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항변 / 김영근(송정)
아침부터 햇볕이 따뜻했다. 등에 땀이 나서 옷을 다 적신다. 기온이 높아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빠른 걸음으로 가면 땀 범벅이 되었다.
수습으로 첫날 통학버스 동승자로 갔을 때부터 이 일자리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택받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정식 근무를 하루도 안 하고 내팽개칠 수 없어 근무처에 말을 안 했다. 하루 7~8시간 육체 활동이 체력에 큰 부담이 되었다. 그렇지만 시작하면 계약 기간까지 채우는 정신력은 있다.
오전 근무 2시간 후 오후 근무 시작까지 약 3시간 자유시간이다. 그날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안가에 가지 않고 주변 식당에서 식사 후 휴식하려고 했다.
보리밥집에 들어섰다. 식당은 아침 손님이 없어서 배식을 안 한다고 했다. 식사하려면 2시간을 기다리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무지까지 30여 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곳에서는 마음 놓고 식사를 못 할 것 같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땀을 흘린 날은 다른 분들이 내 몸에서 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염려되어 시간 계획을 바꾸었다.
소식하는 습관이라 값이 저렴하며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 밥집을 찾았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반찬을 신경 쓰지 않고 양을 조절하여 먹을 수 있는 김밥 두 줄을 쌌다. 아양교 근처 금호 강변에 갔다. 등나무 아래 벤치 그늘에서 자연 경치를 보며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한 신문지로 밥상을 차리고 등산용 스펀지 깔판 2개를 펴서 앉기 편한 자리를 만들었다. 김밥은 아침 식사 시간이 늦었고 평상시 먹어본 김밥보다 들어간 재료가 달라서 그런지 맛이 더 좋았다. 김밥 한 줄이면 요기가 되는 것을 두 줄 쌌더니 양이 너무 많아서 남겼다.
남자 노인 한 사람이 가까이 왔다. 자기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외줄 철조망에 올리려고 했다. 물병이 아래로 떨어져도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처럼 외줄 타기를 반복시키다가 결국 평지에 두었다. 그 남자는 혼잣말로 구시렁구시렁 그렸다. 잘 들리지 않아서 나보고 하는 말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김밥을 먹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말인데도 정확하게 듣지 못해 가만히 있었다.
김밥을 먹고 난 후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벤치에 신문지를 깔고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운동화를 벗어 벤치 옆 바닥에 두었다. 전날 잠을 두 시간밖에 자지 않아 눈이 따가워서 감고 배낭을 베개로 하여 휴식을 취하며 잠을 청했다.
등나무 아래 내가 누워있는 벤치까지 대빗자루로 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으로 가려니 벤치도 그늘도 없어서 이동하지 않고 잠을 청한다고 눈을 뜨지 않고 누워있었다. 대나무꼬챙이가 오른쪽 다리를 스쳐 갔다. 실수 이거니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오른쪽 팔을 대나무 빗자루의 뻗어진 가지가 스쳐 갔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참았다. 한 번 더하면 따져보겠다는 마음으로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왼쪽 다리를 빗자루의 대나무 가지가 건드렸다.
청소부는 내가 아침부터 김밥을 먹고, 깔판을 깔고, 신문지로 잠자리 요를 만들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있으니 노숙자로 여겼다. 계획적으로 빗자루가 나의 몸에 3번이나 부딪힌 것이다. 처음 빗자루가 닿았을 때 말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는 참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노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장님, 청소 빗자루로 누워있는 사람을 왜 건드립니까?” 하고 말했다. 청소 일을 하면서 사장님이라는 호칭은 듣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일단 치켜세우는 말을 건넸다.
자기는 청소 일하는데, 그늘에 누워서 쉰다고 쌤통을 부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고 안 부딪쳤다고 시치미 떼었다. 그늘에 누워서 쉬는 것이 못마땅하냐고 하니 아니라고 하는 대답은 거짓말이고 변명하는 것으로 들렸다. 무엇이든지 한 꼬투리를 더 잡으려고 트집을 부렸다. 신발을 벤치 아래 벗어놓으면 안 된다, 이곳 벤치는 누워서 잠자는 곳이 아니고 앉아서 쉬는 곳이다, 잠은 집에 가서 자라 등 나에게 별의별 억측만 내놓았다. 노숙자는 일정한 집이 없으니까, 이곳에 잠을 자지 말라고 하면 자기에게 사정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던, 누워있던, 제삼자에게 방해되지 않으면 되지, 누워서 쉬면 안 된다는 안내 글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자기 말이 맞다고 했다.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쉬는 곳인지 동구청에 한 번 물어보아도 되느냐고 하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주장만 하고 상식에 맞지 않은 말을 했다. 도리어 기가 살아서 전화로 신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없는 일로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기분이 아주 나빴다.
휴대전화기로 검색하는 척 만졌다. 그제야 하던 일을 멈추고 “빗자루로 청소하면서 대나무가 건드려 조금 받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 작은 것 가지고 전화합니까, 전화 신고하지 마세요.”를 세 번 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몸을 낮추었다. 청소부는 전에 다른 노숙인에게 써먹은 것을 나에게도 그 방법을 써다가 텃세하지 못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내가 이치를 따지니 말문이 막혔는지 가만히 있었다.
공공근로를 한다는 것은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다. 수당 얼마 받으려고 더운 날씨에 청소일 하면서 말실수로 직장을 잃게 되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하는 동정심과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지만, 일하는 모습은 찍지 않고 세워둔 빗자루를 찍어 왔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직분에 맞게 처리하고 남을 업신여기거나 이치에 맞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관할 관청에서도 작업할 내용만 지시, 안내할 것이 아니다. 자기 직분에 맞는 행동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겸손하도록 지도해 주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언제 또 그 장소를 이용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실어주어서 감사합니다.