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차이런가? / 강이례
계묘년 한 해가 저물고, 대망의 갑진년이 다가왔는데도 내 마음은 년 초부터 무엇인가 잃은 것 같고 허전하기만 하다.
고시생 신랑을 만나 결혼하여 아들, 딸 4남매를 두고서야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남편은 34세에 미관말직인 면서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고시생 생활이 반복되었다. 사무관이 되고 나서야 대학교 때부터 밤마다 따라다니던 고시 공부는 뜬구름이 되었다.
시댁에서는 신랑인 막내아들만 대학을 가르쳤다. 예전 시골집에서는 부모는 물론이고 큰형, 작은형, 술꾼을 만나 고생하는 누나 등 식구들 모두 대학 나온 신랑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효성이 남다르게 지극한 남편은 44세에 사무관이 되고서 어느달인가 월급봉투를 통째로 아버님 병원비로 바쳤다면서 맨손으로 돌아왔다.
6식구 생활비를 어쩌란 말인가? 부모 형제 정 때문에 직장에서 발령 나는 대로 이집 저집 단칸방 셋방살이 돌아다닐 때도 자기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를 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한밤중에 돌아와서 아침이면 일찍 출근하고 일요일에는 도서관에 간다며 새벽에 나가고 아이들과 얼굴 마주 보는 날도 드물었다.
아버지 무관심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다. 특별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오직 절약만을 주장하면서 짠순이가 되었다. ‘엄마 우리도 내 방, 내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야.’ 불평불만을 말했어도 더욱 엄한 짠순이 엄마가 되었다. 자식들 모두 원하는 대학 보내서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며 살게 하고 싶었다.
뒤돌아보니 짠순이면 어떻고 엄한 엄마면 어떻냐 자식들 모두 내 뜻에 따라 주었고 열심히 노력했기에 고맙고 대견해서 귀한 자식 매 하나 더 들라는 속담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4남매 중 막내는 누나들과 형이 모두 이과인 데 비해 혼자서 문과를 공부했을 정도로 맘 씀이 살갑고 다정한 아이였다.
올해 초에 수년을 외국에서 살고 있던 막내아들이 한 달간을 부모와 함께 보내러 돌아왔다. 365일 어느 한 날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이 보고 싶고 그리워하던 아들인데 옆에 두고서 계속 의견 차이가 있다. 먹는 것이 달라지고 생활하는 것이 달라진 오랜만에 만난 자식이라 그런지 한집에서 같이 지낸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움이 많았다.
세대 차이가 이런 것일까?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매번 의견 충돌이다. 너무 오래 떨어져 살다 보니 이렇게 변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품 안에 자식이라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기를 때는 남보다 더 잘 가르쳐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했었는데 지금은 꼭 아들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먹이고 싶고 주고 싶은 생각에 이것저것 챙겨 주었는데 쓸데없는 88세 먹은 노모 간섭으로만 느껴졌나 보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아들은 정해진 기일이 되어 다시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꿈에서조차 항상 그리던 아들이었기에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올 설날도 할머니가 정성껏 쓴 덕담이 쓰인 세뱃돈 봉투는 쓰레기로 버리고 세뱃돈만을 빼가고, 친척 어르신들이 주신 세뱃돈이 적다고 그 자리에서 불평한다는 요즘 아이들 세태에 대해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가족과 친족끼리 자주 만나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부딪치며 사는 사이라면 이러한 사태가 생길까?
친구들 사이에서 손자들 귀엽다고 보는 족족 용돈 잡아 주었더니 씀씀이만 커지고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여러 번 들었기에 9명이나 되는 손자들에게도 난 짠순이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고루한 세대 차이가 나는 노인네 푸념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살지는 못할지라도 가족과 친지들끼리 서로 자주 만나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다면 세대 차이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족이 다 모이는 날들은 몇번이나 되는지 생각해봅니다.
두 명절과 우리 내외 생일날 정도네요.
손주들 어렸을 때는 그래도 다 모였었는데
이제 쉬는 날에도 학원에 가야해서 못 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참 많이 아쉽더라고요..
코로나 이후 우리사회에서 가족이 붕괴되는게 가속도가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