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에 적었던
길이가 변형된 사진이라고 적었던 내가 착각한
아들 경운초등학교 졸업사진도 있었는데
사진속에 키가 훌쩍큰 기억이 남아있어
그 사진으로 착각한
아들 경운초등학교 졸업사진도
같은구도 비슷한위치의 포즈는 완연히 다른
내 생각엔 확실치는 기억이
그 사진 또한 없어진것을 어느집에 보관돼 있는지
그 시절 떠올려보면
자녀들게 미안한 마음이 요즘 티비를 보다보면
자녀들게 무엇하나 충분히 충족되게 해주지못한
불교에 몰입해 자녀들게 불교을 이입시키려 했는지
지금 생각함 참 후회되고 후회되는 부분 부분들
그 정성 그 시간 그 경제적
내 가깝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썼다면
현실적으로 시야를돌려 모든일들을 판단했었더라면
지금 놓여진 현실은 판이하게 달랐을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종교을 물으면 불교라고 답하고
그당시 가졌던 원력과 기도의 끈을 그대로 이어가고는 있다
내 기대가 아들에게도 부담이 있었을것같고
딸 역시 부담으로 자랑스런 딸이 되고픈 강했을것같다
새벽4시면 일어나 찬물세수하고 긴 시간 앉아 불경 지송하던모습
잠결에도 알고있었을태니
아들 또한 건너방에 있었어도 잠결에 내가 드나드는 잠결에 알고있었을지도
딸에게 있어 나란존재는 딸 인생판도를 판이하게 바꿔놓은 존재다
나 역시 딸에게 무한한 실밍을 기대가 컸던만큼
그래도 내 기대에 미치는 딸이 되고픈 마음이 항상 딸에게 있었는지
딸에게 공무원이 됐음좋겠다고 몆번 말한적이 있는데
작년에도 딸 다니는곳 식약처관할이니 공무원 아니냐고 했었고
내 원하는바를 염두에 두고 알아보고있었는지
얼마전 딸 전화가 왔다
해외여행 일주일쯤 다녀오자고 몆번이니 전화로
일본도 좋고 어디던 일주일쯤 시간이 난다고
엄마가 바라던데로 공무원이 됐다고 5급사무관이 됐다고
국방부소속 군무원 5급사무관으로 국방부로 출근하게됐다고
내 컨디션이 여의치않아 해외여행도 국내여행도 여의치않다고
그래도 참 많이 정말 많이 울컥할정도로 마음이 벅차올라
고맙다했다 기뿌다고도했다
예전 아들과학교 2학년때 시험도치지않고 과기대 들어갔을적도
카이스트 들어갔을적도
기쁨과 감사함에 쌀한말을 고향에서 보내온 쌀로
직접씻고 검은콩도 직접삶아 떡집에 맡겨 떡을해
택시를타고 택시기사분게 부탁헤
어디 전화해 기쁨을 알리고픈데 알리고픈데
정작 전화걸데가 생각나지않아 생각나지않아
속으로 남편생각만 가득했고
정작 전화로 기뿐소식을 전화할데가 생각나지않았었다
그게 참 슬프기도했던 속으로 울게되는 심정이기도 했다
딸 국방부로 출근하고선
약사업무라면서
공기가 좋다고 거의 젊은군인들이 많고
퇴근시간은 5시에 퇴근한다고
내가 행정직으로 옮길여지는 없느냐고
그래도 엄마가 공무원공무원 하셨으니 공무원된걸로
만족하시라고
전화를 놓고 생각해보니
언젠가 아들또한 엄마가 하시는말씀
뇌리에 그대로 남아 두고두고 생각으로
남는다고 했던말이 생각나
내 거르지않고 불쑥불쑥 했던말들이 자녀들겐
나란 존재 길게 오래사는게 자녀들게 득될게 뭐가있을까
생각하게되니 슬퍼진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도 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