 귀한 것이다.
그녀가 내 모습을 귀엽게 쳐다 보더니 쌀을 씻다 말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손수 따라 주었다.
공주에게 물받아 먹으니까 느낌이 참 묘하네.
컵을 잡은 그녀의 손이 아름답다.
확 한번 잡아 볼까 싶다. 아침부터 맞긴 싫다.
"할 일 없어요?"
"네."
"아침에 콩나물국이 참 좋겠죠?"
"괜찮겠네요."
내 그말과 동시에 그녀가 아직 다듬지 않은 콩나물 한 접시를 내 앞에 가져다 주었다. 쩝.
아침을 그녀와 함께 했다.
그녀는 밥을 짓고 나는 콩나물을 다듬고. 싫지 않은 아침 풍경이다.
오랜만에 학생들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어제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냈던 녀석이 하숙집 그녀와 데이트 했다고 날 놀리다
그녀한테 얻어 터졌다.
"형한테 놀렸는데 누나가 왜 그래요?"
"데이트 좀 하면 어떻니?"
"그래 임마 데이트 좀 하면 어때."
"어제 그게 무슨 데이트에요."
허허 여자들의 심리는 참 오묘한 것 같다. 밥을 먹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나오셨다.
모습이 괜찮아 보이신다.
"요즘 우리 딸래미 음식 솜씨가 좀 어떻니?"
"많이 좋아 졌어요."
"괜찮아요."
"어머님 따라 갈려면 많이 멀었어요."
나말고는 다들 좋은 대답을 해 주었다.
주인 아줌마는 학생들을 보며 포근한 눈빛을 지으시고는 끊인 국을 한 번 맛 보시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 가셨다.
흠 다시 예전으로 돌아 온 모습이다.
밥을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 오다 하숙집 풍경을 한 번 돌아 보았다.
제사가 끼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변화가 있었던 분위기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몇 일을 보냈다.
학원 생활도 변화가 없었지만 그녀의 생일 이후 내 하숙 생활에도 변화가 없었다
. 여전히 쾅,쾅 거리며 노크하는 그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노라면 계속 놀리는 투의 말씀들. 그래도 괜찮다. 살 만하다.
안주해서는 안되겠지만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을 만한 생활들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무얼할까? 하숙집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이나 할까?
야구장에 그녈 데리고 가면 괜찮을 것 같다.
예쁘게 차려 입은 그녀의 모습과 나란히 야구 경기를 보면 야구 경기가 정말 신날 것도 같다.
비록 좋아하는 팀은 다르지만 그녀와 아웅다웅하는게 이제는 좋다.
참 내가 사준 옷을 그녀가 입은 모습을본 적이 없다. 그럴까?
아침에 눈을 떠 이불 맡에 앉아 오늘을 생각했다. 아직 쾅,쾅 되는 노크가 없다
. 시계는 열시를 거의 가리키고 있었다. 쾅,쾅 거릴 때가 되었는데.
"쾅,쾅."
그녀도 양반은 못 되겠다.
"나가요."
추리닝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나를 위 아래로 쳐다 보는 그녀의 시선이 오늘은 다른날과 좀 다르다.
내 밥은 식탁위에 차려져 있었다. 밥그릇이 하나 뿐이다.
"나영씨는 식사 했어요?"
"네."
허, 좀 아쉽다.
아침에 그녀와 마주하며 밥 먹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아침을 즐겁게 해주는 활력소였는데
오늘은 나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뭐 그녀가 같은 집에 있는데 또 모르지 내 옆에 청아하게 커피잔을 들고 있을지.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럼요."
"아무리 집에 있어도 외모에 신경 좀 쓰세요."
"왜요?"
"내가 편해요?"
"네?"
"아니에요."
그녀가 오늘 진짜 날 보는 시선이 다르다. 무슨 일이 있나.
"참 나영씨."
그녀가 주방에서 남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요?"
"오늘 시간 있어요?"
"그건 왜요?"
"아니 할 일 없으면 야구나 보러 가자구요.
오늘 마침 잠실에서 오비랑 엘지가 경기를 하데요."
"시간 없어요. 오늘 약속이 있네요."
"그래요? 그럼 뭐."
요즘은 어디론가 혼자 나가던 외출도 잘 안하고 집에만 있는 여자가
오늘같이 필요로 할 때는 꼭 약속이 잡혀 있냐
. 튕기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빨리 드세요."
"빨리 먹고 있잖아요."
그녀가 설거지를 끝마치고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굼뜨게 밥 먹고 있는 나에게
빨리 먹으라 재촉을 했다.
진짜 약속이 있나보다.
"나 조금 있다 나가 봐야 되요."
"내가 먹은 건 내가 설거지 할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나 내 방에 들어 가도 되요?"
"그러세요."
쩝, 그녀가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오늘 뭐 할까?
하기야 뭐 보통때 보다 몇 시간 더 집에 있으면 되는 것인데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짓이다.
재미없는 비디오나 빌려서 내 구성 실력이나 배양해야 겠다.
밥을 다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나왔다. 아주 공주가 되어서 나왔다
. 속으로 이런 생각이 절로 떠 올랐다.
'이년이 어딜 가는데 이렇게 차려 입고 나오는 겨?'
옷이 좀 낯이 익었는데 못 보던 것이었다.
"어디 가세요?"
"음."
그녀가 내 말을 듣고는 자기 옷 맵시를 내려 본다.
저 태도는 자기 모양새가 어떤지부터 물어 달라는 표현이겠지.
"참 예쁘네요. 옷이 참 잘 어울려요."
"좋아 보여요?"
"못 보던 옷이네요."
"참내, 저러니 여자 친구가 없지."
"왜요?"
"이거 동엽씨가 사준 거에요."
그래 이상하게 못 보던 옷인데 낯이 익다 싶었다. 잘 사주었네. 근데 저걸 입고 어딜 가는겨.
"어디 가는데요?"
"안 가르쳐 줄래요."
"일찍 들어 오는 거에요?"
"그건 모르죠."
"남자 만나러 가요?"
"내가 남자 만나러 간다면 동엽씨 기분 나쁠까요?"
"뭐 별로 나쁠 것은 없지만 내가 사준 옷을 입고 나가니까..."
"흠, 갔다와서 봅시다. 나 나가 봐야 겠어요."
그녀가 구두를 신는 뒷모습을 고무장갑을 낀 채 바라 보고 섰었다.
설버라. 그녀 성격에 남자 만나러 가면 내 물었을 때 당연히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 가 보다. 그래 내가 그 옷 사주었다고 자랑이나 하고 오시오. 하하.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찝찝했던 기분이 풀린다.
"잘 다녀와요."
그녀가 한 번 뒤돌아 보더니 암 말도 안하고 그냥 나가 버렸다. 쩝.
설거지를 끝내 놓고 내 방으로 들어 왔다. 오늘따라 내 방 공간이 너무 커 보인다.
허전해서 그런가?
할 일이 구체적으로 떠 오르지 않는다.
발가락으로 티비 리모콘을 눌러 보지만 마땅히 관심 둘만한 프로가 없었다.
그래 진짜 잼없는 비디오나 빌려서 분석이나 해보자.
머리를 대충 손 보고 지금 입고 있는 차림 그대로 방을 나왔다.
주인 아줌마가 마루에 나와 계셨다. 많이 좋아 진 모습이다.
"어머님 나오셨어요?"
"어 동엽이 총각."
"나영씨는 어딜 가던데요."
"어? 그래. 아침은 차려 주고 나가던?"
"네."
"그래."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래."
아줌마의 표정에도 뭔가 오늘은 다른 게 있어 보였다.
눈을 위로 떠 아줌마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야 햇살이 보석 빛이다.
호호, 글 쓴다고 이렇게 비유하면 안되지. 놀기 참 좋은 날씨다. 백수 티 나나?
거리 풍경이 밝다. 토요일은 일요일이란 미래가 있기 때문에 밝은 것이다.
내 요즘 생활이 밝은 편이다.
일요일 같은 미래가 분명 있을 것 같다
. 오늘 예쁜 모습의 그녀가 떠 올라 내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가볍다.
졸라 재미없는 비데오는 값이 싸서 좋다. 몽타쥬 기법이란 무엇일까?
변증법 이론에서 나온 것이라 했는데. 세르게이 에이진타인의 전함 포템킨이란 영화를 빌렸다.
이게 내 글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다.
비데오 테잎을 추리닝 허리춤에 꼽고 제법 신나는 걸음걸이로 집으로 향했다.
담배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숙집으로 들어 왔다. 마루에 주인 아줌마와 눈에 익지 않은 아줌마 한 분이 또 계셨다.
알지 못했지만 인사는 했다. 저 아줌마가 왜 날 아래 위로 한 번 훝었을까?
방으로 바로 들어 가려다 물이 필요 했길래 냉장고 문 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었다.
가까운 식탁에 주인 아줌마와 낯선 아줌마가 앉아 있다.
주인 아줌마가 괜히 내 눈치를 살폈다.
그것에 아랑 곳 없이 낯선 아줌마는 내가 입장하면서 중단 되었다 싶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었다.
내가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물을 컵에 따르다가 듣기 싫은 얘기를 들었다.
"혹시 저 총각을..."
"아이,"
"저 총각 보다는 오늘 선 보는 남자가 훨씬 낫지."
계 속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았어요.
머니 선보러 간거야
즐감
배신감 생기겠당.
즐감~~
감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